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SET GO

2012_0127 ▶︎ 2012_0219 / 월요일 휴관

김아영_꿈속여행_캔버스에 혼합재료_21.2×33.4cm_2010

초대일시 / 2012_0127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아영_배우리_유명희_이주현_정유진

기획 / 아트갤러리유 후원 / 신라대학교 100인 장학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갤러리 유 ART GALLERY U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510-1번지 5층 Tel. +82.51.744.0468 www.u-1korea.com

Get set Go ● 여기 같은 배움터를 떠나 자신의 길을 나서는 6인의 여성 신인작가들이 첫 비행을 하려합니다. 공간을 내어 주신 U갤러리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들의 조심스런 출발에 아낌없는 응원과 충고의 말씀으로 비상을 위한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 신라대학교 100인 장학회

김아영_도플갱어_캔버스에 혼합재료_27.3×22cm_2010
김아영_인생게임2_캔버스에 혼합재료_22×27.3cm_2011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 살아가면서 죽음을 맞이 할 때 까지 인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평등함인 듯 하다. 그러나 이 평등하게 주어진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인생길이를 살아가다가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도 아니다.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인간들이 살아가는 길이, 형태, 형식, 질까지도 모든 것들이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 말 이외의 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사들은 제 각각이다. 인생이란 자신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갈지는 어떠한 예측도 확신도 할 수 없다, 인생이란, 곧은 길로 바르게 가다가도, 한번쯤은 잘못된 길로 가는 일도 있고. 그 길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음도 배우며 다시 곧은 길 을 걸어가고 숱한 어려움도 겪는 것이다. 마치 게임 속 세상처럼 수 없는 고비를 넘기고 그 고비를 넘기면 한번쯤은 쉬어가는 기회도 생기고 또 다시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고 이렇게 단계,단계 밟아가며 여러 경험들을 하는 것이 인생사 인 듯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인생을 게임처럼 여러 가지 예상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용하여 이 작품에서는 인생이라는 주제로 비구상적 표현과 오로지 나만의 상상 속의 게임세상이 펼쳐진다. 말 그대로 인생게임, 즉 인생은 게임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삶이라는 다소 진부하고 무거운 주제를 나만의 상상으로 조금은 가벼우면서도 재미나게 표현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네모블럭은 집들과의 사이사이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표현되며 창문들은 서로 소통하면서도 경계하는 듯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적인 면을 보여줄수 있는 하나의 표현방법으로 비춰지고 있다. 색을 많이 넣지 않고 부분적으로 색깔을 표현하는데 거의 대부분은 드로잉으로 들어가므로 색까지 전부 입히게 되면 조금은 산만해 보이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색을 빼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색감들은 대부분 파스텔 톤 들이 많이 들어가며 작은 부분에 원색들이 조금씩 들어가면서 살짝 포인트 부분들도 보여 준다. 색감으로 조금은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게임 속처럼 조금은 환상적인 분위기와 상상 속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나 자신이 나름대로 제일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잡아내어 작품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때까지 해 오던 작품들의 표현방법들을 조금은 바꾸어 또 다른 표현들로 작품을 담아낸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들은 다들 자신만의 생각들로 행동하고 표현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집이라는 공간 속 틀에서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들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또 그 속에서는 모두 다른 이야기들을 담아 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요소들을 끌어내어 한 가지 같은 공간 속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제각각 다른 인생사들을 그려낸다. 물론 재료적인 면이나 매개체들은 비슷한 방법들로 나만의 방식으로 이 인생이라는 많은 내용들을 간단하면서도 재미난 요소들로 표현하며 작품들을 그려내고 있다. ■ 김아영

배우리_그러게 말이에요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1
배우리_숨기고 싶지 않아요_캔버스에 유채_55.2×65.2cm_2011
배우리_아무도 그 누구도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1

현대인의 자화상 ● 모든 인간에게서 감정은 드러난다. 그 속엔 내면의 아픔 또한 녹아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외로운 존재는 '어른'이 아닐까. 자아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드러내기엔 이미 너무 커버린 어른들은 눈앞의 현실과 타협하면서 미처 어리광도 부릴 새 없이 철이 들어버렸고 또 그렇게 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내면은 외면의 성숙함을 쉽게 따라가지 못 한다. 당연히 그로 인한 부조화로 우리들의 표정은 본래의 모습을 외면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나 평상시의 표정이나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내면의 모습이 나타난다. 눈앞의 현실에 쫓겨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하며 그들의 나약한 자아는 쉽게 흔들리곤 한다. 숨겨진 수많은 감정들과 미성숙한 자아의 모습은 우리 내면의 본 모습이자 부정할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인간은 그들의 무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한 환경에서 타인 또는 사회와의 정신적 싸움을 하며 자신의 존재와 감정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같은 인간이기에 항상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 내겐 작업의 성장과정과도 같다.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고개를 푹 숙인 목덜미에서, 멍하니 초점 없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또는 회의감, 복잡한 지하철 사람들 틈에 서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뎌짐, 그렁그렁한 눈빛,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슬픔, 다리를 습관적으로 떨고 있는 모습,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 머리를 젖힌 모습 등에서 나타나는 불안감 ... 일상 속에서 그들의 숨겨진 감정을 잡아낸다. 훌쩍 커버린 외면의 성숙함을 따라가지 못한 어린 내면은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물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이는 내면의 흔들림을 감추기 위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의 흔들림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약간의 바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인물의 눈동자는 무언가 할 말을 머금고 있는 듯 관객을 바라보며 눈동자(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함으로 눈썹을 생략했다. 백발과 배경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은 순수한 내면의 의미로 밝게 표현된다. 인물이 콧물을 흘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을 만큼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하며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을 나타냄 일수도 있겠다.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아픔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픈 포용으로 발전하기까지 나 자신 또한 그림으로써 스스로 치유 받은 듯한 기분도 든다. 이성적인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감정의 상처는 치유될 수단이 부족해 아물기조차 어렵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오늘을 살아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흔들림을 감춘 채 태연히 그리고 묵묵히 살아가지만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감정을 안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그림이기를 바라본다. 본인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텅 빈 마음의 눈으로 이 시대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루만져줄 작업으로 발전해나가고 싶다. 작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의 표현 보다는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좋겠다. 현대인의 자화상 모든 인간에게서 감정은 드러난다. 그 속엔 내면의 아픔 또한 녹아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외로운 존재는 '어른'이 아닐까. 자아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드러내기엔 이미 너무 커버린 어른들은 눈앞의 현실과 타협하면서 미처 어리광도 부릴 새 없이 철이 들어버렸고 또 그렇게 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내면은 외면의 성숙함을 쉽게 따라가지 못 한다. 당연히 그로 인한 부조화로 우리들의 표정은 본래의 모습을 외면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나 평상시의 표정이나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내면의 모습이 나타난다. 눈앞의 현실에 쫓겨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하며 그들의 나약한 자아는 쉽게 흔들리곤 한다. 숨겨진 수많은 감정들과 미성숙한 자아의 모습은 우리 내면의 본 모습이자 부정할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인간은 그들의 무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한 환경에서 타인 또는 사회와의 정신적 싸움을 하며 자신의 존재와 감정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같은 인간이기에 항상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 내겐 작업의 성장과정과도 같다.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고개를 푹 숙인 목덜미에서, 멍하니 초점 없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또는 회의감, 복잡한 지하철 사람들 틈에 서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뎌짐, 그렁그렁한 눈빛,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슬픔, 다리를 습관적으로 떨고 있는 모습,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 머리를 젖힌 모습 등에서 나타나는 불안감 ... 일상 속에서 그들의 숨겨진 감정을 잡아낸다. 훌쩍 커버린 외면의 성숙함을 따라가지 못한 어린 내면은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물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이는 내면의 흔들림을 감추기 위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의 흔들림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약간의 바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인물의 눈동자는 무언가 할 말을 머금고 있는 듯 관객을 바라보며 눈동자(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함으로 눈썹을 생략했다. 백발과 배경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은 순수한 내면의 의미로 밝게 표현된다. 인물이 콧물을 흘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을 만큼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하며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을 나타냄 일수도 있겠다.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아픔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픈 포용으로 발전하기까지 나 자신 또한 그림으로써 스스로 치유 받은 듯한 기분도 든다. 이성적인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감정의 상처는 치유될 수단이 부족해 아물기조차 어렵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오늘을 살아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흔들림을 감춘 채 태연히 그리고 묵묵히 살아가지만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감정을 안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그림이기를 바라본다. 본인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텅 빈 마음의 눈으로 이 시대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루만져줄 작업으로 발전해나가고 싶다. 작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의 표현 보다는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좋겠다. ■ 배우리

유명희_소녀의 방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1
유명희_소녀의 방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11
유명희_소녀의 방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1

그 곳에 숨다 - 두려움과 싸우는 인간의 내면은 닫힌 공간에서 위로 받는다. ● 어렸을 적 기억에 여러 번 이사를 했던 것 같다. 그중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는 세 번 정도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의 다락방에서 1년을 살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관계로 3년 가까이 직장동료와 다락방에서 함께 살았다. 나의 작업 안 에서 다락방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네 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어릴 적 기억에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언니와 싸우거나 혼이 나면 언니를 피해 나무 계단이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동안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작은 창을 통해 나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그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아슬아슬함과 어쩌면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들로 다락방에서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그 곳에 숨어 내려다보면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존재한다는 신비로움이 나를 흥분시켰던 것 같다. 두려운 상황을 피해 다락방에 숨어들어간 것처럼 작업에는 폐쇄적인 공간과 인형이 등장한다. 인형은 낡고 오래된 공간에 혼자 있다. 인형이 숨어들어간 공간은 손끝만 닿아도 한기가 느껴지는데 그 차가운 벽만큼이나 두려움의 강도도 크다. 그리고 사방이 꽉 막힌 벽, 기울어진 지붕으로 난 작은 창, 아래층으로 연결된 경사진 계단을 통해 다락방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다락방이라는 특징이 폐쇄적이며 고립되어 있지만 본인의 작업에서는 "다락방이 없는 집은 승화가 없는 처소다."라고 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말처럼 심리적 위안과 생명력을 가진 곳이다. 그 곳에 기억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초점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인형이 관찰자자이자 관찰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인형이 심리적 불안과 긴장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본래 인형은 인간의 형상을 한 사물이지만 은밀한 비밀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정신적 친구이며, 어떠한 상황에 있어서는 인간의 대체물로서 기능을 한다. 나의 작업에서의 인형 또한 그러한데 성인이 된 지금도 불안과 공포를 쉽게 느끼는 나는 비밀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인형인척 연기하며 두려움을 잠깐 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인형과 폐쇄적 공간은 의미론적으로 통한다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고양이가 가끔 등장하는데 숨겨진 내면이기도 하며 두렵지만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색조는 회색조의 톤을 사용하여 스산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인형의 색은 핑크에서 자주색계열로 비현실적 느낌을 더하고자 하였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무섭다"라는 말을 자주하고 작은 변화에도 불안을 느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가끔 다락방에 오른다. 그곳에는 나의 친구들이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인형과 사나워 보이는 고양이, 고요한 바람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무표정한 책상과 의자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나의 작지만 소중한 다락방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 유명희

이주현_손아귀_혼합재료_45×45cm_2011
이주현_유깟따빠이야_혼합재료_45×45cm_2011
이주현_jesus_혼합재료_91×91cm_2011

감정의 상징화를 말한다 ● 모두가 살아가며 느끼는 희노애락을 내가 생각한 상징물로 나타낸다. 감정은 모두가 공통으로 또는 제 각각 느끼는, 만드는, 받아들이는, 주는 방법이 있다. 그 중에 한 부분이거나 흘러가고 있는 중이거나 모든 것을 상징물로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상징화 하는 과정은 일종의 치유이고 성장이다. 무한대로 퍼져가고 깊어져가는 감정의 골과 함께 상징화 되어가는 나를 키워간다. ■ 이주현

이하나_꿍_캔버스에 유채_145.5×89.4cm_2012
이하나_드실라우_캔버스에 유채_40.9×53cm_2012
이하나_접근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11

나의 작업 모토는 외모지상주의 이다. 지금 사회는 외모는 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외모는 개인의 능력 개성을 떠나 하나의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자아 존중심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 난 이 부분에서 내면이 아닌 외면으로 판단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한다. 사회는 내면을 알아주지 못하고 외면적인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면 그 분위기에 맞춰줄려고 하는 내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 하고자 한다. 내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고 이뻐지기 위해 살을 빼고 외모를 가꾸기 위한 힘듦과 채식을 먹어야 하고 그 만큼 사회에 내색하지 못하고 숨기면서 모두가 다 비슷해져 버린다. 우리는 분명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지금 현재 사회는 먹지 못하고 굶어야 살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중점에서 사람들은 냉장고라는 공간 앞에서 망설이게 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작업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상황에 따른 주체성을 스스로가 인식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따라가는지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이하나

Vol.20120127e | GET SET GO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