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 사이를 걷다

2011_1017 ▶︎ 2011_1021

김일동_보상하라_스텐실, 미디어, 혼합재료_210×400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일동_김호석_사윤택_양대원 정은영_채승우_최유_한정희

후원 / 경기대 미술경영학과

관람시간 / 10:00am~05:00pm

경기대학교 호연갤러리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 94-6번지 web.kyonggi.ac.kr/artndesign

사람들은 늘 무언가 또는 어딘가의 사이에 끼여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듯 살아간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톱니바퀴에 맞물린 채 신분과 성, 사상 등 그들에게 주어지는 틀 속에서 옮겨 다니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삶은 안정과 소속감 대신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키고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인간관계가 다양해질수록 심화되는데, 사회학자 '로버트 에즈라 박(Robert Ezara Park)'이 규정한 '주변인(marginal man)'의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주변인'이란 둘 또는 그 이상의 갈등적 사회, 문화적 체계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어떤 가치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가치체계의 대립과 심리적 갈등은 과도한 자의식이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 이번 전시는 이러한 경계 사이에서 방향을 잃더라도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과거와 현재라는 역사의 공존 아래 어색한 풍경, 달라진 가치의 대립, 엉켜버린 소통, 흔들리는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품은 의심은 빌딩 숲을 부유하는 현대인을 만들어내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라는 것이 결국 이 틈 사이에 '낀' 것들의 '끈'으로 이어진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리라. ● 김일동은 '독립운동가'의 초상, 그리고 불화에 등장하는 '달마'를 수묵의 농담을 위주로 한 동양의 전통적 화법이 아닌, 서양의 화법을 통해 팝아트적으로 새롭게 재현한다. 여기에 IT시대의 상징인 'PMP'와 '이어폰', 그리고 현대인의 대표적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를 조화시켜 과거와 현대의 연결점을 만들어낸다. 관람객들은 이 연결점을 바라보다가 역사 속의 위인들보다 전자기기와 특정 브랜드 쪽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괴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인간중심에서 물질문명 중심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일동의 작업은 이처럼 두 가치관의 경계선 위에 서있다.

김호석_광주민주화운동사_종이에 수묵_182×182cm_2000

김호석의 작품에서 보이는 항쟁의 장면은 치열함, 이데올로기의 대립, 독재 정권에 맞선 투쟁의 역사적 사실보다 이제는 연기처럼 희미해지고 얼룩처럼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고 있는 항쟁의 모습 같다. 5.18을 이끌었던 세대들은 흔히들 일컫는 7080세대로 현 연령이나 사회적 위치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하여 훗날의 6월 민주항쟁까지 독재의 그늘 아래 어두웠던 우리나라에 민주화의 빛을 선물해 주었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과 함께 겪어낸 치열했던 그 순간들은 지금 우리에게 희석되고 외면된 형태로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이른바 '낀 세대'가 주도한 항쟁의 결과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희미하게 바래지는 그 핏자국과 같은 얼룩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사윤택_가을은 무슨! 겨울인 것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0

사윤택의 작업은 캔버스 안의 연속된 흐름 또는 진행이 아니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 자신이 가설로 세운 것과 같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뒤섞여서 결국에는 사그라드는 시공간의 경험을 관객도 느끼게끔 인도한다. 관객은 처음 작품과 마주친다면 당황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그 안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결국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왔고, 겪고 있으며, 겪을 일들인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우리개인들로 하여금 세상에 일어나는 그 무엇과도 유리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끼인'채로 숨 쉬었고, 숨 쉬고 있으며, 숨을 쉬며 살아갈 것을 알려준다.

양대원_의심-숲1(자화상)207090_광목천에 한지, 아교, 아크릴채색, 토분, 커피, 린시드유_146×149cm_2009

나와 타인과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의심이다. 사회적 주체로서의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는 현대에 '의심'이란 어쩌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택해진 것이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는 만큼 경계 역시 복잡해지며 의심은 더욱 깊어가고, 더욱 넓어진다. 그리고 결국 자신마저 의심하고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의심의 대상이 사회에서 다시 타자로, 결국에는 나 자신을 겨냥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양대원은 수많은 사회집단 속에 걸쳐 살아가며 흔들리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방법의 하나로 이 의심 속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표정을 잃고 의심의 눈초리로 가득한 그림 속 인물은 현대인의 초상이자 작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정은영_무영탑 Directing for Gender_단채널 영상_00:10:15_2010

여성학에 관련된 작품들을 선보이는 정은영 작가의 '무영탑'은 여성국극을 소재로 삼은 영상 작품이다. 여성국극은 전통의 한국 음악 창무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보고자 대중적인 스토리를 입힌 일종의 오페라와 같은 장르의 공연예술이다. 여성국극 속에서 배역들은 전통적인 성별 역할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여성을 연기하는 것도, 남성을 연기하는 것도 모두 여성이다. 이들은 주어진 배역을 익히고 실행함으로써 엇갈린 젠더의 양상을 교차시키고 가로지르며 두 개의 성별로 구성되어 서로 맞서고 겨루는 성별체계 역시 수행을 통해 구성 및 복제가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본 작품으로 인해 우리는 여성과 남성, 전통과 현대, 현실과 무대 등이 뒤섞여 모호해진 경계 사이를 걷게 될 것이다.

채승우_깃발소리_컬러 프린트_60×90cm

채승우의 작품은 불편하다. 동시대 삶의 이질적인 풍경을 들어내기 때문이다. 보도사진의 프레임이 확장되어 보여진 낯선 현실, 그 의미와 출처를 알 수 없는 과거의 재현과 같은 것들로 그 이질성은 드러난다. 여기에 불편함을 더하는 것은 그걸 규정짓기 힘든 어지러운 감정에 있다. 이 감정은 우리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채승우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은 이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내용 즉 우리 안에 선(先)존재하고 있던 잊혀진 낯선 경험들의 파편들이다. 그의 작품 앞에서 그 파편들을 끼워 맞추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부유하고 있던 내재된 주변인을 마주하게 된다.

최유_보이지 않는 기류_종이에 채색_119.5×258cm_2009

그의 작품은 젊은 작가답게 대상을 자유롭게 포착해 내면서도 한국화의 본질을 잊지 않고 잘 표현해 내고 있다. 그 결과 산수(山水)만큼 수려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질문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모두 다 제각각이다. 이 작품 안에서와 같이 우리는 사람들 안에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대중으로서 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중에서의 주류일 수도 있고 부류일 수 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어딘가에 종속되어 끼인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끼임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치유 받게 되는 것이다.

한정희_Writing of Life「contemplation」_화선지에 수묵_70×130cm_2010

한정희의 그림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건물들과 자동차 같은 도시사회의 표상들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북적거려야할 도시가 정적이고 소음도 느껴지지 않을 모습으로 공허해 보인다. 그리고 철저히 계산된 것 같은 풍경 속에 검은 사람 형체가 있다. 그것은 덧댄 것 마냥 겉돌고 있다. 그 사람은 사회의 규칙이나 관습은 개의치 않는 듯 떠돈다. ● 이런 한정희의 그림 속 도식화된 사회의 모습은 우리를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보다 제 3자,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림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안에 나타난 부유하는 인물, 사회의 구성원이기 보다 주변인인 듯 한 인물에게 이입하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현대사회의 도시풍경'과 '전통 회화의 재료인 수묵의 사용' 그리고 '골조만이 남은 도시의 표상'과 '먹을 가득 머금은 인물' 같이 대조되는 것들의 공존은 기존의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기보다 직시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 낀 기획전시팀

Vol.20111017c | 낀 : 사이를 걷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