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조정

Minor Adjustments展   2011_1021 ▶︎ 2011_1103 / 월요일 휴관

손혜민_존 리어든(John Reardon)_Red Signs_빌려온 중국음식점 입간판 설치사진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손혜민_존 리어든(John Reardon)

기획 / 김홍기

후원 / 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Tel. +82.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손혜민은 구보씨처럼 도시를 배회한다. 거리의 사람들, 건물들, 사건들, 자연들이 모두 그의 관심거리이다. 그는 느리게 걸으면서 많이 보고, 가끔씩 멈춰서 많이 듣는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다시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러나 물론 그가 본 만큼 보여주고 들은 만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과감히 생략할 수도 하고, 다른 어떤 부분을 힘주어 강조할 수도 하고, 때로는 약간의 허구를 뒤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시는 언제나 일종의 '편집'이고 '극화'이다. 이번에 그가 편집한 대상은 인천시 중구의 풍경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는 그의 '중구견문록'이다. 말 그대로 작가가 인천시 중구(中區)에서 보고(見) 들은(聞) 것을 기록(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고유한 '기록'의 방식, 즉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편집'하고 '극화'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또는 이것은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작가가 보고 들은 타자의 언어를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 내느냐가 전시의 관건이다. 그렇다면 그가 고유한 번역의 기술로서 내세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소한 조정(minor adjustments)"이다. 손혜민은 많이 보고 많이 듣지만, 조금만 가공하고 변형하고자 한다. 이것은 마치 눈썹이나 입술의 미세한 씰룩거림으로 얼굴의 표정 전체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과 같다. 즉 그가 대상에 가하는 변화는 물리적으로는 미비한 수준이지만 그것의 효과는 전체적인 맥락에까지 미친다. 이것이 그가 중구에서 마주친 타자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채택한 전략이며 자세이다. 이번 전시 속에서 작가의 사소한 조정들은 크게 세 가지의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손혜민_존 리어든(John Reardon)_빌보드 Billboard_빌보드와 설치사진_2011
손혜민_존 리어든(John Reardon)_에어로빅 Aerobics_출력물_2011

첫째, 손혜민은 어떤 것을 원래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시키면서 기존의 맥락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을 조성한다. 「빌보드」라는 작업에서 손혜민이 자리를 이동시키는 대상은 다름 아닌 관객이다. 관객들은 인천아트플랫폼의 한 건물 옥상 위에 설치된 간판을 보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관객은 인천아트플랫폼 맞은편에 위치한 하버파크호텔 14층에 올라가야만 그 간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런 관객의 자리 이동을 통해 손혜민이 의도하는 효과는 자못 상당하다. 그는 하버파크호텔마저도 자신의 작업이 미치는 범위 안에 포섭시키고, 보통은 작품들이 놓이는 장소로 기능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을 하나의 관람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며, 관객을 호텔 14층까지 올려 보냄으로써 인천시 중구를 조망하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한다. 「Red Signs」와 「에어로빅」도 같은 맥락의 작업으로 볼 수 있다. 「Red Signs」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인접한 차이나타운의 한 음식점의 입간판을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옮겨온 경우이다. 이 작은 입간판을 자리 이동시킴으로써 인천아트플랫폼은 예술적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분리되어 차이나타운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음식점의 상호명인 '풍미(豐美)'라는 기표의 이동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닌 포괄적인 의미를 새롭게 재편한다. 「에어로빅」에서 자리 이동의 대상은 자유공원의 에어로빅 강사 최현군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유공원 광장에서 중장년층 시민들의 에어로빅을 지도하는 최현군은 작가가 요구한 자리 이동에 의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초등학생들의 에어로빅을 주재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 결과 자유공원과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두 상이한 공간 사이의 공명이 일어나고, 최현군이라는 '촉매'가 두 공간 속에서 반복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중장년층과 초등학생들의 춤의 공동체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현실화된다.

손혜민_수집 Collected_스티로폼에 우레탄 도장_2011
손혜민_입장권 The Entrance Ticket_성인 입장권 1장과 실사출력_2011

둘째, 손혜민은 인천 중구에 놓인 기념비들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탈각시켜 '기념비성 없는 기념비'를 보여준다. 「A Globe」가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월드커뮤니티센터라는 거창한 이름의 시설 입구에서 발견한 지구본은 명실공히 기념비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큼지막한 좌대 위에 놓인 이 지구본은 위풍당당하게 'World Community Center'라고 쓰인 휘장을 허리춤에 두른 채 일관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손혜민과 존 리어든은 비디오를 이용해 이 지구본을 클로즈업과 로우앵글샷으로 촬영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위용을 한층 더 과장한다. 그러나 이 회전이 야기하는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은 지구본의 기념비성을 무한히 지연시킨다. 이 비분절된 소음은 비디오를 통해 무한히 반복되면서 기어코 지구본을 무의미의 영역 속으로 빠뜨리고 만다. 손혜민이 인천 중구 일대의 기념석들을 다룬 「수집」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노린다. 그는 이 지역의 다수의 기념석이 애초의 의미를 거의 상실하고 단지 하나의 '텅 빈 기표'로서 덩그러니 놓여 있음을 지각한다. 그는 스스로 기념석의 일반적인 형태를 차용하여 어떠한 기념의 대상도 없는 기념비를 제작하고, 기존의 여러 기념석에 새겨진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조합하여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기념시를 작성한다.

손혜민_사소한 조정 Minor Adjustments展_혼합재료_인천아트플랫폼_2011
손혜민_사소한 조정 Minor Adjustments展_혼합재료_인천아트플랫폼_2011

셋째, 그는 너무나 진부하고 상투적이어서 비가시적인 대상들을 더욱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과장하여 마침내 그 진부함과 상투성을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입장권」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과 인천개항박물관의 입장권에 인쇄된 건축물의 이미지에 주목한다. 그 이미지는 역사적 대상을 이상화하고 신화화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미지 속의 건축물은 마치 신전처럼 올려다보게끔 배치되어 있고 그 뒤편은 노을진 하늘로 처리됨으로써 아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손혜민은 그 동일한 건축물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뒤편에 노을의 이미지를 합성하여 훨씬 더 큰 사이즈로 출력한다. 또한 출력된 사진의 망점들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이미지의 키치적인 속성을 더욱 더 과장한다. 이런 과장의 전략을 통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스쳐 보내는 일상의 상투적인 이미지들이 가시화된다. 「수집」도 역시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가 중구 일대의 기념석들에 새겨진 구절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무의미한 문장들은 기념석의 문구로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표현들을 과잉된 정도로 포함하고 있다. 이 절대적으로 무의미한 문장들은 우리 주변에 널린 진부한 기념석들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한다. ■ 김홍기

Vol.20111023e | 사소한 조정 Minor Adjustmen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