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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展 / KIMJIN / 金璡 / painting   2011_1022 ▶︎ 2011_1120 / 월요일 휴관

김진_N_either11c06_리넨에 유채_130×16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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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22_토요일_05:00pm

기획 /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 GALLERY ARTSIDE Beijing No.4, JiuXianQiao Rord, ChaoYang District, Beijing China 100015 Tel. +86.10.5978.9192 www.artside.org

윈도우-빛과 색의 근원 ● 강렬하면서 과감한 터치로 우리가 잘 아는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을 그리고 있는 김진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의 근원적 소통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의 근간에는 작가에 의해 변형된 실존적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 하나의 색과 빛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터치들이 켜켜이 쌓여 배경을 이루기도하고 구상적 형태를 그려내기도 한다. 또한, 올 해, 2011년 북경 레지던시를 통해 그려진 작품에선 지난 영국 시절 때부터 끊임없이 화면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초상을 창문에 비춰진 빛과 그 빛이 만들어내는 색들로 환원시켰다. 이로 인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화면 전체로 확장되었고, 오히려 화면을 벗어나 관객의 시선으로 대치될 수 있을 만큼 그 범위도 상당해 졌다. 또한, 이는 작가만의 짜릿한 회화적 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_N_either11c08_리넨에 유채_130×97cm_2011
김진_N_either11c05_리넨에 유채_130×160cm_2011
김진_N_either11c03_리넨에 유채_180×230cm_2011

실재와 실존의 공간 ● 실재란 "무엇이 있다"라는 의미로 우리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인식과는 상관없이 우선 주어져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 실재에 해당되는 것은 우리의 관념에서 비롯되는 모든 사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태초에 빛이 있었다"에서 빛과 있었다라는 것은 우선 우리의 관념에 의존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무엇, 현재 실재하고 있는 그 무엇을 빛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 무엇이 빛으로 인식되고 또한, 우리가 그것을 관념에서 실재적 존재로 받아 들이게 되며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재가 실존이 되는 그리고 그 차이가 명백해지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지각 이전의 실재 즉,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일 수 있다. 그러나 명명됨에 따라 혹은 그 무엇을 지각하고 인식함으로 인해 '이 무엇'으로 실존하게 되는, 해서 관념이 현존이 되는 명백한 차이가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김진이 그리고 있는 공간 역시 실재와 실존의 차이가 분명한 공간이다. 작가 혹은 관객이 바라봄으로 인해 관념의 공간이 실존의 공간으로 아니면 그 반대로 실존의 공간이 관념의 공간으로 넘나듦이 생겨나는, 상황의 공간이 완성된다. ●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궁극에 서고자 하는 것이 김진 회화의 모티브다. 따라서 그의 거친 붓 놀림이나 색의 유희는 그의 회화의 필연적 귀결이기 보다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우리의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그의 장치, 즉 색과 터치를 통해 끊임없이 당신과 나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음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강요한다. 말 그대로 바라봄의 단단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작가는 화면 위에 가상의 윈도우를 설정한다. 작품 속의 윈도우와 함께 작품 전체를 감싸며 밖으로 확장된 윈도우, 두 개의 윈도우가 그것이다. ● 그 중 작품 밖으로 확장된 윈도우는 속도감 있게 그어진 진한 선들로 표현되는데 간간이 빛의 파장으로 인해 눈앞에 아른거리는 먼지가 진한 선처럼 보이듯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창문을 들여다 보다 눈의 초점 변화로 인해 유리에 끼인 먼지가 무심코 크고 진한 선처럼 보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로 그 선으로 인해 관객이 작품 위로 떠 있는 가상의 윈도우를 감지할 때, 작가는 관객들에게 당신은 지금 존재하고는 있으나 경험할 수 없는 공간을 보고 있음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또한, 회화적 공간에 대한 작가만의 명쾌하고 지난한 고민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품 속에 그려진 윈도우는 김진의 색과 빛을 만들어내는 근원으로서 그야말로 그의 작품 속 광원이다.

김진_N_either11c01_리넨에 유채_250×600cm_2011
김진_N_either11c12_리넨에 유채_91×73cm_2011

빛과색으로환원된초상 ● 작품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확고해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영국시절 김진은 바라보고 바라보는 대상이 되는 이른바 타자와 타자화에 대한 농밀하면서도 다소 지루한 고민들을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해서 그의 작품 속에는 늘 자신의 초상이 공간에 부적응하듯이 공허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는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또 다른 시선이기도 하다.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진동하는 끝없는 반사작용과 같은 자기성찰의 랠리가 진행되는 순간이다. ● 그러나 그가 선택한 성찰의 공간은 실재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으로부터 혹은 현실의 환경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 공간을 선택한 김진은 철저한 이방의 공간으로서 유토피아적 환상과 암울한 부적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도록 그 공간을 다시 모델링 했다. 창문의 범위를 넓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했으며, 한 층, 한 층 건물을 올리듯이 겹겹이 색의 레이어들을 보다 밀도 있고 심층적으로 쌓아 올렸다. 폴락의 레이어가 무의식적이었다면 김진의 레이어는 정확하게 자신의 쓰임을 알고 있는 레이어들이다. 그렇게 강조된 빛과 색으로 인해 북경시절을 겪은 그의 작품에서는 끝내 그의 초상은 자연스럽게 빛과 색으로 환원되었다. ● 따라서 그의 화면에는 더욱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색과 빛이 두드러지며, 우리의 시선은 그의 색이 닿아있는 화면 전체로 그 범위가 넓어진다. 화면 구석구석 베어있는 김진의 감수성을 일광욕하듯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다. 물론, 빛과 색으로 환원된 초상의 역할이었던 작가적 성찰 즉 시대의 잠들지 않는 정신에 대한 그리움은 말 그대로 화면 전체로 분산되기는 했지만, 그 분산이 이루어내는 전체적 구성은 작위적인 초상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충분히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 그것은 일종의 유체이탈처럼 세상 모든 창들을 넘나들며 새로운 실존적 공간을 찾아 떠나는, 김진, 그의 너무나 인간적인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 임대식

Vol.20111022d | 김진展 / KIMJIN / 金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