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재발견 Deutsche Dinge

독일 현대미술 3인展   2011_1005 ▶︎ 2011_1204

Anton Stankowski_Foot in plaster cast_사진_18×13cm_1930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 Tatjana Doll_Eberhard Havekost_Anton Stankowski

갤러리 화이트블럭 개관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화이트블럭 Gallery White Block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Tel. +82.31.992.4400 www.whiteblock.org

슈탄코프스키, 하베코스트와 돌의 미술 속의 "독일적인 것" ● 유리 벽 안쪽으로 흰색 공간이 비치는 건물의 외관에 맞는 이름을 가진 화랑, 화이트블럭이 세 명의 독일 미술가의 작품으로 개관전을 연다. 이들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인 안톤 슈탄코프스키(Anton Stankowski), 유화와 핸드오프셋 판화 작업을 하는 에버하르트 하베코스트(Eberhard Havekost)와 캔버스 위에 페인트(Lack)로 작업을 하는 타티아나 돌(Tatjana Doll)이다. ● 독일 미술사가인 클라우스 클렘프(Klaus Klemp)는 화이트블럭 전시를 위해서 이들을, 직역하면, "독일 것들(Deutsche Dinge)"이라고 불리는 제목으로 모았다. 기획자는 이 전시의 서문에서 이들의 작품을 통해서 독일을 설명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를 위해 선택된 작가들과 작품들을 살펴보면 기획자가 이들을 통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20세기 독일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20세기 미술사 속의 "독일" 미술 ● 현대미술사에서 독일이 남긴 흔적은 세계 어떤 나라의 그것보다 극단적으로 양면적이다. 20세기 초 베를린과 뮌헨을 중심으로 태어난 미술인 표현주의는 당시 열강의 정치적 알력과 무관할 수 없던 미술사가들에 의해 독일적이라고 묘사되었으나 이 미술을 대표한 미술가들과 그것의 영향은 국제적이었다. 베를린은 표현주의와 그 후 다다를 통해서 발터 벤야민(Walther Benjamin)이 "19세기 세계의 수도"라고 부른 파리처럼 미술 중심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다다가 취리히, 베를린, 하노버, 쾰른, 파리와 뉴욕 등의 도시에서 진행될 때 베를린의 다다는 다른 도시들에서와는 달리 반 미학을 주장하기보다는 당대의 정치를 비판했다. 바이마르에서 설립된 후 정치적 탄압을 피해 뎃사우와 베를린으로 옮겼다가 폐교당한 바우하우스는 다양한 국적과 전공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교육을 통해서 동(러시아)과 서(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의 미술을 연결하고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미술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즉물성(Neue Sachlichkeit)으로 불린 다양한 입장의 사실주의적 미술은 양차 대전 사이 독일의 주류 미술이었으나 독일 밖의 20세기 미술사 기술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을 받았다. 1933년 집권한 나치당이 일으킨 전쟁과 1937년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을 "퇴폐미술"로 낙인을 찍은 사건은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미술 토양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 1955년 보데(Arnold Bode)와 하우프트만(Gerhard Hauptmann)이 처음 조직하여 5년마다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가 전쟁 전 독일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속죄에서 시작된 사실이 시사하듯이 전후 분단된 독일 미술에게 있어 독일 현대사의 부담은 지대했다. 현대미술을 탄압한 나치의 관영미술과 옛 동독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공통적으로 형상적인 미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형상이 두 차례 전쟁, 특히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을 연상시킴으로써 독일 현대사에 대한 언급이 터부시되었던 전후 서독에서 형상적 미술은 억압을 받았다. ● 바젤리츠(Georg Baselitz), 폴케(Sigmar Polke) 등, 1950년대 후반 이후 동독에서 서베를린이나 서독으로 넘어 온 미술가들은 추상미술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표현주의 선배 미술가들의 전통을 1960-70년대의 사회비판적인 사회 분위기와 결합하여 동년배와 후배 미술가들과 함께 1970년대 말 이후 형상적 회화를 국제적인 미술로 만들었다. 스스로를 "사실주의자"나 "새로운 야수들"로 칭한 이들의 미술을 독일 밖의 미술사가들과 평론가들은 신표현주의로 불렀다. ● 보이스(Joseph Beuys)는 미술과 미술가가 지닌 사회 변혁(transformation)의 역할을 강조했다. 따라서 폴케,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키퍼(Anselm Kiefer), 단(Walter Dahn)이나 오브제 미술가 루텐벡(Reiner Ruthenbeck) 등, 1960년대와 70년대 전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교수였던 그의 제자들에게서 정치적 사안은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영미권의 미술평론에서는 그의 미술을 신비주의적인 측면에서 해석했다. 같은 미술학교에서 그가 떠난 후 교수가 된 사진가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와 그의 부인 힐라(Hilla)는 무엇보다 1920년대 독일의 신즉물성 사진을 부활시켜 유형학적 사진으로 불리는 형식으로 지금은 모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소위 "베허 스쿨"을 이룩하면서 새 독일 미술전통 하나를 추가시켰다. ●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은 하케(Hans Haacke)와 백남준을 소개했다. 당시 제도비판 미술가인 전자는 정치적 논쟁이 억압당하던 시기인 1965년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가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었고, 전자가 떠난 시기 독일은 새로운 미술 형식을 탐구하던 후자에게는 최적의 인큐베이터를 제공하여, 후자는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켜 그것에 보답했다. 옛 동독, 엄밀하게는 라이프치히에서 경력을 시작한 포스트모던한 미술가들은 1989년 통일 후에는 "새로운 라이프치히학파"로 불리며 신자유주의 시대 글로벌 자본의 수혜를 가장 극적으로 받게 되었다.

Anton Stankowski_Man and Woman_사진_18×13cm_1930

슈탄코프스키, 하베코스트와 돌의 미술 속의 "독일적인 것들" ● 일반적으로 독일 미술을 논할 때 위와 같은 이슈들이 자주 거론된다. 이에 따라 독일 미술에서는 미적 향유나 미술 형식의 자율성 보다는 사회적 이슈의 재현을 발견하게 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보다는 주관적인 표현주의 미술을 더 독일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클라우스 클렘프가 "독일 것들"로 소개하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미술가의 주관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주의적인 것이기보다는 객관성과 절제가 두드러진 것들이다. 작품의 대부분이 일상적인 사물과 산업 생산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미술가들의 태도는 문명 비판적이기보다는 중립적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에서는, 표현방식으로 보면 객관적인 것에서도, 1920년대 신즉물성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과 감성이 표현되어 있다. ● 이러한 특징들은 전시 기획자가 독일 역사에서 골라 낸 독일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슈탄코프스키는, 1930년경에 촬영된 사진이 전시되지만, 1906년에 태어나 1998년에 사망해 거의 20세기 전체의 독일을 경험했다. 하베코스트는 1967년 옛 동독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반면 여자 작가인 돌은 1970년 옛 서독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상이한 출생 배경은 독일의 일상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선을 제공한다. 한편 전시 서문에서 기획자는 독일을 자연보다는 산업으로, 그리고 가톨릭보다는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개인적 성향과 연결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독일에 대한 편향된 견해들을 보완해 주기도 한다. 실제로 20세기의 독일은 흑림(Schwarz Wald)처럼 독일 낭만주의 미술이 연상되는 자연으로 유명하지만 벤츠 자동차, 라이카 카메라와 쌍둥이(Zwillinge)표 칼과 같은 산업생산품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하베코스트의 작품들 가운데 자동차와 거기에 비쳐진 자연 풍경은 독일의 산업과 자연을 함께 보여준다. 한편 클렘프가 언급한 칸트의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분류는 일차적으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 슈탄코프스키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겠지만 쓸모 있는 물건에서도 미적인 질을 강조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Anton Stankowski_Tramps_사진_13×18cm_1930

이러한 맥락에서 안톤 슈탄코프스키의 경력과 그의 사진 작품은 19세기 말 이후 산업자본주의 강국으로서의 독일과 20세기 말 사진이 현대미술의 주류 장르에 편입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진가들을 배출한 나라로서의 독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화이트블럭에서는 그의 사진 65점이 전시된다. 그는 1998년 92세로 사망한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한 예로 우리 눈에도 친숙한 도이체방크의 로고가 1974년에 그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디자인한 많은 다른 로고와 그래픽처럼 그가 그의 교수 막스 부르카르츠(Max Burchartz)을 통해 영향을 받은 구축주의의 특징을 지닌 "구축적 그래픽"이다. ● 1929년 취리히의 광고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슈탄코프스키는 사진스튜디오도 설치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당시 그와 교류한 한스 노이부르크(Hans Neuburg)에 따르면, 사진을 그래픽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사용했다. (Karl Duschek, "Einleitung", Stankowski-Stiftung(hrsg), Stankowski Photos, Hatje Cantz, Stuttgart, 2003, 4)1929년 그는 그의 교수의 도움으로 두 점의 포토몽타쥬를 전시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까지도 사진에 대한 그의 견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03년 전시도록에 글을 쓴 귀도 마냐과노에 따르면 1979년에서야 그의 사진이 독립적인 장르로 전시될 수 있었다고 한다. (Guido Magnaguano, "Inventar der Gegenstände", 위의 책, 13)1983년 슈탄코프스키 재단이 그 자신에 의해 만들어져 포토아카이브에 현재 4만점 이상의 네가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 2002년에는 그의 고향에서 대규모 사진전이 열렸고, 2006년부터 2007년에는 취리히와 슈투트가르트,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여러 도시에서는 사진, 디자인, 조각, 회화 등, 그의 여러 분야의 작업을 분류하여 소개한 전시가 열렸다. ●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이 1980년 전후 시점에 작가 자신과 미술계로부터 독립적인 장르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앞서 언급한 베허 부부의 사진이 1970년대를 지나면서 독일에서 관심을 얻게 된 것을 포함하여 1960년대 이후 미술에서 독립적 장르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잔더(August Sander)의 객관적 사진 전통을 이은 이 부부의 사진은 1960년대에 주관적 사진이 유행하던 독일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 뉴욕의 "정보(Information)"전에 소개되어 그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이 미국 개념미술가들로부터 생겨나자 독일 미술계로부터도 관심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진과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은 대조적이다. 베허 부부는 스케일이 큰 산업 구조물의 전체를 정면에서 찍어 큰 사이즈로 인화했다. 그들은 같은 종류의 구조물을 반복해서 찍어 연작처럼 한꺼번에 전시했다. 그들의 사진에서 땅위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찍혔으며 그림자가 없는 거대한 구조물은 마치 유령처럼 관객을 압도한다. ● 반면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은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인화된 사진의 크기가 작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느낌은 일상적인 물건이나 장면과 같은 그의 소재와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와 만나는 그의 독특한 방식에서 온다. 그는 대상을 연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고 렌즈의 조작을 피하고 눈으로 본대로 사진으로 찍었다. 이에 따라 그의 사진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며 무엇보다 피사체와 그의 눈 사이에 놓인 거리와 각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그의 사진에서 가까이 놓인 사물은 짙은 그림자와 함께 문자 그대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높이 있는 것은 쳐다 볼 때 작가의 목이 아팠을 것 같으며, 내려다 본 것에서는 현기증이 느껴진다. ● 이것은 그가 사진을 '작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위에서 본 사물들이나 사람들을,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그래픽 디자인을 위해서, 기록하려고 찍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사진은 소재 상으로는 한 독일인의 눈으로 기록된 80여 년 전의 독일의 일상을, 사진 역사의 맥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양분되었던 독일 사진의 두 경향을 모두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연출이나 조작이 없이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라서 객관적 사진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도 차갑지도 익명적이지도 않다. 사진가의 일기처럼 그의 일상 경험을 전달하는 그의 사진은 주관적 사진처럼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대해 그가 가진 시선을 전달하고 있다.

Eberhard Havekost_Auge, B11(Eye B11)_캔버스에 유채_45×80cm_2011
Eberhard Havekost_Grenze, DD (Border, DD)_Handoffset, 4colored_49.1×34.2cm_2006
Eberhard Havekost_Mantel, DD (Coat, DD)_handoffset, 4colored_36.1×25.1cm_2006

전후 세대인 하베코스트와 돌의 작품에서는 독일의 일상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발견된다. 슈탄코프스키에게서는 카메라가 눈을 닮았다면 하베코스트의 눈은 카메라를 닮았다. 후자는 소재의 일부분을 찍은 사진을 몇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오프셋으로 제작했다. 대상을 스냅사진처럼 부분을 찍은 듯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은 그의 유화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전시의 네 번째 방에 7개로 구성된 작품 「우주」(2011)를 「눈」(2011)의 맞은 편 벽에 건 전시 방식은 위의 특징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우주"는 평면 TV화면과 CD 플레이어, 풍경과 그 외 식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다. 공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매스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카메라가, 즉 외눈이 찍은 부분만 인식한다. 「우주」의 맞은 편 벽에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걸린 "눈"은 카메라처럼 외눈이다. 이 "눈"의 오른 편 벽에 걸린 회색 캔버스는 「신문」이다. "신문"에는 글자가 없고 "눈"은 감각적인 핑크 빛으로 제목이 없이는 눈인지 알기 어렵게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들은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가 세계를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직접적으로가 간접적으로,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메르세데스 자동차, 초콜릿, "볼륨 있는" 여성의 몸, 건물 등, 하베코스트의 핸드오프셋 판화의 소재들은 인간 욕망의 대상들이다. 그러나 부분만이, 그것도 광택 때문에 주변이 비쳐져 실체 파악이 어렵게 표현된 메르세데스 자동차, 창틀에 의해 접근이 막힌 건설 장소, 뾰족한 이파리를 지닌 화초에 의해 시선이 차단된 건물, 등을 돌리거나 얼굴이 잘려 관객과의 교감이 차단된 인물 등, 이처럼 '욕망의 대상들'을 그는 낯설게하기(Verfremdung) 방식을 통해서 이것들을 소유할 수 없음, 즉 그 대상과의 거리를 표현하였다. 가라앉은 색조로 표현된 오브제들은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 속의 물건이나 인물들과 달리 글래머러스하지 않다. 이것들에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온 화가 폴케가 1960년대 팝아트적인 작품 속에서 유령(phantom)처럼 표현했던 가질 수 없는 사물과 인물처럼 살(flesh)이 없다. 이들에게서는, 사람이 없어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건물과 도시 장면에서처럼, 대상에 대한 욕망보다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어 겪게 되는 좌절이 느껴진다.

Eberhard Havekost_Mercedes 4-7_handoffset, 4colored_33×20.9cm_2004
Eberhard Havekost_Zeitung B09 ( Newspaper B09)_캔버스에 유채_280×140cm_2009

하베코스트의 작품에서 부의 상징이자 과시물인 벤츠 자동차의 표면에 선명하게 비친 자연 풍경은 부가 투사하는 자연 이미지다. 자동차는 소유 대상인 반면 자연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도 소유 대상이다. 즉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자동차는 교외로의 접근을 용이함으로써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함께 자연도 소유 대상으로 만든다. 자동차에 비친 자연은 보는 방향과 자동차 표면의 굴곡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계속 변함으로써 자연은 관객에게는 소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베코스트의 작품, 「번쩍거림」이 구체적으로 보여주듯이 산업생산품이 지닌 광은 그것의 실체를 현혹시킨다. 물질주의의 상징물이 만든 그러한 번쩍거림 속에서 자연은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고급 자동차와 컨테이너 문짝은 자본주의를,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차용한 작품과 총은 세계대전을, 커버 걸은 쾌락산업을, 그리고 "Pikt" 연작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기호화된 일방적인 지시 체계인 픽토그램을 상기시키는 등, 돌이 그린 소재들에는 독일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다.

Tatjana Doll_BRICK GUN 2 - H&K MP5 VS4_캔버스에 에나멜_50×70cm_2007
Tatjana Doll_CAR_PIG_PORSCHE_캔버스에 에나멜_400×200cm_2006
Tatjana Doll_Container-038_캔버스에 에나멜_190×160cm_2009

돌이 그린 4미터 길이의 캔버스 속의 독일제 고급 자동차 그림은 관객을 압도한다. 그녀는 그것을 실제의 자동차 보다는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 도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물신주의적인 광고 이미지와 유사하게 그렸다. 그녀는 실제 자동차보다 더 큰 그림을 거리에 전시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그녀가 경험하는 광고 이미지가 실제 자동차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인식하도록 한다. 동독 출신인 하베코스트는 자동차를 사진을 이용하여 포토리얼리즘적으로 표현했지만 자동차의 부분을 표현하면서 그것을 소유 대상으로보다는 욕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대상으로 보여준다. 반면 돌의 자동차 그림은 현대인에게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실제 대상이 아니라 소비주의 사회가 생산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녀는 욕망을 제거하려는 듯이, 또는 그 대상이 실체가 아님을 확인하려는 듯이 자동차를 넓은 붓으로 스케치하듯이 그리면서 페인트 자국을 뿌리기도 하고 캔버스 위에 신발자국까지 만들어 냈다. ● 돌이 사용하는 재료는 현대인의 욕망이 이미지, 즉 시물라크룸을 통해서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녀의 작품 속의 자동차나 컨테이너의 광은 그려진 사물의 특징을 묘사한 결과가 아니라 사용된 페인트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가 사용한 재료인 페인트의 독일어 동사형, lackieren이 속어로 속이다, 기만하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 시사하듯이 페인트는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가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것을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매스미디어는 모든 것을 미디어의 특성을 통해서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소비하게 만들고, 광고는 광고 기제를 통해서 모든 것을 소비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실제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는 소비 대상이 가진 모든 종류의 차이를 무시하고 제거한다. 글로벌 자본은 국적의 차이를 없앤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는 소비 대상의 실체를 알지 못하게 된다. ● 아울러 페인트는 그것이 칠해진 것에 가해지는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기도 한다. 소비주의 기제는 그것의 목적만을 위해 작동한다. 그것은 대상의 이미지를 생산하여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각 대상이 가진 차이를 무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제의 크기에 가깝게 그려졌으며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컨테이너 문은 실제 컨테이너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페인트로 그려진 "엠마" 연작에 서로 다른 부제가 부쳐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Tatjana Doll_DUMMY_EMMA 9 (Traumfrau)(DUMMY_EMMA 9(Dream Girl))_ 캔버스에 에나멜_160×120cm_2010
Tatjana Doll_Im Westen nichts Neues I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I)_ 캔버스에 에나멜_300×100cm×7_2009

돌의 이러한 대상 인식 방식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이미지는 스페인의 잔혹한 민간 학살을 그린 「게르니카」를, 제목은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레마르크(Erich Remark)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나 레고로 만든 총을 그린 작품들은 모두 독일 현대사와 관계가 있으나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비판이 생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약호인 픽토그램과 닮았으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가진 이미지를 보여주는 "Pikt" 연작에서도 발견된다. ● 이 세 미술가들은 일상을 소재로 하여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슈탄코프스키의 1930년대 사진에서 사물은 소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작가와 대상과의 갈등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후 세대의 두 미술가에서 독일의 세련된 산업 생산품으로 재현된 일상은 인간이 물질과 갈등하는 현장이다. 하베코스트와 돌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로부터의 소외나 그것에 대한 욕망과의 투쟁을 표현하였다. 이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독일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나, 동시에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글로벌 자본과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돌이 사용한 페인트처럼, 전 세계인의 취향과 소비 대상을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김정희

Vol.20111005k | 사물의 재발견 Deutsche Dinge-독일 현대미술 3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