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善하다

김명곤展 / KIMMYEONGGON / 金明坤 / painting   2011_1001 ▶︎ 2011_1029 / 일요일, 공휴일 휴관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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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목요일_10:00am~07:00pm / 화~수요일_01:00pm~09:00pm / 금요일_10:00am~09:00pm / 토요일_12:00pm~06:0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비앤빛 갤러리 B&VIIT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 4동 1317-23번지 GT 타워 Tel. +82.2.590.2353 www.bnviitgallery.com

탈 것, 날 것, 그리고 하이퍼리얼 ● 김명곤은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자신의 그림이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의 화면은 새로운 시각적 해석이기보다는 세련된 감각의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수고로움이 시각적 효과를 높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색과 배합이 지속적으로 삼투하는 상황이다. 미묘함은 표층적인 사물들의 결합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담론에서 발생한다. 회화에 대한 과도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벗어난 작업은 이미 역사적이다. 시적 현실에 대한 삽화이다.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3cm_2011

탈 것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이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식물들이 융합된다. 날 것으로서! 현실이면서 일어나지 않은 세계이다. 그래도 우리는 인정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하이퍼리얼은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라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어떤 작용이다. 행위주체성의 활동이다. 탈 것은 타면 이동한다.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이 동어반복은 나름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사물로서 탈 것의 정체성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탈 것의 정체성은 그 기능에 내재해 있고, 그 기능은 물질적 사물로서의 '사물성'에 내재해 있다. 기호인 회화의 재현에서 드러나는 사물성. "거기에서부터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 제각기 자기의 고유한 이름을 갖게 되는 바로 그러한 것, 즉 예술에 의해 존재한다."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1

그렇다면 이렇게 느닷없는 사물성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이데거는 말한다. "사물이 하나의 사물인 한, 사물이란 진실로 무엇인가? 이와 같이 우리가 물을 때, 우리는 사물의 사물존재(사물성)에 대해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물의 사물적 차원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사물이라는 명칭을 갖고서 거론해 오고 있는 그런 존재자 모두가 속한 범위를 알아야 한다." 김명곤의 행복한 화면이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이미 거기에는 존재론적 담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미메시스는 '가짜 사물'로서 제시되는 탈 것의 이미지이다. 그러한 시적 전유를 가능케 하는 것이 식물성의 사유이다. 스미거나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가며 근거와 섞이는 부드러운 그리고 '나약한' 융화의 세계가 하이퍼리얼한 그의 화면이다.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0×227.5cm_2011

유용하면서 가장 일상적인 우리 삶의 현대성을 보여주는 이동의 사물성과 어떤 '시원적' 자연성이 얽히는 관계야말로 김명곤의 회화세계이다. 그의 미메시스는 비판적이기보다는 사람들의 생활 세계 전반에 걸친 양상들을 통해서 그들의 사유 형태의 내재적 논리를 종합해내고 있다. 그는 회화근본주의의 자기중심적이고 우월적인 사고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수행했다. '나약한 사고'라는 용어는 이러저러한 단순한 뿌리 없는 현대인의 사고가 아니라 어떤 기호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공리와 공준과의 체계이다. 나약한 사고는 또한 구체성으로도 표현된다.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야생의 사고와도 유사하다. "신화적 사고의 여러 요소들이 지각과 개념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각 내용을 그것이 일어난 구체적 상황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념에 의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사고가 그 계획을 '괄호 속에 넣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지와 개념 사이에 매개체가 하나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호이다. 소쉬르가 언어기호라는 특정 범주의 기호에 대하여 정의 내렸던 식으로 기호란 이미지와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결합에서, 이미지와 개념은 기표와 기의의 역할을 한다." 탈 것의 사물성은 해체되고 식물성의 사유에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김명곤_세상을 향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11

그런데 외적 형상은 그것의 '사물성'보다 오히려 관람자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하여 관람자는 대상을 경험하고 그 경험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지각력의 소유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형상은 실제로는 평평한 면에 칠해진 물감의 흔적일 뿐이다. 그러나 관람자의 눈은 해석을 통하여 그것들이 '무엇이게' 한다. 심지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미지-기호를 읽는 과정에서 관람자는 이미지를 사물로 지각하기 위하여 그것이 '가짜임'을 선이해한다. 회화에 대한 이해는 사물이 아니라 기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예술작품이란 그 자체가 일종의 제작된 사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순전한 사물 자체와는 또 다른 어떤 것이다. "작품은 다른 것을 공공적으로 알린다. 즉 작품은 다른 것을 드러낸다. 작품은 비유(allegory)이다. 제작된 사물과 함께 또 다른 어떤 것이 예술 작품 속에서 한 데로 데려와진다. 한 데로 데려온다 함은 그리스어로 심발레인(συμβἁλλειν)이라 일컫는다. 작품은 상징(symbol)이다." 그렇다면 김명곤의 화폭이 드러내는 세계는 무엇인가?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11

사물에 대한 이해의 존재론은 날 것이라 불릴 수 있는 사유의 감각에로 흘러간다. 현실은 단순한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회화는 그 재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드러낸다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그 이루어진 것들을 우리는 본다. 하나씩 구성하면서! 이룩된 것에 대하여 작가는 "쇠라에 빠지다."라고 요약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색점에 불과해, 이미지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조금씩 그림에서 벗어나 거리가 생길수록, 마술과도 같이, 이미지는 드러나고 그 색점들은 엉겨, 풍성하고도 조용한 그리고 정제된 화면을 빚어낸다."

김명곤_꿈을 싣고 가는 자동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1

김명곤의 회화 미학이 보여주는 담론은 이미 구성주의적이다. 그것이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순화논법적인 회화-담론은 존재론을 잊게 만든다. 존재론의 망각이야말로 그의 회화가 확실히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래서 강압이 아닌 온유한 에피소드의 하이퍼리얼이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비껴서서 보는 세계는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모험이다. ■ 김병수

Vol.20111002a | 김명곤展 / KIMMYEONGGON / 金明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