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View

황은화展 / HWANGEUNHWA / 黃恩和 / painting   2012_0613 ▶ 2012_0629 / 일요일 휴관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162×130.3×5.5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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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송아당 GALLERY SONGADANG 서울 종로구 안국동 52-6번지 Tel. +82.2.725.6713 www.gallerysongadang.com

황은화의 아나모픽 페인팅 : 또 다른 눈으로 드러내는 현실-'회화하기'에 대한 질문과 탐색 ● 그녀는 화가이다. 캔버스, 특수 제작한 입체 구조물, 실내의 벽면, 천장, 바닥은 물론 볼록과 오목이 교차하는 실외의 건축적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회화의 바탕이 된다. 그녀의 회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회화가 실행됨으로써 비로소 그 회화의 바탕이 도드라지게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차원의 공간에 이차원의 회화가 펼쳐지게 만드는 그녀의 독특한 회화 전략에 기인한다.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91×72.7×4.50cm_2012

그녀의 회화는 가히 '공간회화'라 지칭할 만하다. 그녀는 2차원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3차원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린다. 마치 비디오 프로젝터가 3차원 건축물 위에 투사시켜 2차원 영상을 맺히게 하듯이, 그녀의 페인팅은 복잡한 3차원 구조물 위에 2차원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그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2차원 이미지가 올려진 3차원 구조물을 자연스럽게 함께 검토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 위에 올려지는 회화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작가가 제기하는 '또 다른 시각(Another View)에 관한 진지하고도 이지적인 문제의식을 대면하게 된다. 선, 도형, 색면, 선묘의 특징들이 두드러진 그녀의 회화에는 3차원과 2차원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주체와 대상'에 관한 현상학적 질문과 탐색이 짙게 배어있다. ● '회화하기에 대한 질문과 탐색'이 어우러진 그녀의 회화는 최근 구상성을 띤 2차원 캔버스 작업으로 심층화되면서 이전의 단순하고도 심도있는 회화 주제를 다각도로 변주해내고 있는 중이다.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91×72.7×4.50cm_2012

주객 통합의 시각성 ● 황은화의 회화는 흥미롭게도 르네상스의 데카르트적 원근법 시각(vision)과 더불어 현대의 메를로퐁티 류의 주객관통합의 시각성(visuality)을 함께 견지하고 있다. 데카르트적 원근법에서 시각 주체란 인간주의적 존재라기보다는 시공간 좌표상의 한 점으로부터 기인한 탈육체적 주체이다. 그것은 화가의 입장에서 '하나의 눈'을 통해 소실점을 만들어내는데 골몰하는 추상화된 눈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화가가 바라보는 눈을 빌려서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탈육체의 눈이기도 하다.

황은화_Another View-컵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72.7×90.9×3.50cm_2012

황은화의 회화는 3차원 현실을 2차원 회화로 재현하는 데카르트적 시각이 지닌 일루저니즘의 정체성을 거꾸로 작동시킨다. 즉 2차원 회화를 3차원 현실 위에 구축한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의 회화의 출발점은 분명코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반면 회화의 도착점은, 자신이 구축한 환영의 질서 안에 관객이 눈을 맞춤으로써 완성된다는 점에서,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을 고스란히 지닌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적 재현의 '이념'으로부터는 떠나있으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그 '원리'를 지독하게 계승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적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테면 전시장 내의 3차원 벽면과 모서리, 바닥을 잇는 거대한 2차원 도형은 관객의 눈에 처음부터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무심한 상태로 전시장을 방문했던 관객들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절되어 있는 색면 들로 부터 온전한 2차원 도형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32×32×3.50cm_2012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동시에 그녀의 회화를 메를로퐁티 류의 주관객 통합의 시각성으로 걸터앉게 하는 독특한 위치가 된다. 생각해보자. 데카르트적 원근법에 충실한 2차원 회화를 탈육체적인 시각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우리가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화가의 시점에 맞춤으로써 그 대상을 비로소 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감상자의 눈으로 대상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눈을 빌려서 대상을 간접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자연을 화가가 그린 풍경화를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38×37.3×3.50cm_2012

황은화의 회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화가의 눈을 빌려 어떠한 대상을 간접경험하는 차원이기 보다는 이리저리 몸을 옮겨 작가의 시점에 눈을 맞춤으로써 비로소 경험되는 탈육체적 차원을 분명히 시작부터 의도한다. 그녀가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이념 보다는 그 원리를 지독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 흥미로운 것은 관객이 자신의 눈을 버리는 탈육체의 차원이 진행되는 동안 스멀스멀 관객 자신의 육체적 노동이 배가되면서 육체의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수평적 시각으로 진행하는 전통적인 회화 감상의 태도를 전복시킨다. 관객들에게 조각이나 설치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의 전방위적인 주항(circumnavigation)의 태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화가의 시점 주위를 부단히 어슬렁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 이 지점이 화가의 시각과 동일시하려는 관람자의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을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관람자들의 실제의 눈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만든 주관적, 육체적 시각을 동시에 형성하는 지점이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시각성이란 그녀의 작품이 종국에 도모하는 목표지점이다. (중략) ■ 김성호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60.6×50×3.50cm_2012

황은화-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왜상을 주는 화면 ● (중략) 그 사물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입체물/부조가 되어 돌출되어 있다. 그것은 회화와 입체/저 부조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림의 내부나 피부에 속해있지 않고 그로부터 분리되어 입체가 되었다. 동시에 그 입체는 다시 화면 내부로 수렴된다. 따라서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캔버스 평면에 속한 그림의 일부인 동시에 그로부터 일정한 높이를 갖고 튀어 올라온 조각/부조이다. 나로서는 화면에 그려진 사물의 가장 튀어나와 보이는(우리 눈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돌출되어 보이는, 착시로 인해 평면/선들이 순간적으로 입체로 다가온다), 꼭 지점처럼 튀어 나와 보이는 바로 그 부분을 입체화시킨 전략이 흥미롭다. 그것은 환영과 실제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라인으로 암시된 사물을 보는 순간 관자들은 정신적 활력을 통해 머릿속에서 실제 사물을 떠올릴 수 있다. 이때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부위는 그러한 연상을 더욱 강하게 자극한다. 동시에 환영을 실제의 사물로 되돌려주는 셈이다. 아울러 그 한 부위가 돌출되어 다가옴으로서 즐거운 환영의 체험과 함께 기묘한 심리적 자극, 일종의 '포비아' 같은 것도 던져준다. 평면의 한 부위가 부풀어 올라 순간 보는 이를 찌른다.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생긴다. 나로서는 이 같은 타자의 유희와 체험을 적극 끌어들이는 전략이 흥미롭다. ■ 박영택

Vol.20120614l | 황은화展 / HWANGEUNHWA / 黃恩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