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OF PLACE

황연주展 / HWANGYUNJU / 黃娟珠 / installation   2012_1005 ▶︎ 2012_1024 / 월요일 휴관

황연주_경험과 연상에 의한 지도 드로잉_잉크젯 프린트, 페이퍼 커팅_70×1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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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005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 Gallery Jungdabang Project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4가 7-1번지 B1 Tel. +82.10.5296.5382 jungdabang.com

복합문화공간 솜씨 COTTONSEED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58-15번지 Tel. +82.2.2637.3313 cottonseed33.blog.me

잠시, 특수한 예술에 바치는 헌사 ●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가 수없이 들었다는 노래가 「보편적인 노래」이다. 보편적으로 보면. 보편적입니다. 보편적이지 않습니까. 보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보편. 보편. 내가 반복하는 보편 혹은 내게 반복되는 보편은 사실 독립하지 못하고 당신을 그토록 필요로 한다. 바로 당신이 아니래도 익명의 당신들이 보편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하다. 강고해 보이는 보편은 이렇게 허술하고 의존적이다. 보편의 이름으로 구축된 관계의 실금과 허상을 다루는 것이 있다면 예술이 그 중 하나이지 않은가. 구체적 특수로서의 예술말이다. 독창성의 신화에 다시 기대는 것이 아닐지라도, 또한 복제와 차용으로 여러 개의 특수가 현상한다 할지라도 예술의 의미는 보편을 특수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특별의 가치로 환원하여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여기에 단순한 의심을 품거나 정치적 의구심을 제기한다면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왜 이글을 읽고 있습니까. 당신은 왜 이곳에 있습니까.

황연주_SENSE OF PLACE展_2012

물론 관계가 실금과 허상으로 구성된 것일지라도 그 관계는 필요에 의해서 쌓이고 짜여진 것이다. 관계의 무수한 층위에서 이번 전시가 기반한 것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일환인 페이스북(Facebook)이다. 지난 1년 여간 작가는 페이스북에 사이트 프로젝트(site project) 클럽을 개설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이 프로젝트에는 간단한 규칙이 작동했다. 그 규칙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한 공간에 대해 한 장의 지도를 올린다. 작가가 그중 하나를 선정하여 제시하면 참여자들은 그 곳과 관련한 단편적인 추억에 대해 글을 올린다. 예를 들면 이렇다. "카페, 방파제, 언양불고기, 회센터, 해장국, 미팅, 림스치킨, 소라, 번데기. 생각나는 기억과 장소를 올려주세요." "실크스크린, 우래옥, 테이프, 골목, 포장에 관한 추억들 있으세요?" SNS에 올리기 전까지는 나만의 추억이던 사연은 낯선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미묘하게 살이 붙는다. 참여자 사이에 공통감이 형성된다. 작가와 참여자들은 이 과정이 어느새 유기체처럼 증식하는 것을 목격했다. 하나의 사연이 부풀어 오르고 사그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연이 나무처럼 자라났다. 「장소감 연구 study of sense of place」는 이 나무의 드로잉이다. 손에 쥐어진 마우스로 나무의 성장기를 추적해 보면 어느새 낯선 동네에 서있게 되거나 혹은 강한 동질감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가지 끝에는 임의성이 작동한다. 비록 오늘의 「장소감 연구」가 여기까지라고 할지라도 당신도 이 드로잉을 증식시키는 참여자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하이퍼텍스트는 아니지만 하이퍼텍스트 구성의 발췌라고 할 수 있을 「장소감 연구」는 짜 맞추기, 엮기, 혹은 거미줄 구조를 빌려왔다. 네트워크를 이동시킬 때 관객은 재중심화를 경험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관심을 그 순간 탐구하기 위한 구성 원칙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중심성은 순간적으로 존재하고 주변은 중심만큼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전시의 모체인 페이스북이라는 매개 공간이 낳은 매개의 매개 행위는 선형적 서사에 그치지 않고 미디어를 재매개체로 기능하게 한다. 우리는 SNS, 웹에서 저장과 전송이 가능한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 어플리케이션 등의 혁신과 유용함을 언제든지 누리면서 한편으로 뉴미디어가 전하는 위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황연주_장소감 연구 (study of sense of place) - 낙성대 모모코_ 인터렉티브 비디오 설치_HD 모니터_2012
황연주_Sense of Place_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_2012
황연주_장소감 연구 Study of Sense of Place_ 합판에 종이, 잉크젯 프린트, 오브제 실_280×550cm_2012_부분

왜 작가는 지도와 추억을 추려서 전개도를 그리는 건가. 왜 그 장소로 갔던 것인가. 왜 그곳에서 물건을 모아온 것인가. 왜 그곳의 소리를 채집한 것인가.『재매개』의 저자인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은 재매개(remediation)가 라틴어 remederi 즉 치료하고 회복시켜 건강하게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밝힌다. 재매개를 예술의 문맥과 접속시켜 네트워크상의 바이트가 지니던 기호적 상징을 재편하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었다. 작가는 지난 1년여 이 프로젝트와 함께 즐거웠다고 얘기한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조촐하게나마 함께한 이들에게 전하는 헌사이다. 2011년 개인전에서 인사미술공간 2층 어두운 공간에 수집된 오브제를 매혹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연약하게 매달아서 선보이던 방식은 한해를 지나서 작가가 직접 수집한 오브제를 내어놓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너무 소중해서 빌려줄 수 없는 것은 제외했다고 하더라도 소중한 사물들은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숭엄이나 장관과 같이 거창한 말까지는 아닐지라도 사물들 아닌 그 사물로서 각각은 진솔하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지난해의 수고로움이 지인들과 낯선 이웃들에게 있었다면 이번 해는 작가의 몫이었나 보다. 작가는 SNS를 통해 사연을 경청했고 그들이 지도상에 처했던 곳으로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단 그곳의 사진을 찍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찍어야하는 것인가. 사진이 지닌 도려내기의 원리로 아무리 장소를 담아오더라도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사진에 담겨있지 않은 그곳에 무언가를 남기고 온 기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 찍기를 멈추고 다른 방식을 찾았다. 소리를 채집하고 사물을 선택하는 것. 그래서 여기에 「너의 추억과 나의 기념품」과 「스쳐 지나가다(사운드 작업)」가 있다. 소리는 참여자의 추억과 작가의 개입 사이에서 작가가 선택한 중재 지점이다. 물론 소리 채집은 지난 개인전에서 지인들의 인터뷰를 편집해서 들려주는 방식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브제의 경우에도 작가가 직접 수집한 것들을 선보이고 있듯이 소리도 찾아간 그 장소들에서 발휘된 장소감에서 비롯한 작가의 선택이었다. 작가는 참여자의 추억을 굴절시키지 않으면서도 작가로서 가능한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를 탐문한다. 사진의 시각적 현존을 포기한 대신 소리를 통해서 얻는 것은 오히려 청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으로의 감각의 확장일지 모른다.

황연주_너의 추억과 나의 기념품-면목시장_디지털 프린트_35.56×27.94cm_2012
황연주_당신의 추억과 나의 기념품 YOUR MEMORY AND MY SOUVENIR_ 특정장소에서 수집한 오브제_50×23×23cm×12_2012

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맴도는 고민이라고 얘기했 다. 그녀가 얘기할 때 그 순간 헤아리지 못했던 메시지가 조금 뒤늦게 당도한 기분이 든다. 작가는 오랫동안 관계하는 이들의 충실한 벗이자 관계에서 희망하는 예술의 전달자 역할을 성실히 해냈다. 이번 전시는 진지하게 경청한 후에 작가가 여는 말문일지 모르겠다. 그 장소들을 향해 비록 한 보 늦게 출발했지만 어떤 사연도 소홀히 다루지 않고 그 장소들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않으며 시각 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눈으로 재단해서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 다시 그 곳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작가가 내려놓은 오브제들이 여기에 있다. 새로운 미디어는 오래된 미디어를 재매개할 수 있고 오래된 미디어도 새로운 미디어를 재매개한다. 오브제로 보편화시켜 부르는 사물은 잠시 전시라는 특수한 문맥에서 주목받다가 이내 관계에 기입될 운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쉬워도 당혹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은 분명 분배와 유통의 사회 네트워크에서 작동한다. 이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당대의 예술에 대해 이미 마르틴 키펜베르거는 1990년대에 예술의 과제는 네트워크를 노골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라 주장한 바가 있다. 예술에서 오브제는 이미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경로 및 순환에 의해 정의되고 있다. 예술의 의미는 보편을 특수화하는데 있다는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새 사회 네트워크로, 더 쉬운 말로 일상에서 보편적인 일들이 되기 전에 그 때, 그 장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예술에 기입(inscription)하는 행위, 이것이 작가가 하고 있는 일이었지 않을까. 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오늘의 답은 이렇다. ■ 김현주

Vol.20121005h | 황연주展 / HWANGYUNJU / 黃娟珠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