Registration of the Time II

최정미展 / CHOIJUNGMI / 崔貞美 / painting   2011_0819 ▶ 2011_0916

최정미_바다에 내리는 비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0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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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1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30pm

정림건축 JUNGLIM ARCHITECTURE 서울 종로구 연건동 187-1 정림빌딩 1층 전시장 Tel. +82.2.708.8600 www.junglim.co.kr

Registration of the Time ● 최정미는 상상 가능한 공간으로서 회화와 그 공간의 유미적인 속성을 다양한 색채와 반복된 붓질로 표현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보기 드문 추상미술작가이다. 작가가 상상하는 화면안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때로는 하나의 풍경으로 때로는 하나의 정서로 때로는 하나의 아이디얼한 이상향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작가에게 있어서 회화는 하나의 이상향이며 동경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 최정미는 프랑스 프와티에 종합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프랑스미술학교에서의 교육을 바탕으로 미술사를 가로지르는 회화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고민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심상의 풍경을 위한 프레임으로서의 화면은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심상의 여로에 다름 아니다. 작가가 지속하고 있는 실험은 자연에 대한 예찬을 담은 외계세계의 재현으로서의 풍경화가 아니라, 극도로 개념적인 향수와 멜랑콜리를 끌어 올리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다. 또한 작업에 들어있는 자연에 대한 관념과 서정성은 현대적 풍경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가능하게 한다.

최정미_나르시스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10
최정미_무도회_캔버스에 유채_150×160cm_2003~2011
최정미_빛 내리는 숲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08~2010

엠마누엘 칸트_판단력 비판 ●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은 향락이 제공하는 쾌감이 아니며, 어떤 법에 순응하는 활동도 아니고, 관념들에 기대어 존중을 할 때의 명상이 제공하는 쾌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관조에서 오는 쾌감이다. 가장 보편적인 경험은 판단 능력이 작동함으로써 지지를 받는데, 이 판단 능력이 발휘되는 과정에 힘입어 어떤 유용성이나 원칙에 의해서 유도되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은 오성-개념 능력- 과 관련되어 있는, 상상을 통한 한 대상에 대한 보편적 이해- 직관 능력 -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제공하는 쾌감이 이런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개념들을 확립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들 중 하나인 미학적 판단은 재현 활동이 인식의 두 능력인 직관 능력과 개념화 능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활동(즉, 주관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재현 속에 있는 상태를 쾌감과 함께 느끼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쾌감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인식 조건들에 기초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 능력들의 균형은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상식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faculte de juger_1790_de Launay 역)

최정미_산책_캔버스에 유채_73×73cm_2010
최정미_나르시스 I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08~2011
최정미_흔적_캔버스에 유채_117×72cm_2008~2011

작업일지 ● 빛을 기록하는 나의 작업들은 늘 진행형이다. 언제나 과거, 현재를 거쳐 그렇게 간다. 캔버스들은 색을 기록하고, 그날의 빛과 공기를 기억한다. 도대체 끝이 나는 적이 없다. 나의 작업들은 내가 나이를 먹듯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그렇지만 다른 나이가 아닌 빛의 나이라고 생각하자. 흰색은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색에 준한다. 빛을 말해주는 색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재료가 가진 특성상 남용은 금물이다. 나의 모든 그림들은 완성된 후에도 식물이 물을 먹듯 빛을 먹으며 존재한다. 딱 14년 전부터 그렇게 진행되었다. '감춰진 시간'은 14년 전 3월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던 프랑스 아틀리에에서부터 시작된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모든 이미지를 간직한 채 아직도 하얀색의 빛을 먹고 있다. 게다가 빛을 많이 먹은 부분은 뚱뚱하기까지 하다.(사진으로만 확인됨.) 하지만 모든 그림이 그렇게 나이를 먹지는 않는다. 몇 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림들도 아주 가끔 있으므로... 내 작업에서 하얀색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끝없이 바뀌는 하늘의 변화를, 그 색을, 그 빛깔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빛과 구름들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마다 세상이 멈추기를 바란 적도 있다. 숲 위로, 저 멀리 구름 위로, 산 위로, 그리고 나무 위로 떨어지던. 자연의 빛깔들이 어찌나 섬세하던지.. 현대인들은 보통 바캉스나 휴일이 돼야 자연을 찾는다. 쉬고 싶다나. 조금 더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일도 즐기고, 세상도 즐기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그건데...인간만이 생각만으로 허기를 채워 볼 수도, 화를 낼 수도, 슬퍼할 수도, 기뻐할 수도, 행복해 질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어쨌든 간에 자연과의 만남이 인간에게 휴식을 주는 것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왜 날짜를 정해서 휴식해야 하는 걸까? 아쉽다...그 부분. 난 자연에 노출되어 휴식하고, 이를 상상하며 휴식하고, 캔버스 위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보며 한없는 휴식을 취한다. 평화스러운 그 느낌. 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작업실에서 차로 10분, 걸어서 1시간이면 푸른 하늘과 초록색 풍경이 맞닿는 곳을 볼 수 있다. 내가 꼭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것만으로도,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휴식이 되는지.. 대체적으로 난 몸의 휴식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 휴식은 내게 있어 산소와 같다. 어제 본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지난겨울 눈 위에 떨어지던 햇빛과 찬란한 색들을 기억하며 15년 전 프랑스 로트렉 마을의 지평선을 기억한다. 가끔은 데자뷔(déjà vu) 처럼 존재하는 그런 것들까지도 모두 다. 그 기억들이 어찌나 오래가는지....난 그렇게 그런 기억들을 조금씩 쪼개서 섭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절대 뚱뚱해지지는 않는다. 집밖을 나가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을 우러러 너무 많은 부끄럼이 있지만 휑하니 비어있는 하늘이 내 것만 같은 느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될 수 있으면 전철보다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직행버스를 타게 된다. 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자연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그런데 그게 가끔 내 그림에 드러난다. 어떨 땐 나조차도 깜짝 놀란다. 오래전에 찍었던 사진속의 하늘이 그 색깔, 그 모양 그대로 내 그림에 나타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절대로. 그림을 안 그렸으면, 그리고 자연의 빛을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 했더라면 나의 이 성스러운 능력은 그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큰일 날 뻔했다. ●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모두 한, 두 살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서서히 나이를 먹어 갈... 이렇듯 내 그림들은 늘 진행형이다. 꾸준히 빛을 얹어주면 나이를 쌓아갈 것이고. 음~ 긴 여행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해졌다. 올 겨울엔 조금 길게 여행을 떠나야겠다. ■ 최정미

Vol.20110819b | 최정미展 / CHOIJUNGMI / 崔貞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