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AGE TO POP

강미령展 / KANGMIRYEON / 康美玲 / painting   2011_1005 ▶︎ 2011_1102 / 월요일 휴관

강미령_Love is...Ⅰ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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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_11:00am~03:00pm / 월요일 휴관

나무아트갤러리 NAMUARTGALLERY 부산시 북구 화명동 신호타워 7층 Tel. +82.51.332.8376

클래식 팝의 귀환 Return to Classic Pop 1. 소녀의 노스텔지어아(Nostalgia) ● 어린 시절의 강열한 추억은 상상력의 시작이자 창조의 원동력 이다. 작가 강미령의 예술세계 또한 작가의 소녀 적 모습을 추억하는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으로써 창작의 기원이 되고 있다. 단정한 교복과 검은 단발머리, 때때로 등장하는 색동옷을 차려입은 소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소녀 적 시간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기억의 간극에서 탄생한 모습이기도 하다. 미령의 소녀 이미지와 그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소녀의 나이만큼 과거로 되돌아간 시간으로의 복귀인 것이다. 그 시간에는 소녀 미령과 장님의 Equus가 등장한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희곡 『에쿠우스(1973)』에 나오는 Equus는 주인공 엘런에 의해 눈이 찔려 죽게 되는 말의 이름인데, 이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로써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연극 『에쿠우스』에서 느낀 감동의 깊이와 폭이 작가의 전(全) 작품을 관통하며 그려지고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로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실, 눈이 찔린 장님에 관한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와 몇 개의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금지된 세계를 넘었다는 것과 신의 세계를 읽어내는 힘을 가진 존재라 하겠다. 따라서 눈이 가려진 말은 그것이 금지된 세계이든 초월적 힘을 부여받은 존재이든 간에 일정부분 신화적이며 신성한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화면은 모던한 현대미술의 응시를 담고 있으면서도 극적이며 문학적인, 오히려 고전기의 낭만성을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눈이 가려진 존재의 등장은 진지한 성찰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령과 에쿠우스는 세계를 인식하는 동일한 시선이자 신화성을 내포한 동일한 두 개의 자아인 것이다. 즉, 말이 갖는 동물적이면서 신성한 본성은 소녀 미령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아와 만나고 있으며, 소녀 미령이 작가의 안락한 과거로의 회귀라면 에쿠스는 최초의 장면을 목도한 그 이후의 상처받고 성숙한 초월된 자아인 것이다. 어쩌면 에쿠스는 삶의 의미를 알아버린 작가가 자신의 삶의 관조적 시선을 투영시킨 현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는 곧 순수한 자아이자 세계를 알아버린 두 자아의 공존이며 또한 작가의 현재와 과거가 조우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에쿠우스의 시선에서 감지되는 무표정한 세상의 풍경들은 담담하거나 초월되거나 승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소녀의 오염되지 않은 시선으로의 관조는 시간이 지나온 궤적들에 관한 신성한 신화가 들어있는 노스텔지아이며 작가의 추억 속에 살아 숨 쉬는 현대를 관통하는 소녀 적 과거의 기억에 관한 그리움인 것이다.

강미령_Homage To Pop Ⅰ_캔버스에 유채_181.8×181.8cm_2011
강미령_기억의 존재방식_캔버스에 유채_60.6×60.6cm_2011

Homage to Pop Ⅱ ● 조선시대의 민중의 삶과 욕망이 표현되어 있는 우리의 전통회화인 민화를 나는 조선시대의 Pop Art 라고 생각한다. 195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은 하나의 역사가 되어있는 Pop Art와 민화를 모뉴멘탈한 공간속에 재조명함으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회화적 공간을 만들어보려 하였다. (강미령) 2. 고독, 그 탈시간(脫時間)으로의 여행 ● 그런데 작가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다시 사는 세계는 고대에서부터 소녀 미령의 시간까지와 현대에서 다시 회귀한 소녀의 시간까지, 소녀를 접점으로 먼 과거와 현대의 시간들이 수렴되고 있다. 그 소녀의 시간은 1960년대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전환점이라는 팝과 미니멀의 미술현상에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수렴된 화면에는 오래되고 되돌아오지 않는 영원으로의 노스텔지아와, 기념비적이며 미술사의 고전이 되어버린 워홀과 팝 아티스트들에게 바치는 경의와 그 숭고함으로의 솔직한 토로가 담겨져 있다. 사실, 작가의 조형의 근저를 이루는 것은 한국 전통 민화이다. 책가도의 면 분할을 몬드리안의 구획적인 면 분할과 동일시하거나(『책가도에 관한 몬드리안적 사고』), 책가도의 화면 분할을 기저로 일월오악도, 작호도와 같은 고전의 어법을 끌어와 작가의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시킨 워홀, 로버트 인디에나,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구성시키고 있다(『Homage to Pop』). 그 구성은 민화의 역투시도법과 불교회화와 같은 화면에서 운용하고 있는 스토리를 쌓아 올리는 구축적인 화면이다. 따라서 작가가 추구하는 화면의 구성은 전통적이며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팝과 미니멀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맞물려 있으며 오히려 그 조형의 시원성을 우리의 전통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기저로 이루어진 화면에는 작가가 감동받고 있는 동서양의 미술의 중요 작품들로 반복되기도 하며 복제되기도 하고, 증식하거나 축소되거나 확장되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미술, 그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작가만이 향유하는 개인적인 감성을 넘어 미술 문화의 모든 사건들이 깊은 사색의 순간을 맞이하고 고요하게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 회귀된 고전과 역사성이 맞물려진 화면과 소녀 미령의 만남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탈시간화(脫時間化) 된 지점으로의 만남이며, 작가가 이러한 시간의 거스름을 통해 자신과 미술과 세계의 과거를 하나의 꿈을 꾸듯 고요한 사색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고독한 공간은 살아 숨 쉬는 장소이며 작가가 자신의 존재론적인 탐구의 여정이 이루어지는 초현실적인 그곳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문명에서 존재하는 시선의 결정체(아이 폰, 스타벅스 커피 등)들이 이러한 작가가 설정한 특유의 뉘앙스를 풍기는 1960년대라는 시간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화석화 되는 것은 작가의 존재론적 근원으로 가기 위한 상상이며 휴식과 안락을 꿈꾸는 내밀한 몽상인 것이다. 그것은 화가의 존재론적인 물음이며 또한 모든 인식의 관심을 그 안에서 찾고자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여정은 고독한 화가의 심층적이며 깊고 고요한 낯선 공간으로의 함몰인 것이다.

강미령_Jazz Meditation _캔버스에 유채_162.2×112.1cm_2011
강미령_Love is...Ⅱ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1

Jazz Meditation ● 인류의 탄생과 죽음, 문명, 전쟁과 평화... 그 모든 것들의 진행 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 나는 그림을 통해 그 역사의 과정 속의 나 자신의 존재를 근원을 찾아가고 있으며 그 행위는 명상과도 같다. 나는 이 명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하고 싶었고, 그 형상화의 소재로 인류 문명의 근원이라 생각되는 숫자를 선택하였으며, 이 숫자들을 서정적 공간속에 미니멀(minimal)한 한편의 시로 표현해 보려하였다. (강미령) 3. 사물이냐, 몰입이냐. ● 작가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그 특유의 마티에르가 드러난 회색이거나, 마치 콘크리트의 거친 질료를 연상시킨다. 시멘트와 여러 화학재료들이 가공된 인공의 벽면과도 같은 작가의 화면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외치는 듯, 현대의 아파트와 같은 잿빛 도시 문화의 냉소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이는 곧 현대라는 문화가 배태된 토양이며 고독한 화가의 몽상이 도달한 부유하는 시간의 기념비적인 장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무대 위의 세트 같기도 하며 노스텔지아를 자극하는 떠다니는 기억의 덩어리들이 고착화되어 있는, 시간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판 같기도 하다. 이러한 강미령의 작품은 한국전통의 회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성을 가미한 사물과도 같은 미니멀이라는 요소와 역사적으로 사건이 되어버린 팝 아트라는 두 개의 기둥을 견고하게 구축해 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평면위에서 조각을 감상하는 듯한 묘한 착시를 갖게 된다. 이는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의 말처럼, 사물이나 조각과도 같은 회화는 형태를 지닌 모든 것을 대상의 주어진 속성대로 그 자체로서 일종의 사물로 설정되며, 그것은 사물성 자체를 발견하여 제시하려 한다는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관통하는 듯 보인다. 작가가 표현하는 미니멀한 화면은 고독 속에서 함몰되어진, 정신의 관조 속에서 배태된 것임은 그가 드러낸 거칠거나 회색빛의 초월된 시간과 공간성에서 알 수 있다. 고독은 철저하게 작가의 현실과 단절시키며 몰입되어 그가 인식한 세계, 곧 현대미술 탄생의 순간을 목도하는 그 순간으로의 초월된 정신의 단계로까지 상승시킨다. 그 정신의 표정은 회색빛 도시의 잔해들 속에 무쳐진 조각으로 또는 입체로 완성된다. 따라서 제단위의 벽화와 같이 신성하고 고요하고 깊숙이 사고된 화면은 미니멀리즘 속에 포함된, 정신을 순차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양적이며 종교적인 정신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개개의 사물들에 정신을 고정시키고 그 사물의 기원에서 현재까지, 고정되어 있는 본질에서 그 운용하는 세계의 움직임(體用說)에 이르기까지의 성찰이며, 이는 곧 관상(觀想)과도 같은 몰입된 순간의 종교적인 수행(Meditation)과 닮아 있다. 즉, 강미령의 화면은 서양화의 재료적 물성에서 출발하여 동양의 정신적 과정과, 승화되고 초월된 사유의 단계가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미령_Classic ForeverⅠ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1
강미령_일월도에 관한 colorful variation 2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4. 고전 팝(Classic Pop)의 귀환 ● 이러한 작가의 예술세계에서 간취되는 모든 이미지들은 현대미술의 고전으로 경외(敬畏) 되고 있는 팝으로의 복귀를 보여준다. 사실, 나는 예술이라는 것과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1960년대의 팝아트에 관한 첨예한 인식적 대립을 불식시키고, 작가는 현대미술의 대중성을 확보하고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린 팝아트에 관한 경의와 그 경의를 기념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따라서 강미령의 화면은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들이 하나의 사실적인 오브제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복제와 반복, 기호(숫자, 표지)의 조형적 어법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강미령의 팝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가 말하고 있는 반복과 복제, 기호화와 같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팝 아트의 중요한 논점들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체험하고 환기시키고 있는 듯 보인다. 즉, 고전 팝의 귀환인 것이다. 따라서 자석처럼 강력한 자기장을 가진 작가의 고독하고 깊게 사유된 공간에 떠다니는 모든 예술의 이야기들은 팝 아트라는 하나의 형상으로 고착화되고 회귀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 기념비적인 예술에서 그림 속을 들어가 회화의 본질을 넘나들며 모던의 의미를 헤집고 구조화 하며 맥박과도 같이 뛰는 현대미술의 사건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즉, 작가가 기념하는 것은, 팝과 미니멀리즘은 대중문화 속에서 나타난 반응들이며 이는 모더니즘이 갈구한 순수대상으로의 복귀이면서, 이전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확장된 영역으로의 미술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바로 할 포스터(Hal Foster)가 모더니즘의 미술이 갖는 숭고한 순간성과 시간성은 하나의 역사적인 패러다임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본질조차도 훌쩍 뛰어넘어 영적인 명령이 된다고 썼듯이, 강미령의 작품은 현대미술에게 바치는 숭고한 제의와 기념비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종교적 정신의 승화를 담아내고 물질화되고 파편화된 현대미술을 서열화하고 동양과 서양의 접점을 찾아냄으로써, 그 안에서 작가는 탈시간화된 우주적 공간에서 창조와 안락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간은 퇴색되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의 언저리에 붙어 있는 찬란한 유산들이며, 그 유산은 이미 고전이 된 팝의 숭고한 귀환으로 가시화된다. 그 숭고한 귀환은 강미령의 관조의 시선으로 사유되고 있으며 강열한 한국적 색과 전통의 도상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 박옥생

Vol.20111009c | 강미령展 / KANGMIRYEON / 康美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