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2011_1007 ▶︎ 2011_1027 / 월요일 휴관

박성란_이종110916_종이에 콘테, 꼴라쥬_50×73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미애_이현열_임국_엄재홍_박성란_이순행

기획 / 센텀아트스페이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센텀아트스페이스 Centum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505번지 센텀호텔 Tel. +82.51.720.8041 www.centumartspace.co.kr

'씬(scene)'전(展)에 부치는 그림 읽기의 즐거움 ● 간혹 우리에게 익숙한, 잘 그려진 풍경화에 대해 원근법의 원리를 들어 하나의 관점만을 허용한 폭력적인 시각이라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일점투시원근법이 근대의 시각 메커니즘으로 구성되는 데는 이른바 퍼스펙티비즘(perspectivism)이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 더 주위를 기울이면 '폭력'이니 '권력'이니 하는 무거운 개념들을 동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일점투시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유형들의 그림들이 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풍경(대상 세계)을 바라본 위치에서 그 풍경 대상을 스스로 해석하고 배치한 것만을 보도록 요청했다는 점에서 관찰자의 시각을 구속했다는 것인데, 사실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보면 바로 그 화가의 눈으로 본 세계를 보려는 욕망이 궁극의 감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던가? 이렇게 놓고 보면 적어도 미술의 일루전(illusion)에 한해서는 작가 주도적인 주관적 관점이라는 것이 단순히 관찰자의 눈을 구속한다거나 폭력적이라거나 그래서 어떤 권력에 포섭된 시각매체라거나 하는 것에는 해석의 유연함이 필요할 것 같다. ●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영화에서 애틋한 연인들의 사랑 씬(scene)에서는 오히려 연인의 눈이 되어 세상을 그와 똑같이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너처럼 보고 싶다'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약호로 작용한다. 이처럼 눈에는 욕망이 투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하는 일'을 우리는 단순히 의학적, 생물학적 정의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귀신을 보았다든가 바로 코앞의 찾던 물건을 못 본다던가하는 일은 부지기수며, 심지어 우리 눈은 많은 부분 실재를 왜곡해서 본다. 이렇게 심리상황을 보거나 눈자체가 어떤 마음 상태의 표정을 담당해낸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 해왔다. 하지만 이 마음의 창이 전적으로 주관에만 이끌리는 것은 아니다. 바로 눈은 문화적, 사회적 약호들의 작용이 맥락화된다. 내가 아닌 남의사랑 씬에 눈물 흘리고 광대의 모습에 배꼽을 잡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처럼 문화적으로 약호화된 어떤 '장면'에 반응하는 우리의 다양한 눈의 증상들을 관찰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을 구체화시킨 문화적 매체가 미술이 아닐까? 이제 미술의 역사만큼이나 작품의 풍부한 시각패턴은 우리의 수많은 눈의 증상들을 만들어 왔다. 일점투시원근법적 그림에서는 물론이고 추상 장면에서조차 약호화된 메시지를 읽는다. ● 이제 부산은 이른바 씬(scene)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제영화제와 바다미술제가 그렇고 이제 자연이 단풍으로 갈아입는 스펙터클의 가을이 특별한 씬을 만든다. 이즈음 갤러리에서 소박한 '장면들'에 대한 독서(reading)도 계절에 어울릴만한 국면일 것이다.

엄재홍_gazer_천에 먹, 과슈_120×97cm_2011

엄재홍, 임국, 이순행, 박성란, 김미애, 이현열 등 여섯 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그들이 연출하는 독특한 '장면'들의 '읽기'는 이 계절 우리의 눈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우선 엄재홍은 사람형상을 각색한 돌조각 모습을 다시 평면 이미지로 전환했다. 이 돌조각의 이미지는 미술의 분야로서 석조의 유형이 아니라 과거 석공들이 일종의 토템 의식이나 특별한 정서적 기능을 지니는 것을 소박하게 제작했던 이미지들이다. 이 평면회화 이미지는 아이러니하다. 저항적인 물성인 석재를 가공해서 입체로 드러내는 형상물을 다시 평면으로 가공했는데, 이때 원래 그 돌조각이 기능했던 일련의 컨텐츠는 그림 속에서 박재된다. 그 순박한 인간 형상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않고 따뜻하게 시선을 맞춘다. 응시자(gazer)라는 표제처럼 우리는 그들을,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먹, 과슈, 아크릴과 같은 재료들이 그들이 원래 돌의 속성을 지닌 인간 형상물임을 충실하게 지시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3차원적 공간이나 과거의 시제가 암시된 시간에 합류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의 '장면'이 우리와 '마주봄'으로 소통하고 있다.

임국_lesson1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9

임국의 그림에는 「lesson」이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두터운 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은 사람의 하체만을 그렸는데, 매우 동적이면서 재기발랄하다. 사실적 묘사, 이른바 대상세계에 대한 모방(mimesis)이 아니라 작가가 해석해낸 장면인데 리드믹컬하다. 소위 탭댄스의 스탭을 연상케 하는데, 이 그루브(groove) 이미지는 반복된다. 반복은 학습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어떤 동작'과 같은 이미지로 유추되거나 지시하는 것이라면 「lesson」의 의미는 유익한 알레고리를 만든다. 심각하지도 의미심장하지도 않은 다리 움직임들의 연출은 다채로운 색이나 형태에서조차 자유롭고 분방하다.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의지가 다분한 이미지 연출은 작가의 경쾌한 심리가 고스란히 감상자에게 전달된다. 충분히 절제한 표현은 오히려 충분한 네러티브를 만든다.

이순행_부산2011-6_사진에 아크릴채색_96×120cm_2011

이순행의 사진은 아예 미술 체제의 무거움을 외면한다. 뭔가 특별할 것도 없는, 소위 우리 주변의 익숙한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자칫 셔터를 잘못 눌러 우연히 찍힌 대상처럼 한낱 쓸모없고 관심 없는 것에 대한 기록으로 말초를 자극하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특별함으로 포장되는 순간부터 낯설어 진다. 이 전도의 힘이 이순행의 특별한 포커스에 있는 것이다. 외면했던 그 공간을 그의 사진에서 '감상'의 층위로 대면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놓치고 가버렸던 장면을 확인하게 된다. 이 미시적이고 섬세함으로의 유도는 이순행의 사진에서 특별한 시간으로 응축되어있다. 그의 사진에 「부산」이라는 캡션만큼이나 우리주위의 특별할 것 없이 익숙한 공간을 빌려 낯선 시간으로 초대한다. ● 반면 박성란이 연출하는 이미지는 그에 대한 반전처럼 보아도 무리가 없다. '꽃의 아름다움'과 같은 상투성을 기묘한 은유법으로 낯설게 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들풀의 이미지는 금속성 강한 기계 부속이미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어떤 '위험'의 징후를 보여주듯 암시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구성해 낸 이미지 속의 공간은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에 결합되어 있지 않다. 콘테의 거친 주행은 역동적인 속도감을 연출한다.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 묘한 장면은 「이종」이라는 표제로 귀결된다. 사실 「이종」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상으로 놓이다. 조용하면서도 암묵적이고, 들풀의 서정성을 날카로운 기계바람으로 돌려놓은 이미지는 일종의 매서운 '경고'처럼 보인다.

김미애_Folding Earth_종이_90×80×12cm

상투성에 대한 '낯설게 하기'의 비유법은 김미애의 이미지에서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마치 구형의 지구를 펼쳐놓은 세계지도와 같이 어떤 '원형'을 지시하는 입체지형도처럼 보인다. 낱낱의 구조물들이 육각형의 기본 구획지형에서 유체처럼 흩어져있다. 이 기표는 문과 창이 붙어있는 어떤 가옥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그것들만의 삶이 있는 유체들의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녀의 작업은 「folding earth」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표제가 암시하듯 접이식 지구의 전개도를 제시해 놓은 것 같다. 하지만 박성란의 이미지에 압도당한 우리의 시선은 김미애의 이미지에서 반전된다. 지도를 보는 눈은 지형을 한눈에 넣고 보는 압도하는 시선이다. 그럴 것이 김미애의 작업은 낱낱의 것을 소위 '골라 볼 수 있는' 선택적 메뉴를 제공한다.

이현열_한강로맨스2

김미애가 입체도감을 제시했다면 이현열은 평면 이미지에서 그 효과를 적절히 구사했다. 이현열의 풍경은 진지하게 그려진 사실적 풍경화로 보았다가 이내 속내를 드러낸다. 관광가이드 지도에서 보일법한 전략이 숨겨있는데, 재기발랄하고 위트로 무장된 쏠쏠한 재미가 숨어있다. 「남해」, 「봄 풍경」, 「한강 로맨스」와 같은 표제는 실재하는 풍경이미지를 암시한다. 하지만 실사와 같은 묘사에 실재하지 않는 요소의 접합은 기호의 충돌을 야기했다. 이것은 이현열의 노림수다. 작가는 기호의 충돌을 거칠게 요구하는 낯선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중재하고 화해하면서 서로를 효과의 원인으로 불러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풍경화'를 유머 넘치고 재미있는 스토리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현열이 부감과 같은 조망법을 선택한 것도 그렇다. 마치 신문의 퍼즐을 맞춰가거나 지도를 펼쳐 여행지를 탐색하는 것 같은 정서를 제공한다. ● 여섯 작가가 연출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씬(scene)에 잠시나마 물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청명한 10월. 센텀 아트 스페이스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단풍놀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 김영준

Vol.20111009j | The Scen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