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맨드라미

라파엘라 이展 / RAPHAELLA,YI / painting   2012_0106 ▶ 2012_0120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목판_30×40cm_2011

초대일시 / 2012_0106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7:00pm

월드벤처갤러리 World Venture Gallery 서울 금천구 가산동 426-5번지 월드메르디앙벤처센터Ⅱ B1 Tel. +82.2.865.2119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을 볼 때, 가끔 나는 '이 작가는 성격이 좋지 못할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할 때가 있다. 그만큼 시선을 붙잡아 두는 작업은 작가의 강박적일 만큼의 집착과 집요함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그러하며, 이는 달리 말하자면 작가가 그만큼 작업에 몰두하고 집중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은 Raphaella, Yi의 작업에서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학부시절부터 그녀의 작업과 그 과정을 보아 왔던 나는 그녀의 집요한 성격을 어느 정도 알기에 그러하다. 자신의 작업에 철저히 몰두하여 집중력을 발휘하는 '좋지 않은' 작가의 성격은 이 「나의 맨드라미」연작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한다. 특히 드로잉에서 그녀의 사물에 대한 오랜 시간의 관찰과 탐구의 결과는 그 자체로 표현되며, 이 과정을 통해 사물 본질에 대해 파고드는 집중력은 '그녀의' 맨드라미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다.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60.6×91cm_2010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1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2011

「나의 맨드라미」연작 평을 작가의 성격으로 먼저 설명한 이유는 Raphaella가 맨드라미를 그리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자신과 어딘지 모르게 맨드라미가 닮아있기 때문이라는 고백에서 비롯된다.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힘으로 2009년부터 시작된 맨드라미 작업은, 따라서 '맨드라미'가 아닌, '나의 맨드라미'로 즉 'Raphaella의 맨드라미'로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가 된다.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11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1
라파엘라 이_나의 맨드라미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1

「나의 맨드라미」작업들은 유화, 드로잉, 판화의 세 가지 매체로 동시에 표현된다. 하나의 소재를 여러 표현 방식으로 재현해냄으로써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작업들이 보여 지며, 또한 이는 각 매체만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 극대화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 한 예로, 드로잉의 흔적은 본래 밑그림 없이 작업하는 유화에서 고스란히 보여 진다. "나의 맨드라미"의 초기 유화작업에서는 드로잉의 선들이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이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 두꺼운 층으로 발라지는 선들은 이후 작업에서는 밝은 색으로 표현되어 평평하게 팽창한다. 이 과정은 처음의 집요함에서 비롯된 강박적으로 꽉 움켜쥐고 있던 '맨드라미'를,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가 자기 안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서서히 강박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그 끈을 어느 순간 '탁' 놓아 버림에서 발생한다. 이로써 선들은 자유롭게 되며 가벼워진다. 이 의미는 날기 위해 새 뼈에는 빈 공간이 필요한 것과 같이, 집착에서 해방된 맨드라미의 선들은 가벼워지면서 상승하게 된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선은 화염 속의 불꽃이 연소되면서 위로 솟구치는 느낌과 닮아 있다. 이 모든 느낌은 맨드라미가 그 형체 자체로 가지고 있는 속성으로, 작가가 맨드라미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 내었음을 반증하다. 즉 '셀로시아 크리스타타(Celosia cristata)'라는 맨드라미의 학명은 바로 그리스어 '불타오르다(burning)'라는 셀로시아(celosia)에서 비롯되었다. ■ 조영희

Vol.20120106d | 라파엘라 이展 / RAPHAELLA,YI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