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말을 한다

Maps Talk展   2011_1026 ▶︎ 2011_1113

지도는 말을 한다展_아트라운지 디방_2011

초대일시 / 2011_1026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1_102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경현수_김보민_박재환_신수혁_신지선_이수영

기획 / 아트라운지 디방

관람시간 / 11:00am~06:00pm

아트라운지 디방 ART+LOUNGE DIBANG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길 4 Tel. +82.2.379.3085~6 www.dibang.org

지도 위에서 길 잃기 그리고 다시 길 찾기 ● 자, 여기 지도 한 장이 있다. 지도 위에는 익숙한 선과 문자와 기호들이 흩뿌려져 있다. 직선의 긴 선은 도로를, 파란 선은 하천을, 초록색 삼각형은 산을, 학사모 표지는 대학교를 나타낸다. 이처럼 지도는 본래 지구표면의 상태를 기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실제보다 축소해서 평면상에 나타낸 것이었으나 지도의 대상은 지구표면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지하철노선도, 도로지도에서부터 해상지도, 기상도, 자원지도, DNA 유전자 지도, 천체지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많은 대상과 주제를 지닌 지도들이 존재한다. 지도는 이 세계의 다양한 대상들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게끔 하기 위한 시각적인 정보 정리 및 가공 방식인 것이다. ● 추상적인 기호, 약호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도를 능숙하게 읽어낸다. 그리고 의심없이 지도의 어법에 따라 주변 세계와 대상을 위치 지우고 이해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직선이 아닌데도 직선으로 표기된 지도에 의거해서 갈 길을 찾고, 오랫동안 사용해 익숙한 마을이름 대신 낯선 행정명칭으로 표기된 지역을 내가 사는 곳이라 여긴다. 지도를 정신없이 따라가기를 멈추고 이 같은 생각을 할 때 아무 문제 없어 보이던 지도가 불현듯 불편해진다. 지도가 세계를 쫓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도에 끼워 맞추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지도에 담긴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의 간극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지도가 내가 사는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지도가 내 눈을 가려 세계를 특정하게 읽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 『지도는 말을 한다』전은 여섯 명의 동시대 미술작가-경현수, 김보민, 박재환, 신수혁, 신지선, 이수영-의 작업을 통해 지도를 거슬러 읽어보는 시도이다. 이 작가들은 각기 지도를 소재와 주제로 삼아 작품을 제작한다. 그런데 이들의 지도는 여느 지도와는 다르다. 이들은 주어진 지도의 완결성을 믿지 않고 여기에 작은 틈을 내어 지도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 열린 틈으로 길을 내어 새로운 지도를 만든다. 이들은 왜 지도에서 애써 길을 잃어버리고 굳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의 지도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보민_여의_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_121×194cm_2009

김보민의 작품 여의와 원서도는 회화와 지도 사이에 존재하는데, 지도 같은 회화이자 회화적인 지도라 볼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먼저 지역을 선택한 후, 그 지역의 내력과 기존의 지도, 지적도, 위성사진을 조사하고 여러 차례 답사한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여 지도를 그린다. 객관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의 지도 회화는 어느 정도 정확성을 갖추고 있지만 자신의 의도에 따른 가감이 있고 상상력을 보탰기 때문에 정확한 지도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가령 대상 지역의 특정 부분은 세세히 다루지만 그 주변부는 전통적인 표현 기법의 산수로 은근슬쩍 처리해버려 작품 속 공간이 고립무원의 인상을 주는 점이 그러하다. 검정색 테이프로 그려진 현대의 공간과 전통 산수 기법으로 표현된 과거의 공간이 만나는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한 이 지도 작업은 구체적인 지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회화와 지도,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간극을 탐사하는 작가 내부 공간의 지도이다. 이 지도를 통해 관람자는 동양화 작가로서의 자신의 작업경로를 탐색하고 있는 그와 만나게 된다.

신수혁_Oneday, Somewhere 26_캔버스에 날짜 스탬프_81×81cm_2005

김보민의 지도가 자신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신수혁의 지도 작업 Oneday Somewhere 연작은 자신의 신체를 통한 장소와의 직접적이고도 물리적인 접촉을 전면에 드러낸다. 작가는 자신이 빈번하게 방문했던 지역의 지도를 제작하는데, 그곳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단서도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는 그저 건물이 있는 자리와 도로 부분만을 희미한 흰색으로 남겨둔 채 지도 속 공간을 방문했던 날짜와 그 지도를 제작한 날짜를 나타내는 숫자 스탬프를 빼곡히 찍을 뿐이다. 날짜를 기록하는 스탬프의 흔적들이 그 지역을 수없이 배회했을 그의 발걸음마냥 어지럽게 중첩되고 그 곳의 지도를 하나하나 더듬어 나간 손의 자취를 남긴다. 이 날짜 스탬프는 그가 자신의 발로 내디디고 손으로 쫓은 이 지도 위에 시간의 층위를 덧입힌다. 그리고 관람자는 작가의 발걸음과 손 자취를 눈으로 함께 따라가며 현재라는 시간의 층위를 더한다. 이렇듯 그의 지도는 익명이고 불투명하지만 지도 위로 켜켜이 쌓인 신체의 흔적들과 시간의 층위를 통해 그 어떤 지도보다도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역설의 힘을 발휘한다.

신지선_Guide for Hwanghak-dong_2011

신지선의 작품 Guide for Hwanghak-dong 역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지도이다. 작가는 황학동 만물시장을 안내하는 관광지도를 만든다. 상업성과 정확한 정보를 미덕으로 하는 관광안내지도는 대개 뻔한 구조를 갖고 있다. 관광지로 추천할만한 특정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장소들을 중심으로 숙박과 식사, 쇼핑 장소들에 대한 소개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가의 지도에는 이러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체험한 황학동 만물시장의 지도를 제작한다. 그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살피는데, 그의 관심과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것들은 매우 소소한 일상이다. 가게가 문을 닫은 뒤 내려놓은 천막을 일상에서 영구적으로 이루어지는 크리스토(Christo Vladimirov Javacheff)의 포장 프로젝트로, 밤마다 펼쳐지는 음식 노점상 거리를 날마다 벌어지는 요리경연대회로 소개하는 등 작가는 평범하여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 풍부한 상상력을 더하여 지도를 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황학동 시장에서 채집한 소리의 음파를 EVA 스폰지로 구현해낸 Souvenir for Hwanghak-dong을 덧붙여 기존의 지도가 시선을 주지 않던 소소한 일상을 구제해 냄으로써 그의 지도는 지도 밖 세계를 기념하며 그 공간과의 유쾌한 만남을 유도한다.

경현수_경부고속도로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97×145.5cm_2011

한편 경현수는 전형적인 지도 읽기 방식, 즉 지도를 실세계에 대입하여 읽는 방식에서 벗어나 달리 읽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지도가 전달해주려는 정보가 아닌 시각적으로 드러난 표면만을 읽는다. 다시 말해 그는 지도의 배후로 전제되고 있는 실제 세계와의 고리를 차단한 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점, 선, 면, 색채 등의 요소에 주목한다. 그는 한 인터넷 사이트가 길 안내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항공사진에서 도로의 선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도려낸 후, 이 선들을 컴퓨터 화면 공간을 배경으로 새롭게 조합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화폭에 옮긴다. 또는 실제 지도의 선들을 오려내어 이를 채색한 후 입체 구조물로 자유롭게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의 작품 속 선들은 지도의 선이 분명하지만 더 이상 실제 세계를 지시하지 않는다. 지시 기능이 상실된 그의 지도 작품은 지도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도가 결코 현실과 공고한 관계에 있지 않음을 따라서 지도와 현실을 관계라는 것이 얼마만큼 피상적이고 임의적인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박재환_Solar Eclipse & Lunar Eclipse_가변설치_2011

박재환은 관람자가 직접 지도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는 지도 작업 일식&월식을 보여준다. 그는 관람자가 전시장 중앙에 있는 곰팡이가 핀 빵 주위를 돌면서 바라볼 때 생기는 그림자 현상을 일식과 월식이라는 천체현상으로 치환한다. 여기서 전시장 조명은 태양, 빵은 지구, 그 주변을 돌며 관람하는 관람자는 달이 된다. 작은 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람의 경험이 시각 스케일을 달리하면 빵에 핀 곰팡이에게는 일식, 월식이라는 거대한 천체 현상과 같은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곰팡이와 인간, 전시장 조명이라는 마이크로 세계에서의 경험에 천체라는 매크로 세계의 현상을 오버랩시켜 공존하게 함으로써 작가는 이 세계에는 실상 여러 차원의 실재가 공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지도가 세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준다고 쉽게 믿지만 작가가 보기에 그것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시각에 따른 하나의 인식, 곧 복잡다단한 현실의 일면일 뿐이며 따라서 지도를 통해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허구, 작위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수영_풍장(風葬)_가변설치_2011

이수영은 현대의 지도가 말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지도를 제작한다. 과거의 지도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대상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신, 사후세계 등의 추상적인 대상까지도 포함하곤 했다. 그러나 근대화, 과학화가 진행되면서 추상적인 대상을 위한 공간은 지도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정확성, 객관성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기술과 지식이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만이 남게 되었다. 작가는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열외로 제외된 대상에 주목한 지도를 제작한다. 바로 죽음 지도 작업인 풍장이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영역으로부터 격리되고 감추어진다. 작가는 더 이상 지도에 포섭되지 않는 대상인 이 죽음을 지도 위로 드러낸다. 자신이 살고 있는 벽제 근처의 화장터, 납골당, 공동묘지, 왕릉부터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가축들의 매몰지에 이르기까지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표시한 지도와 칼끝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관, 죽음과 관련된 부적 및 영상을 통해 죽음을 지금 여기로 불러오는 그의 작품은 우리의 지도가 감추고 있는 것, 우리의 세계가 은폐하고 불편해하는 것들을 끈질기게 환기시킨다. ● 이들 참여 작가들의 지도는 모두 기존의 지도를 다시 읽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세계가 기호와 약호로 이루어진 상징적인 지도로 옮겨지면서 탈락되는 것들, 생략되는 것들, 감추어지는 것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도에 다시 담아낸다. 이들의 지도 다시 읽기가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요인 덕분이다. 하나는 예술이라는 문맥이다. 예술의 영역 안에 위치함으로 인해 이들은 정보전달이라는 지도의 실용적 목적과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지도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다른 하나는 지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인데, 이들은 지도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세계를 수긍하지 않고 의심한다. 이들은 주어진 지도 위에서 지도 밖 세계로 향하기 위하여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을 잃은 그 지점으로부터 세계와 새로이 대면하고자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 이제 관람하는 당신의 차례이다. 당신은 이들의 지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지도를 새로이 만들 것인가? 이것이 이 전시가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이 지속적이고도 끈질긴 열린 결말의 지도 다시 그리기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어진 세계에서 기꺼이 길을 잃어버리려는 마음의 자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세계를 향한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는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 주은정

Vol.20111026g | 지도는 말을 한다 Maps Talk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