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일상

김유나展 / KIMYUNA / 金유나 / painting   2011_1214 ▶︎ 2011_1220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120×12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일상에 대한 관조와 성찰 ● 신예 한국화가 김유나와의 해후가 실로 오래간만이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때로 앳된 모습을 한 기억이 선명한데, 불과 10년도 안 되어 어엿한 작가로 성장한 것이다. 얼굴은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재능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강단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무언가 기대를 갖게 하는 바대로 김유나의 고속 성장의 지표가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 사이 결혼과 출산 등의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중단 없이 지속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오히려 슬럼프가 될 수도 있는 그러한 고비를 작품 성숙과 도약의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만큼의 내면세계, 즉 미의식과 근성이 잘 담금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120×120cm_2011

그의 회화적 출발점은 대체로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일상생활과 일상적 체험을 담백하면서도 화사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다. 보통 채색화가 색면에 가까운 다소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를 한계처럼 보이고 있지만, 그의 채색화 화면은 투명 수채화 이상의 투명성과 여운, 아우라가 충만한 밝은 톤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차별화된다. 여성 고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순발력 있는 필치와 분방한 감각이 생기 있게 살아 있는 화면을 구사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렇듯 밝고 산뜻하면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분방하고 생기 넘치는 화면을 일구고 있는 것은 민화(民畵)로부터의 영감이 크게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60×60cm_2011

작가의 화면은 민화에서 익히 보아온 이미지들이 자주 차용된다. 책거리나 길상문, 파도문, 당초문 등의 이미지들이 인용되는 가운데 재해석과 재구성이 두드러진다. 거기에 다소 이질적인 여타의 이미지들과 일정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민화 이미지와 꽃이나 열매 등의 실경적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조합을 즐겨 사용했었다. 그러다 최근의 근작에서는 꿈이나 이상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치열한 일상이 영위되는 생활공간으로 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육아에 매달리며 살아야 하는 생활공간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사물들이 어느덧 예의 민화 이미지들을 대체해가고 있다. 보다 큰 내러티브의 범주에서 표상된 민화적 이미지들은 환영의 단편들처럼 드문드문 산재한 채 명멸해가고,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일상의 내러티브가 부상해가고 있는 것이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50×50cm_2011

마치 일기를 쓰듯 작가가 자기의 일상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화면에 기록해나가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예사롭지가 않다. 육아와 가사, 작업 등이 병행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충분히 납득하고 공감하는 것이지만, 작가의 경우는 그러한 현실을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가사현실에서 가중되는 고충을 토로하기보다는 그 현실들을 그림으로 승화시켜낼 수 있는 것에 보람을 얻는 것이 작가의 중요한 몫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분히 초현실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장면들, 즉 아기의 분신과도 같은 인형이나 장난감, 유아복 등의 이미지들이 다소 생경한 이미지들과 조합을 이루는 정황 속에서 마치 아기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아기와 함께 하는 일상이 창작의 경이로운 원동력이라는 고백을 유쾌하게 하는 듯이 보인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70×100cm_2011

작가는 어쩌면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가사현실 속에서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보람과 행복감, 위대한 모성애를 넋두리 없이 환기시키는 잔잔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뽕잎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듯, 이렇듯 진부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도 주옥같은 조형의 진액을 추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대체 어떠한 미의식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역시 민화와의 관계 속에서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민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지 차용만의 차원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애가 넘치는 분방함과 여유로움, 생기 넘치는 통속성, 유쾌함과 신명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민화의 생명이자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바, 작가의 화면에 진정성 있는 미의식의 면모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70×100cm_2011

이러한 민화 정신은 비단 이미지 인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화면에 일원적 시각질서가 아닌 다원적 혹은 다중적 질서를 설정하고 있는 점 역시 민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전의 그림에서는 상이한 소재의 조합이라는 질서가 주류를 이루었다가, 근작에서는 비교적 단일의 공간적 질서 속에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요소가 공존하는 공간의 조합을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근작에서 민화 이미지 차용은 상당 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다중적 공간의 조합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화면에서 채색되었어야 할 책이나 식물 이미지들을 데콜라지(de-collage)처럼 오려내는 것이나, 작도에서 볼 수 있는 가늘고 기하적인 선묘 등이 설정되어 있는 등의 조합이 그것이다. 특히 데콜라지에 의한 여백 효과는 화면을 가득 채운 작가의 화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되는 조형적 요소이다.

김유나_나의작은일상_장지에 석채, 채색_60×60cm_2011

그렇다고 작가의 작업을 민화와 결부지어 단정해버리는 것만으로 설득력이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소재는 소박해 보이지만 독해만큼은 진지하고 심층적으로 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듯이 삶 자체를 성찰하고 관조한 결과로서의 심경 또한 단순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복잡다단한 심경만큼의 소통은 화면을 다분히 심층적이고 소모적으로 다루게 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내면의 절실한 계기들을 소통해내기 위한 코드 역시 다중 조합의 선택을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김유나다운 자기만의 진정성 있는 조형의 창출에 충실하고자 하는,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 결과는 공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인다. ■ 이재언

Vol.20111214a | 김유나展 / KIMYUNA / 金유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