線 LINE (1985-2012)

문혜정展 / MOONHYEJUNG / 文惠正 / painting.installation   2012_1106 ▶︎ 2012_1112

문혜정_진달래숲_캔버스에 유채_162×386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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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전력공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제1전시실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어느 선상線上에서 꽃들을 바라보며 ● 1979년 12월에 제출한 문혜정의 석사 학위 논문 제목은 『현대회화의 표현양식에 있어서 동․서양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였다. 당시 그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를 서화전통에서 해석해 그 접점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의 결론은 추상표현주의와 액션페인팅을 수용하는 우리의 입장은 서화전통으로 인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서구현대미술과 서화전통을 비교 고찰 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가 다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학풍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서울대 미대 초대 학부장인 장발의 미술 교육관-외국 것에 대해서는 섭취하고, 한국 것에 대해서는 정리를 하여, 두 가지를 종합한 것을 과학적으로 비판 정리해 나가는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대학 기초과정에서 동․서양화를 공통적으로 배워야했기 때문이다. ●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문혜정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의 붓글씨를 통해 색다른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그가 일본에서 본 붓글씨는 초서체를 본 따 만든 표음문자인 히라가나로 인해 예술적 선묘감과 율동미에 비중을 둔 일종의 행위예술로서 '서도書道'였다. 그리고 그는 표현주의 전통이 깊은 독일로 가서 드로잉으로 일가견이 있는 지도교수와의 수업을 통해 드로잉에 대한 지평을 새로이 넓혀가기 시작했다. 붓놀림, 서도, 드로잉. 이들의 혼융을 통해 드로잉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인식이 발현되기 시작한 작품이 1989년 종이에 연필 선으로만 그린 「시적 울림 Poetische Vibration」이다. 연필의 특성상 모필毛筆과 비교해 훈련을 통한 용필用筆의 미학이 제한적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절로 느껴지며 그 움직임은 최근의 유화작품 「꽃 이야기」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그는 붓과 연필 그리고 나이프도 선을 긋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특히 그는 지속적으로 손가락을 사용해 오고 있으며, 이는 캔버스와 작가의 신체가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좀 더 생동감 있는 선을 표현할 수 있다. 일련의 여정을 통해 문혜정은 표현양식으로서의 선線을 두루 경험하게 되었다.

문혜정_정원_캔버스에 유채_97×234cm_2012

"관점이 대상을 만든다."는 말과 같이 화가 자신의 관점-이를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은 적절한 양식을 필요로 한다. 문혜정은 가시적인 양식으로 선에 주목하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논문제목에서 '양식'의 수식어로 '표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표현은 내용을 수반한다. 문혜정보다 앞선 세대의 작가들 중 몇몇 지필묵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서화의 선적인 요소를 통해 유화와 지필묵의 상호매체성에 관심을 표명하며 그리기의 추상화抽象化에 매진한 것과 비교하면 문혜정은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면서 그런 표현을 위해 동․서회화의 기본 양식으로서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혜정은 전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여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다.

문혜정_인삼밭 Ⅱ_한지에 잉크_각 75×185cm_2010

1985년 문혜정의 첫 번째 개인전 『붓놀림』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형상이 배제된 추상표현주의적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 유학초기에 일련의 「시적 울림」 드로잉 연작을 그렸으며 그때까지도 여전히 형상은 배제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원시생명체와 같은 유기적 형태의 꿈틀거리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그림에 이미지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그의 작업이 추상화과정을 벗어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꽃과 꽃봉오리이다. 꽃과 꽃봉오리는 최근까지도 그의 그림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둘째는 풍경화속에 등장하는 산 혹은 수직의 기둥 이미지이다. 셋째로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사물의 윤곽선만을 그리고 약간의 붓질이 더해진 그림들이다. 마지막으로 자연을 소재-봄, 대지, 밤하늘 등-로 한 꿈틀거리는 유기체적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꽃과 꽃봉오리의 이미지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 네 가지 이미지들 중 그의 작품 속에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등장한 것은 꽃과 꽃봉오리이다.

문혜정_인삼밭 Ⅰ_한지에 잉크_210×250cm_2010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까지-유학을 마치고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노마드적인 삶을 살며 작품을 하던 시기-의 그의 그림은 채도가 낮다. 심지어 바탕색이 검정색이기도 했다. 그의 꽃그림도 당시 다른 소재의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바탕이 어둡고 채도가 매우 낮다. 그림속의 꽃은 일반적으로 꽃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화사한 청각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1991년에 그린 150×150cm 크기의 캔버스화면을 가득 채운 꽃 한 송이는 그 크기와 낮은 채도의 바탕색, 그리고 꽃과 함께 그린 마치 뱀과 같이 보이기도 하는 줄기와 뿌리로 인해 그 느낌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한다. 그는 꽃만 그린 것이 아니라 꽃을 받치고 있는 줄기와 뿌리를 포함한 그 식물 전체를 그린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꽃을 위해서는 흉해 보이는 줄기와 뿌리-뿌리의 상징성을 고려해 보자-가 있어야 함을 관객에게 상기시켜주고자 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적 울림』에서 보여준 생동감 넘치는 선의 느낌으로 꽃과 꽃봉오리의 이미지를 흰색을 주조로 한 선으로 그렸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는 그림의 전체적인 무거운 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 나이프만을 사용해 선적인 요소를 살려 그린 『풍경화』는 수직․수평선만을 사용하였으며 그림의 톤은 전체적으로 잿빛 회색이다. 이런 풍경에 수직의 검정 기둥 이미지가 들어간 그림은 제목을 「Monument」라 하였다. 그리고 그는 산과 같은 이미지들을 그렸다. '산과 같다'하는 이유는 전체적으로 그가 그림을 초점이 맞지 않은 듯 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몽환적이다. 『검은 방』과 『제단』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그림들은 검은 색 바탕에 흰색 선으로 육면체의 이미지들을 외곽선으로만 그렸다. 검은 색 밑으로는 이전에 그린 그림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무엇인가를 그렸던 그림을 검은 색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는 그림 속 이미지의 대상인 듯 한 궤짝과 오브제들을 함께 놔두었다.

_문혜정_연꽃풍경 Ⅳ_캔버스에 유채_97×162cm_2004

1999년 작인 「봄 Spring』과 「땅으로부터 From the Earth」 두 점만은 당시 다른 그림들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밝은 색조를 띄고 있다. 특히 「봄」은 작품제목과 같이 화사한 새순의 연녹색과 더불어 손가락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통해-그는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렸다- 갓 핀 꽃의 생기가 돋보이게 표현했다. 그리고 2004년 『울림』이라는 제하의 전시에서 보여준 「연꽃」연작부터 그의 그림은 밝아졌다. 더불어 「봄」과 유사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드러나는 그림「5월」도 그렸다. 봄, 특히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그의 중‧고교시절의 기억과 추억들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문혜정이 「연꽃」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자신의 인생관에 커다란 변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심신의 치유와 평온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신의 치유와 평온의 상징으로서 연꽃을 선택하여 그리게 되었다. 이전에 그가 그린 꽃은 관념적인 '어떤 꽃'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연꽃」이전의 그림들, 그러니까 독일유학시절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노마드적인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치유가 필요했던 그의 어떤 상태를 표현한 그림들이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어떤 평범하지 않은 꽃들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 나이프로 수직과 수평의 경직된 선으로만 산이 있는 희미한 풍경화를 그리고 그 풍경 속에 검은 수직 기둥을 그린 심정, 그렸던 그림들의 흔적을 검은 색으로 덮어 지워버리고 그 위에 오로지 하얀 선들만으로 간략하게 그리기까지의 과정, 한지로 지난한 수작업을 통해 만들었던 인삼밭을 다시 필묵으로 재현하기로 한 결단 등을 통해 문혜정은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그때그때의 구체적 삶속의 상황에서 비롯된 느낌 혹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혜정_흰꽃 Ⅱ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1991

2007년 문혜정은 유일한 비디오작업인 「그 길을 따라」를 대표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 비디오작업은 그가 피정을 갔던 곳의 오솔길을 거닐며 찍은 사진들로 편집된 동영상이었다. 오솔길을 따라가며 다양한 풍광이 펼쳐진다. 갈래 길도 나오고 진창도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밝게 트인 공간이 나타나는 곳에서 끝나는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그는 그때 이미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새로이 설정한 것은 아닐까? 그의 작업과 작가노트는 글과 그림으로서 항상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 2010년 개인전 「그 길을 따라-Ⅱ」에서는 화사한 연분홍의 들꽃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 통념상 '꽃그림'은 '이발소 그림'과 같이 특정 부류의 그림에 대해 비하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녹색을 주조로 한 연꽃을 그리며 심신의 치유와 평온을 추구하던 그가 소위 '꽃그림'을 그것도 꽃분홍색으로 그렸다. 마치 형이상학적인 것에서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그의 작업에 엄청난 '격의 변화'가 도래한 것과 같이 보였다. 강했던 선은 색채로 대체되었고 어두웠던 그림은 밝아졌다. 과거 개체로서 등장하던 연꽃과는 달리 지금의 꽃그림은 마치 들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그린 것이 보인다. 그의 그림이 연꽃의 상징성에서 들판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는 느낌이다. 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실제로 그는 양평에서 작업하기 시작하며 이름 없는 들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격의 변화 내용은 그의 개인전 제목 『그 길을 따라』에서도 추론해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은 '개척해 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순응'내지는 '순종'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새로이 보여주는 꽃그림에서는 그 들꽃 벌판은 더욱 넓어지고-실제 캔버스의 크기도 커졌다- 좀 더 몽환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벌판에 과거 『인삼밭』작업에서 보여줬던 인삼 잎사귀들과 열매들의 이미지들이 하얀색으로 등장했다. 인삼밭은 문혜정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독일유학시절 한지를 재료로 인삼밭을 전시장 안에 재현한 설치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그는 인삼밭을 필묵으로 다시 그렸다. 독일유학시절 그의 원기를 책임져주던 것이 인삼이었다. 그에게 인삼은 심신의 원기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꽃그림에 인삼 잎사귀 이미지의 등장을 통해 문혜정은 양평에서 벌판의 이름 없는 들꽃들을 바라보며 순응의 의미를 재인식하였다면, 다시 서울로 귀환한 그는 순응의 재인식을 통해 자신의 작업과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었거나 혹은 얻어 가고 있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문혜정_흰꽃 Ⅰ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1991

문혜정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을 때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한국미술계는 세계화의 격랑 속에 휩쓸리며 비엔날레 열풍이 몰아쳤다. 더불어 미술시장은 점점 커져가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경쟁과 '볼 것으로서의 미술'로 스펙터클화를 수반하던 시기였다. 결국 작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점점 과시적 작품을 생산해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매체를 통해 무엇인가 표현을 해서 관객과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가자신의 표현이 솔직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작가의 진정성보다는 허장성세한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은 점점 더 물신화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림을 그리는 것의 시원을 되새겨봐야 한다. 이미지의 기원이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최초의 이미지 생산자들은 주술사였다는 것을. 그리고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주기적인 좌표확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년간 문혜정의 작업은 시류에 민감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충실한 표현이었다. 문혜정은 자신의 여느 동년배작가들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과 작업에 대해 성찰을 하고 자신의 삶과 작업을 지속적으로 보정해 나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작가는 "생산적인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문혜정의 진솔한 자기표현에 관객으로서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자문해 본다. 그의 꽃그림이 '어떤 꽃'에서 출발해서 '연꽃'을 거쳐 마침내 이름 없는 '들꽃'으로 변해간 여정은 무슨 의미이었을까? 그리고 그가 다시금 그 벌판의 들꽃들을 몽환적인 공간에 인삼 잎사귀들과 열매들을 같이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림은 '독화讀畵'하는 것이다. ■ 박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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