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지나서 싸랑 Love beyond love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printing   2011_0831 ▶ 2011_0909

홍인숙_마음의 그림자_종이 프린팅, 드로잉_120×10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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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31_수요일_06:00pm

나무화랑기획 옴니버스 내러티브 - 삶. 사람. 사랑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0)2.722.7760

1. 폭_우_가_하_늘_색_을_다_섯_번_쯤_바_꿔_놓_으_니_사_람_의_저_녁_이_다_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가릴 것 없이 저녁의 안은 어둡다. 해서 사람들은 저녁의 밖으로 나와 촛대를 올리는가. 촛불 아래 사람의 얼굴은 예뻐 보인다. 달 같다.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촛불 아래 사람의 얼굴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어둠을 보여주지 않는 달의 뒷면이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삶의 생생한 실상이 마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사람의 밤에는 먹고 사는 얘기부터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이별하는 얘기까지 살아보려고 애쓴 하루의 상처가 그대로 남는다. 어떤 날은 별똥별이 밤을 보태기도 한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1분 발언대에 오른 거리의 시인은 누구를 찾는다. 누구란 대체적으로 년이나 새끼라는 돌림이름을 갖는다. 오늘은 十八年을 찾는다. "十八年아 너 어디 있어" "빨리 안 나와" 귀청이 떠나갈 듯한 폭음 뒤에 이제 다 끝난 건가 싶은 짧은 적막이 몇 번이고 계속이다. 달아난 애정을 찾는 것인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게 누구나의 삶이 듯이, 거리의 시인은 눈물에 의지하려나 보다. 눈물이 폭우다. 인간의 성장 취향과 생활의 상상력까지 짐작하게 하는 十八年이라는 단어에 어제의 교육을 다시 확인한다. 선생님은 욕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 머리로 안다는 것이 때론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거리의 시인이 낭송중인 "十八年아 너 어디 있어" "빨리 안 나와" 꼴랑 두 줄의 단시가 사람의 삶을 살살 흔든다. TV에서 보도되는 오늘의 뉴스보다 사람의 밤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알게 된다. 불편함만이 정신을 깨어있게 해준다는 것을... 그 러 할 때 가 장 어 두 운 밤 의 위 로 그 게 예 술 의 사 회 적 싸 랑 이 었 으 면 사 람 들 은 정 말 좋 겠 다.

홍인숙_마음의 그림자_종이 프린팅, 드로잉_120×100cm_2011
홍인숙_마음의 그림자_종이 프린팅, 드로잉_120×100cm_2011

2. 비_ 를_ 품_ 은_ 바_ 람_ 의_ 정_ 체_ 는_ 폭_ 우_ 일_ 것_ 이_ 다_ 그걸 어떻게 알았냐하면 말라비틀어진 나무색이 후두둑 짙어졌기 때문이다. 새들의 몸이 보인다. 쉬고 있는 걸까. 앉아 있는 걸까. 삶은 꼼짝도 못하는 어리둥절함 움직이면 그것이 곧 죽음이라했던가.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이럴까 저럴까 아니다 그렇다 날마다 마주치는 소소한 근 심 과 걱 정 들... 걱 정 들... 어머나! 그런 근심걱정 따윈 토끼나 줘버리라며 아이들의 물장난 소리가 헤엄쳐간다. 아! 최후의 낙관. 아 이 들. 그대들이 옳다.

홍인숙_사랑 지나서 싸랑_종이 프린팅, 드로잉_108×150cm_2009
홍인숙_엄마의 귀가_惠骨朴我地 종이 프린팅, 드로잉_125×100cm_2011

3. 비_ 를_ 품_ 은_ 바_ 람_ 은_ 그_ 속_ 을_ 알_ 수_ 없_ 을_ 때_ 가_ 좋_ 다_ 그저 이렇게 몸을 내놓고 아주 느긋하게 바람의 안무를 받아들인다. 반쯤은 너에게 반쯤은 나에게 몸을 틀어 회전시키는 질서가 일방적일지라도 숨겨진 내면을 다시 배치시켜주는 이 두려움이 싫지만은 않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 이 사람 뒤의 저기 넘어 까지를 다 그리고 싶었는데, 하나의 어떤 것으로 뭉쳐 그리고 싶었는데, 그게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밭에 가보니 비가오더래 아이고! 무서워! 혜골박아지惠骨朴我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된다. 삶을 그 리 고... 싶어 하는 지 금 을... ■ 홍인숙

홍인숙_엄마의 귀가_惠骨朴我地 종이 프린팅, 드로잉_135×100cm_2011
홍인숙_눈이 녹는 이유_我父地 바느질_84×57cm_2011

산다는 것만큼 불명료한 것이 있을까?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은 삶에서 말이다. 매일을 쳇바퀴처럼 단순하게 반복하더라도, 산다는 건 늘 새로운 경험을 발생시킨다. 사건과 현상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생각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와 마주한다. 일상이다. 우리는 그 일상에 적응한 듯 살지만 그 이면엔 비일상적인 꿈·기억·희망 등을 저마다의 마음속에 내밀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무대인 사회는 이런 개인들의 은밀한 세계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자가 개인이지만, 전체인 사회는 이런 개인의 유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나 체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시스템은 예측과 증명과 재현이 가능한 합리적 팩트Fact만을 요구한다. 실질적이고 실리적인 관계인 비즈니스처럼 숫자와 같은 객관적 기호들의 명증성이,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개인의 관념이나 상상과 같은 현상의 상부에서 작용하기에 그렇다. 이렇듯 사회가 중심이 되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으로 일탈을 꿈꾼다. 자유·희망·추억·기원·사유…등의 비가시적인 심리와 정서의 세계로. 예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런 일탈의 거의 유일한 기제라 하겠다. 홍인숙, 배남경, 이서미 세 명의 작가의 개인전으로 구성된「옴니버스 내러티브 - 삶, 사람, 사랑」전은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되고 발견되는 개인적 체험과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작업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특화된 감성과 자기진술의 형식을 거쳐, 다시 '우리'라는 사회로 귀환하며 관객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일상적 문법으로부터 일탈한 이들 고유의 시각언어가, 관객과의 만남으로 다시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 전시는 '삶', '사람', '사랑'이란 보편적 의미가 공통분모가 되어 내용의 축을 이룬다. 삶의 주체가 사람이고 또 사람들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통속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누구나 겪었을 법한, 누구나 기억해낼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작업의 출발선이다. 그러나 그 일반성에서 일탈하는 감성과 사유가 구축한 각자의 형식과 목소리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작품들이 대상이나 현상의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삶과 기억과 마음의 작가적 진술의 층위에서 표현되어진 것이라 그렇다. 상황의 설명이나 해설이 아닌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대한 진술로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전시를 통해서 확인해야 할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단순한 기록commentary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발화發話된 세계에 대한 시선, 구사되는 시각언어의 표현방식, 그리고 작업행위를 통한 삶에 대한 태도 등이 빚어내는 결과로서의 내러티브와 이미지를 좀 더 깊숙이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 한편 이 전시는 삶이라는 공통된 소재와 수사적 주제를 가진 단체전이다. 그러나 다시 개별로 분절해 보면 각 작가마다의 고유한 시각과 태도가 서로 다르게 제시되는 독립된 개인전이기도 하다. 개인전의 기준에서 보면 각 작가의 스타일과 어법이 독특하게 구축된 상태라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전과 개인전의 기능과 속성을 오버랩 시키는 전시구조를 택한 것은, 옴니버스라는 전개방식이 주는 차이점/공통점의 드러냄을 관객이 수용하는 방식의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전시를 통한 작품들의 내용전개와 전달방식은 기승전결이나 인과율처럼 단순명료한 수직의 구조가 아니다. 옴니버스는 각 작가의 단편들을 수평적인 병치와 병렬로 제시함으로 발생하는 차이/공통점을,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인지하며 주제를 찾아가는 소통과정의 유효함이 도드라지는 구조다. 따라서 전시는, 전시주체인 기획자에 의해 가공되고 제련된 통일감에서 벗어나, 각 단위 개인전 사이 행간에서 자유로운 감상과 인식의 통로를 만들어 줄 것이라 여겨진다. 한편 전시의 진행과정이나 소통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이 즉발적으로 발생하는 우연과 돌출되는 변주들도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생각거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기획자가 준비단계에서부터 의도하는 전시공학적으로 잘 짜여지고 재단된 범주를 넘어서는, 또 다른 전시 개념과 의미들의 생성이 그래서 가능하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상태에서 부대끼며 발생하는 혼돈을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수용함으로, 틀에 박혀 있는 "뻔"한 작품 느끼기/읽기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해 진다. 그래서 세 작가를 이어주는 공통분모인 전시명제만 제외한다면, 각기 다른 분자들의 차이와 충돌이 야기한 서사와 형식이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싱싱하게 비교되는데 이 전시구성방식의 장점이 있다. 거기에서 관객은 전시의 큰 흐름인 주제와, 디테일로서의 미감을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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