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es of Penumbra 반영半影의 자취蹟

김창수展 / KIMCHANGSOO / 金昶洙 / printing   2012_0125 ▶︎ 2012_0206

김창수_Penumbra traces s1_디지털 프린트_90×16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30426a | 김창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125_수요일_05: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Gallery GAIA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가이아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2층 Tel. +82.2.733.3373 www.galerie-gaia.net

辯 -- 반영半影 그리고 흔적蹟들 ● 「기억의 자취, 프레임에 제한된 시간의 흔적 속에 스며든 관념과 의미를 조합하여 상像으로 재현해 내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Canvas-물질-의 존재감을 인식한다. 축적된 버거운 시간의 경과 속에서도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중첩과 반복만이 연속될 뿐이다.」

김창수_Penumbra traces m2_디지털 프린트_34×60cm_2011

'탈脫'이라는 단어가, 현대사회를 정의하는 접두사처럼 빈번히 사용된 지도 오래. 다소 무절제해 보이는 현란함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 듯... 키보드의 클릭으로 시작된 하루가 리모콘의 버튼누름으로 마감되는,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이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 자신이 미디어가 되고, 또 하루하루의 콘텐츠를 엮어가며 살아간다. 이곳이 나의 삶터 도시이고 사회이다. 그 도시 한 켠에서, 내 삶의 한 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살피고 자신을 대립시킴으로써,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은 언제나 경이롭다. 마치 소리 없는 강박처럼, 익명성 속에 스며들어 안도하는 작업자의 속내를 들어 내보이는 것은 그만큼 때로 버겁고, 조심스러운 일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유동하는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스스로 정체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스스로의 객체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변화는 당위와 책임을 동반하고, 과정의 연속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태의 탈속脫俗과도 같다. 스스로 되돌아 보건데, 새로움이란 대체를 의미하지도, 발명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축적과 탐구 또는 우연히 발견되는, 이미 전에 있었던 그 것이다. 새로움은 때로 기존체계의 가치를 무력화 시키고, 미디어는 언제나 발전과 희망을 전도한다. 그 희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없다. 유추해 보건데 본질적인 배려, 소위 긍정적 의미로서의 아방가르드한 예술이 꿈꾸는 문화와 본질적인 가치로서의 유토피아가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김창수_Penumbra ND traces 01_디지털 프린트_170×90cm_2011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거리풍경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이미지를 중첩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부단히 반복하며 익명성의 의미를 탐색한다. 평범과 익명의 간극은 프린트된 종이 한 장 또는 미디움(Medium)의 사이에 놓여 있다. Penumbra의 사전적 의미는 (일식월식의)반영半影 또는 (태양 흑점 주변의) 반암부(半暗部) 그리고 회화(繪畵)상의 개념으로는 농담의 희미한 부분 그리고 주변부나 모호한 경계 구역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본 작품들과의 의미적 연계선 상에서, 과장된 표면적인 미디어 시각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흔히 우리가 소흘이 하거나 대중사이에서 소외된 것 그리고 관심을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주목하여 바로보자는 의미를 제목으로써 암시코자 한 것이다. 여기에는 표현의 과장이나 미사여구의 여과가 없다. 그저 고정된 순간의 정보들을 단순하게 중첩하여 발견되는 개개인의 주체적 인상과 이미지에 주목할 뿐이다. 이 과정은 마치 어둠사이에서 제 모습을 감춘, 자취모를 흔적과 희뿌여진 영상들이 형상을 갖추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순간적 시선의 맺힘과도 같다.

김창수_Penumbra NM111112e1_디지털 프린트_90×160cm_2011

「0과 1 사이의 공간, 그 곳은 백지와도 같다. 마치 가본 적 없는 빙하(Glacier)의 간극처럼, 마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때로는 사진에서 본 듯하면서도 낯선 미지의 크레바스(crevasse)같다.」

김창수_Penumbra KN090115013_디지털 프린트_40×75cm_2011

기실 디지털이라는 개념 자체가 첨단을 의미하던 시대는 갔다. 작가는 전에 디지털 기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디지털의 속성인 비물질성 그리고 전자적 펄스(Pulse)로서의 정보라는 비가시적 존재방식이, 물질적 대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의 실재와 역사적 정신성의 실체화된 가치로서의 물질적 존재방식을 물질성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가치로 환원시키는 보완적 기제이자 상대적 확장개념이라고 본다면, 디지털 기술은 공예적 전통으로서의 예술가치/판단방식으로부터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서의 정신적이자 개념으로서의 가치를 보다 본질적 대상으로 확장시키고 실현하는 해방구로서의 환경을 제공하고 전통적 예술기저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기폭제가 된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라고 긍정적 전망을 기술한 바 있다. 0과 1의 우주적 코드의 결합에 의한 새로운 이미지의 조합에 기대하는 작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과다하고 빈번한 기술적 맹신과 싸구려 상업주의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다만 부족하나마 그 빈 페이지를 열어 스스로의 '본질적' 의미로 채워보고자 시도할 뿐이다. ■ 김창수

Vol.20120125a | 김창수展 / KIMCHANGSOO / 金昶洙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