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아빠로부터 (1966-1971)

안경희展 / ANKYUNGHEE / 安庚喜 / photography   2012_1105 ▶︎ 2012_1129 / 주말 휴관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1_피그먼트 프린트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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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2 이랜드문화재단 2기 작가공모展

주최,기획 / (재)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주말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과거로부터 날아온 편지들 ● 사람이 죽으면 눈을 감는다. 삶에 대한 미련으로 눈을 뜨고 죽은 자들의 눈도, 눈을 통해 바라보았던 이세상과 영원히 이별하라는 의미에서 뜨고 있던 눈을 살며시 감겨준다. 카메라도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렌즈에 맺힌 수많은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잡아 올렸다가, 렌즈뚜껑을 닫는 순간 기록을 멈춘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았던 카메라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기의 렌즈와 사람의 눈은 닮아 있다. 사진은 삶과 죽음의 사이 속에 담긴 무수한 사건들을 남아내며, 찰나적 순간을 영원한 시간 안에 박제시키는 리얼리티(reality)가 강한 예술이다. 특히나 사진은 삶의 순간과 그 안의 이미지들을 현존화시키는 도구다. 사진을 찍는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고, 남은 이미지만이 현존된다. 과거가 미라와 같이 박제된 셈이다. 사진은 이미지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에 담긴 감정이나 추억들까지 함께 담아낸다. 그래서 사진은 늘 과거를 현재화시키고, 사진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당시의 시간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영속시킨다. 사진 속의 것들은 현재와 다르다. 흐르는 시간을 담아내고 싶지만, 망막에 맺히는 찰나적 시간을 이미지로 포착할 뿐이며, 사진 속의 이미지는 늘 현재와 큰 시간적 괴리감을 준다. 하지만 찰나적 순간이 주는 아쉬움과, 이것을 영원히 박제하고픈 욕망은 사진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애착하는 것들에 대해 줄기차게 스틸이미지로 기록하고, 담아내게 만든다.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3_피그먼트 프린트_2012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4_피그먼트 프린트_2012

책시리즈 사진작업을 여러 차례 선보였던 안경희는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보여준다.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유품인 '아버지의 편지' 통해, 지금은 부재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기의 따뜻했던 기억들, 혹은 이로 파생되는 복잡한 감정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베트남으로 해외파견근무를 나갔던 6년에 걸쳐 보내온 편지들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그간의 책사진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는 시리즈작업인데, 편지 사진의 모티브 역시 동일하게 '아버지'이다. 다만 기존에 보여주었던 낡고 눅눅해진 아버지의 책들을 렌즈에 담아내며 아버지를 회상하는 방식에서, 그 존재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편지'라는 소재로 변모한 것이다. 사진의 대부분은 배경색을 달리해 접사로 촬영되었다. 얇은 종이를 들춰내며, 종이의 결이라든지 섬유질까지 섬세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또한 특정 텍스트가 돋보이게 편지를 확대한 사진도 있으며, 낡고 헤어져 오래된 시간의 때를 부각하기 위해 편지의 모서리를 강조한 사진도 있다. 기존 책 작업과 비교해 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편지라는 것이 두께감이 적은 낱장의 종이가 고작 서너장이 전부이므로, 이러한 사물을 찍는 다는 것은 나름 고된 작업이었으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와 종이 사이의 공기라든지, 편지 장을 넘기는 순간의 호흡 등이 매력적으로 표현된 사진이다. 무엇보다 배경을 이루는 다양한 한지의 색은 낡은 편지와 어우러져 깊은 조화를 이룬다.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7_피그먼트 프린트_2012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14_피그먼트 프린트_2012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 사이에 오갔던 아버지의 편지에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과 교육 문제, 미래에 대한 계획,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안부 등을 주 골자로 한 구체적인 의사소통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편지'가 제작된 시점에서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사진 속의 편지들은 하나같이 낡고, 누렇게 빛이 바랬으며, 여기저기 찢기고 손때가 입으며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작가의 나이만큼이나 편지도 나이를 먹은 셈이다. 그러나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KOREA' 라고 찍힌 잉크의 우편소인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고, 처음 편지를 접었던 아버지의 흔적대로 접힌 자국도 있다. 무엇보다도 편지라는 사물의 특성상 텍스트가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편지에는 그 시절 작가의 아버지가 쓴 시원스런 글씨가 그대로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보내온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편지는 하나같이 '아빠로부터'라는 자식중심의 멘트로 마무리 되어있다. 돌이 갓 지났던 어린 시절의 작가를 포함한 다섯 식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처럼 당시를 함께 할 수 없었던 아버지 자신의 부재에 대한 애처로움이 '아버지로부터'라는 글귀로 부각된다. 물론 이 편지는 작가의 어머니에게 쓴 것이겠지만, 4형제가 점점 자라면서는 함께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점을 의식한 의도적인 마무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렇게 편지는 '아빠로부터 온 편지'로 지금까지 기억되며, 간직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지내던 파견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작가의 아버지는 이후 몇 년간 병치레를 겪다, 작가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유년시절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귀국 후 아버지와 함께했던 몇 년간의 짧은 추억들만이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작가가 회귀하고픈 아름다운 시절로 남게 된 것이다.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17_피그먼트 프린트_2012
안경희_The Letter – from dad(1966-1971) No.18_피그먼트 프린트_2012

이제는 기억 속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젊은 시절의 아버지 같기도 하고, 늙어가는 어머니 같기도 하며, 유년기의 나인 것 같다고 고백하는 작가. 이러한 묘하게 섞인 여러 감정을 지닌 안경희는 그 시절 아버지의 편지를 보며, 새삼 느끼게 되는 아련한 추억과 여러 심정을 사진 안에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서 출발한 작업이지만,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이어지는 사진들은 따뜻하고, 가슴 깊은 곳을 어루만진다.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시대에, 옛 손편지를 찍은 사진작품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며, 감상자에게 알 수 없는 위로를 선사하는 것이다. 안경희는 되돌릴 수 없는 아름다웠던 시간들, 혹은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기억들을 아버지의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존화시킨다. 이 사진들은 안경희 작가만의 기억을 넘어서, 이미 이별했거나 언젠간 부재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기에, 한 개인의 사진이자 그 누구의 기억도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안경희의 사진을 마주할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까닭일 것이다. ■ 고경옥

Vol.20121105a | 안경희展 / ANKYUNGHEE / 安庚喜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