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당, 결

김미경展 / KIMMIKYUNG / 金美庚 / photography   2012_0531 ▶ 2012_0608 / 월요일 휴관

김미경_W-#1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70×7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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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0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월~토_10:00am~06:00pm / 일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근혜갤러리 GALLERY K.O.N.G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7-78번지 Tel. +82.2.738.7776 www.gallerykong.com

2012년 5월 31일부터 6월 8일까지 김미경의 사진전 『바당, 결』이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린다. 『바당, 결』에서 김미경은 제주 바다를 촬영한 사진 작품 23편과 영상작 1편을 선보인다. ● 이전 전시 『She is Who She is』와 『Paradise Lost』에서 물속에서 이미지를 인공적으로 연출했던 것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전 작업들이 실내의 수족관에서 의도적으로 '갇힌' 물을 보여주었다면, 『바당, 결』에서 작가는 자연 바다라는 '열린' 물의 공간을 새로이 발견한 것이다. ● 제주 출신인 작가는 유년 시절 바다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고향이 주는 느낌을 바다가 가진 다양한 얼굴에 담아 렌즈로 포착한다. 이번 작업을 통해 작가는 바다를 보는 관점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물결의 흐름을 세세히 잡아내어 바다의 다채로운 색을 보여준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를 연상시키는 김미경의 작품들에는 현재와 공존하는 기억의 서사들과 바다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관념이 유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 김미경의 작업들은 보는 이에게 바다가 주는 평온과 고요를 느끼게 한다. 지친 일상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이번 전시는 제주 바다가 주는 한 모금의 휴식과 평온을 선사할 것이다. ■ 황희수

김미경_W-#2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70×70cm_2011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이렇게 창공을 만드시고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구절을 인용하면 바다와 하늘은 하나의 물에서 갈라져 생긴 것이니, 늘 그 끝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하늘과 바다라는 근본적인 차이로 하늘은 항상 '올려다' 보고 바다는 '멀리' 보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시선에 익숙하게 된 데는 어쩌면 하늘은 올려다보기가 쉽고 바다는 멀리 내다보는 것이 쉬운 것에 연유했으리라. 여행객에겐 배를 타고 나가거나 휴가철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려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바다를 내려다 볼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뭍사람들에겐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하늘과 닿아있는 바다를 보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그들에겐 바다를 볼 때는 하늘을 볼 때와는 달리, 바다는 늘 멀리 펼쳐져 있다.

김미경_바당, 결 S-02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100×100cm_2012

이렇게 항상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아 있는 바다를 떠올리는 외지인에게 김미경의 「바당, 결」 연작은 작가 자신이 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 제주 출신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멀리만 존재했던 바다가 이렇게 가까이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다를 놀이터로, 삶으로 삼지 않으면 불가능한 시선이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바다는 손끝에 닿아 있다. 그러나 바다는 계속해서 가까이에만 머물지 않고 아무리 줌 인(zoom in)하여 끌어당겨도 멀어지는 하늘처럼 급작스럽게 물러난다. 이런 이중적인 시선이 공존하는 것은 바로 작가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 웃고 장난치며 때론 넘어지기도 하고 죽을 고비까지 경험한, 즐거움과 공포가 뒤섞인 바다는 그녀의 유년시절이자 기억 자체인 동시에 현재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즐거움 그리고 유년기의 추억이 공존하는 바다는 작가에게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규정한 숭고(sublime)가 불러일으키는 감정 그 자체이다. 강한 힘과 위험이 결합 될 때만이 숭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바, 공포를 배제한 숭고는 존재할 수 없다. 버크 역시 바다를 가장 숭고한 대상이라 하였다. 다만 작가에게 바다는 단순히 공포를 내재한 숭고한 대상이 아닌, 어린 시절 놀이터로 그리고 삶의 공간이었기에 이러한 감정에 따른 시선은 바다를 가까이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바다에 대한 시선은 그대로 「바당, 결」 연작에 반영된다.

김미경_바당, 결 S-04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100×100cm_2011

바다를 위에서 그대로 내려다봄으로써 닿을 듯 가까워 졌으나 바다는 절대 인간에게 가까워질 수 없는 무한한 대상이다. 이는 제주가 고향인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바다는 이해했고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것의 파편과 순간만을 알 수 있게 허락할 뿐이다. 한 치의 동일한 순간을 지니지 않은 바다의 순간의 순간을 포착할 수밖에 없다. ● 오히려 이러한 바다를 이해한 것이 김미경의 이번 바다 작업이 아닌가 한다. 바다는 자신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작가의 내리꽂는 시선과 오랜 시간 바다에 대한 응시는 프레임 안의 바다를 프레임 속에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한다. 깊으면 깊은 색으로, 얕으면 엷은 색으로, 바람이 강한 바다와 잔잔한 바다, 바다 밑에 큰 바위가 있는지 작은 조약돌이 있는지 어떤 모래가 깔려 있는지 등 바다의 깊이와 바다 속 자체의 구성물, 그리고 여기에 바람과 시간과 온도 등 제주의 모든 것이 이번 연작의 낱장의 사진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리하여 이 바다 사진은 제주바다일 뿐만 아니라 제주에 대한 정보 자체이다.

김미경_바당, 결 S-09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70×70cm_2011

그런데 여기서 나의 의문은 작가에게 '숭고한' 감정을 일으키는 바다가 왜 「바당 , 결」 작업에서 그토록 아름다운가이다. 물론 숭고한 감정의 예술 작업이란 것이 웅대하고 장엄하며 공포 자체를 내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가 느낀 바다에 대한 감정과 작업 간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버크가 말한 바 있는 공포가 직접적인 위험으로 다가오지 않기에 생긴 일종의 안도감(delight)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뒤집어 하면 '숭고한' 바다는 아름다우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다시 김미경의 바다는 진정 아름다운가. ● 이에 대한 답 찾기와 또 다른 연이은 질문은 「바당, 결」 작업을 보는 이에게 넘기며, 이런 의문에 대한 시작 자체가 작가와 그의 작업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며 애정이 아닐까 한다. ■ 조영희

김미경_바당, 결 S-01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100×100cm_2012

섬 아이들은 바다에서 나고 자란다. 내 어린 시절은 바다가 내쉬는 숨결로 가득했다. 바다 냄새가 온몸을 채웠다. 해녀의 딸로 태어났지만, 나는 결코 해녀가 될 수 없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나는 물을 피해 안전한 내 온실로 달아났다. 물이 두려웠다. ●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내 발목을 붙잡았다. 호흡이 가빠오고 온 세상이 시퍼렇게 나를 짓눌러가던 순간, 내가 보았던 바다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엇'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절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에서 도망칠수록, 나는 도리어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 사랑과 증오는 같은 뿌리를 갖는다고 했던가. 바다에 대한 내 감정을 애증이라 표현하기는 어렵다. 바다는 내가 감히 좋아하고 미워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애증과 마찬가지로, 상반되는 감정들이 같은 대상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두려움과 설레임, 무한한 동경과 알 수 없는 거부감, 바다를 떠올리면 나는 매번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바다 앞에 서면 사라졌다. 바다 그 자체가 언제나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김미경_바당, 결 S-05_파인아트지에 피그먼트 잉크_70×70cm_2011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한없이 좋았다. 그럴 때면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만은 바다와 나, 단 둘이 은밀히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작업 과정에서 나는 예전처럼 바다와 조용히 나누던 대화의 순간들을 맛볼 수 있었다. 「원초적인 바다?」의 작업은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그리고 내 안에 공존하는 기억의 바다를 끌어내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사진을 시작한 순간부터, 또는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훨씬 이전부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공간을 내 몸은 예감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바다로 돌아가겠다고. 그 '때'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바다의 얼굴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기억과 느낌을 찾아 셔터를 누르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 오딧세우스를 유혹했던 세이렌처럼, 물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물빛과 물결만 남는다. 소리도, 시간도, 나 자신도 전부 지워졌다. ● 물결은 바다가 전하는 메시지이며, 기억의 흔적이다. 작업과정에서 나는 우선 물결에 착안했다. 그 날 물결의 흐름에 따라 작업도 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 감춰진 모래, 돌, 해초의 움직임까지 고려하여 바다를 담아내고자 했다. 희미한 흔적으로 보이는 바다 속의 형태와 색감을 잡아 낼 수 있어야 바다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 렌즈에 담은 얼굴들은 모두 제주도의 바다에서 나왔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줄 것 같은 어머니와 같다가도 불현듯 침묵을 지키고,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바다. 그 낯선 풍경들 속에서도 나는 낯익은 바다의 모습을 본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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