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보인다

이김천展 / LEEGIMCHEON / 李金泉 / sculpture   2012_0113 ▶︎ 2012_0121 / 일요일 휴관

이김천_스피커_나무, 한지_95×93×30cm×2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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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11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LVS Gallery LVS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5-18번지 쟈스미빌딩 B1 Tel. +82.2.3443.7475 www.gallerylvs.org

그림 그리는 이김천은 음악을 좋아한다. ●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보면 조금은 편집증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아한다. 음악을 편식하는 것도 아니다. 클래식에서부터 국악, 재즈, 록,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좋은 음악은 모조리 듣는다. 찰리 파커, 아트 페퍼의 음악을 전집으로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꼼꼼히 듣는 그의 모습은 재즈로 밥 먹고 사는 내가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 해 봄 그의 은행나무 그림을 보았는데 잎사귀 하나하나를 진채로 꼼꼼히 덧칠 한 것을 보고 난 평소에 음악 듣던 이김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김천_스피커(과정)_하드우드_130×50×60cm_2012
이김천_스피커(과정)_골판지_122×45×58cm_2011

그와 가까운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그는 매우 진지하게 우리 소리를 연마했으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독학으로 테너 색소폰을 연마했다(그는 이 사실을 이 글에서 밝히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김천이 전방위로 자기 재능을 드러내는 천재 예술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웬만하면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거나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너무 좋아서 할 뿐이다. 아니, 실은 음악은 그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늘 음악을 하거나 들을 때면 그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정신이 맑아지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에너지가 솟구친다고 했다. 그러니 그가 그린 우리 무속의 장군은 칼 대신 트럼펫을 든 클리퍼드 브라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거다. ● 그것은 이김천의 실험이나 전위성이 결코 아니다. 원래 아름다움의 이치가 그런 것뿐인데 이김천은 그걸 자유롭게 느끼고 표현한 것이다. 시청각, 심지어 미각, 후각, 촉각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감성이 되고 심지어 의식을 만들어 낸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는 그와 어울리는 어떤 풍경, 그림, 색채가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여행을 떠나 문뜩 예기치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을 때 머릿속에 지금 당장 절실하게 듣고 싶은 음악 한 곡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조금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자연스런 현상을 오리려 전문가들은 상실했다. 그들은 음악을 들으면 조성과 박자를 생각하고 눈앞에 놓여 있는 그림을 오로지 사조에 꿰어 맞추려고 한다. 아마도 이김천은 전문성이 쌓아 놓은 장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부는 색소폰은 마치 창 소리처럼 들리고 그가 그린 그림은 민화도, 탱화도, 서구의 모더니즘도 아니며 심지어 그 모두인 것처럼 보이듯이 그는 모든 규정과 구분을 벗어나 사람 본연의 모습, 본성을 갈구하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이김천_스피커(과정)_나무_122×45×58cm_2011
이김천_스피커(과정)_홍송_122×45×58cm_2011

그런데 소리를 시각으로 구현하고 싶은 그의 인간적인 갈구는 음악과 미술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 헌정했던 지난 세월의 수많은 작품들과 달리 아주 일상적인 세계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그의 앞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소리를 전해주는 스피커가 그 소리의 향기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상막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 든 것이다. 그렇다. 그는 나무와 망치와 못을 들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전달해 줄, 그 소리에 어울리는 스피커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내친김에, 아울러 그는 그가 전문가들의 협력을 빌려 그 외장 안에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소리를 구현하려는 기기들을 하나하나 담아냈다. ● 스피커 앞으로 돌출된 그의 혼(horn)의 모습은 꿈틀거리며 뻗어가는 나무뿌리와도 같다. 또는 환희해 차 겹겹이 쫙 벌어져 만개하는 꽃망울 같다. 몸체의 나무 조각들은 삐뚤빼뚤 서로 몸을 부비고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야산에서 마구 자란 들풀들이 아우성대는 합창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렇게 보인다.

이김천_스피커(과정)_나무, 한지_125×40×67cm_2011
이김천_스피커(과정)_하드우드_130×45×58cm_2011

그는 스피커가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원래 그 종자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영역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스피커는 기계의 생산물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사람의 손길이 묻은, 사람의 체취를 담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살균된, 그래서 보통 사람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위압적인 소리, 심지어 창백한 완벽미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 앞에서 누군가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그 소리, 본음과 잡음이 섞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소리가 살아있는 진짜 소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 그러니까, 당연히 이김천의 스피커는 그의 그림을 꼭 빼닮았다. 스피커와 그림은 그에게 하나다. 보이는 게 들리는 것이고 들리는 게 보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소통하고 순환하며 그 과정에서 잡스런 요소들도 결국에는 전체의 조화로운 요소 중 하나가 된다. 그게 사람의 모습이다. 이김천은 사람의 모습을, 사람의 소리를 찾고 싶은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황덕호

Vol.20120113g | 이김천展 / LEEGIMCHEON / 李金泉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