久遠의 母像 Eternal Maternal

최종태展 / CHOIJONGTAE / 崔鍾泰 / sculpture   2011_1021 ▶︎ 2011_1113

최종태_기원의 像_대리석_69×24×24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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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21_금요일_05:00pm

기획 / 가나아트

관람료 /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초지일관 ● 최종태의 작품을 보면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조각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분명하고 확고한 자기세계를 지켜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간을 주제로 한 작업세계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작품에서대부분을차지하는모티브는소녀의모습이다. 티없이 맑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의 동경이 그로 하여금 유달리 소녀의 모습을 많이 제작하게 만든 이유임을 그 자신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고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형태를 표현한 것이란 점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향한 갈망이 소녀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소녀는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궁극적인 지점, 즉 천진(天眞)과 청초(淸楚)에 바탕을 둔 지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필연적으로 종교와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특징을 지닌 근거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어떤 조각가 못지않은 격렬하고 역동적인 모색의 시간을 보내었다. 「…」 ● 영국의 테이트갤러리가 개최한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에서 입상한 김종영의 「나상」 흑백도판과 짤막한 작가노트가 수록된 이 잡지를 통해 그는 김종영이란 존재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조각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 그런데 잡지에 수록된 김종영의 작품을 보는 순간 로댕의 작품을 볼 때만 하더라도 가질 수 없었던 감흥을 느꼈던 것이다. 이 작은 '사건'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결국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로 진학했던 그는 김종영에 앞서 먼저 장욱진을 만났다. 「…」 그러나 김종영이순수한조형세계를천착하는선비풍의교육자이자조각가였다고한다면최종태는그너머의 '존재의 본질'에 대한 갈증을 지닌 학생이었다. 「…」 미술대학 재학 중이던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불교사상대강좌'란 표제의 포스터를 보고 즉시 그 강의가 열리던 대각사란 사찰로 찾아가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4개월간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공부했다. 그는 미술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58년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나 불교와의 만남은 그의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훗날 그의 작품에 종종 나타나고 있는 불상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 이 인연으로부터 비롯되던 것이다. ●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이듬 해 8회 국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했던 그는1960년 국전에 출품한 「서 있는 여인」으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음으로써 조각가로서 본격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 그 신산하던 시절 대전문화원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추상조각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그것을 끝으로 그는 다시는 추상조각을 제작하지 않고 오직 인체조각에 매진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체에의 탐구는 단지 인간의 외양이 지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찾는 구도의 과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녀상은 이런 탐구의 과정에서 그가 귀결하고자 한 하나의 목적지였다. 그러므로소녀상은그의의식언저리에자리하고있는고향의풍경을의인화한것이라고할수도있고, 영원한 낙원이자 고향인 어머니이거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서원을 지니고 가없는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관음보살 또는 성모 마리아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갈등이나 분노, 고통과 절망 등의 파토스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나아가 여성의 인체가 지닌 관능성도 발견되지 않는다.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깊은 사색의 분위기를 지닌 그의 작품은 그러나 가볍지 않고 견고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외유내강과 정중동(靜中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최종태_기원의 像_나무에 컬러_87×29×26cm_2009
최종태_생각하는 여인_대리석_68×43×30cm_2009
최종태_어머니와 아들_브론즈_67×45×29cm_2010

형태 ● 「…」 그의 작품에는 고대이집트 조각의 정면성으로부터 중세 고딕 조각의 단순성, 자코메티의 실존적 깊이, 장승의 고졸미,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특히 반가사유상에서 볼 수 있는 숭고미 등이 깃들어 있다. 풍만하기보다 다소 가냘픈 형태는 대체로 기도하고 있는 형상인 경우가 많아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이 순수조형의 세계가 아닌 초월과 구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 해 30대 초반의 그는 한국적 형태를 만들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민화, 민속품,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 건축과 조각, 그림과 글씨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연구했다. 그가한국의전통에대해연구한것은민족적인무엇을찾아현대적인것으로계승, 발전시킨다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서구 일색으로 치닫고 있으면서도 어렵고 난해한 논리를 동원하여 작품을 포장하는 당시 한국미술의 흐름에 대한 반성과 자신의 체질에 맞는 조형언어에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과 현대조각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그는 귀국 후 즉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서 반가사유상을 보았고 그 다음 날에는 석굴암으로 갔다. 세계여행과한국의주요조각유산에대한답사는 1965년부터 가져온 한국적인 형태를 찾고자 한 그의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그의 작품에서 턱을 괴고 사색하고 있는 형태가 많이 나타나고 있음도 반가사유상에서 받은 감명이 컸음을 증명한다. 성북구 길상사의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불교에 대한 그의 축적된 지식과 관음보살의 도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 그의 작품에 특징적인 '고요한 단순성'은 브랑쿠지의 그것과 연결되면서도 한국의 불상이 지닌 아름다움과 연관된다. 아울러 인간에대한신뢰가이미지를지우지않고최소한의형태를통해대상을지시하도록만드는요인이기도하다. 흥미로운점은그가조각의형태를찾는과정을일종의구도와동일시하는것에최종태특유의역사의식이작용하고있다는사실이다. 그는 이성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 로마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보다 단순하고 소박할지언정 신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그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대사회를 건설하였다면 미래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속에 깃든 영원성에 대한 사색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천착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 그런데 그는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형태마저 버리는 것을 통해 형태를 찾을 수 있음을 다시한번 깨닫는 순간을 맞이했다. 「…」 한국적인 것에 대한 추구도 일종의 강박일 수 있으므로 지나치면 그것에 구속돼 형태가 의미를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만든다'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그러한',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형태와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조각에 채색을 하는 것 역시 의도와 기획의 결과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최종태_二人_나무에 컬러_67×35.5×24cm_2011
최종태_종이에 먹, 수채_30×45.2cm_2009
최종태_天使_나무에 컬러_73×27×18cm_2009

색채 ● 최종태가 구사하는 색채는 원색일 경우가 많다. 「…」 올해 여름 어느 잡지사의 요청으로 그와 인터뷰를 했을 때 '색깔이 좀 특이하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에둘러 물었다. 좋은나무를구하기어려워서채색을하기시작했다고대답했지만정작그는아주중요한사실에대해서도말해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색이 대부분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색깔이라는 것이다. 「…」 그는 스승김종영의색채에대해기품이있고고귀하다고평가했다. 즉 김종영이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여 가라앉은 느낌이 강할 뿐만 아니라 명상적 분위기를 고양시킨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오방색, 단청에서 볼 수 있는 원색이 주조를 이룬다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도 그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올해 연하장을 만들면서 처음에는 김종영이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산수화를 방한 드로잉으로 제작하였다가 나중에 자신의 떠오르는 해를 그린 먹그림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김종영의뿌리는겸재정선이나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맞닿아 있고 자신의 원천은 민화적인데 있다 하였다. 여기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친 스승은 김종영이었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는 장욱진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최종태는 일상적이면서 소박하지만 진솔한 자기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장욱진의 작품에서 민화적인 것에 근거하였음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 최종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는형태에의집착을버림으로써진정으로형태를찾았다. 그에게는 종교의 경계도 없다. 성모를 닮은 관음보살은 제도화된 규범의 굴레를 벗어날 때 가능하다. 사랑과 자비는 궁극적으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작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형태를 억압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을 좇아 방종한 형태를 추구하지도 않는 그는 참으로 정신의 풍요를 아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 ■ 최태만

Vol.20111023i | 최종태展 / CHOIJONGTAE / 崔鍾泰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