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재림

제 1부 뜨거운 상상展   2011_0909 ▶ 2011_1016 / 월요일 휴관

강임윤_Botany Fish_캔버스에 유채_170×90cm_2010

초대일시 / 2011_0909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임윤_김범석_임희성_정충일_제여란_한정욱

주최,기획 / Art space LOO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Tel. +82.2.790.3888 www.artspaceloo.com

'동시대 미술에서 새로움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끊이지 않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다다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누렸을 풍부한 새로움은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거쳐오면서 이미 고갈되어 버린 듯하다. 거대담론(grand narrative)을 이끌었던 영웅과 봉우리는 소멸하고 로컬과 주변(peripherique)으로 확장된 소서사담론(micro narrative)들 사이의 융합과 혼성적 형식이 지난 세기의 '새로움'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이며 21세기적 문화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 전반에 걸쳐 해체되고 혼합되며 경계를 허무는 컨버젼스와 하이브리드적 가능성들이 추상미술에서도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미술에도 21세기적 추상의 특성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성들을 이끌고 있는 추상의 형식은 어떤 것이며, 그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한국의 추상 작가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상상력의 영토는 어떤 모습이며 그들은 이 경계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 질문들은 21세기 새로운 문화적 부흥기를 맞고 있는 한국 미술계가 내부에서 스스로 던져야 할, 그리고 "추상의 재림"전이 한국 미술계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 현대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실험미술의 중요성을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지속적인 새로움에 대한 탐구를 그 생명력으로 하고 있기에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미술 기관들도 실험적 성향의 미술운동을 조망하는 전시들을 기획해 왔다. 1980,90년대의 그룹전 위주의 미술운동을 이끈 것도, 대안 공간들의 존재 이유가 되었던 것도 이 실험정신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반면에 현재 한국미술계는 2000년대 두어 번의 호황기를 통해 시장의 양적 팽창을 겪으면서 1980,90년대의 미술관과 대안공간, 그리고 소규모 그룹들을 중심으로 한 미술 운동과는 비교되는 미술시장과 아트페어 중심의 움직임으로 재편되고 있다. 포토리얼리즘 기반 회화들과 팝아트로 대변되는 정체불명의 한국적(?) 미술형태가 기관을 포함한 화랑가를 점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들의 숫자와 갤러리, 미술시장의 규모가 늘어난 반면,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추상회화와 컨셉츄얼 아트의 비율이 현저히 축소된 현 미술계의 경향이 이를 증명하며, 미술계가 미술 소비 집단의 기호에 맞추어져 가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설득력을 더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미술이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러한 경향은 건강하고 다양한 미술운동의 축소에 대한 염려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음악으로 치환해 본다면 한국 미술계에는 온통 가사가 있는 팝음악들로 채워져 있는 셈으로 음악성 자체를 추구하는 실험적 음악이 소멸해버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추상미술 또한 지난 세기 한국 미술사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지만 2000년대 들어 원로급 작가들과 중진 작가들의 비중에 비해 신진 추상작가들의 움직임이 거의 포착되지 않고 있다. 세계 미술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해도 이런 급격한 변화를 단지 추상미술이 그 새로움의 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장 논리의 미술 생태계가 추상미술의 생명력까지 집어 삼킬 것이라는 일각의 염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최근 10년간이 한국 미술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시기였다면 향후 10년은 미술의 근본에 대한 탐구와 질적 성장에 대한 모색도 함께 이루어지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루가 가을 기획전으로 선보이는 전시, "추상의 재림"은 이러한 한국 추상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자 기획되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재림'의 찬양이라기 보다는 재림에 대한 갈구에 더 가까울 것이다. 두가지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전통적인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1부 - 뜨거운 상상'에서는 열정과 즉각적 감각의 유동성에 기반한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들을 보여준다. '2부 - 차가운 상상'에서는 절제된 감각으로 계획적이거나 구상적인 접근법으로 추상성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21세기 한국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추상적 상상력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추상의 상상력들을 새롭게 펼쳐가는 중진, 신진 작가들의 추상회화 세계를 들여다본다. ■

나의 작업은 신화와 은유 그리고 변신에서 비롯된다. 신화는 상상력에서 비롯한 존재를 향한 질문이며 내 작업은 기존 신화의 재해석에서 시작하여 일상적 신화로 발전 그리고 시적 공간으로 확대 되었다. 변신과 은유 그리고 신화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신화에 변신은 매우 중요한 장면이며 또한 은유적으로 함축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나는 붓을 잡은 나의 몸의 움직임이 선과 색으로 화면에 전달 됨을 통해 변신의 과정을 포획하려 한다. 붓이 지나간 자리가 상상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순간과 그 모습이 어떻게 읽혀지고 보여지는가 탐구한다. ■ 강임윤

김범석_피다_한지, 먹, 호분, 채색_168×133_2009

김범석 ● 김범석은 자신의 작업실이 소재해 있는 여주 일대의 풍경을 그린다. 그 풍경은 자연풍경이기도 하고, 인간이 사는 동네를 그린 인공적인 풍경이기도 하고, 자연풍경과 인공풍경이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삼투되는 경계 위의 풍경이기도 하다. 때로는 소재로부터, 때로는 그림이 떠올려주는 정서로부터 끄집어내진 이 풍경의 다양한 지점들은 따로 고립돼 있으면서도 서로 혼재해 있다. 이 풍경들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데, 현장사생을 통해 사물과 대상의 즉물적 현실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그 현실 속에 작가 자신의 관념과 정서,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묻어 들어가, 주관이 객관을 간섭하고, 지우고, 변형시키고,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이런 상호작용성, 말하자면 자연풍경과 인공풍경, 객관적 풍경과 주관적 풍경의 상호간 경계 허물기는 전통적 화법과는 다른, 작가만의 독특한 방법론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지고 더 잘 드러나 보이게 되는데, 먹과 호분을 중첩시키고, 투명한 화면과 불투명 화면을 중층화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점층적으로 부가된 호분 자국은 화면에 희미한 막을 형성시켜, 칠흑 같이 검은 먹 속에서조차 투명성을 담보하던, 전통적인 먹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아마도 관념적이기보다는 즉물적인 동시대의 풍경을, 정경을 그려내는데 더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호분과 먹선이, 자연과 인공이, 그리고 주관과 객관이 상호 침투하고, 스며들고, 간섭하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특유의 화면을 그려내고 있다. ■ 고충환

임희성_Back to the Present_플렉시 글라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20×200cm_2009

임희성 ● 임희성의 선은 자신과 동시대인들의 삶의 정서를 반영하는 그런 선이고자 한다. 후기산업사회,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불안하고 날카롭고 경쟁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선은 그래서 전통 드릴로 이루어진다. 종이의 표면으로 삼투되던 모필이 아니라 아크릴판을 파낸 드릴이 이룬 선이다. 이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선들은 새삼 구체적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남겨주기도 한다. 이제 드릴 선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패턴과 효과를 극화하는 쪽으로 풀리기도 한다. 그가 구현한 이 음각의 산수는 결국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현실의식이 배태한 산수화의 변종이다. 그렇게 산수화는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 박영택

정충일_태초에, 빛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08

정충일 ● 정충일은, 그 실체를 무엇으로 부르든, 그 핵으로부터 세계가 비롯된 극적인 순간의 장면을 그림으로 옮겨놓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이상에서 살핀 세계의 근원에 대한, 그리고 궁극적으론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 일종의 자기반성적인 물음이 그림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다. (중략) 정충일은 우주가 처음 생성되던 극적인 순간을 특히 빛을 매개로 해서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다소간 추상적인 그림이 빛의 성질을(혹은 질료를)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와 닿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빛이 아우르고 있는 상징적 좌표들, 이를테면 만유의 근원, 핵심, 본질, 원형, 궁극, 씨알, 모나드, 단자, 원소의 실체에 대한 사유에로 이끈다는 점에서 관념적이고 명상적이다. (중략) 중요한 사실은 물이 빛과 함께 생명의 전형적인 메타포 라는 것. 이로써 정충일은 생명의 두 상징 축인 빛과 물을 매개로 하여 생명의 근원에로, 최초의 생명이 막 잉태되던 극적인 순간에로, 바로 그 미지의 현장에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제여란_어디든 어디도 아닌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6

제여란 ● 사물이 완전한 항상성의 획득을 통한 최종적 이완을 회피하듯이 그림에 있어서 생기는 힘은 어떤 힘이든 생겨나는 순간에는 펼쳐지게 마련이며 힘을 발생시키는 사물(물체)은 그와 동시에 긴장 즉 운동을 수반한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일별해 보면 운동에 의한 것이다. 한 순간에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는 빛조차도 시간적인 간격 속에서의 운동인 것이다. 시간에 있어서 순간은 공간(장소)에 있어서 점과 일치 한다. 내 그림의 시작은 여기가 된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은 극단을 가로지르며 비상으로 향한다. 폭넓은 외양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형태와 이 존재의 형태를 규정하는 관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며 유일한 것으로서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표현 되지만 그림 속에서 통합되어 만난다. (제여란의 회화에 있어서 진정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눈 앞에 그려진 이 현상 이 작품이 아니라 '기원적으로 다른 무수함'으로서의 형상이며 작품임을 그리고 화가에게는 이를 추동하는 '회화충동(PicturaI Impulse)'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 김원방

한정욱_Slowness 01110-명상의 늪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11

한정욱의 손은 표정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한다. 대신 일종의 도구가 되어 스스로의 행적을 물감과 캔버스에 남기는데 전념한다. 폭풍 속에 버드나무가 흩날리듯이 일정한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게 한정욱은 손과 손가락을 꿈틀거린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동심원을 그려낸다. 춤을 춘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어떤 박자도 없고, 어떤 주어진 리듬도 거부한 채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작가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이렇게 격정 뒤에 남겨진 평온한 화폭 위에서나 추측해 볼 수 있는 신비스러운 풍경과 함께 들릴 뿐이다. 그의 그림은 한 것 신들린 굿판의 땀 냄새를 연상시킨다. (중략) 액션 페인팅이 미국의 자유주의를 대변하며 형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액션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정욱의 핑거 액션 페인팅은 물리적인 텍스처와 일견 보여지는 이미지 보다는 명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그 목적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추상 액션 페인팅의 형식적인 측면을 따라하고 있지만 그 안에 작가의 감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냈고, 그래서 구축된 화폭 위의 물감 덩어리 속에서 관객은 신비한 동양적인 풍경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한정욱

Vol.20110909b | 추상의 재림-제 1부 뜨거운 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