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as Anarchism

2011_1007 ▶︎ 2011_1027

박선기_Traning space 100530_혼합재료에 채색_75×151×7cm_2010

초대일시 / 2011_1007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 박선기_김무기_최태훈_이길래_신치현

관람시간 / 09:00am~06:00pm

갤러리 보라 GALLERYBORA 서울 은평구 진관동 279-35번지 Tel. +82.2.357.9149 www.gallerybora.com

토대적 한계와 자유의지(Art as Anarchism) ● 조각가의 삶이란 형상의 언어를 찾는 여정이다. 그 독특한 언어의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작가의 인생의 길이 다르고 예술을 선택해서 벌인 그간의 행태들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조각가나 화가 등 미술가를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는 작가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유를 표상한다. 곧 작가 혹은 미술가가 제약된 한계 안에서 새 세계의 가능성을 펼치고 입증하는 역량을 가리켜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자유는 인종, 국가, 계층, 남녀, 세대를 초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삶과 세계관으로 끌어들이고 감화시키는 심미적 기제(aesthetic mechanism)를 발휘한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은 환경과 타고난 토대가 달라도 보는 이로부터 심적 내부에서 강한 동일성을 유발시킨다. 타인에 대해 이 동일성을 유발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예술에 있어서 예술의도(kunstwollen)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작가는 자기 인생을 건 의지로서 타인이나 타문화권에 대해 유혹하려 하는가? ● 역사적으로 예술은 패권의 흔적이었다. 지중해 문명의 예술, 특히 그리스 로마 문화(Greco-Roman)는 로마가 패권을 차지함에 따른 보상적 지위획득이었다. 로마의 패권은 지역적 패권(regional hegemony)인 바 로마 이외 유럽 사회에서 군사적 정치적 지배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차츰 군사력의 수위를 낮춰가며 문화라는 심미적 기제로 타문화권의 지배층들이 로마권력과 로마문명의 우월함에 자발적으로 복속하도록 호소한 정신적 힘이었다. 이를 유연권력(soft power)이라고도 하며 유인적 권력(co-optive pow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에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압도했던 로마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점진적으로 부드럽게 로마질서에 복속되어 가도록 했으며 그 복속의 수단은 주변국 핵심 엘리트들에게 로마의 문화와 예술을 이입시키는 방법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은 혁명의 자식이었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 등 왕정의 구체제를 압도해갈 때마다 이 프랑스 주변국들의 민중의 가슴에 낭만주의 미술과 문학이 전도되었다.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여서 당, 동북아 노마드, 한반도 남단 세력, 왜가 병합을 벌이던 시기에 당이 최초로 군사력에 의지했지만 왜의 견당사(遣唐使), 신라의 신라방(新羅坊)과 같은 현존 단어들이 설명해주듯 당의 문화, 즉 당의 유연권력에 유인되면서 중화질서에 복속되어 갔다. 따라서 예술은 단순히 존재론적 장식(ontological frills)에 머물지 않는다. 예술은 한 시대의 세력균형자로서, 지역질서의 부드러운 규율자로서 상징적 힘을 누려왔다. 전해오는 온갖 문화재나 현존하는 미술관의 존재는 예술이 취미 이상의 강력한 세계질서의 숨은 공로자임을 웅변해준다.

김무기_중얼거리는 나무_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_250×170×179cm_2009

현재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의해 세계가 운영된다. 미국 패권주의의 유연권력은 당연히 모더니즘이다. 미국 패권주의는 로마의 지역적 패권주의보다 몇 곱절 강력한 전지구적 패권주의이다. 나토로 연합한 대서양은 물론 하와이 폴리네시아에서 한반도, 일본, 타이완, 인도차이나 반도를 잇는 태평양, 인도와 아랍을 잇는 인도양과 남아프리카를 중점으로 하는 아프리카 해역이 미국의 빗장에 완벽히 물려서 운영된다. 이 전지구적 패권 아래 수많은 국가의 엘리트들은 자발적으로 미국질서에 복속되기를 원했고 미국문명과 미국문화 아이콘을 숭상했다. 공교롭게도 모더니즘 예술이 지향하는 철학적 변명은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명제였다. 이 보편성이라는 철학적 해명은 제3세계 엘리트들에게 지극히 매혹적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자국의 사회현실을 잊고자 하는 현실주의적 세력 엘리트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찬미적 대상이었다. 모더니즘의 압도적 파워는 정치적 표어나 반동적 사유를 메카시즘의 광기로 철저하게 차단하였고 제3세계적 문화흔적과 사유방식에 대해서는 이국주의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들은 자국에서 발생한 페미니즘마저 보편적 정서가 아닌 주변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인식했을 정도다. 그들이 말하는 보편성이란 이성에 무게중심을 둔 합리주의적 사유에 해당한다. 헤겔이 열어둔 발전론적 선형주의 역사주의 모델을 미술에 적용하여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이분법을 제시한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에 의하면 비백인 국가의 거의 모든 미술 아이디어는 키치라는 부정적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서구의 체계로부터 거세된다. 그런데 서구 모더니즘으로부터 이후 논의가 진행되다 더 이상 출구가 없어 보일 때 그들은 서구의 위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위기(crisis)는 분열을 뜻하는 그리스어 krisis가 어원이다. 이와 반대로 전체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heil은 온전하며 성스러운 상태를 뜻한다. 전체를 지칭하는 whole과 성스러움의 holy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즉 전체를 지칭하는 통일 지향성의 맥이 멎을 때 위기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미술에 있어서 운동(movement)의 상실, 보편주의에 대한 불신, 거대 네러티브의 환각에서 벗어남 등이 현재의 추세이기에 그들은 위기인 것이다. 미국의 현대미술계는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기까지 시간 벌기에 나섰고 최근 10년간 그 빈 틈새에 아시아나 아랍계 미술인들을 종종 등용시키고 있다. 그들이 시간 벌기에 나섰을 때 우리 역시 우리의 미술이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보는 성찰과 앞으로 어떤 미술이 도래할 것인지 전망하는 일은 아주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 서구의 미술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분간하기 어렵다. 서구의 얼굴이 너무나 다채롭기 때문에 현재로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미술의 관습적 성벽에 대해서 몇 가지 지적하자면 그것은 보편성을 지나치게 추구해왔다. 보편성이라는 명제는 자신들의 세계지배구조에 대한 합리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서구사상과 문화, 예술, 생활양식 이 모든 것은 특정시대와 특정지역의 우발적 산물(contingent)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며 보편주의적 시대 요청이라는 것이다. 또한 보편성을 추구하기에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형식(timeless being)과 아름다움에 천착했다. 또 하나 1980년대 이래로 위에서 말한 가치와 정반대 논리로 시대를 개척해갔다. 모더니즘이라는 주인공에 포스트라는 수식을 붙인 것이다. 포스트는 벗어난다는 의미의 '탈(脫)'로서 부정성과 연장한다라는 '후기'의 의미로서의 긍정성이 동시에 횡행되는 양가성의 개념이다. 모더니즘의 남성 중심의 도구적 이성주의를 극복한다는 취지와 이를 외견만으로 변환시킨다는 이중적 태도가 최근의 중심적 현상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시스템 전반이 미국질서에 편입된 지 오래다. 문화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의 미래적 전망 없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무비판적 수용의 지속화는 우리의 자발적 미학의 생성을 지체시켰고 전통을 망각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자기의 깊은 뿌리에 대한 자각 없이는 타자를 감화시키는, 매력 깊은 심미적 기제를 발산시키지 못한다. 150년 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했다. "의지는 열정과 심사숙고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열정과 심사숙고를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수단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것은 특정 개인의 희로애락과 일시적 기분, 혹은 개인이 신뢰하는 이데올로기와 같이 많은 요소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길래_노송-2011-1_동파이프, 동선_700×30×1150cm_2011

이번 전시 제목은 주지와 같이 '토대적 한계와 자유의지'라고 지었다. 우리의 토대적 한계는 자명하다. 제도의 취약성과 예술의 근본적 의미를 일깨우지 않은 채 서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 서구의 예술개념이 유입되기 이전에 우리 역시 예술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우리의 예술개념은 모방도 아니고 표현이나 감정의 전달, 혹은 제도를 향한 진입 욕구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개인이 지닌 정신의 완숙도를 증명하고자 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질서는 우주질서의 반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연 곧 천지가 함축하고 있는 비의(esoteric)를 일깨우고자 했다. 자연의 비의와 인간사의 숙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실존적 확신의 표현이 바로 우리의 예술이었다. 우리의 궁극적 철학은 가까운 곳에서 저 멀리를 읽는 사유방식인 바, 이를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遠取諸物)'라고 하며 이 말은 역경(易經)에 나온다. 나의 몸으로부터 가까운 사물 속에서 저 멀리의 우주적 진리가 내포된 예고편으로 바라보려 했던 태도는 우리 작가들 많이 본받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길래와 김무기의 나무는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적인 사유방식의 조각인 셈이다. 나무는 확산시키는 에너지의 상징이다. 봄의 현현이며 청춘의 상징이자 동쪽을 의미한다. 그는 물의 생명을 이어받은 매개자이며 모든 생명을 섭생시키는 수렴 에너지 씨앗을 배태한다. 수목은 게르만 신화에서 우주이며 메스포타미아에서는 생명이며 구약성서에서는 불사이자 지혜이다. 한반도에서는 신령 그 자체였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에 대한 신앙은 원시 시대부터 사람들이 분명히 목격하고 체험했던 실존이다. 즉 이길래와 김무기는 인간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태초의 감각과 감정을 재현한다. ● 최태훈 역시 우주를 표현했었다. 그의 거대한 동선 작업이나 프라즈마 기법의 은하수는 매우 글로벌 감각을 지닌다. 글로벌 감각과 신앙으로서의 성운에 대한 찬미가라는 내용이 팽팽히 긴장감을 이루었다. 최근 최태훈의 우주적 작업은 은하수에서 침실과 거실 등 가정으로 내려왔다. 역시나 이는 근취저신의 정신으로서 몸에서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큰 진리를 발견하려는 동양적 사유방식으로의 전환에 다름 아니다. 박선기는 숯을 이용한 작업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숯은 서구에서 죽음(ash, dust)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는 숯을 다르게 이해한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이 숯의 은유는 상전벽해나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를 상징한다. 죽음의 이미지와 변화의 메타포를 교차시켜서 그는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들과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을 구축했다. 박선기의 근래 작품은 우리의 시점에 관한 것이다. 진리는 왜곡되어야만 오히려 명증하게 보인다. 댕기열을 앓고서야 우리의 평소 몸을 알 수 있고 금융위기를 겪어야 오히려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듯이 시점의 왜곡은 오히려 평소의 우리 시각의 맹점을 드러내준다. ● 신치현이 만드는 인간은 특정 인간의 재현이 아니다. 인간의 전체상에 대한 이미지다. 신치현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치 작은 물고기 수 만 마리가 군집을 이루어 큰 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진짜 큰 고기를 위협하는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작고 미약한 인간은 집단을 만들어 거대한 힘을 발산하며 지구의 거인으로 군림한다. 신치현에게 예술의 의미 역시 장기적으로 형성된 수많은 작가들의 역사 퇴적물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개인의 실존과 자아는 무의미해진다. 또 다른 미래 역사를 위해 살며시 사라지는 작은 물고기, 그러나 인간사회라는 큰 틀의 장대한 힘을 표현한다. 신치현 역시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는 정신을 본받고 있다.

신치현_透-상어_스테인리스 스틸_180×500×280cm_2011

위에서 살핀 것처럼 우리의 작가와 미술은 한계적 토대에서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 발생한 근본적 문제에서 나름의 열정과 숙고로써 자유의지를 표명해왔다. 모더니즘이나 서구사조로부터 어쩔 수 없이 내면화되면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직면한 연후에 자기 갈 길을 확실히 모색했다는 진지함을 지닌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작은 중화(小中華)에 자족하지 않고 스스로의 예술의지를 깨친 것은 18세기 무렵이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현재 여기를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원천이었음을 자각한 이후에 겨우 얻은 유산이다. 위의 작가들은 서구의 예술방법론을 충분히 성찰한 후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진정 저 200년 전의 옛사람들의 열정과 심사숙고를 재연하길 기대한다. ■ 이진명

Vol.20111008f | Art as Anarchism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