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호展 / LEESHINHO / 李信浩 / painting   2011_0921 ▶︎ 2011_1004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72×75cm_2011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5:00pm

기획 / 물파스페이스(物波空間)

관람시간 / 10:00am~07:00pm

물파공간 MULPA SPACE 서울 종로구 견지동 87-1번지 가야빌딩 1층 Tel. +82.2.739.1997

이신호의 작품세계-색채의 마술에 걸린 회화적인 순수성 ● 한국화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이런 의문은 한국화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현실적인 인식에 기인한다. 서구미학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전통성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화가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인지 모른다. 하지만 외적인 요인보다는 자기혁신을 모색하지 못하는 데 더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 전통성에 매이다보니 창작의 윤리성, 즉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에 둔감해진 것은 아닐까. 이제 한국화도 시대의 흐름에 반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 이신호의 최근 작업은 이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활달한 붓의 운용을 매개로 작업해온 그에게 현대적인 조형성 및 전통적인 가치를 조화시키는 일은 미해결의 숙제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림이란 어떤 식의 경로를 거치더라도 최종적이라는 아름다움으로 귀결해야 한다는 가장 원론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됐다. 전통성 및 현대성에 집착함으로써 회화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72×75cm_2011

이런 깨달음으로부터 발단한 최근 작업은 순전히 아름다움을 위해 봉사한다. 그 아름다움이란 조형적인 기본 요소에 충실한 순수미라고 할 수 있다. 점, 선, 면, 그리고 색채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구성이다. 그러기에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인상이다. 여기에다 꽃이라는 소재 하나를 덧붙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최근의 꽃 그림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있다. 화첩을 보고 모사하고 화본을 이용하는 그림과 흡사한, 전통회화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단순한 꽃그림에 국한하지 않는 몇 가지 조형적인 해석이 자리한다. ● 최근 작업 전체를 조망하면 가히 화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꽃을 소재로 작업한다. 왜 꽃뿐인가.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하면 곧바로 꽃을 연상하게 마련이듯이 그 또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통해 미의 정원에 들어서려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림에서 실현하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자연색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색, 즉 꽃이 보여주는 순수성에 필적하는 인위적인 색채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림의 본색임을 천명하려는 듯싶다. 다시 말해 태양광선이 만들어내는 자연색과 다른 인위적인 색채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려 한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72×75cm_2011

한마디로 꽃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최근 작업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한 작품에서 사용되는 색채의 종류는 의외로 적지만 작업의 전모를 보면 컬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를 구사한다. 그의 색채감각은 자연색과는 엄연히 다르다. 꽃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색깔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회화에서 가능한 색채의 마술을 전개할 수 있다. 작품에 따라서는 꽃의 색깔보다 배경의 색깔이 한층 강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 자연색의 경계를 넘어서 그야말로 거침없는 색채의 유희를 즐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 순수한 색채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격동케 한다. 그의 작업에는 그런 힘이 작용한다. 시각을 자극하는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뿐만 아니라, 활달한 수묵의 필선이 감정을 동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동요는 감정의 고양으로 진행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고조되는 환희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미적 감각, 또는 미적 감흥을 자극함으로써 생체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데 기능한다. 이는 일종의 치유의 영약과 같은 것이다. 색채의 아름다운 조화에 감응하는 감정의 소유자라면 그림을 통해 심신의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즐거운 감정을 유발함으로써 심신이 활력을 얻게 되는 이치이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68×70cm_2011

이런 형식의 원색적인 그림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 화가 스스로 거기에 빠져들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의 마음이 맑아야만 맑은 색채, 조화로운 색채의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가 단색조의 간명한 색채이미지를 선호하는 것은 이미 그 자신의 마음이 그와 같은 상태에 들어가 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최근 작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순수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 이렇듯이 그의 최근 작업은 색채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긴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작업이 웅변하듯이 형태미 이전에 색채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렇다. 새삼 단색조의 색채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거침없이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색채감각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화가라면 응당 가질 수 있는 색채대비 기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만 색채배열에서 그만의 감각을 발휘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바로 여기에 시각적인 흡인력이 있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68×70cm_2010

화사한 꽃을 소재로 하고 원색을 사용하는 데도 전통적인 채색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채색기법 자체가 다르다. 전통적인 채색화가 장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그는 순지를 사용한다.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채색을 가미하는 채색화와 달리 그는 한 차례의 채색작업으로 끝낸다. 그러므로 색채의 순도에서 차이가 있다. 더구나 배경의 색채는 단색조이다. 꽃의 색깔과 조화를 전제로 하는 배경의 색깔은 단색조로 처리된다. ● 단일색조로 처리되는 배경의 색채는 꽃보다 더 강렬하다. 그럼에도 꽃의 존재성, 즉 꽃의 색깔이나 형태는 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꽃의 존재감을 더욱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는 다름 아닌 색채대비라는 조형적인 기법을 구사하는데 기인한다. 자연미와는 또 다른 아름다운 색채공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꽃과 조화로운 관계를 부추기는 색채대비는 순수한 조형적인 영역이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색채감각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68×70cm_2011

그의 작업은 지극히 단순한 조형어법을 구사한다. 단지 꽃의 이미지를 확대하여 거기에다 색채를 가미하는 것으로 끝나는 단순구조이다. 뿐만 아니라 일회적인 운필로 일관하는 수묵화의 기법을 따른다. 문인화적인 운필의 선, 즉 활달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수묵의 필선과 원색적인 색채가 조화롭다. 일테면 그의 작업은 구륵법의 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는 구륵법과는 또 다른 일면이 있는데, 그것은 배경을 채색으로 채우는 기법 때문이다. 따라서 채색을 사용하면서도 채색화와는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수묵화라고도 할 수 없다. ● 작품에 따라서는 수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낮은 까닭이다. 어떤 경우에는 수묵이 거의 배제된 채 원색이 주도한다. 여기에서 채색화는 선염을 중심으로 하는 몰골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꽃이나 줄기와 이파리를 유채색으로 묘사하고 꽃술 정도만을 수묵으로 표현한다. 이런 경우 채색화인지 수묵화인지 구분하기 애매하다. 그러나 몰골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수묵화 쪽에 가깝다.

이신호_花_한지에 아크릴채색, 먹_68×70cm_2011

그러고 보면 그의 최근 작업은 전통회화의 조형개념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구륵법이나 몰골법으로 구분되는 기법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수묵이나 채색의 분명한 역할조차도 구분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퓨전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화로서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채색을 거침없이 쓰면서도 전래의 채색화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문인화의 속성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여기에 있다. ● 전통을 거부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현대성만을 강조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과 현대를 섞어 놓겠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떤 종류의 회화가 요구하는 격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저 그 자신의 미의식 및 감정이 이끄는 대로 따르겠다는 식이다. 즉, 기존의 표현양식 및 형식에 순응하지 않고 보다 활달한 필선 및 자유로운 색채감각으로 회화의 본령에 직입하려는 것이다. ■ 신항섭

Vol.20110925a | 이신호展 / LEESHINHO / 李信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