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HOME

신리라展 / SHINRIRA / 申吏羅 / painting   2011_1005 ▶︎ 2011_1016

신리라_The way home - bride_캔버스에 유채_162×130.1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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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05 수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공모선정작가 개인展

관람시간 / 월~토요일_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시간이 머무는 풍경1. 기억의 빗장을 열고 신리라의 풍경은 선명하고 조용하다. 도로가에 서 있는 산업문화의 뚜렷한 구조물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들을 담은 채, 마치 영원과도 같은 순간의 표정을 감싸 안고 있다. 작가가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Afternoon's Montage와 Landscape-The way home 시리즈들은 작가의 유년기의 추억에서 되새김질 된 기억들의 확장되고 변형된 풍경들이다. 아버지의 가게에는 색색의 페인트가 놓여져 있고, 빛이 좋은 날에는 넓은 벽체에 페인트가 발리고 황금빛 느긋한 오후의 햇살이 오면 젖은 색들은 그 몸을 온전히 드러낸 채 그들의 존재를 자랑한다. ● 사실, 작가가 유년기를 보내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색들이 이불처럼 펼쳐진 간판가게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인상들은 작가에게 뚜렷하고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이다. 작가의 시선에 부딪힌 벽, 지붕과 같은 일상의 구조물들은 페인트를 칠하는 아버지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초상'을 반복하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듯 화면에 재생된다. 그것은 오래 사색된 풍경이며 작가의 내면의 관조가 머무르는 장소이며, 또한 창조의 시선이 포착한 '순간'의 시간이 달라붙어 있는 사물들이기도 하다. ● 지붕 깊숙하게 그늘을 늘어뜨린 그 시간의 뚜렷한 단상은 선과 면의 구획으로 단순하고 정확하게 구성된다. 그것은 고요하고 서늘한 마치 찰나적인 이미지들인데,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존재했던 가족이 있고 행복하고 안락했던 매혹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곳으로의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모색한다. 그 공간은 맑은 영혼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확장되고 증폭된 세계인 것이다. 넓은 지붕과 충분히 높은 언덕, 낮은 지면은 마치 낯선 전봇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먼 대지의 아득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신리라_The way home - Lake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근작에 새롭게 보여주는 가족의 사진을 차용한 작품들에서는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와 공간의 의미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어머니의 결혼사진은 마치 제단위에 올려 진 성스러운 제의로서의 부유하는 시간을 보여주는데, 작가의 휴식과 안락으로의 여행에서 묻어나는 가족으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농도 짖은 노스텔지아를 느끼게 한다. 집이 들어선 마을의 풍경이 유년기를 보여주는 상상력으로 증폭된 세계였다면, 사진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시간의 풍경은 그 집이 꿈꾸는 세계의 형상인 것이다. ● 이러한 작가의 화면에서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의 징후가 포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 태초의 안락을 꿈꾸는 모태귀소본능(母胎歸所本能)으로서의 이 증상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말하는 우리의 상상력의 궁극성으로서, 그것은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와 같은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이 요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의 전 작품들을 관통하는 The way home에서도 보여주듯이, 펼쳐진 풍경과 특정한 가족의 온기가 화석화된 사진의 공간은 그 하나의 온전한 영혼의 공간이며 우주적인 시간과 교감하는 곳으로서, 떠다니는 시간을 포착하고 형상화하는 관조의 시간이 만들어낸 화가의 은밀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순수한 어릴 적 빛과 색이 뚜렷한 시공간으로의 수렴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락과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기억의 빗장을 열고 맞이하는 집이며 가족이고 또한 우리 모두가 잃어버리고 지나온 시간들에 관한 증언들이다. 이는 현대 도시의 물질문화에서 빚어진 불안의 증상에서 벗어나고픈 우리 모두의 그리움이 투영된 곳인지도 모르겠다.

신리라_The way home - Rest area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2. 노에마(Noema)-그것은 존재했다. ● 작가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추출되는 마을과 사진속의 풍경들에는 알 수 없는 힘과 분위기들이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시간이 멈추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속적인 시간의 거대한 흐름을 담은 채, 그러나 동시에 부재(不在)하는 텅 빈 시간으로 가득한 것이다. 달라붙어 있지만 비어 있다는 이 모순된 관계의 시간은 작가의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이며 현재로, 미래로 이어지는 숨 쉬는 시간이다. ● 기억속의 유원지, 휴게소의 풍경은 과거의 잔상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시선에 고유의 의미가 작용하는 현재의 공간이다. 사진 속에 드러나는 숭고한 시간의 한 장면에는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과 긴장들도 간취된다. 이는 곧 시간은 현재라는 지점과 과거와 미래가 함께 겹쳐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 시간은 멈춰진 듯 계속 살아나는 것으로, 연대기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역설적인 시간으로서 시간의 존재론을 탐색하였던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를 "순수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리라_The way home - Botanical garden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이 "순수 시간"은 아무것도 담은 것이 없는 듯 무심한 경지의 분위기들이라 할 수 있는데,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시간을 초월하고 문득 깨닫고 바라보는 것으로서 불교적인 경지의 시선과 닮아 있다. 이 "무심(無心)"은 선불교(禪佛敎)에서 말하는 깨달은 경지의 관조로서, 일체의 분별심과 망상을 비운 텅 빈 상태를 말함이다. 이는 곧 찰나가 영원의 시간이며 순간이 오랜 과거와 먼 미래의 궤적을 함축하고 있다는 승화된 시선인 것이다. 이러한 작가가 구현해 내고 있는 안락과 그리움으로 들어가는 여정의 풍경들에서 사진의 직접적인 차용은,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Aura)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아우라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의 마비된 듯한 사건이 존재하는 장소와 인물들이 갖는 독특한 실존의 분위기들인데, 이는 들뢰즈의 "순수 시간"이나 "무심"의 시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리라_The way home - Bride & Friends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1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진을 보고 그 흔적들을 확대하거나 부분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독창적인 언어인 뽀족한 도구에 의한 상처, 찔린 자국의 외상이라는 푼크툼(Punctum)의 세계가 작가의 화면에서 드러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푼크툼은 사진에서 발견하는 일반적인 조건이 아니라 부분적이며 무의식적인 요소인데, 작가의 시선에 맞닿은 사진 속에서 현재는 부재(不在)하는 소중한 기억과 가족으로부터 오는 시간과 "노에마(그것이 존재했다)"가 푼크툼으로 작용하고, 작가의 깊이 내려간 삶에 관한 성찰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재로 출발한 성찰은 인간을 둘러싼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의 길항 관계 속에서 대립하는 것들이며, 이것은 담담한 관조의 시선으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꿈꿔온 어느 한 지점의 무심한 풍경은 어머니의 시간일 수도 어머니에게로 향하는 그 안락한 집으로 가는 여정의 단상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현재의 자아가 꿈꾸는 위안이며 치유로서의 휴식인 것이다. 작가는 물질문명과 그 욕망으로 뒤덮힌 세계의 무의미함을 일정한 거리에서 말해주며, 우리에게 시원한 사색과 위안의 공간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 박옥생

Vol.20111006c | 신리라展 / SHINRIRA / 申吏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