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둥근 창을 통해……,

피아오광시에展 / Piao Guangxie / 朴光燮 / painting   2011_1024 ▶︎ 2011_1119 / 일요일 휴관

피아오광시에_2006 No.4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Dr.EVERIS 기획 / 이장욱

관람시간 / 11:00am~04:00pm / 일요일 휴관

중국 북경 통조우구 송주앙 런주앙 피아오광시에 살롱 Tel. +86.13521002357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이런 다민족 국가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런 어려운 현실을 딛고 당당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중국현대미술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오광시에이다.

피아오광시에_2008 No.3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8 피아오광시에_2008 No.4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8

길림성 연변 왕청현(王请县) 출신으로, 연변정부 양식국장으로 재직한 부친의 영향으로 비교적 교육에 대한 열정과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또, 연변작가협의회에서 활동한 부친의 영향으로 예술가로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피아오광시에_2008 No.15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08 피아오광시에_2008 No.17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08

어려서부터 미술에 흥미가 있었고, 8살 때부터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았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술선생님을 찾아 배웠고, 소학교 때 학기 중에는 미술반활동을, 방학 때는 문화궁에서 미술을 배우는 등 어려서부터 적극적이었다. 한번은 집이 이사를 해 왕청현에 있는 문화궁과 멀어지자 기차로 왕청현까지 통학을 하며 수업을 받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부모님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피아오광시에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적극 지원 해주었다. 미술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원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칠 것을 제의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중앙미술학원 진학을 위해 북경으로 향하게 된다. 당시 북경에서의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중국의 수도 북경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막 시작된 사회적 변화와 변동은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대학동기였던 부인이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1995년 동바(东坝)에서 원명원(圓明園)에서 이주해온 작가들과 함께 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빈허(滨河)를 거쳐 1999년 송주앙(宋庄) 시아오푸춘(少堡村)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시아오푸춘에는 100여명 정도의 미술가들이 있었다.

피아오광시에_2009 No.13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9 피아오광시에_2009 No.14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09

처음 시아오푸춘 생활은 어렵지만 낭만이 있었다. 친구들과 저렴한 임대비용으로 집을 얻어 공동으로 작업과 생활을 했다. 집은 낡고, 난방이 되지 않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시대적으로 중국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독일 표현주의 열풍은 함께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했던 친구들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상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피아오광시에의 화면에서 보여주는 회화의 조형언어는 유행과 형식을 제거하면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약해지고 개념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얻어 후기 팝아트적 형식으로 완성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초기 작품이 남아있지 않고, 90년대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 자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해 작품이미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다. 현재와 같은 피아오광시에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스타일은 2002년에 완성되어 진 것이다.

피아오광시에_2010 No.18_동판화_50×50cm_2010
피아오광시에_2006 No.3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6

그의 대표작은 연꽃과 인물이다. 연꽃은 동양적인 소재이다. 고래(古來)로부터 서화에서 많이 등장을 하였는데, 자연적으로 더러운 환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로 선비의 고고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또, 불교적 혹은 사회적으로 풍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수행과 선을 뜻하기도 한다. 생물적으로는 청정의 기능도 있으며, 생명이 시들고 회복되는 등의 불교적 윤회의 의미도 있다. 한편으로 중국에서는 인문주의가 없어진 현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연꽃에 얽힌 에피소드 중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그림은 당시 사회적 사건을 반영한다. 당시 CCTV에서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 물을 넣어 무게를 늘리는 것이 방송되었다. 이것은 중국내부적으로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 속에서 일반 하층민들이 고래싸움에 등이 떠지는 것과 같이 정부와 돈을 벌려고 하는 자간의 싸움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일반인 즉, 하층민이라는 것이다. 일반인(하층민)들은 이 방송을 통해 유익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과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러한 사실에 비관하고 희망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연꽃 시리즈를 통한 다양한 시도는 인물로 확대되었다. 남자모델은 간사함을 가진 두 얼굴의 북경인 즉, 권력층이자 경제적 이익의 과실을 얻는 주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이 느끼는 북경인의 부정적 인식 중에는 강한 자에게 비굴하게 웃고, 약한 자나 외지인을 괄시하는 간교함이 있다. 여성모델은 전통적 한족을 나타내는 당나라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둥근 얼굴의 여인과 가냘프고 세련된 현대적 여인으로 대비되는 모델로 하여 남성모델과 같은 중국인의 간사함과 냉소적 현실주의를 담아내고자 했다. 중국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말인데, 작가는 극심한 이기주의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이러한 중국적 현상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어 미려한 화면과 대비되는 현실을 고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노인과 여아의 사고소식과 맞물려 더욱 마음에 와 닫는다. ■ 이장욱

Vol.20111028h | 피아오광시에展 / Piao Guangxie / 朴光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