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Telepathy

조현서(란향)展 / CHOHYUNSEO / 趙賢書 / drawing   2011_1015 ▶︎ 2011_1031

조현서_Contact Telepathy_레진에 머신 드로잉_가변설치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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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인간:관계: 통(通/桶)의 역설-조현서의 머신드로잉,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 인간과 관계, 그리고 소통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두이자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마저 불가능한 자연계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존재다. 그런데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관계와 소통 기술을 통해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독보적 성격을 탈바꿈하고, 전세계가 하나되는 단계까지 소통 기술을 발달시키며 만물의 거대한 영장으로서 확고한 권위를 자랑한다. 그런데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고,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아 함께 살 수 없다며, 불통(不通)을 호소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두는 인류의 역사를 거치면서 현대사회 동시대인의 가장 거대한 화두로서 독보적 자리매김을 하는 듯하다. ● 조현서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人-함께하기』 (제3~5회 개인전)을 통해 인간, 관계, 소통을 자신의 예술 화두로서 공유하며, 개체와 전체로서 인간과 사회, 예술의 관계 회복을 향한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기법의 표현적인 드로잉들로 자신이 직시한 일상세계와 그림세계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형상과 경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 2007년 『Mono Drama & Machine Drawing』에서 재봉기계를 이용한 머신드로잉을 본격화하며, 매년 『봄은 다시 오고』, 『FACE IN FACE』, 『관계』 그리고 2011년 이번 『Contact Telepathy』에 이르기까지 명제화된 전시 타이틀과 더불어, 기계화된 현실사회와 인간의 관계,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소통에 관한 지적인 예술탐색과 반성, 성찰의 단계적 과정(桶/通)들을 명시적으로 선보이며, 작가 조현서의 전체 이야기로 이어가고 있다(通).

조현서_Contact Telepathy_in my_캔버스에 머신 드로잉_130.3×130.3cm_2011

작가 조현서는 기계화된 거대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소통(疏通)"을 바라며, 예술적 해결과 치유 방법이자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대안적 예술로서 드로잉을 선호하는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특히 바느질과 상처의 치유와 화해 등을 결합시킨 페미니즘 계열의 작가들과의 관련하여, 작업의 유사성을 엿보게 한다. 그런데 조현서의 머신드로잉이 흥미로운 점은 기계화된 인간사회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전개함에 있어서 기계를 배제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조현서는 재봉기계를 선택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의 오랜 전통이 있는 인간의 의식적 행위의 연장이자, 인간의 환경으로 주어진 또 하나의 자연으로서 인식하며, 자신의 예술행위와 연관시킨다. 그리하여 머신드로잉이라는 기계와 열린 관계로 결합된 겨루기(drawing)를 통해, 기계와 더불어 사유하고 기계와 더불어 창작한다(이야기한다) 관찰자와 창작자라는 사이의 매개적 위치를 다양하게 설정하면서 경계적 성격을 작가정신으로 지속시키며 새로움과 다름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인식구조이자 작가적 정체성과 비전을 구체화시키는 유의미한 전략으로서 전용하는 방식은 독특하고 탁월하다. ● 그는 이성과 합리, 효율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와 그 안에서 본능적 감성과 영감, 생명력을 잃은 모든 존재들을 직시하며, 획일적인 그리드 틀 안에 초상(初喪)하듯 그들의 인상을 고스란히 음영의 거친 비정형 혹은 인물 초상(肖像)들을 담아낸다. 마치 매스미디어와 광고 등 영상의 기술적 발달로 예술의 어떠한 표현적 메시지도 힘을 잃고 단절되어 고독한 자신의 예술적 현실을 토로하듯 제한된 평면 사각형 틀 안에서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드로잉한 형상과 경계들 위를 거침없이 가로질러 드로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현서는 머신드로잉을 단순히 작품제작을 위한 조형과 표현의 기법(通)이나 결과물(桶)이 아닌, 관찰자(桶)이자 행위자(桶)의 이중적인 입장을 대비적으로 결합시키는 매개(通)로서 제 3의 조현서, 즉 작가를 정의한다.

조현서_Contact Telepathy_to me_캔버스에 머신 드로잉_130.3×130.3cm_2011

조현서의 머신드로잉은 작가의 관찰자적 입장, 즉 객관적 입장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현실을 직시하고 집중하게 한다. 또한 행위주체로서 각양각색의 표정들을 쉼없이 그려내는 일에 몰입하게 한다. 한 화면에 여러 얼굴이 복잡하게 교착하기도 하고, 독특한 개성을 포착한 캐리커처나 가면과 같은 얼굴이 평면, 부조, 입체 제한없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펼쳐낸다. 머신드로잉 자체의 리듬과 내재율은 개체들의 동일자적 위상과 다양성 내의 공통원리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개체 내의 다양성, 관계를 통한 확장, 그리고 전체 내의 개체라는 인간과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작가적 통찰을 전한다. 동시에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현실공간에 있는 실제 우리들과 일종의 연극적 상황을 연출하며, 유희적 대결구도를 이룬다. 이러한 연극적 상황은 작가에게는 현실세계의 논리와 그림세계의 조형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과 다름을 모색하게 하는 제3의 장에 대한 문제와 고민을 제기한다. ● 그리고 현실공간에 있는 실제 우리들과 유희적 대결구도를 이룬다. 일종의 연극적 상황은 동시에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현대사회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마찬가지로 작가에게는 작가적 통찰이라는 오만과 자기도취, 그리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작업방식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즉, 현실세계의 논리와 그림세계의 조형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의 선형적인 이야기 서사구조와는 다른 조형을 통한 서사구조로서, 끊임없이 새로움과 다름의 질서를 모색하는 제3의 장에 대한 문제와 고민을 제기하는 단절, 즉 반성적 계기들을 끊임없이 마련한다. 즉, 서로 다른 국면들을 수렴하여 하나의 작가적 정체성으로 결합시키는 지점들이며, 작가로 하여금 진정한 소통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상기시킨다.

조현서_Contact Telepathy_캔버스에 머신 드로잉_130.3×260.6cm_2011

「잠자기놀이」에서 「Contact Telepathy」로... ● 작가 조현서는 유희, 가장, 놀이라는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통해 연극적으로 현실과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시한 사회현실과 현대인들의 모습을 단지 까발리기 보다는, 대신 유희, 즉 의식없는 초점없이 멍한, 소외된 고독한 현대인들의 군상을 어린이의 잠자기 놀이라는 방식으로 용인한다. 특히 어린이의 잠자기 놀이라는 유희방식으로 그리고 3차원의 입체로서 현실공간 내에 공존하는 존재로서 제시한다. 이러한 방식은 미래에 대한 경각심의 정도를 훨씬 배가시키며, 동시에 그만큼 배가된 경각심은 희망(새로움)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바함, 회생 의지의 가능성, 그리고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어린이의 마음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관계 재생 가능성을 더욱 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현실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인물들과의 거리둔 관찰자로서 예술가 자신의 해석과 지향, 비전이 더 크게 강조되어왔다. 다시 말하자면, 2007년 이후 관찰자적 입장에서 그대로 잡아내면서도 작가의 해석, 말, 의도, 성향, 취지, 관찰자의 시선, 즉 '사회는 그러하다.'는 선입견이 먼저 작동했을 수도 있고, 그러한 가운데 비판적 의식이 과도하여 선동적이고 일방적이며 연설적인 측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회색톤, 개체들은 오히려 더 희미한 회색 톤이 강하게 전달된다. 이에 반해 2011년도에 와서는 훨씬 유연해진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 「Contact Telepathy」에는 오히려 아이컨택과 다채로워진 색상과 선명한 색조, 색감이 두드러진다. 빛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밝고, 때로는 폭발적인 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초점없는 멍한 눈, 가면같은 표정의 타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 각각 개체의 고유한 색들을 살려낸다. 작가는 오히려 입장 바꿔보기, 즉 그들 안에서 삶의 의지들, 지향하는 바, 그들이 꿈꾸는 세계 등에 귀기울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 최근 서로 다르지 않는 에너지들이 들려주는 조화로운 울림들을 하나의 합창으로 감싸안는 권위로 그들과 함께 노닐고 노래한다. 이는 분명 자신의 전체 이야기 구조 안에 통제하고 제어하는 권위와는 다른 권위다. 그것은 스스로 단절이 필요하다. 스스로 단절시키고, 다시 감싸 안고 풀어준다. 아니, 더불어 풀어 나아간다. 그렇게 관계 속에 이어가며 흐르듯이 존재한다. 통(通)하였느냐? 통(通/桶)이 되었느냐? 끊임없이 자문하며 반성할 수 있는 그는 진정한 작가적 권위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탐험 중이다. 통(通)하고 싶다. "통(通)했다!" 찰나에 사라져버리기에 더욱이 갈망하고 갈구하는지 모르겠다. ● 머신 드로잉 : 인간과 기계 결합되어 (연결되어) 한 몸, 한 그릇으로서 여러 모습의 조현서들과 겨루며 인간과 관계에 대한 화해와 치유의 장을 준비한다. 그렇게 소통(小桶)은 비워지고, 진정한 소통(疏通)을 향한 깊어진 소통(小桶)을 준비하며 조현서의 머신드로잉은 이어진다. 그렇게 조현서의 머신드로잉 쇼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 ■ 조성지

Vol.20111025c | 조현서(란향)展 / CHOHYUNSEO / 趙賢書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