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mist age

정효영展 / JUNGHYOYOUNG / 鄭孝永 / sculpture   2011_1014 ▶︎ 2011_1105 / 일요일 휴관

정효영_Encore! mist age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보드, 모터, 센서_160×130×31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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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4_금요일_05:00pm

2011 Shinhan Young Artist Festa

런치토크 / 2011_1028_수요일_12:00pm 미술체험 / 2011_1029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기억력으로 복원된 mist age ● 작가 정효영의 작업 앞에서 내린 결론. '기억력이 참 좋구나'. 그런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작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난감하다. 기억을 중심으로 한 두 명제가 너무도 모순되지만 두 가지 다 옳은 것 같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인상이 의식 속에 간직된 것으로,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저장된 기억을 정확하게 펼쳐 보이는 능력이다. 게다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등 대부분의 기억 활동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겨진다. 기억력의 향상은 곧 뇌 기능의 활성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의 기억을 두뇌활동만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 사실 '기억'의 한자어 기(記)는 '스스로 생각한 바를 곧바로 찔러서 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記)'는 말을 뜻하는 언(言)자에 몸 기(己)자가 붙어 있어, 말과 함께 그 행동(行動)이 함께 한다. '기(記)'란 온 몸의 언어로 행(行)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억(憶)'자는 본래 '생각하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단순히 머리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뜻과 기억을 의미하는 '意'자에 마음 심(心)자가 붙어 있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기억이란 과거의 잔상만이 아니라, 지난 시간의 언행이 몸과 마음 깊이 새겨진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정효영_Supersensible clash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장난감, 나무, 와이어, hose, 테이블, 모터, 센서, LED light_110×170×65cm_2011
정효영_The really monument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나무, 모터, 센서_220×90×70cm_2011
정효영_Kyak!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나무, 모터, 센서_120×50×80cm_2011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기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 기억은 전시 제목 'mist age'에서 알 수 있듯 과거의 이미지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감각, 습관적인 행동, 무의식적인 반응 등 몸 곳곳에 배어있는 기억의 흔적이란 것이 있다. 이러한 기억은 머리로 떠올린 과거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고 체험해야만 알 수 있다. 가령 'wrinkled orbit mobile'은 개인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물론 작품 자체가 어지럼증을 유발한 것은 아니다. 천정에 매달린 채 천천히 돌아가는 모빌을 보자 몸이 어떠한 심리적인 이유로 강한 어지러움을 느꼈을 뿐이다. 그 원인을 찾으려 습관적으로 과거의 필름부터 돌리려 했지만 바닥에 누워만 있던 영아기 때의 기억은 어디에도 없고 몸의 반응만 존재했다. 신기한 건 이 작품을 비롯한 7점의 작품이 단순히 작가 개인의 기억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의 몸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supersensible clash'작업도 그렇다. 이 작품 앞에만 서면 유치원 때 느꼈던 강한 불안감이 증폭된다. 그 당시의 장면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매우 엄격한 선생님의 감시 속에서 마음대로 뛰어 놀지 못했던 불만이 강한 불안으로 남았던 것 같다. 'supersensible clash'작업 앞에서 비로소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고정된 시선을 느끼면 불안감에 몸이 경직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강박적으로 충돌만 반복하는 차량, 멋지게 꾸며진 배경을 소리 없이 비추는 빨간 불빛 등. 이 작업은 어린 시절 내 몸이 처했던 그 시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 인간이 관통해온 무수한 시공의 기록이 다름 아닌 그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과 보는 이의 몸에 간직된 기억을 동시에 일깨우는 것이 작가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힘이다. 물론 작가가 만든 형상 앞에서 작가와 관객 모두 비슷한 감각만 공유할 뿐, 그것의 원인이나 실제 사건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는 몸의 기억을 일깨우면, 작품의 형상이 나타내는 기억의 한 단면과 자신의 것이 동일한 차원의 감각이나 느낌의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 여기서 모호한 기억의 실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뚜렷하게 밝히려 할수록 끝없는 망각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 기억 자체가 'mist age'이기 때문이다. 안개에 갇혔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찾아 헤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mist age'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모호한 기억은 그 자체로 남아 있을 뿐, 그것은 더 정확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방해요소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그 전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의 흔적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효영_Collector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장난감, 모터, 센서_60×150×100cm_2011
정효영_Wrinkled orbit mobile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스프링, 호스, 모터, 센서_90×75×75cm_2011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모호한 기억들을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을 시도했다. 워낙에 모호한 기억을 펼쳐놓았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다소 애매모호하고 흐릿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의 틀을 잡아주고 표피를 뒤집어씌우자 각자 신체의 한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형상들이 표현한 쾌락, 기쁨, 고통, 바램 등의 움직임은 아주 먼 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다양한 몸의 언어이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망각의 덩어리들에 지나지 않지만, 몸이 반응하는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들의 형체와 언어만큼 투명한 기억의 실체가 또 있을까 싶다. ● 이 글을 시작할 때 작가의 기억력이 좋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잔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듯 우리의 몸 또한 매 순간 그 속에 각인된 과거를 나름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몸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곳에 고여 있는 과거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떠도는 기억을 가만히 방치하면 그저 망상이나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이 쌓이면 트라우마를 비롯한 마음의 병 등이 되어 그저 한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잉여로만 작용할 수 있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어차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조차 과거를 기반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어떤 이들은 지나간 시간을 있는 그대로 체념하며 넘기고, 작가는 그러지 못할 뿐이다. ● 작가는 현재를 관통하는 힘으로서의 기억을 제시한다. 그에게 기억은 과거의 동일한 재생과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기억력은 단순한 뇌의 능력 이상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때문에 작가는 과거를 떨쳐 버리거나 부정하라는 섣부른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몸 속을 떠도는 모호한 기억의 흔적을 찾아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삶에 녹아 들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 그 결과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친 손바느질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기억의 자리를 찾아 헤매다 드로잉 작업으로 그 실체를 밝혀나갔고, 이후 약 1년간의 손바느질 끝에 지금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작가는 각 형상들이 지니고 있는 촉수의 반복적인 움직임에 집중했다. 색색의 실이 돌돌 감겨 있는 형상들은 가는 와이어에 묶인 채 간신히 촉수만 움직이고 있다. 각각의 와이어들은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형상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관계, 규칙, 환경, 등을 상징한다. 복잡하게 얽힌 와이어는 그 출처나 기원을 알 수 없으며, 아무리 애써도 벗어나기 힘든 단단한 삶의 틀로 작용하고 있다.

정효영_Humming for beauty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장난감, 반사지, 스티로폼 볼, 모터, 센서_70×80×80cm_2011

작가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자 먼저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몸 구석구석에서 그것들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는 지점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몸에 각인된 기억을 상기하자마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벗어나고자 격렬하게 몸부림 칠 때마다 자신이 만든 단단한 와이어들이 더욱 옥죄어 와서 나지막한 신음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자칫 마음의 병까지 만들 뻔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어 작가는 이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꺼내 하나의 형상으로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워낙에 모호하고 파편화된 것들뿐이다 보니 단순히 그리고, 깎고, 붙이는 작업만으로는 불가능했다. ● 이에 작가는 단단한 와이어를 둘러싼 실 뭉치를 이용해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mist age'라는 시간에 'encore!'를 외쳐주기까지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7점의 거대한 형상들에 새겨진 손바느질의 흔적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지난 1년 이야말로 작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그 시간에 감히 'encore!'를 외칠 수 있어 가장 후회 없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 하루하루 예술작업을 하며 매 순간을 새롭게 살아야만 하는 게 작가의 삶이다. 작가 정효영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앞으로도 모호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으로 삶을 낭비하고 감추는 대신, 그것들을 바깥으로 꺼내 현실의 재료로 적극 이용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이 예술작품으로서 현실에 발붙이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작가의 역할이니까. 앞으로도 작가의 손바느질 작업은 다소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뛰어난 '기억력'은 그처럼 힘겹게 작업하는 동안에만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 정무진

Vol.20111014a | 정효영展 / JUNGHYOYOUNG / 鄭孝永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