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영도'를 찾아나선 탐험

정보균展 / JUNGBOGYUN / 鄭譜均 / sculpture   2011_0817 ▶ 2011_0823

정보균_무제 일_알루미늄_83.5×97×97cm_2011

초대일시 / 2011_081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정보균 조각전-'조각의 영도'를 찾아나선 탐험1. 나는 그를 보면 인류 최초의 장인이라 할 '호모 하빌리스'라는 말이, 아니 편견이 좁은 거리 현수막처럼 가로막는다. 그는 꼭 문명이 지구를 덮치기 훨씬 이전에 살았던 사람 같이 맑다. 아무 걱정 없는 소년의 얼굴로 손에는 돌로 만든 도구 하나 들고 묵묵히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사물과 재화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손을 자유롭게 움직였던 인류의 표상 말이다.

정보균_무제 사_알루미늄_50×50cm_2011

2. 그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알루미늄 망을 겹겹이 접어 두들겨 매스를 만들고 드러나는 형상을 빚기 위해 산소용접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문장에서 나는 '무엇을'에 해당하는 목적어를 빠뜨렸다. 굳이 찾는다면 아무 형태도 떠오르지 않는 밋밋한 '작업'이라는 말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그러면 그가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작업이다, 쯤이 될 것이다. ● 그는 은백색 격자모양이 반복된 알루미늄 망과 망치와 불,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대상을 도입하여 최소한의 형태로 접근"해가며 그의 망치가 멈춘 곳은 둥그런 그릇모양의 사물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도가 닿은 곳은 네모난 우물모양의 사물이다... 요컨대 원과 사각형 같은 기본도형에서 출발한 그의 탐험은 원통과 입방체 모양에서 닻을 내린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작업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며 무한 반복의 과정을 겪은 연후에 끝이 나는 험난한 탐험이다. ● 작가가 떠난 탐험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뒤로 넘겨놓고, 우선 재료도 방식도 형태도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데에서 한번 눈을 멈추자. 'Al'이라는 원고기호로 표시되는 알루미늄은 지구상에서 산소와 규소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원소이고, 지각을 이루는 금속으로서는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흔하고 기본적인 원소이다. 화려한 색상의 보석인 루비나 사파이어를 구성하는 원소이면서도 그것은 결코 콧대가 높지 않다. 연성延性과 전성展性이 뛰어나 잘 접히고 펼쳐지고 늘여져 사람들의 살림살이 구석구석에 안 쓰이는 데가 없이 유용하다. 색깔도 금속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은백색을 띠어 서민적이다. 게다가 일단 물건이 되고 나면 산소와 재게 결합하여 절대 녹이 슬지 않으며 가볍고 내구성이 커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가 사용하는 알루미늄이라는 재료의 물성은 백반 속에서 나온 금속이라는 미약한 처음을 지니지만(알루미늄의 라틴어 어원은 백반을 뜻하는 알루멘alumen이다), 동시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엄청나게 많은 영역에서 재료가 되고 야금술이나 용접에서 촉매가 되어주는 창대함을 지닌다. ● 작가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이 알루미늄을 재료로 선택한 이유가 흥미를 끈다. 망이라고 하는 매트릭스 형식을 띠고 있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작가는 알루미늄 망을 접어 망치로 두드리는 행위를 거의 무한에 가깝게 반복하여 어떤 형태가 현전現前되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이 반복 작업은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알루미늄의 연성과 전성은 그것이 액체 상태가 되고 나서 나타나는 성질인데 용융점이 2천도에 가깝다. 우리가 알 듯 알루미늄은 그래서 재생해서 써야만 하는 재생할 수 있는 순수한 금속인 것이다.) 조각의 원형은 사람과 물질 간의 상호작용 안에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손길로 물성에 개입하여 물질과 공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변증법을 차분히 밟아나간다. 반복은 작가의 손과 망치로 직접적으로 물질의 표면을 반복적으로 두들기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틀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출되는 캐스팅을 취하지 않는다. 반복 행위 이상의 의미를 생성하려 하지 않는다. ● 작가가 망치질을 멈추고 용접기를 끄는 순간에 드러난 형태는 위쪽이 뚫린 네모나거나 동그란 그릇모양이다. 경계도 없는 무심한 공간 속에 받침대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그릇들. 그런데 그저 그릇이라는 익숙한 이름으로 부르고 말기에는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다. 관람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파놓은 애매모호함의 함정에서 한번 발을 헛딛게 된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그 크기가 애매함을 산출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그릇이라는 이름을 뚫고 나가 (뻥뻥 뚫린 알루미늄 망의 격자 구멍들을 통해서 빠져나간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예술작품의 반열 위에 올려놓는 전도轉倒의 장면을 연출한다. 예술이란 일상을 낯설게 하기Verfremdung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발명이 아닌가. ● 작가가 반복 작업 속에서 자아를 사유하게 되고, 그래서 자아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진정한 자아를 언뜻언뜻 만났을 그 과정은 무한회귀의 과정을 형성한다. 관람자는 시간을 들여 작품 주위를 돌며 중첩되어 성글게 붙어있는 격자의 칸 속을 들여다보고 그릇모양의 안쪽을 넘겨다보기를 반복하면서 대상물 자체를 사유하고 미술관에 진열되어 있는 예술작품으로서 맥락을 지어보는 식으로 돋보기와 졸보기의 반복을 거쳐 마침내 어떤 잉여적인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작가와 작업, 작품과 관람자 그리고 관람자와 작가, 관람자와 예술작품이라는 계속 미끄러지면서 형성되는 매트릭스의 시뮬레이션이 시연된다. 그러면서 흔들리는 파장 속에서 어떤 명제를 하나 만나거나 만져볼 것이다. 그것을 굳이 소통이라고 한다면 작가는 그러한 소통을 의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정보균_무제 칠_알루미늄_22×165×165cm_2011
정보균_무제 이_알루미늄_45×41×163.5cm_2011

작업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외부세계를 향한 정서와 관심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물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하게 만들고 작품 자체가 표현하는 의미를 찾게 하는 데 중점을 두어 인간 내면의 존재와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얼마만큼 더 근원적으로 접근하느냐를 놓고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삶 속에서 풀어나가려 하는 것이다. ■ 정보균

정보균_무제 오_알루미늄_22×178cm_2011
정보균_무제 육_알루미늄_20×242cm_2011

3. 이제 작가가 쉽지 않은 탐험의 길을 나선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서의 영도, 작가의 작품세계에 있어서의 영도, 예술작품(조각)에 있어서의 영도를 찾고 씨름하는, 그래서 급기야는 하나의 도주선을 그리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여기서 영도란 단순히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제로 지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첫 문학평론집을 내면서 야심차게 들고 나온 '글쓰기의 영도Le Degré zéro de l'écriture'라는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 바르트는 알베르 카뮈의 중립적이고 비정서적인 글쓰기를 들어 '영도의 글쓰기zero degree writing'라고 불렀다. 사르트르가 현실참여를 거부한 카뮈의 글쓰기를 일러 '백색의 글쓰기écriture blanche'라고 한 것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바르트의 이 개념을 통해 카뮈의 글쓰기는 '문학'에 대항하고 의미와 질서에 대한 문학의 억측에 반발하는 것이 되었다. 요컨대 하나의 독특한 글쓰기 양식인 영도의 글쓰기란 의사전달 혹은 표현만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그것은 문학의 제도와 맺게 되는 의도적인 관계로서 가능한 모든 가능성 가운데 작가의 의식적인 선택이다. ● 나는 '글쓰기'의 자리를 '조각'이란 말로 전치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작업을 '조각의 영도零度'라고 이름이랄 수 없는 이름으로 잠시 붙들고 싶다. 작가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이며 일상적인 재료와 작업방법과 형태를 통해 조각의 존재론 자체에 의문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형태상으로 볼 때 선뜻 미니멀리즘 조각이라는 장르구분에 가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만큼 단순하고 미끈하고 반복되어 있다. 그런데 그릇모양이라는 점과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크기에서 어떤 기능을 가진 구상을 초현실주의 계열로 의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혐의를 가진다. 따라서 제삼의 무엇일지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아직은 무어라 명명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의미가 생성중인 어떤 것, 의미가 드러난 현실성이 아닌 의미가 실현되지 않은 잠재성의 무엇... ●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예술작품을 '구상적인 것le figuratif'과 '형상적인 것le figural'을 구분한다.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디아그람diagram을 사용하여 구상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재현을 통한 구상회화가 위험한 것은 외부세계의 이미지가 화면 내의 이미지와 연관됨으로써 시각이 '재인의 모델'에 종속되면서 감각의 직접성과 강도가 상실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들뢰즈는 예술작품은 재현할 모델이나 전해주어야 할 서사가 없는 기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마주쳐 의미가 현재진행형으로 생성되는 사건 말이다. 그리고 구상을 피하는 두 가지 방식인 추상abstraction을 통해 순수한 형태로 나아가는 것과 추출extraction 혹은 고립isolation을 통해 순수하게 형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제시한다. ● 나는 작가의 작업이 미니멀리즘 조각도 초현실주의 조각도 아닌 제삼의 무엇일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들뢰즈의 형상figure을 제시하고 싶다. 작가의 알루미늄 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그릇모양의 작품들은 그가 선택한 재료와 방식과 형태와 크기를 통해 의미들이 갈라져나가는 문지방 위에 놓인 일종의 매트릭스라고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작가는 격자모양의 망, 즉 매트릭스를 가지고 일차적인 방식인 두드림과 불을 사용해 인류가 가장 먼저 만들었을 예술인 그릇을 빚고, 동시에 그것의 거대한 크기로서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의미가 고정되지 않게 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의미가 산종되면서 의미가 생성되는, 제삼의 도주선을 그리면서 되기를 동반하는. ● 알루미늄은 재생해야 하는, 그리고 재생되는 순수하게 추출된 금속이다. 그의 20여년 작업의 일단락은 이제 다시 르네상스(재생)를 기다리는 영도에 와 있는 것이다. ■ 채미애

Vol.20110820f | 정보균展 / JUNGBOGYUN / 鄭譜均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