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ar Rainbow

조윤선展 / CHORYUNSUN / 趙倫旋 / painting   2011_0831 ▶ 2011_1001

조윤선_Lunar Rainbow11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45.5×53×6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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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3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함께하는 미학 -컨텍스트(Context) 와 그라데이션의 의미정황(Con-text) ● 작가 조윤선은 실로 천을 짜듯이 색실 하나 하나를 캔버스 위에 붙여가며 알록달록한 색채를 만든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나와 세계와의 연결"이며,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라고 정의한다. 실을 '교차시키는 행동'을 통해, 작가는 외부와 관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천을 작품 은유적 의미이자 본질적 의미로 인식하며, 자신의 작품을 씨실과 날실이 서로 짜서 천을 만들 듯이 삶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설명한다. 그는 헤어짐, 다양한 삶의 상처와 치유, 삶의 이야기를 말한다. 삶의 이야기나 그 속의 정서는 마치 실이 천을 만들거나 나무가 성장하며 나이테를 만드는 것 같이 나타난다. ● 여기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며 정황(context)를 제안한다. 정황의 어원적인 의미인 '실이 짜내는 천'의 의미가 직접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작가의 의미를 형상화한다. 빨강이나 주황, 노랑, 파랑 등 구체적인 사물을 지시하지 않는 추상적인 색 선으로 만들어내는 '아치형'과 유사한 색면들이 때로는 원형의 의미(半-圓形)를, 때로는 원형적(原型(arch-)의 의미를 제시한다. 둥근 원형(圓形)은 방추형이나 동그라미, 반원형, 볼록한 캔버스 형태 등 다양한 곡선으로 변환되어 다양화된다. 이들 형태들은 조형적인 형태로 직접적으로 시각화된다. 이에 반해, 원형적(原型(arch-)의 의미는 무지개나 선과 색의 의미 등을 해석함으로써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서 아치를 통해 우리는 아키타입이나 아케올로지와 같은 'arch-' 로서의 원형의 해석적 의미를 제시한다.

조윤선_Lunar Rainbow11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42×42cm×3_2011

작품에서 나타나는 색 하나를 자세히 보면 여러 가닥의 색 선들이 촘촘히 쌓아져 하나의 색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실 하나가 혼자 독립적으로 단색을 발하기보다 여러 색들이 모여 하나의 색처럼 인식되어 정황(CONTEXT)의 의미를 제시한다. 사실 정황이란 "섬유를 짜 천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고 미술적으로 1980년대 이후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서구에서 등장한 미술 경향으로서, 사회적 정황이나 인류,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정황을 제시하거나 관계를 맺는 예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은 순수주의 모더니즘 미학을 반성하며, 실제 상황(circonstance)이나 실제 세계 (reality)와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정황 예술의 예를 볼프강 라이프가 꿀벌의 노란 화분(花粉)을 재료로 제작한 사각형이 단순한 추상작품만이 아니라 자연과 지구 환경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 조윤선 역시 무지개 빛 아치들의 추상성을 통해 단순한 추상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나 만남 등 개인적인 삶의 정황에 중점을 둔다.

조윤선_Lunar Rainbow11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97×130.3cm_2011_부분

만남은 이분법적인 자아와 타자의 관계로 구분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너의 구조를 더 이상 분열적으로 나누지 않고, 항상 실과 색으로 다른 존재와 조화와 섞임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작가의 미학은 정황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처럼, 사회나 인류학적, 인간적인 성의 문제 등에 대해서 행동적이거나 적극적으로 참여적이거나 현장적인 의미들을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사람 사이의 문제(人-間)의 정황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인간 관계를 주제의 정황으로 이해하며, '서로 연관된 의미'를 작가는 제시한다. 쟝 뽈 사르트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실천(pratico-inerte)'라고 하며, '인간들-주체들이 연결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독립적으로 개별적으로는 무가치하고 움직일 수 없는 존재를 설명하며 인간의 행동과 삶은 이러한 주체들이 '연결'(correlat)되어야 활성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개념에서 상황적, 정황적인 맥락 (context)의 주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하겠다. 연결은 인간의 소소한 문제를 '작은 문제'로 버려 두지 않고, 작품의 내용적 텍스트로 들여온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추상의 길' 즉 구체적인 형태들이나 사건을 버리고 색으로 승화시켜 화려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 작품을 자세히 보면 작품에는 두 정황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미술적 정황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정황이다. 이들은 두 정황, 하나는 작품적 정황과 다른 하나는 작품 외적 정황 (두 실제 context)을 연결하는 것으로 앙드레 까데레의 설명이 생각난다. "[나는] 작업을 하고, 그것을 보여준다. 이 행위는 완벽하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일상의 삶의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며, 일상 활동은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기술된다"는 설명처럼, 삶의 의미들 속에 작품은 부분으로 등장하며 두 정황 사이에 연관성을 강조한다.

조윤선_Lunar Rainbow110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72.7×90.9cm_2011

"색의 결합은 한 사회이자 나의 인생이다."(작가 노트) ● 작가는 색 역시 주제의 정황, 천을 짜듯이 여러 실들로 구성한다. 상징도 구체적인 오브제나 대상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구조를 갖는다 점에서 매우 정황적인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색의 정황 위에 "같은 색의 실이라도 주변에 어떤 색과 교류하는지에 따라 그 색의 존재성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작가 노트)는 단일한 색이기보다는 항상 이웃과 관계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적 공동의 koinos)의 의미가 있어서, 상호 참여하여 유기적인 시각을 갖는다. ● 여러 색들이 모여 하나의 색을 형성하듯이 연합되어 대표되는 색은 다른 무수한 색들과 연합하며 색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렇게 여러 개가 한 번에 보이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것들과 함께 하나를 구성되는 것은 상징(symbol)의 어원적인 의미(sumbolon)를 연상하게 한다. 상징의 어원은 sumballo라고 하여 '같이 함께 제시된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함께 던진 것, 그리고 하나로 연합하는 것, 하나로 모인 것, 서로 밀접하게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점이 실 선들로 이뤄진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밀접한 관계'와 '같이 함께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있지 않으면,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이다. ● 그렇게 일군의 색들이 같이 하면서, 색들이 갖는 '밀접한 관계'는 작가만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구성한다. 이 밀접하게 관계 맺은 색 선들은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습관적으로 잡지나 사진을 볼 때 색을 먼저 받아드리고, 색으로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색은 사건을 대신하는 기호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노랑은 작가의 좋았던 기억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작가에게 용기를 주었을 때의 기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보라는 우연적으로 좋았던 사건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색은 물론 다른 색과의 배열 속에서 다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실제 많은 사건들은 다양한 색 사이의 관계로 형상화되며, 지극히 개인적인 색의 상징으로 형성된다.

조윤선_Lunar Rainbow111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80×80×12cm_2011_옆면

그라데이션 ● 색들은 미세한 색의 변화, 즉 그라데이션으로 확장되며 그려진다. 이러한 색의 배열은 편안함이 있고 다른 존재나 색과의 연결이 강조된다. 색 실 하나는 단일 색을 가지지만, 이것이 함께 있어서 색을 형성할 때, 경계가 애매한 존재가 된다. 이 구성은 하나의 색 실이 다른 (타자) 실에 붙어 다시 색을 형성한다. 이 때 그라데이션을 형성하는 것 역시 여러 이질적인 상황,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 등 삶의 연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풍부하게 상징하는 색으로"(작가 노트) 삶의 존재를 형상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라데이션은 일종의 '전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Boudon)은 그라데이션이 진행이나 전개(progression) 라고 지적한다. 이 개념은 사회학적인 용어였으나 우리의 미학적인 개념으로도 색채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서 여기서 제시하고자 한다.

조윤선_Lunar Rainbow11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52×102cm_2011

부딪힘과 조화 (아치) ● 점증적으로 이어지는 색상들은 그라데이션의 방법으로 화면 속에서 온유한 색의 조화로 보여주면다. 그러나 작품 「Lunar Rainbow 1101」에서는 반대의 색이 대조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를 '반대의 역동' (dynamologie du contre)이라 말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며 부딪치는 모순과 반대된 관계 즉 그 사건들 사이의 일들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예술작품의 실행이 항상 저항에 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어떤 상황에서 "물질의 저항이나 물질이나 불쾌한 심리적 조건으로부터 나오는 저항, 적대적으로 수용되는 조건에서부터 나온 저항에 접함"을 붉은 색과 반대된 파란색의 접합으로 만남을 의미하며, 작품은 때로는 물질의 만남에서, 때로는 불쾌한 심리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저항 등에서 이러한 '반대의 역동학'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이것은 작가에게서 반대되는 것으로만 끝까지 남아있는 것은 아니라 '조화와 대화'의 관계 속에서 만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는 분명 자기 중심적인 독존적 미학적 입장을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타인을 안고 다름을 포용하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앞의 정황이라는 개념에서나 색의 개념에서도 그리고 색의 그라데이션적 배치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다른 색의 그라데이션은 무지개나 달무리의 또 다른 색이자 은유로 등장한다. 무지개는 노아의 방주 시기, 대 홍수 이후, 하나님의 약속으로 무지개의 의미로서의 아치를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이는 구원의 전조적인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빛의 모습이고 색이 모습이다.

조윤선_Lunar Rainbow111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거즈, 실_97×163cm_2011

원형(原型, arch-) 과 원형(圓形)의 수사 ● 작가는 이러한 의미를 달무지개(lunar rainbow)로 이해하여, "밤하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듯한 포근함과 편안함을 주는 달빛처럼 그 느낌의 색을 화면에 담고 싶은 작은 욕심을 내어본다"고 설명한다. 작가가 형태나 색을 사용하는 의식 기초에서 기독교적인 생각과 유사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곧 회화를 생명의 공간이요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조형적인 의미들을 파악하는 선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형태는 반원의 모양으로 등장하는데, 이 의미는 무엇인가? 건물 안의 하늘을 표현하는 도움의 공간은 공학적인 우수성을 나타내는 아치이면서도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창조자의 사랑을 형상화시키는 아치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의 평안 속에 하나의 공간으로 안아 주며,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을 관계 맺고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아치, 원형, 무지개적 정황 속에서 작가는 원형의 나이테가 시간의 작가의 노동의 시간의 중첩과 전개, 진행과 동시에 색의 중첩과 제시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 아치나 볼록한 형태를 작가는 '둥글게 튀어나오게 하여 임산부의 배처럼 편안함, 부드러움, 모성, 온화함'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여성성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굴곡의 형태에서 matrix(모태)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이 부드러운 형태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원형적(原型(arch-) 형태이면서도 원형(圓形)의 확장이다. 이 원형의 형태는 아치가 회전하거나 확장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작품에서는 회전하는 과녁처럼 놀랍게도 관람객을 원형의 중심으로 빨아들인다. 회전에 의해 획득된 화면처럼 작품의 중심성은 작가에게서는 집중을 통하여 치유의 효과를 형상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다운 색의 조합으로 치유하고 있으며, 또한 어둡게 썩어가는 시각 환경에서 '함께하는 색'의 의미를 보여 줌으로써 지나치게 개인화된 사회에 '함께 의미하는 존재', '타자와의 연합을 통한 상징'의 미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 강태성

Vol.20110827f | 조윤선展 / CHORYUNSUN / 趙倫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