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싸이먼 개관기념 세계적인 재미 미술가 안형남 특별초대전

안형남展 / AHNHYONGNAM / 安螢南 / sculpture   2012_0118 ▶ 2012_0207 / 구정 연휴 휴관

안형남_Chaos(혼란)_알루미늄 보드, 스테인리스 스틸에 유채, 네온_92×76×76cm_2009

초대일시 / 2012_0118_수요일_06:00pm

후원 / (사)서울미술협회_(사)서울아트포럼

관람시간 / 10:30am~06:30pm / 구정 연휴 휴관

갤러리 싸이먼 Gallery Sim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7번지 상빌딩 6층 Tel. +82.2.333.4536 www.gallerysimon.kr

안형남(安螢南)의 키네틱아트와 미술은 시적감성을 물씬 풍기는 자연성(自然性)과 순수함이 도시화와 기계화에 찌든 현대인에게 새로운 감정의 너울과 서정성(抒情性)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연성과 서정성을 아울어 자아내는 작가가 있다. 키네틱아트를 통해 형식적인 감성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증 받은 세계적인 미술가이다.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보다 그의 평면에는 운동감과 보이지 않는 선율(旋律)이 품고 있다. 이처럼 과학, 인간, 예술 이 3가지를 연결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키네틱 아티스트 그리고 미술가 안형남(安螢南) 이다. ● 어제와 오늘인 작금(昨今)의 시대는 물질(物質)이 정신(精神)을 지배하는 상황(狀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급속도로 세상은 발전되고 변화되었지만 이에 비해 인간성의 상실(喪失) 및 지역(地域)과 또는 사람간의 갈등(葛藤)의 폭이 점점 심화되는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작품 그리고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하며 바람이나 손으로 운동을 표현하는 알렉산더 칼더(Calder)의 모빌(mobile)을 시작하여 데니스 가보(Gabor), 마르셀 뒤샹(Duchamp)에서 비롯되고 2차대전 후는 모터 장치에 이르러 컴퓨터에 의한 작품 등 현대의 움직이는 영상이나 빛의 변화 등을 나타내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가지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안형남(安螢南)이 있다. 키네틱아트가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조각 미술의 새로운 분야로 인정받고 있고 이 중심에 안형남이 있다. ● 무엇보다도 현대의 상황은 과학기술로 인해 급격히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정치가, 경제가, 리더자, 예술가 할 것 없이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면 과학기술을 몰라서는 안 되는 시대(時代) 상황이다. 우리는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전과, 시간의 속박(束縛)으로 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놓아두고자 한다면 문화 예술은 무척 중요한 요소(要素)이다. 예술(藝術)과 문화(文化)는 시너지 효과(效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술(美術)은 주체자(主體者)의 의식(意識)과 또는 무의식(無意識)으로 부터 이미지를 끌어내는 작업(作業)들이기 때문에 예술창작(藝術創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手段)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美術)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양화. 동양화. 공예. 디자인 등 일반적(一般的인)인 것만을 뜻하는 것이 진정(眞正)은 아니다. 현대(現代)의 미술(美術)은 출신이나 일반적인 장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재료(材料)를 선택(選擇)해서 어떻게 표현(表現) 하는 것이 매우 중요(重要)하다. 그래서 안형남의 미술작업 역시 시간(時間)과 공간과 소리의 융합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안형남_Wing(날개)_알루미늄 보드, 스테인리스 스틸에 유채, 네온_92×76×76cm_2008

한국의 최고 미술비엔날레(biennale)라고 하는 『광주비엔날레』에 가면 일반 시민들은 물론 젊은이들도 곤곤히 이해를 못한다. 일반적인 그림도 아니고 추상화(抽象化)도 아닌 첨단(尖端)미술들이 난무하고 테크놀러지 아트(technology art)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이해에 의존(依存)하기보다는 즉, 작품 속에 나타난 구성(構成)의 형태적 특성, 예술가의 소질(素質) 그리고 작품자체의 정서적 혹은 정신적 내용을 간파해내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그 작품이 만들어 졌는가에 주된 관심을 쏟아 그 작품의 외부적 구조에 대한 이해만으로 작품 전체에 대한 이해를 달성했다고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런데 안형남(安螢南)의 미술도 과학기술을 이용했지만 그의 조각과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마음이 쉽게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지고 그가 원하고자 하는 그림이 보인다. 안형남의 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흔히 예술(藝術)이라 함은 의례 조형예술과 시각예술로 연상하지만 본래 그 말에는 문학과 음악도 의당 포함되어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말한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생각난다. 작가 안형남의 작업들은 과학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과 음악의 선율이 흐른다. 그의 바람도 소리도 빛도 손쉽게 전달이 되고 있다. ● 모든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다 라고도 명제(命題)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감각에 주어지는 여러 물체의 형체와 면(面)과 매스(mass)에 감응(感應)하고, 형체와 면(面)과 매스가 어떠한 비율로 배열되었을 때 쾌감을 얻게 된다. 이 쾌적한 여러 관계에 대한 감각이 미감(美感)이다. 미(美)란 쾌감을 주는 것이다. 그 반대는 불쾌감 일 것이다. 안형남의 미술작업은 쾌감을 준다. 의식(意識)이 이해를 하게 만든다. 안형남의 미(美)를 모두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균형(均衡)속에 어딘가 어색한 데가 있다. 보통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 어색함과 풀어줌이 그의 서정성과 천진난만함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그는 타고난 직관력과 천재성으로 규칙적이고 기하학적 조화에서 벗어남을 보일 수 있는 왜곡(矮曲)처리 능력이 있는 것이다. ● 추상작업을 보면 사람마다는 상이하지만 추상(抽象)이라는 자체를 겁낸다. 하지만 원래 모든 예술은 추상이다. 꾸며진 부속물과 연상(聯想)을 제거한 것뿐이다. 예술가란 가장 넓은 지성을 가진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평자(評者)는 생각한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모두 그렇지 않지만 하나 속에서 다수를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안형남은 그가 못 느끼는 천재성으로 자신의 추상과 자신의 관념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 반응을 자신의 지성을 통해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안형남_Upon my soul(내혼을 다하여)_알루미늄 보드, 메탈에 유채, 플라스틱_92×76cm_2009

지금까지 그의 생애(生涯)를 더듬어 보면 그의 작품 성향을 점지 할 수 있다. 작가는 서울예고를 다니던 73년 도미(渡美)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institute)를 졸업하고 빛과 소리 시간과 공간(空間)을 아우르는 키네틱 조각과 미술로 국내보다 미국 화단에서 지명도가 높다. 아동문학가인 심동 안성진 목사가 아버지다. 작가의 작업에 나타나는 청량감과 순수함은 아버지의 영향도 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도미(渡美) 하여 과학문명이 제공해주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빛에 관한 작품들을 해오다 그의 정서는 키네틱아트를 만들어 냈다. ● 1985년 작가는 자연(自然)이 풍부한 북서부 워싱턴 주(州) 시애틀(Seattle)로 옮겼고 2006년에는 뉴욕(New York)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현대미술은 인간의 모습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 결과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의 시카고는 서울처럼 복잡하고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시애틀은 전원도시라 이주하였고 다시 사람냄새가 그리워 뉴욕으로 이주(移住) 한 것이다. 인간의 대한 그리움과 사람과 함께 섞여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욕(New York)전 까지는 자연과 묻혀 그냥 자연의 일부 같이 살아, 그게 너무 좋아 그게 전부라 생각 했던 작가다. 말대로 그대로 순수한 작가생활을 미국 서부 지역과 시애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20년 가까이 파묻혀 작업만 한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석양(夕陽)만 보고는 예술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다시 세상을 나온 이유다. 예술은 인간의 삶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다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암튼 거대한 자연을 찬양하는 것만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고 깨달은 것 같다. ● 그는 서울올림픽 잠실 주경기장 성화대를 키네틱 작품으로 디자인을 하였고, 63빌딩 전기조명장치 설계를 의뢰받아 제작하였고 무엇보다도 그가 미국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처럼 이십대에 새로운 장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 있는 대표적인 예술인 2명을 선정 했을때 백남준과 안형남이 선정됐다.

안형남_Cloud of Love_알루미늄 보드, 메탈에 유채, 플라스틱_90×120cm_2009

빛과 소리 공간과 움직임이 독특하면서도 테크놀로지컬한 미술로 시적(詩的)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작품을 창조해 내는 안형남의 예술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물론 그의 예술과정을 기술(技術)적인것 즉, 전자장치, 정보처리, 매스커뮤니케이션, 전화의 과학기술(科學技術)등 전자공학(電子工學)적인 요소를 두고 평((評)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내면양식(內面樣式)의 맥을 짚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평자(評者)로서 찾고자 한다. ● 1979년 11월이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6번째 빛을 이용한 「환경조각(option)」시리즈를 계기로 즉, 빛을 이용한 환경조각을 선보임으로 시카고 미술계에 처음 주목을 받는다. 이 당시 작가의 작업은 현대미술(現代美術)의 시대적인 상황(狀況)을 고려하고 누군가 해왔던 전철이 아닌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가기 위해 컴퓨터도 제대로 없던 시절 한참을 앞서간 작업들이다. ● 오랫동안 자연을 두고 살아온 작가는 자연현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영감(靈感)과 첨단과학시대 인간관계에 대한 느낌을 그의 기술로 그만의 독특 예술로 승화하여 표출해 낸 것이다. 따라서 인위의 테크놀로지(technology)보다 심미적인 맥락(脈絡)으로 파고들어 작가의 정서와 직관적인 반응을 작품 속에서 발화되도록 하여 시적이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엿보게 하였다. 그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복잡성을 이루나 빛을 통해 일종의 시적(詩的) 분위기를 창조해 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전 지역의 분수나, 광장, 공원으로 발전 되어가며 작가의 이정표들을 계속 심었다. ● 연이어 1980년 「철새(Migrating Birds)」라는 제목의 작품은 철새들의 날개 치는 소리를 심리적으로 연상시켜 컴퓨터 프로그래밍된 순서로 불꽃들이 명멸하면서 이로 인해 철새가 이동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빛의 처리도 먼 곳을 나는 철새 떼들처럼 즉, 날아가는 현상을 심리적으로 하모니 처리하는 그의 작업들은 자연성과 친근감을 갖는 고유 트레이드마크(trademark)가 된다. 이런 현상은 그만의 석양과 노을 철새들의 자연적인 현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소리, 동력학, 빛, 전자공학 등의 재료 구애 없이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동화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시적이고 심미적인 맥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형광큐브의 배열과 튜브의 길이와 색깔에 대한 그의 선택과 아이디어는 직관적이고 회화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안형남_Butterfly(나비)_알루미늄 보드, 메탈에 유채, 플라스틱_96×76cm_2009

그에게 미술가로 최고 입지(立地)를 준 작품은 1981년 시카고 일리노이 주 세계컨벤션 센터(convention center) 메코믹 광장 도넬리 앞에 있는 높이16미터 무게125톤의 스스로 빛을 발산하며 주변소리에 반응하는 「숨쉬는 등불」이다. 이 작품은 빛과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한 작품인데, 주변의 소리에 반응해 스스로 빛을 내는 키네틱 조각으로 거리에 서서 미적요소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을 가다듬어 이것을 흡수하고 소음의 수치에 따라 껌벅이는 불빛으로 변해 운전자에게 메시지 대답을 한다. 즉, 작품 곁을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소음을 내고 지나가면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된 음향 합성기(신디사이저, synthecizer)가 감지하여 다양한색 전등이 리드미컬한 껌벅임을 시작한다. 이는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기계문명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 주자는 것이다. 때론 공포감도 준다. 커다란 동물이 눈을 껌벅껌벅하는 불빛으로 두려움을 주어 원시적인 효과도 연출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선천성과 본능적인 미적감각(美的感覺)이 표출된다. 본래 미적감각(美的感覺)은 지식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원시인의 예술을 이해함으로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또한 시카고 현대 미술관 옥외 벽면 전체를 까맣게 칠하고 그 공간에 빛의 설치조각을 심미적으로 전시하고 했다. 춤추는 댄서에게 LED조명을 부착하여 댄서의 동작에 따라 색(色)이 발산하는 모습의 미를 보여 주었고 색을 하나하나 별도로 프로그래밍 하거나 스피커에서 빛이 들어오게 하는 식의 섬세하면서도 심미한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하였다. ● 1982년 시카고의 네이비 피어(Navy Pier)거리에서는 과학기술력(科學技術力)만으로 도출시키기 어려운 부드러운 빛과 유혹적인 리듬, 또한 직선적이면서 확신에 찬 미술을 다루어 가며 아름답고 센슈얼한(sensual) 분위기를 관객에게 느끼게 해주어 소리, 빛, 움직임 예술의 대명사로 거듭난다. 안형남의 작업은 항상 설치된 장소와 관람객 사이에 드라마틱한 상호작용이 오가며 연출되도록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것이다. 안형남(安螢南)은 과학기술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미적인(美的人)요소도 잘 가미(加味)하고 인간의 실질적인 환경요소와 장소에 잘 접목해서 그냥 단순한 형식의 보고 잊어버리는 전시가 아니라 미술을 하는 가치라 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과 기능적 역할을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살아 과학을 이용, 순수한 요소들을 도출하는 지성을 가지고 환경요소와 자연에 근간을 둔 안형남은 작업에 대한 생각들이 2000년 들어서 부터는 인간탐구에 중점을 두고 조각과 더불어 평면회화작업을 많이 하기 시작한다. 물론 예전부터 조각과 회화작업을 하였고 회화든 조각이든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 2007년「니고데모(Nicodemus)」작품은 15미터의 순수 회화 작업으로 니고데모(Nicodemus)는 예수님의 뜻을 따른 사람으로 예수에게 찾아와 거듭남에 대해 물었던 인물로 후에 그리스도교도가 되어 유대인들에게 순교를 당하였다. 작가는 니고데모를 통해 거듭남을 알리고자 하였다. 작가는 거듭남이란 결국 자신을 극복하는 것으로 그림속의 인물을 통해 그의 자신이 또 다시 일어서고 다시 꼬꾸라지고 반복해가며 더 나아지고 극복해 가는 표현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거듭남을 담은 작업으로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중점을 둔다. 이제 그는 긴 여정(旅情) 끝에 인간의 본질(本質)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제 예술의 골자(骨子)는 작가 말대로 인간(人間)에 둔 것이다. ● 최근 2007년 이후 3-4년 동안 작업들을 보면 사람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로 묻어난다. 즉, 최근 작업들은 선명한 칼라, 빛, 소리, 즐거움, 솔직한 표출행위, 섬세하면서 아기자기한 율동감과 흐름,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이며 초현실적인 모습들이 묻어난다. 또한, 자유스러우면서도 절제된 그의 작업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동이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은은한 청량감이 생겨난다. 아름답다. 그립다. 한 여름날 시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물고기를 잡는 개구쟁이, 시골의 참외 수박 서리하는 모습, 밤하늘 별빛을 엄마 품 같은 뒷동산에 누워 세어 보는 느낌을 연상 하게 만든다. 제목들은 사랑과 구름, 여름, 연못, 날개, 사탕과 춤, 바다, 태양을 따라서, 나비, 혼란, 향수, 날개 등 인간감정을 압축된 말로 표현한 시(詩)나 아동문학 제목들 같다. 재료는 주로 stainless steel, neon, oil, metal, wood, plastic, aluminum board를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주로 절단한 부분과 크로스(cross)되어지는 부분들을 보면 선명한 3-4색상 안에서 곡선을 이용 절묘하게 교차시켜 은은한 맛과 윤곽선이 살아 작가의 평면작업에 시원하고 서정적 선율들이 감돈다. 여기에도 그의 내심은 향수, 연못, 사랑, 날개 등등의 갈래로 나타나는 인간탐구이다. ● 또한, 2008년 연작 「향수(鄕愁)」라는 동일한 제목의 여러 작품들은 나비인 듯 구름인 듯 추상(抽象)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작품 표면에는 노란과 파란 색상의 간결한 페인팅이 입혀졌다. 그 사이로는 간간히 푸른빛과 분홍빛의 네온이 드리웠다. 또한 교차하면서 이루어진 그의 선(線)들은 우농감과 매스적인 표현하고 있다. 그의 평면작업에서 보여 지는 특질은 매스나 입체를 암시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준다.

안형남_Pond(연못)_알루미늄 보드, 메탈에 유채, 플라스틱_96×76cm_2009

작가가 조각과 설치,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네온과 철판, 알루미늄 보드, 채색, 아크릴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최근 작업들에서 무엇보다도 자유로움과 따뜻함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 과거보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표현기법의 자유로움은 은은한 네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온을 이용한 빛의 형태에 은은한 자유로움에 대한 아우라(Aura)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정형의 조형적 형태를 바탕으로 추상조각과 구상회화가 혼재 되고 거침없는 알루미늄 판과 철의 절단, 거침없는 붓 터치에서 자유로움을 볼 수 있다. 추상 회화작업에서는 구상적 모티브가 뒤섞이며 역동인 선(線)의 움직임과 색면(色面)이 물결치듯 흘러간다. 물감을 흘리거나 채색을 하고 이것 역시 표현의 자유로움과 사람과의 소통이다. 또한 자유로움을 떠나 스프링 현상의 노란네온과 붉은 페인팅으로 전쟁의 불길함을 혼란이라는 제목으로 전쟁의 아비규환의 현상을 형상화(形象化)하기도 하였다. 하트모양의 네온과 날아가는 동물의 형상을 날개란 작품으로 작가의 생각을 이미지화 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표출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추상적인 조각 형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네온을 통해 따뜻한 가족같은 감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철판이나 알루미늄 재질이 주는 차가움 속에 특히 네온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 이러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따사로움은 자기 자신안의 자유로움을 극대화 시키고 관객들로부터 감성적 자유로움을 만끽하도록 배려하고자 하는 면이 숨어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인간의 탐구와 자유로움 속에는 율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여유로운감과 풍만감이 던져져 그만의 청량감과 서정성(抒情性)으로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낮에 나온 별」, 서울시립미술관의 「조건 없는 사랑」, 부산시립미술관의 「향수」등 안형남의 과거 한국소장 작품만을 보더라도 시적(詩的)이고 서정적(抒情的)이다. 또한 이전 작업들이 빛과 소리 등 재료 자체의 물성과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실험과 도전이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보다 자유로운 추상적 형태(形態)의 조각과 구상적 회화가 혼재되며 관객과의 감성적 인터렉티브(Interactive)와 소통(疏通)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작업들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작가의 표현기법 그리고 네온을 통해 빛을 표현하는 실험적 시도가 참 자유로워서 은은한 네온처리는 보는 이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성적 자유로움을 이끌어냈다 할 수 있다. ● 마르쉘 뒤샹(Marcel duchamp)의 「다다(Dada)」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예술은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듯이 안형남(安螢南) 도 조각과 회화를 넘나들며 네온과 철판, 우산, 인체 조각 등 다양한 오브제로 구성해 왔다. 그가 최근 제작한 「향수(鄕愁. Homesick) 1·2·3」연작시리즈는 강력한 느낌을 주는 철판을 종잇장처럼 구부리고 꽃잎처럼 붙인 뒤 여기에 네온(neon)관을 붙였다. 그리고 여기에 붓을 이용해 회화처럼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다. 일부는 음악까지도 들어가 있다. 모든 장르가 융합될 때 보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 질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의 자유로움과 작업을 면밀히 보면 창작의 가치를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만들어 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소양과 같은 것이지만 사실 가장 갖추기 힘든 소양(素養)인데 말이다.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한계와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의 세계 그 자체(自體)인것 같다. ■ 안재영

Vol.20120118d | 안형남展 / AHNHYONGNAM / 安螢南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