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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展 / JUNGJIN / 廷珍 / painting   2012_1108 ▶︎ 2012_1123 / 일,공휴일 휴관

정진_정각.am12:00_종이에 아크릴채색_160×107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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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10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사우스 PYO GALLERY SOUTH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B112호 Tel. +82.2.511.5295 www.pyogallery.com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살면서 여러 번 기억해 내지는 않더라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한번 뇌리에 남은 것은 잠복 기억(cryptomnesia)으로 존재하다가 비슷한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상기하여 데자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때로는 그 기억 속에서 무의식 아래 있던 또 다른 기억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진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떠나가는 여인과 남겨지는 대상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장갑, 아이스크림, 공과 같이 이전에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으나, 주인을 잃은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이 사물들은 작가의 과거 기억을 투영시킨 것이다. 무의식 속에 각인된 기억은 작품에 버려진 사물로 은유 되어 원근법에 맞지 않게 과장되거나 축소된 모습으로 캔버스의 전면에 등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이 사물들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언캐니(uncanny)적인 낯선 감정과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진_밤의 멜로디_종이에 아크릴채색_160×112cm_2012

정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작가가 살고 있는 주변의 모습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을 현재의 풍경 속에 등장시킨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흐름을 작품에 올려놓는다. 이 시간성은 작가 특유의 날리는 듯 한 붓 터치와 한 캔버스 안의 다른 시점으로 인한 공간의 분리, 여러 번 겹쳐진 물감들로 더욱 강화된다. 특히 정진만의 강렬한 원색적 색채 밑에 언뜻 보이는 형광의 핑크 색상은 과거의 잔상, 혹은 과거와 현재가 통하는 급격한 시간의 흐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도적으로 남겨둔 가장 자리의 여백 또한 완결된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풍경에 중첩시킨 정진의 작품은 낯설지만 친밀하기도한 데자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희미한 기억의 풍경 안에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다.

정진_외딴방_종이에 아크릴채색_117×163cm_2012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풍경의 한편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헨젤과 그레텔, 행복한 왕자와 같은 동화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행복한 줄거리 뒤에 비극적 운명이 깔려있는 이 동화들은 평온한 일상 이지만 곧 비극이 닥쳐오리라는 작가의 불안한 감정을 투영한 것이다. 이 암유는 행복한 일상에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의 사적인 풍경에 누구나 알법한 보편적인 동화의 풍경을 투영시킴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상황을 한 발짝 멀리서 관조하며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간다.

정진_14-1_종이에 아크릴채색_90×73cm_2010

정진은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붓터치와 색감에 표현해내며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보통의 유화나 아크릴 화처럼 면이 아닌 굵은 선들로 이루어진 이 감정의 풍경은 한번의 붓 터치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불러들이고 감정과 가장 맞닿아 있는 색채를 만들어 낸 후 솔직하게 그어 내린 선들로 이루어진다. 또한 정진의 작품은 관찰자의 위치가 모호하게 설정 되어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화면의 중심축이 기울어져 있거나, 아주 재빨리 포착한 것처럼 스쳐가는 풍경처럼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각은 스냅사진의 포커스와 닮아있다. 이는 마치 비밀스런 사적인 사건을 타자인 관찰자가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불안한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의 관찰자는 과거의 풍경을 성인이 된 자아가 다시금 조심히 돌아보는 시선일 것이리라 생각된다.

정진_246_종이에 아크릴채색_128×97cm_2011
정진_끝없는 싸움_종이에 아크릴채색_129×86cm_2012

작가가 돌아보는 이 풍경은 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풍경이다. 불안과 공포의 순간인 이 순간은 한편으로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라깡의 학설을 발전시킨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의하면, 인간은 모체와 분리되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처음으로 불안과 공포, 소외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 공포의 순간에 자아는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게 된다. 즉 혼자가 되는 극한의 공포의 순간을 다시 돌아보고 그때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정진의 작품은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 치유이자,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 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 전나래

Vol.20121108g | 정진展 / JUNGJIN / 廷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