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케이프 Interscape

박정민展 / PARKJUNGMIN / 朴正旻 / photography   2011_1012 ▶︎ 2011_1018

박정민_여주, 준설토 적치장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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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 마지막날_10:00am~12: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풍경사진의 새로운 안목 ● 풍경사진의 난해함은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하며 겪는 어려움으로 통한다. 그것은 풍경을 보고 해석하는 시각과 방법에 따라 다채로운 감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적인 환영, 또는 사실과 환영의 사이, 혹은 사실 너머를 보게 하기 때문에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게다가 풍경사진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에 비탄적 정서가 가미되면 속수무책이다.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환경과 사회, 역사에 대한 사진의 앙가주망을 시도해온 박정민은 이번 『인터스케이프 Interscape』 전시에서 대상에 대한 자율적인 이해를 이미 확보한 듯하다. 전체적으로 풍경을 인지하는 시각이 넓어졌고, 현실에 대한 고민은 깊고, 형식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철학과 사진학을 전공하고 문화예술단체에서 축적된 경험치가 잘 녹아들었다. 흔히 '사진적'인 말로 대상을 향한 '객관적' 거리두기, '중립적'인 자세가 풍경사진에 대한 이해를 꾀하는데 중요한 형식이라고 생각했다면 박정민의 일련의 사진들을 따라가며 형식의 새로운 안목을 발견해보는 것도 좋겠다.

박정민_상주, 경천대 국민관광지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박정민의 풍경 속, 눈 덮인 아름다운 설원과 무진霧津의 강가, 석양의 강은 고요히 아름답다!? 영산포를 향해 솟은 모래 산, 남한강에 가지런히 놓여진 벽돌은 장엄한 대지예술이다. 작가가 강을 따라 여여하게 걸어 당도한 곳마다 신록, 설국, 노을, 신새벽의 시간대로 잘 짜여진 드라마 같다. 이렇듯 작가의 은폐는 시간의 컬러로부터 시작된다. 컬러로 일단 풍경에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뒤 사진 찍을 때처럼, 다시 여여하게 설명한다. '이곳은 공사가 중단된 곳이고, 폭우로 공사 도중 벽돌은 침수되었고, 겨울이 되어 현장은 눈 덮여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야곱의 사다리'처럼 산으로 길게 뻗은 포크레인 캐터필러 자국도 선명하다. 포격장이었던 매향리는 짐짓 평화롭고, 물줄기를 새롭게 뚫은 경인운하의 노을은 주홍 립스틱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변형되는 풍경 앞에서 '잭슨'의 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풍경사진은 공간의 조직체계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공간을 누가 소유하고 있고,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묻지 않으면 풍경사진의 의미를 알 수 없다."(J.B.잭슨)

박정민_나주, 앙암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09

박정민의 사진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지의 모성성을 그리워하는 촉촉한 감성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해 흘러야만 할 강물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샛강 바닥 썩은 물에' (정희승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 ● 뜨는 달을 보고 돌아가야 하는 심정도 헤아려졌다. 적막함이 감도는 정지된 풍경 속에 촘촘히 각인된 숱한 삶의 애환들도 보여졌다. 그 순간 사진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가 불고 간다. 그만큼 정치精緻한 구성력으로 시간의 흔적은 선명하기만 하다. 그의 사진은 역사의 시선으로 이 땅의 풍경을 써낸 생태 보고서인 셈이다. 그러니 이 사진들 앞에서 작가의 미적 감수성과 역사적 의식, 생태적 통찰이 보일 수밖에. 박정민 풍경의 안목이 어디로 향할지 기대할 일이다. ■ 최연하

박정민_여주, 신륵사 앞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11

강가, 어딘가쯤에 멈춰 앉아 낚싯대를 편다. 보통은 카메라라고 부르는 물건이지만 나는 낚시할 때 쓴다. 굳이 강이어야 해서 강가로 나온 건 아니다. 때로는 들이기도 하고 혹은 바다일 때도 있지만 걷다 보면 대개는 강인 이유는 내 많은 선조들의 뒤를 밟은 격일 게다. 문명의 탄생지라는 말은 곧 문명과 자연 간의 갈등과 충돌의 진원지라는 뜻이기도 할 터. 수만년 시간의 끄트머리 몇 년 남짓을 내 몫으로 챙기고 있다. ● 낚시를 드리운 다음엔 찌를 노려볼 차례다. 지리멸렬한 세상을 단박에 예의주시할 만한 광경으로 바꿔놓는 뷰파인더의 사지절단 마술에 환호부터 보내고 난 다음, 눌러앉아 한동안 뚫어져라 볼 일이다. 천천히, 물음표 비슷해보이는 흐릿한 어떤 것이 바늘 주변을 헤엄쳐다니기 시작한다.

박정민_부여, 금강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09

환경이라는 아젠다 혹은 아포리아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지는 조금 더 되었다. 갈수록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아만 가니 짐작컨대 후자일 것이다. 하필이면 또 카메라를 잡고서였으니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처음 너무도 굳건해보였던 그 많은 느낌표들은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떨궈 물음표가 되어가는데, 카메라라는 물건은 이런 국면을 전환시키는 따위의 용도로는 아무런 보탬이 못됐다. 지팡이로 쓸까 싶어 짚어도 보고 창검으로 쓸까 휘둘러도 봤지만 마땅치가 않다. 짚자니 미끄러지고 겨누자니 빗맞기만 한다. ● 이번에도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명석판명한 규명을 해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호호탕탕한 주장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혹자는 기도하고 혹자는 개발할 것이며(신도시든 신기술이든) 좌우지간 환경문제의 통섭적 성격에 걸맞는 다종다양한 대처법을 선보이리라 믿는다. 대신에 나는 카메라라는 물건에 비로소 걸맞는 짓에 나서기로 했다.

박정민_단양, 남한강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먼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이것을 해낼 수 있게 되면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한 스리랑카 스님이 쓴 위빠사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있는 그대로를, 언필칭 '여여하게' 보는 데서부터라는 말일 것이다. 사진이 가장 잘할 수 있어보이는 탓에 또한 가장 빈번히 그르치곤 해왔던 바로 그 일이다. ● 포크레인은 이젠 숫제 이 산천의 허수아비. 배웅이랍시고 내치는 저 굉음이 그러나 이 강가에서의 첫 소절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적장의 목을 베었고, 들꽃은 그 위로 살아보자고 피어올랐을 것이며, 무역선이 떠나던 날 또 누군가는 그 꽃을 따 쌈지에 품기를 몇 번이었을까. 그 모두의 후렴이자 뒤이어지는 모두의 앞소절일 저 포크레인을 그저 그것만으로 있는 그대로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박정민_화성, 매향리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그렇다면 어떻게? 풀 길 없는 타래뭉치를 들고 나와 강물 속에 드리워놓는다. 뚫어져라 보아가며 주문이라도 걸듯 되뇌인다. 견자여 견자여 무엇을 보느냐. 물음은 대치되지 않는다. 다만 낚아올려도 좋을 만큼 또렷해질 뿐이다. 나의 노래는 여기까지. 물어가며 본 것을 보여주며 물을 따름이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내 위에 드리운 바늘일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낚고 낚임의 질긴 인드라망을 마다할 도리란 없는 것이다. ■ 박정민

Vol.20111012a | 박정민展 / PARKJUNGMIN / 朴正旻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