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녹주展 / MINNOHKJUE / 閔綠珠 / painting   2011_1130 ▶ 2011_1206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1

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와해(瓦解), 존재의 실체 그리고 행동 불확실성, 이상(理想)이라는 것 ●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고하면서부터 늘 들어왔던 단어이다. 자신의 삶과 사회를 관계지워 생각하면서 그것은 고민해야하는 어떤 것임과 동시에 이루어야하는 무엇으로 여겨진다. "이데아"를 학습하거나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나'/자아에 각인되어 긍정적 삶을 위한 막연한 지시어로 작용하고 있다. 인문학적 범주에서도 그 개념은 분명 추상적이다. 인간의 정신작용이 이르는 '최고와 궁극'의 지점이라는 것일 뿐 구체적 내용은 사회적 조건과 해석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이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고 한 부분에 끊임없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의 현상을 들어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의미가 학문적 범위를 넘어 역사 안에서 집단의식을 조율하는 정신적 규범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졌으며, 다른 또 하나는 인간의 사회적, 인격적 욕구가 이르는 최적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욕망은 이상이라는 것의 모호함에 성취의 심리적 구체성을 부가한다.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24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1

비정형의 형상, 존재의 실체와 행동 ● 민녹주는 삶에 있어 "이상"이라는 것의 존재여부를 묻는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 혹은 자아와 타자로 양분하지 않고 '하나의 전체'로 의식하여, 그 안에서 욕망의 이상적 실체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가를 본다. 그녀의 회화를 통해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합리하다. 사회가 산출해낸 많은 제도와 개개인의 욕구가 총합을 이루는 충돌과 마찰의 세계에서 최고와 궁극의 무엇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그 실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통시적으로 인지하는 태도로서 민녹주는 그것들이 변별적 내용으로 모아지는 '순간의 지점'을 이야기한다.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30×380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62×112cm_2011

민녹주의 회화에서 이미지를 특정대상과 동일시하여 받아들이기란 다소 어색하다. 인간의 표정이나 동식물의 형상이 구분되기는 하나 비인습적이고, 한 형태의 완결로 보기에는 그 틀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러한 이미지의 특성은 삶에 관해 작가의 사고가 머무는 지점을 상징한다. 그는 사회가 지닌 불합리성과 인간내면의 이율배반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요약하는 방식을 유보하고, 분명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그 세계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삶의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되는 모든 것은 단색조 화면이 지닌 긴장의 상태로, 그러한 시선에 의해 감지되는 내용의 표상들을 비정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작가의 관점이 세상의 모호한 실체를 받아들이는 긍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녀의 형상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감성과 감각의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화면에서 -필자와 작가가 늑대와 오소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하나의 동물체는 무엇인가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으며, 그 옆의 다른 화면에는 비대한 토끼(?)가 '배설'하고 있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동물형상들은 화면의 주체로서 능동적이고 도전적으로 읽혀진다. 현실대면에서 오는 의식의 구차함을 걷어내 사고의 진정성을 담보로 세상에 다가가는 인간의 행동을 그는 이미지가 발산하는 원초적 에너지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62×260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2×209cm_2011

제도와 물질의 메커니즘에 종속된 현실의 삶은 자연본성에 의지하여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의 작업 중 '웃는 여자아이의 표정'은 불합리한 세계에 대응하는 감각의 밀도를 더 한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 이면에는 인간이 창조적 긴장을 향해 삶 속으로 밀어 넣어야할 어떤 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통섭(通涉)의 의지가 숨어 있다. 인간의 삶에서 정치와 자본이 포장하는 허위적 현실과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거론하기에 앞서 작가는 그것의 경험을 명확하게 집약, 비정형적 형상들을 통해 삶의 괘도에 또 다른 시작의 가능성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행하는 회화작업은 불합리한 세계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인간성과 인간조건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이러한 행동은 그 차원을 달리하며 지속적 생성과정에 놓여있다. ■ 김숙경

Vol.20111130f | 민녹주展 / MINNOHKJUE / 閔綠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