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NANJI ART SHOW Ⅶ

백년몽원(百年夢源) WONDERPIA(WONDER+HETEROPIAS)展   2011_0822 ▶ 2011_0904

강승희_I've got a feeling we're not in wonderland anymore Hand_embroidered on the fabric with mixed material

초대일시 / 2011_0822_월요일_05:00am

참여작가 Gorka Mohamed(SP)_Joep Overtoom(NL)_Jorg Obergfell(GER) Yo Okada(JAP_UK)_Wil Bolton(UK)_Robb Jamieson(CA)_Baldur Burwitz(GER) 강승희_권순관_문명기_박은영_안두진_오윤석_유비호_유승호_이상용 이원호_이창훈_장석준_장종완_장재록_정재욱_차동훈_한경우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기획 / 이진명(미술비평,독립기획자)_김기라 문화공작소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 NANJI GALLERY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 Tel. +82.2.308.1071 nanjistudio.seoul.go.kr

백년몽원(百年夢源) ● "미국의 발견은 예술 종말의 시작이다." (오스카 와일드)( Alvin Redman (ed.), The Wit and Humor of Oscar Wilde, Dover Publications, 1952, 122p. "the discovery of America was beginning of the death of art.") "일급 문제는 이렇다. '진리에 대한 의지'가 과연 어느 정도로까지 '사물의 깊이'를 관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Pierre Klossowski, Nietzsche and the Vicious Circle, The Universty of Chicago Press, 1997)

안두진_The cave_캔버스에 혼합재료_97.5×146cm_2010

주지와 같이 이번 기획의 이름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렸다는 전설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몽원이라는 낱말과 한 개인의 일생의 시간을 상징하는 백년이 함께 구성된 합성어다. 그리고 지난 한세기 백년을 성찰함과 동시에 앞으로 도래할 또 다른 백년을 절차탁마 준비하는 작가들의 비전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며, 또한 비전의 제시야말로 백년 동안 한 개인이 세계에 제시하는 이상, 즉 몽원이 된다. ● 그러나 시절이 그저 녹록하지만은 않다. 알렉상드르 코제브가 "더 이상 인간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라고 말했을 때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의 변증법적 모순이 완전히 지양된 상태, 즉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앞의 세상이 모순과 대립으로 뒤엉켜있을 때 이 무기력함은 유토피아이기는커녕 지옥일 것이다. 아니면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제시하기보다 차라리 사뮤엘 버틀러가 제시한대로 '유토피아란 에레혼(erehwon)'이라는 말을 상기하는 편이 낫다. 에레혼을 뒤집어서 절망적으로 바라보자면 '노웨어(nowhere)', 즉 '아무데도 없다.'이거나 그나마 희망적으로 바라보자면 '나우 히어(now here)'이다. 즉 '바로 지금 이곳'이라는 뜻을 정확히 파악해서 현실을 대처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멋진 태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20세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즉 막스 베버와 칼 마르크스의 대립, 이와 동시에 얽힌 유대주의(Zionism)과 반유대주의(anti-Semitism), 기존의 가치에 대한 보수적 찬동과 이에 대한 비평적 대안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과열된 구조에서 스스로 폭발한 빅뱅, 즉 양차 세계대전의 절대적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 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모더니티의 결과는 표면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이후 전장의 포성은 서구 진영과 동구 진영의 완벽한 차단이라는 이치관념(二値觀念)의 포성 없는 이데올로기 전쟁, 쉬운 말로 냉전으로 탈바꿈한다. 서구는 무한자유와 인권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으며, 동구는 평등과 해방이라는 선전문구를 남용했다. 이 시점부터 유럽의 계몽주의 프로젝트인 이성적 모더니티의 동력은 신대륙 미국의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경쟁체제로 이양되었고 50년대 미국의 패권주의가 비로소 싹을 틔었다. 예술에 있어서도 전세계는 추상표현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모든 물감을 한곳에 흩뿌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구성주의 등 일련의 유럽적 진보를 미국이라는 단일한 용광로에 일단 녹여서 재생산한 결과물의 총체적 상징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 미국의 자신감은 더 한 발자국 진전해서 팝아트라는 슈퍼스타를 창출했다. 유럽적 계급주의와 다르게 노동자와 상원의원이 똑같은 맛의 콜라를 즐기는 모습의 신문화란 얼마나 멋지냐며 미국을 선전했다. 또한 체제경쟁에 있어서도 동구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도들이 암약(暗躍)했으며, 사실상 이는 슈퍼스타 예술가들을 배출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왜냐하면 미국 내부는 소비에트를 위시한 동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일 절대적 필요가 있었으며 예술이라는 매체 안에서 순수하게 존재함으로써 체제 선전으로 남용되는 동구의 정치적 프로파간다 예술보다 우위에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던 것이다. 서구가 동구를 압도한다는 주장의 근거로써 순수성(purified)과 보편성(universality)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는 주지와 같이 형식주의의 지속적 강화와 단련이었고 이는 대성공이었다.

유승호_bzzz…_종이에 잉크_200×157cm_2007
장종완_chan chan_종이에 색연필_70×100cm_2010

이러한 인위적 분위기에서 20세기는 새로운 일신의 기회를 한차례 맞이했다. 1963년 흑인의 정치 참여권이 미국 의회에 의결되었으며, 여성의 평등권 역시 보장되었다. 더욱이 1963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인간의 모든 차별과 박해를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1965년 베트남 전쟁의 발발에 대한 항거로써 플라워 무브먼트가 전미에서 봉기되었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났다. 두 달에 걸쳐 실패로 끝난 이 프랑스 학생운동은 그 동안 권위, 계급, 위계, 복종의 미명 아래 봉인되었던 진보적 정신을 깨어나게 한 결정적 동인이었다. 즉, 프랑스 몇몇 학교의 학생봉기로 시작된, 표면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사실 역사적 동력으로 작용한, 이 작고 위대한 사건은 점차 유럽인들로 하여금 종교와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굴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고취시켰고, 이후 전세계 지성과 문화계는 평등, 인권, 해방, 공동체주의, 생태라는 전대미문의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 이런 분위기에서 하랄트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전설적 전시가 1969년 스위스의 작은 도시 베른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예술가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형식주의의 권태로부터 벗어나 개념미술이 지향하는 세계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견지하게 된다. 예술가의 세계에 대한 진정한 태도야말로 바로 형식 그 자체이며 조각, 설치, 회화라는 견고했던 물질적 감옥의 요구로부터 해방되어 세계에 적극적으로, 그것도 자유로운 형식으로 발언할 수 있는 출구가 열렸다. 이때 개념 미술가는 세계에 대한 네러티브, 세계에 대한 감수성, 세계에 대한 실험을 자유롭게 진척시킬 수 있었던 야망의 전제적 주체일 수가 있었고,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파편화된 사적 관심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애초에 다니엘 뷔랭,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 백남준 등은 개념 예술가와 정치적 예술가 사이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진정 그들의 개념은 세계, 사회, 문화 일반, 정치경제, 우주, 역사, 성, 인권을 총괄적으로 이해하는 수단이자 기획이었으며 예술을 통한 사회 변혁의 목적을 정확히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때부터 유럽 대륙과 영미권의 무게가 균등을 이루거나 유럽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Jorg Obergfell_strangefolly_혼합재료_70×80×50cm_2008
The Whole Picture of the Incident a hanging old woman C print_180×225cm

문제는 70년대 유럽 미술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실험을 추구하는 개념미술의 물이 올랐던 반면 미국의 경우 심각한 형식주의 모더니즘(high modernism)이 공룡화되어 사회에 대한 그 어떤 발화도 중지한 채 대중에 권태를 안겨주었던 점이다. 더군다나 1976년 창간된 영향력 있는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슈퍼 엘리트층들이 공모한 '옥토버' 집단의 학술적 천착으로 인해 작가나 대중들의 방향감에 혼란이 생겼다. 그들은 모더니즘, 곧 형식주의에 대한 반발의 기치로서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을 선망했고 이는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필연적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분명히 이는 곧 미국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미술, 비평, 이론, 정치의 유기적 일치를 꾀했던 그들의 전략과 영향력이 증대할수록 미술에 있어서 운동이나 생명력 있는 근원적 아방가르드가 퇴색해갔다. 작가들은 프랑스 이론들을 기꺼이 알아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게 되었고 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수식과 미술 본연의 임무를 혼동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구의 역사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태생부터 애매한 정체성이었고, 비본연적 자기 위로였으며, 모더니즘의 권태가 누적되어 쌓인 일시적인 신경질적 폭발이자, 이를 타계하려던 초강수의 처방전이었지, 결코 역사적으로 내밀한 자기 발전의 과정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 더욱더 큰 문제는 80년대부터인데, 이때부터 미국에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영국 정부가 대처주의(Thatcherism)를 표방함에 따라 세계에 대해 영미 공조체제가 재편되었다. 이때부터 세계 시대정신은 강경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선택한 것이다. 노조에 대한 강경주의, 복지축소를 통한 재정확대, 기업 세제를 약화시키고 기업에 지원금을 늘려주는 기업친화정책, 강한 정부와 약한 국민, 국민 우민화 정책을 통한 엔터테인먼트 활성화와 이에 상반된 인문학 퇴색 현상, 강경화 일색의 대외정책, 전쟁 선호, 약자를 먹이 삼아 벌어들인 경제력 등 그 모든 것이 우경화되어 갔다. 더구나 1981년 제너럴 일렉트릭(GE) 전 회장 잭 웰치(Jack Welch)는 취임연설에서 '주주가치(Shareholder's Value)'(Ha-Joon Chang,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Allen Lane, 2010, 17p.)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사용했다. 주주에게 이득을 돌려주는 경제정책이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가장 이상적인 성공전략이라는 것이다. '중성자탄'과도 같은 그의 전략은 회사의 가치를 40배로 키워갔다. 그 반대급부로 11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으며 주주 이익금을 위해서 기반 시설에 투자하지 않아 대기업 산하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복지나 후생은커녕 생존 자체가 절박한 문제였다. 대처리즘의 영국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초특급 부유층들이 등장할 때마다 동시에 대량의 무직업 노동자들이 거리에 속출했다. 더군다나 충격적이게도 1989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었고 그간 영미가 내세웠던 가치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실화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예술계에서도 보수적 상업주의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살르, 로버트 롱고, 에릭 피슬 등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영광스러운 가면을 썼던 작가들의 실제 얼굴은 너무나 초라하게도 보수적 상업주의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이렇듯 사회적 분위기가 우경화될수록 브루스 나우만, 존 밸드새리, 폴 매카시, 크리스 버든, 빌 비올라와 같은 비평적 저항주의 예술가들의 중대성이 그만큼 도외시되었고, 이들 역시 예술을 한다는 자기 본연적 의무를 사회비평적 메시지에서 시각적 쾌락주의로 부분 수정해야만 했다. 90년대 휘트니 미술관은 휘트니 비엔날레의 요체 작가들을 대거 자기 미술관에 안착시켰으며 이를 전세계에 순회 전시로 돌렸다.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포스트구조주의의 근본 정신과 무관하게 미국 미술관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쾌락주의만이 세계에 수출되었고 이식되었다. 이때부터 문화의 세속주의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세계를 운영하는 정책과 정치성에 대한 비평적 저항주의로서의 전지주의적 조절자 역할은 미미해져 갔으며 특정집단의 파편적 자기 주장만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가리켜 전지주의적 이야기꾼으로서의 예술가의 자기 파편화라고도 하며, 호메로스적 인간의 절멸이나 퍼스널 네러티브의 도래, 혹은 거세된 거대 담론 시대의 개인 등의 말로 표현할 수 있다.

Wil Bolton_binary_설치

우리의 경우 1985년 이후 문화담론의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수입해왔기 때문에 위에서 일련의 흐름을 정확히 목도해야만 한다. 특히 80년대는 정치적 참사와 민주화라는 양극단이 동시에 양립 극화되었고, 경제에 있어서도 성장주의라는 대국적 명분과 착취라는 보이지 않는 분명한 갈등이 존속했던 시기였다. 예술에 있어서도 미니멀리즘과 모노크롬 페인팅으로 일괄되는 엘리트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한반도 토착 사상을 절충한 민중미술이 양극으로 대립했다. 그러나 이 팽팽하게 긴장했던 이치관념은 1989년 현실적 사회주의의 붕괴와 세계화, 글로벌 감각의 체득과 함께 자체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90년대, 드디어 유학파가 본격적으로 기관 곳곳으로 수용되었고 특히 1994년 '휘트니 비엔날레 인 서울'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미술이 유행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미국화된 미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수로 오인되면서 비평적 의식보다는 개인 각자의 자기 로고와 자기 브랜드를 공포하면서 지명도와 상품가치를 높여가는 전략적 상업주의 미술이 세를 이루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글로벌리즘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초조감이 팽배했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감각을 문제로 삼을 때마다 지역주의(locality)의 문제가 동시에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정성(negativity)의 문제가 늘 꼬리표처럼 붙었다. ● 2000년대 초기의 정치 경제 분야의 정신을 지배했던 글로벌리즘을 미술 문화적 언어로 번역한다면 바로 유목주의에 해당한다. 유목주의란 주지와 같이 자원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원을 수렵하고 채집하는 이동성 문화양상을 가리킨다. 이미지의 차용과 매체의 다각적 수용이 보장되며, 네러티브의 정격화가 아니라 부정형의 네러티브가 규칙 없이 확장되는 분위기를 긍정하는 양상을 가리켜 일괄적으로 유목주의라고 표현한다. 부정성이란 후기 식민주의 철학의 용어이자 논리이다. 서구는 비서구권 사회를 언제나 타자로 규정하고 비서구권 사회가 언제나 서구화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서구화의 성과를 얻었을 때조차도 문화의 정체성에서만큼은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와 다름을 주장함으로써 타자가 서구미술의 신화가 되는 것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검역시켰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의 기관과 구조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도 기대해서도 안되며 동시에 아시아적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해서도 곤란하다. 서구의 시각과 구조에 편입되길 기대하는 일이란 불가능한 사랑에의 목마름이고, 미술에 있어서 아시아적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은 중독성 없는 술이나 질병 없는 홍등가를 바라는 이기적 욕망과도 같다. 우리가 여기만큼 온 것도 실은 서구 따라잡기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독소만을 제거하자는 주장은 숙취 없는 아름다운 압상트를 창조하자는 논리와 같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일단 우리는 출구가 막연해 보인다. 그러나 "비관론에는 출구가 없다."는 황런위 선생의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따라서 여기 '백년몽원'이라는 전시 주제는 첫째, 한 주체로서의 개인이 평생 제시해야만 하는 개인의 외부세계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지지하며 표방한다. 둘째,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미술이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하며 이 버거운 실존적 무게감을 공유하자는 제스처이다. 셋째, 몽유도원도라는 개인의 꿈과 지평의 수직적 확장과 분기로써의 나무(tree)를 부인하고 수평적 확산을 지지하는 리좀(rhizome)으로서의 고원(plateau), 즉 중심과 축, 수직적 위계나 가치의 확정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실험적 자아로서의 주체인 예술가의 태도를 함축한 말이거니와 수많은 고원을 자체적으로 연계하자는 제안이다. 넷째, 현시점에서 볼 때 자기 처지는 언제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을 고려해보고 인생의 기간을 백년으로 길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분명히 새로운 출구를 돌파할 수 있다. 그 시작의 미미하지만 희망을 갖자는 제안으로 이번 전시의 궁극적 의미를 둔다. ● 여기 참여하는 20명의 작가들은 한국의 작가들 외에도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일본, 캐나다, 영국 등 다국적이다. 이전 백년의 역사로부터 향후 백년의 뉴 페인팅의 진로를 모색한 작가, 한국적 채색의 생명력 있는 신비를 끌어올린 페인팅, 샤머니즘과 세계를 초지일관 관철시키는 개인, 동양화의 정신과 서구 매체를 충돌시키는 실험자, 키치 문화의 상층 문화로의 승격과 상층 문화의 세속화를 전도시키려는 사람, 역사의 국지성을 보편적 감수성으로 확장시키려는 의지의 인물, 지구 환경의 문제의식을 업으로 삼는 작가, 사회의 비극적 요소를 예술적 요소의 희극으로 치료하려는 시도자 등 실로 너무나 다양한 주체들이 모였지만 모두다 어느 특정 분파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을 감행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 아래 그들은 하나의 주제로 포섭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바로 백년몽원이다. ■ 이진명_김기라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5기 입주작가 기획전시 『2011 NANJI ART SHOW』를 개최합니다. 전시는 현재 입주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입주기간이 끝나는 10월말까지 10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Vol.20110822d | 백년몽원(百年夢源)-2011 NANJI ART SHOW Ⅶ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