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결

이은미展 / LEEEUNMI / 李銀美 / painting   2011_0824 ▶ 2011_0906

이은미_ L _캔버스에 유채_50×6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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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 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B1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바람(風)과 볕(景), 그 사이와 그 너머1. 여기,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긴 바지에 긴 소매의 옷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사람. 동그스름한 몸의 윤곽이나 약간 긴 단발의 머리는 이 사람이 여자임을 짐작케 한다. 부드럽고도 조심스럽게 흔들리는 그림자. 마치 물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이 사람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있다. 얼핏 보면 물을 마시는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를 잡은 그녀의 두 손이 눈높이에서 멈춰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기, 어쩌면 망원경, 아니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녀가 지금 '바깥'으로 나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 이은미의 다섯 번째 개인전의 맨 앞자리에 있는 「L」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몇 해 전 네 번째 개인전에서 이 작가는 '실내'라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던 '사물'들을, 그 사물과 함께 호흡하고 있던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서사들을 오롯이 마주했었다. 이제 「풍경, 결」이라는 표제로 작가가 처음 제시한 작품에는, 실외에서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L'은 작가 자신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사실 'L'이 무엇을 의미하더라도 혹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작가가 닫힌 공간의 정물에서 열린 공간의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L」을 보며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어떠한 정경이나 장면을 나타내는 말로 두루 쓰이는 '풍경(風景)'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경치를 일컫는 말이다. 바람(風)과 햇빛(景)의 공명으로 인해 펼쳐지는 것이 풍경이라면, 풍경이라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혹은 가려진 것과 드러나는 것이 공존하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질감, 빛, 색, 모양, 움직임, 깊이 등을 아울러 우리는 '풍경의 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풍경, 결」에서 「L」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이 저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풍경의 결, 그것이 「L」의 그녀가 포착하고 응시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은미_빛의 의존Ⅰ_캔버스에 유채_53×66cm_2011

2. 「풍경, 결」에 나오는 소재들, 즉 문과 벽, 집과 나무, 그림자와 하늘 등은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익숙한 소재를 내세우되 일부러 이들의 색을 낯선 것으로 바꿔 놓았다. 물빛의 문, 보라색 그림자, 초록 지붕과 분홍 벽 등. 이는 이 작가가 풍경을 그리는 목적이 단순히 자연을 모사(模寫)하거나 재현(再現)하는 데 있지 않음을, 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재현되는 대상보다 재현하는 자의 의도와 관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낯선 색을 입은 익숙한 소재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친근함과 생소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 색들이 낯선 감각의 환기만을 의도한 것이었다면, 이들은 좀 더 강렬한 빛을 띠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보일 것을 염려했기라도 한 듯 투명하고 맑다. 소재의 친근함과 색이 만들어 내는 생소함은 겹쳐지고 미끄러지면서, 그림은 확언(確言)이 아님을, 고정된 의미란 어디에도 없음을 드러낸다. ● 「풍경, 결」의 풍경들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일렁임'을 감각한다. 이 일렁임을 가시화하는 것은 그림자라 할 수 있는데, 그림자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은 네 점 정도이다. 햇빛으로 인해 그림자는 존재하게 되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은 변한다. 그러나 이은미는 이를 '빛에 의존'이 아닌 '빛의 의존'이라 명명했다. ● 빛의 존재 또한 그림자에 깃들어 있음을, 빛과 그림자가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 풍경임을 이 작가는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자들이 모두 나무 그림자라는 점이다. 언뜻 불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자들은 정지해 있는 듯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벽을 타고 오르고 있거나(「빛의 의존Ⅰ」), 계단을 내려오고 있으며(「빛의 의존Ⅱ」), 집을 잠식하려는 듯 집의 외벽에 다가가고 있다(「집」). 나무 그림자들의 일렁임, 이 움직임은 고정된 형태나 윤곽을 지우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은미_집_캔버스에 유채_53×73cm_2011

이는 「집」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서 바닥을 뒤덮고 있는 것은 움직이는 그림자 같기도 하고, 흔들리는 수풀 같기도 하다. 또 이것은 출렁이는 물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의도된 모호함은 고정된 어떤 형태로 호명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색과 움직임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크고 부드러운 흔들림, 그것은 「빛의 의존」 연작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나무 그림자들의 일렁임과 유사하다. 무언(無言)의 일렁임은 집을 향하고, 집을 둘러싸며, 집의 윤곽마저도 흐리게 만든다. 이러한 윤곽의 처리는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관점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의 공간은, 단순히 그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사물을 담기 위한 그릇이 아니다. 풍경화의 경우 이는 더욱 자명한 사실이 된다. 풍경화에서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배경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대상과 배경을 나누는 일은 가능한 것인가('배경'이란 말은 대상에게 봉사하는, 대상을 '위해' 그 무엇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하늘과 집과 나무와 그림자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풍경이다. 그러므로 이들 각각의 형태와 위치를 구분하고 구획하는 경계를 흐릿하게 표현하는 것, 이는 삶 혹은 세상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 이는 이 작가가 '벽'과 '문'이라는 소재를 자주 다루고 있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는 「문」이라는 제목을 단 두 작품이 있다.

이은미_문_캔버스에 유채_50×65cm_2011

문과 벽은 안과 밖의 경계이자,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동시에 안과 밖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푸르스름한 문은 열려 있으나 그 안을 엿볼 수는 없다. 문 안 쪽의 보이지 않는 곳은 마치 심연처럼 어둡고 깊다. 담벼락에 있는 문은 닫혀 있지만 담장 너머로 보이는 연한 빛깔의 하늘은 문 안쪽의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즉 이 두 문은 이쪽과 저쪽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이쪽과 저쪽뿐만 아니라 이쪽과 저쪽 그 사이까지도 포착하려는 시도는 「겹」에서도 잘 나타난다. '겹'이란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말이다. 「겹Ⅰ」과 「겹Ⅱ」에는 식물들의 뿌리와 줄기가, 이파리와 꽃들이 서로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이은미_겹Ⅰ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1
이은미_겹Ⅱ_캔버스에 유채_146×112cm_2011

「겹Ⅱ」에서는 점점이 하얀 꽃이 피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밝은 하얀 색에 의해 이것이 꽃송이라는 것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이 꽃의 세세한 모양을 알 수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듯, 얽혀있는 줄기와 이파리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더욱 깊어지는 색. 이는 「겹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에는 줄기와 이파리들 각각이 만들어 내는 낱낱의 움직임과 이들이 한데 엉켜 만들어 내는 무성한 움직임이 공존한다. 거대한 물결과 같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이 안에 바람이 존재함을 느낀다. 바람은 줄기를, 이파리를 흔들며 자신을 드러낸다. 줄기와 줄기 사이, 줄기와 이파리 사이로 바람은 스며들고, 그 겹겹의 바람은 크고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은미_한 권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3. 실제로 이 작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색을 덧입히며 작업을 진행한다. 한 번의 붓이 지나가고 그 다음의 붓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 그것은 물감이 마르는 동안의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사이, 작가는 기다리고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러므로 색이 색을 덧입는 것만은 아니다. 캔버스에는 작가의 기다림이, 기다리는 동안의 사색이, 사색 뒤에 오는 머뭇거림이 덧입혀진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은 붓이 지나간 흔적을 지우는 쪽으로 작가의 손과 마음을 이끈다. 이로 인해 바람의 기척이, 빛의 자취가, 그림자의 움직임이 겹겹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다층적으로 담겨진다. 이번 전시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한 권」이다. ● 「한 권」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친밀함과 낯섦, 넓이와 깊이, 모호함과 분명함, 머뭇거림과 일렁임 등 이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이 모든 풍경의 결이 겹쳐 있다. 이 작품의 아래쪽에는 드넓은 평원의 지평선 혹은 나지막이 솟아있는 산맥의 능선처럼 보이기도 하는 수평의 선이 존재한다. 이 작품의 안정감과 고요함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이 어두운 녹색은 시선의 무게중심을 아래쪽에 두게 하여 분홍색의 하늘이 무한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권」의 하늘이 그저 가벼움, 혹은 산뜻함만으로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분홍색에 스며있는 회색이 만들어 내는 진중함 때문일 것이다. 겹겹이, 켜켜이 중첩되는 분홍색과 회색 사이사이로 구름들은 피어오른다. 구름의 기본적인 속성은 무정형과 변화라 할 수 있는데, 「한 권」의 구름들은 끊임없이 흩어지고 모이고를 반복하며 새로운 형상들을 만들어 낸다. 구름을 움직이게 하고, 변모하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이 작품에는 부드럽지만 광활한 바람이 느껴진다. 거칠지도 거세지도 않은 이 바람은 마치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머물러 있다. ● 그리고 이 바람과 구름 사이에서 팔랑거리며 한 권의 책이 떨어진다. 책은 유한한 형태를 가지되 무한함을 담을 수 있는 상징적인 사물이다. 이 책의 책등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끝과 시작'이라는 책의 제목이 희미하게 보인다. '시작과 끝'이 아닌 '끝과 시작.' 시작과 끝이라고 했을 때, 이 시작과 끝 사이에는 어떠한 기간 혹은 주기의 닫힌 체계가, 어떠한 움직임의 종결 혹은 마침이 존재한다. 그러나 '끝과 시작'에서 중요한 것은 끝이 아닌 '시작', 그리고 끝과 시작 그 '사이'이다. 이때의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기 위한 끝이며, 이는 어떠한 일 혹은 그 움직임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다시 한쪽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며, 아마도 그 문은 더 광활하고 더 심오한 세계로 나 있는 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어젖힘이야말로 이 작가가 풍경의 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 고지혜

Vol.20110825b | 이은미展 / LEEEUNMI / 李銀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