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그림자

정병국展 / JUNGBYUNGGUK / 鄭炳國 / painting   2012_0501 ▶ 2012_0526 / 월요일 휴관

정병국_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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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1_화요일_06:00pm_갤러리분도

2012_0501 ▶ 2012_0513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제1전시실 Tel. +82.53.661.3081~2 www.bongsanart.org

2012_0501 ▶ 2012_0526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짙은 그림자 ● 예술 비평은 평론가가 작가나 작품을 잘 안다는 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자기 안목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비평에 임한다. 그런데 어떡하나. 나는 작가 정병국의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내가 평론가라는 신분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비평했던 때가 10년이 더 된 과거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르긴 매 한 가지다. 그때는 내가 풋내기라서 그랬다 치고, 지금은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정병국_月下之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59cm_2012

발전 없는 내 안목이 문제인 건 확실한데, 이 '문제'가 작가에게는 없을까? 나는 있다고 본다. 정병국의 회화에는 미세한 결핍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는 회화 플레임 안에 포함된(포함되어야 할) 모든 대상을 어느 선까지만 재현한다. 재현된 대상들은 너무나도 확정적인 실존이다. 예컨대 '도대체 이게 뭘 그린 그림일까?'란 물음은 필요 없는 대신, '뜬금없이 왜 이걸 그렸을까?'라는 물음만 존재한다. 말하자면 확정된 우연성이다. 눈앞에 생생한 우연은 작가 개인의 지난 기억을 상징하는 푸른 빛 배경과 어울려 매혹적인 빛을 발한다. 나는 그 빛을 글이라는 언어 체계로 바꾸어 기술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 물에 물 탄 것 같은 얼버무림, 혹은 현학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숨기는 비평 대신, 그의 그림처럼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정병국_나르시소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11

물론 '문제'를 요령껏 감당하여 잘 풀어낼 큐레이터와 평론가가 그의 주변에는 있다. 나는 그 큐레이터처럼 작품 설치 공간을 한 치도 빈틈없이 궁리해 낼 감각도 없고, 그 평론가처럼 작품 의미를 정확하고도 우아하게 짚어 낼 글 솜씨도 없다. 그 '문제'에 관하여 작가가 오랫동안 속해 있던 아카데미의 견고함은 딴 사람들이 더욱 접근하기 힘들게 성을 쌓아왔다. 평소에 그와 손발을 맞춰오든 스태프의 협업이 아닌 우리 작업은 최상의 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점은 난해한 그의 작품을 그 자체로 감상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불리한 점이다. 더구나 이번 전시는 사립 갤러리와 공공 미술관과 대안공간을 잇는 커다란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체 전시의 성공과 실패 앞에서 일정 부분의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놓여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전람회의 자유로운 응시자다. 오직 지난 1년 동안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그림들만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나에겐 또 다른 경험이다.

정병국_발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320cm_2011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새로운 작품들은 아직 벽에 걸리지 않았다. 그 작품들을 미리 봤던 나로서는 그것들이 전시 공간에 선 보일 그 날을 기다린다. 정병국이라는 화가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들대로, 이미 아는 사람이라도 그들대로 이번 전시는 새로운 파격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커다란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드넓고도 무심한 우주 공간, 바다의 심연, 불모의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 듯한 소외감을 느낀다.

정병국_종소리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0×250cm_2011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띠는 점을 몇 개의 작품에 준거해서 언급하자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의 회화에 있어서 배경은 인물이나 사물의 뒤에 드리워진 들러리가 아니다. 배경을 그리기 위해 대상이 따라 그려진다고 볼 수도 있다. '차분한 맥박'에서는 파란 배경만이 처음으로 그림의 전부를 차지하는 시도가 드디어 처음으로 나타난다. 한편 '파편'은 푸른색으로 인물이 묘사되고, 대신 붉은 용암 빛이 배경으로 놓인다. '내가 그린 그림'에는 삼분위로 나뉜 검고 푸른 배경 앞에 역시 삼각형 구도로 대비되어 놓인 구(球)형과 남자 나신이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회화에서 대상의 묘사만큼 중요한 게 결코 계량적으로는 측정될 수 없는 구도라는 것을 말한다.

정병국_종소리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0×250cm_2011

그리고 꽃그림. 그에게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꽃은 인간 본성의 표상이다. 그것은 예컨대 다른 그림 "검은 빛"에서 수캐가 길게 내려트린 혓바닥처럼 동물적 본능에 반응하는 유기체 현상일 뿐이다. 따라서 경멸적인 뜻으로 쓸 수도 있는 단어 '꽃그림'들과 그의 그림은 구별된다. 작가의 그림을 지배하는 일종의 불경스러움은 단순히 벌거벗은 인물상이나 육욕에 관한 알레고리 때문은 아니다. 끼일 데와 안 끼일 데를 가리지 못하는 탈 맥락성 때문이다. 화폭을 온통 꽃으로 뒤덮은 '月下之情'을 보면, 장미꽃들이 장미넝쿨이 아닌 엉뚱한 수풀 사이에 피어 있다. 내 눈에 그 꽃들은 그림 속에 융화되어 어울리지 못하고 둥실대며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일상 대화중에도 '느닷없다'는 말을 곧잘 쓴다. 느닷없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은 느닷없이 그림 속으로 내던져졌다. 하이데거(M. Heidegger)가 쓴 개념인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의 그림자가 작품 전체를 휘어 감고 있다. 삶이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펼쳐지는 이 불안한 세계관은 작가의 그림을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정병국_파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34×300cm_2012

그의 그림은 논리적 개연성이나 역사적 순리, 사회에서 합의된 가치 따위의 맥락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탈 맥락성 때문에 그의 그림이 포스트모던한 회화로 분류되는 것은 잘못이다. 탈 근대적 미술이라고 말하기에는 그의 그림 속에 작가 주체의 시선이 너무나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그림 가운데 내 눈에 가장 매혹적으로 들어오는 한 작품의 이름인 동시에, 전시회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짙은 그림자'는 바로 작가 정병국의 정신적인 징후로서의 그림자다. 작가 스스로가 밝히기를, 그림자는 존재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형상인 회화를 가리킨다. 그리고 언어적인 유희일지도 모르지만, 그림자는 그리움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작가가 잠시라도 머물렀던, 그래서 어쩌면 그가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나온 삶 곳곳의 흔적이다. ■ 윤규홍

Vol.20120502j | 정병국展 / JUNGBYUNGGUK / 鄭炳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