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품다

손정실展 / SONJUNGSIL / 孫正實 / painting   2011_0826 ▶ 2011_0901

손정실_고요를 품다1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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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손정실 제6회 개인展

관람시간 / 11:00am~08: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갤러리7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Tel. +82.2.580.1630 www.sac.or.kr

'우리다움'의 성찰과 재발견 ● 손정실은 유난히 옹기에 깊이 심취해 있다. 언제부턴가 작가의 화면에 옹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옹기는 작가의 그림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에게 있어 옹기는 주로 묘사에 역점을 둔 서경적(敍景的) 재현의 소재로 한정되는 것이었다. 전통 가옥에서의 장독대에서 보듯 형태나 색감, 질감 등이 단조롭고 투박한 가운데서도, 집과 조경 등의 환경과 조화되어 절묘한 모뉴먼트로서의 조형성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대상이라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주목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소재로서의 옹기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동기(motive)로서 다루어지기 시작하고, 아울러 화면의 밀도와 질서가 상당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손정실_고요를 품다2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1

3년 전부터 작가의 화면이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이중질서, 즉 이중코드(dual code)라는 것이다. 두 개의 텍스트, 즉 두 개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온 것으로서, 화면을 무언가 색다른 분위기로 일신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중심부에는 익히 작가의 화면에서 자주 등장한 옹기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배경엔 옅은 톤의 문인화나 민화풍의 이미지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오버랩은 어딘가 모르게 서로 통하는 맥락의 것이면서도 그 조합 자체가 조금은 낯선 것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작가는 아카데믹한 구상에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혹은 더욱 내공이 넘치는 공간의 그림들로 조심스럽게 옮겨가고 있다 할 것이다.

손정실_고요를 품다3_캔버스에 유채_50×60.6cm_2011

일견 작가의 근작들 화면은 분명히 하나의 모티브라는 틀 안에서 두 개의 컨텍스트(혹은 단순히 두 개의 소재)를 조합하고 있는데, 그 나름대로 대비적인 면과 동질적인 면을 함께 갖추고 있다. 우선 대비적인 면이라 하면, 문인화나 민화라는 평면적 전통 회화 이미지의 인용과 옹기의 조합이 가장 두드러진다. 옹기는 옹기대로의 리얼리티에 충실할수록 배경의 회화적 인용에서 파생되는 여백의 허허로운 특성과 결합하여 더욱 시너지를 갖는다. 톤과 양감의 강렬한 대비도 그림을 보다 역동적으로 연출하게 된다.

손정실_고요를 품다4_캔버스에 유채_50×44cm_2011

그림에서의 옹기는 투박스러움 속에서도 아주 강하고 단단하며 탐스러운 볼륨을 자랑하는 양괴체이다. 여기서의 옹기 이미지는 전보다 극사실에 가까운 재현성에 기반하여 보다 차갑게 묘사되고 있다. 옹기 특유의 투박하고 정감 넘치는 분위기보다는 강한 햇살을 반사시키고 있는 것이 흡사 금속성 물질과도 같이 느껴지곤 한다. 이에 비해 배경에 주어진 이미지(문인화나 민화를 닮은)들은 다소 아련하고 희미하게 처리되어 있다. 안개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깔 사이의 윤곽이 명확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옮아가도록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명암법 스푸마토(sfumato) 기법, 혹은 은유적 감각에 어필하는 모노톤의 실루엣 이미지들이 주로 동원되고 있다.

손정실_고요를 품다5_혼합재료에 유채_130.3×97cm_2011

양자의 요소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가 된다. 배경의 도상들은 고급 취미나 취향의 표상으로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당당한 지위를 얻은 반면, 옹기는 익명의 장인들이 빚어낸 것으로 나이도 이름도 없이 존재하는 익명적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의 필요에 따라 빚어낸 독의 형태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충동에 충실하게 끼적거린 암호 같은 흔적들(우리는 드로잉이란 용어가 더 익숙한)이야 말로 작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충동의 흔적들을 조심스럽게 그 형태 밖으로 이끌어내 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비상하도록 주선한다.

손정실_고요를 품다6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1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발견되고 있다. 문인화든 혹은 민화든 그 이미지들은 주로 실내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창백한 이미지의 것이다. 그에 비해 옹기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운명을 타고난 까닭에 주로 옥외에 놓인다. 작가는 마치 양자의 운명을 바꾸기라도 하듯 실내에 있어야 할 그림 이미지들을 밖으로 내몰고, 대신 뜨거운 햇살에 맞서 버텨온 강인한 옹기의 모습을 그림의 깊숙한 중심으로 끌고 온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거의 간과해온 옹기 표면에 놀이하듯 가해진 아주 원시적인 조형적 충동의 편린들을 제대로 읽을 기회를 맞이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손정실_고요를 품다7_혼합재료에 유채_91×116.8cm_2011

요컨대 작가의 화면이 이러저런 기획 의도를 품은 대비적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회화적 동기는 역시 하나로 압축된다. 그 모티브는 역시 '우리' 혹은 '우리다움'의 재발견 내지는 반성적 탐구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처음에 풍경적 소재로서 만난 소박한 옹기에서 정감을 느껴 이모저모의 모습을 그려내는 가운데, 그 대상과 작가 자신의 관계성을 의식하게 되고, 점차 옹기라는 대상에 집착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단계 접어든 것이다. 단순한 서경적 묘사나 재현에서 벗어나 사물이나 사태의 내면적인 혹은 본질적인 문제로 점차 진입해 가는 미적 사유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읽어낼 수가 있다. ● 근작들에서 또한 주목되는 점은 여백이 보다 정돈되었다는 점이다. 무언가로 채워지곤 했던 여백이 최근 들어 텅 빈 채 남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언가의 있음'을 역설적으로 비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화면을 채워가는 것을 업으로 삼아 왔던 화가에게 비우는 것이란 새로운 깨달음이자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의미한다. 이우환의 「조응」 연작 가운데 텅 빈 캔버스에 딱 점 하나 찍혀 있는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작가의 고백은 단순한 말의 치장이 아닐 것이다. 작가의 내공이 쌓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이재언

Vol.20110826a | 손정실展 / SONJUNGSIL / 孫正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