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underwear

김정우展 / KIMJEONGWOO / 金正雨 / painting   2012_1112 ▶︎ 2012_1121

김정우_redunderwear20121_한지에 과슈_200×27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624h | 김정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듬 GALLERY IDM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 1511-12번지 2층 Tel. +82.51.743.0059 www.galleryidm.com

풍경을 질문하다 ● 합성된 사진을 보는 듯 한 화면. 흐릿하게 잘못 인쇄되었거나 급하게 이 장면 저 장면이 제대로 편집되지 못한 비디오를 보는 듯 한 거리 풍경. 김정우가 우리에게 내놓는 작업이다. 도심 어느 곳의 길거리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정경이다. 그래서 이것은 풍경화인가.

김정우_redunderwear20121_한지에 과슈_200×270cm_2012_부분

앞 사람에 가려 그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허리를 숙이고 사람들의 틈새로 비집고 그것을 보려하거나 발을 세우고 들여다보려 하지만 전혀 볼 수 없다.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거리의 정경이다. 그런데 우리의 눈은 그 인파 뒤쪽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들여다보려는 여자들의 뒷모습에 눈이 간다. 화면 속의 인물과 그림을 보는 이의 시선이 다르게 배치된 그림보기. 그 흔한 장면이 김정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형식이다. 그의 작품에 목격되는 이중적 장치가 잘 드러난다. ●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잠시도 그곳에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곳은 그들이 시간대로 나타나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로 그곳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양새다, 어떤 실재도 갖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랫도리가 덜 그려진 채 제시되고, 얼굴과 얼굴이 몸과 몸이, 몸과 건물이, 소지품과 소지품이 서로 투사되는 그곳은 장소가 아니라 추상의 공간이다. 시간이 축적된 삶이 아니라 지나간 것들만이 환영처럼 새겨져 부유하는 공간이다. 건물만 요지부동일 뿐이지만 건물조차 인간을 담을 수 없는 가설무대처럼 뒤편에 놓여 있다. 건물만이 부동의 자세로 그곳을 지키고 있는, 그것이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가설무대이자 환영이 가능한 공간이이다. 환영이 일상인 공간, 일상을 환영이 아니라면 잡을 수없는 곳. 우리가 보는 그 곳은 무엇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지나는 그 공간은 과연 내 삶의 장소인가. 우리는 그것을 묻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질문들이 영사막의 빛무리처럼 명멸한다.

김정우_edunderwear20122_한지에 과슈_100×405cm_2012

공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성격은 만드는 사람들의 의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계획된 대도시는 그야말로 만드는 공간이라는 개념에 가장 적합하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시간과 노동과 제원을 투자한 결과로서 도시라는 공간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삶의 더께가 쌓이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된다. ● 그러나 김정우는 단도직입 이렇게 묻는다. 도시는 우리에게 장소로서 풍경화의 대상이거나 소재일 수 있을까 하고. 전원을 낀 도시 변두리, 계곡을 타고 흐르는 개울, 농번기나 농한기의 시골, 오래된 마을의 고즈넉한 모습, 강 안개 자욱한 강나루와 논배미가 올려다 보이는 산골, 고목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선 고향 그런 것이 풍경화였다. 때로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잡은 전경들, 잡다한 시장 속의 한 모퉁이, 그런 것들이 소재를 이루었다 그것들은 오래 동안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어제 봤을 때도, 오늘 볼 때도, 아니 한 달이나 일 년 후의 모습도 지금 모습을 지키고 있을 장소들이다. 그것이 풍경화였고 소재였다. ● 그러나 대도시가 형성되고 도시 생활이 일상으로 바뀔 만큼 인구의 대다수가 도시로 몰려든 시대, 지금도 도시의 풍경은 전근대의 시골 풍경 같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그런 장소로서 그려질 수 있을까.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그것들의 연속인 길거리. 혹은 대도시의 길거리가 만드는 장엄한 풍경이 우리의 일상이라면 그곳에서 근대적 풍경을 바라는 것은 턱없는 기대이거나 덜떨어진 낭만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김정우_redunderwear201214_한지에 과슈_105×78cm_2012

도시라는 공간, 도시라는 장소는 어떤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장소로서 경험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그의 화면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산다고 생각한 도시는 환영일 뿐이다. 어떤 곳도 내 경험과 삶이 묻어있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환영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라고. 우리는 그저 그곳에서 떠도는 것들일 뿐, 어떤 존재감도 갖지 못한다. 이렇게 저렇게 허둥대다 사라지고 말 뿐. 그곳, 도시는 결코 우리에게 어떤 장소도 내어주지 않는다고. ● 풍경으로 묘사될 수 있는 도시는 없다. 번잡하고 다양한 건물과 일상의 악다구니들이 판치고 넘치고 있지만 그곳에는 번성한 시간들, 지나간 시간들이 환영처럼 드러날 뿐 나는 그곳 어디에도 있지 않다. 사람도 건물도 사건도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그들은 그저 차이로서 나타났다 사라질 뿐 어떤 것도 그곳에 머물고 자리 잡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합성된 화면이나 그림처럼, 컴퓨터 화면 안에서 온갖 정보들을 모으고 자르고 재조합 하여 만든 사진처럼 온갖 것이 드러나지만 실재를 가지지 못한다. 도시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그곳을 지난다. 합성과 혼성, 이동의 순간들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잠시도 쉴 줄 모르는, 잠시도 그곳에 머물러서 장소가 되지 못하는 곳이다. 다급한 흐름만을 보여줄 뿐, 그런 시간만이 지나는 공간일 뿐, 개인의 체취가 묻어서 우리가 되고 하나의 장소로서 연대감이 형성되는 곳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혼성과 시간, 의미 없는 차이들이 난무하는 소음과 정경들, 건물 사이로 은성한 불빛과 넘치는 광고판들이 합성된 가상공간일 뿐이다.

김정우_redunderwear201215_한지에 과슈_100×78cm_2012

그런 면에서 김정우의 그림, 합성된 이미지들의 형식은 오늘날의 도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 재현은 사진과 컴퓨터로 가능한 묘사이다. 전통적인 풍경화의 묘사와 시선으로는 결코 잡아낼 수 없는 풍경이다. 풍경 자체가 전혀 다른 의미로 형성된 그리기임을 보여준다.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도시라는 괴물의 등장은 풍경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축적된 시간이 아니라 지금 지나가는 시간, 지나가는 그것으로 생성되는 공간, 김정우가 본 것은 그런 것이다, 그의 사진합성을 기반으로 한 작업의 정당성은 바로 그 점에서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이 아니라 회화로 재구성되는 정당성, 혹은 재해석의 정당성 역시 그곳에 있다. 붓질과 색상으로 덮씌워진 장소, 시간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그것이다. 실사 사진 위에 재작업을 한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이것저것, 여기저기의 인간의 움직임을 합성한다. 사진이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그는 합성이라는 방법을 통해, 합성된 정경들이 서로 투사되는 형상을 통해, 시간의 흐름, 한 공간을 지나간 다수의 사연들과 표정을 잡아내고 있다. 그 위에 카슈의 색상들과 질감이 더해진다. 회화적 의미는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김정우_redunderwear201118_한지에 과슈_110×80cm_2011

그는 속도에 대항한다. 대항의 매개로 대도시의 풍경을 선택한 것이다. 번잡한 길거리의 일상을 통해 속도에 대항하는 것이다. 쉴 사이 없이 지나가는, 생각 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아내는 곳, 그곳에 시선을 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시선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방금 지나간 것과 지금 있는 것이 다른, 예상치 못하게 달라지고 있을 길거리의 정경들에게 묻는다. 그 속도를 담은 사진과 컴퓨터 형상위에 아날로그의 붓질과 색상으로 대항하면서 그것이 내 삶인지를, 그것이 내가 겪어내는 일상의 장소임을 묻는 것이다. ● 사물의 정교함, 사실성, 정확성, 디테일한 부분의 질감들, 정보와 기록성 등은 사진에 기댄다. 그것은 손수 묘사하는 대상과 다르다. 손으로 묘사하는 순간 감정이 개입되고 냉정하게 드러나는 즉물적인 형태는 흔들린다. 그러나 사진으로 잡힌 것은 한 순간 지나간다. 그것은 잠시 잡아낸 것일 뿐이다. 그것을 잡아내는 것으로서 의미의 전회를 구하는 것, 회화적 감수성을 덮씌우는 것이 김정우의 작업이다. 그의 재구성은 바로 사진의 사실적 정보를 의미화 하는 재구성의 의지이다. 익명의 '모든 것'에서 시선을 느끼게 하는 것, 속도의 순간에 붓질로 눌러보는 것, 사실성과 디테일한 질감을 뭉개버리는 색상들, 둔해진 형태의 외곽선들. 시선을 통해 장소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그의 아날로그적인 해석은 답이 아니라 재해석으로서 질문이다. ● 가로 4m 세로 1m. 가로 3m 70cm, 세로 2m의 크기라면 적지 않다, 그 크기로 눈앞에 제기한 정경에서 시선은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지금 그곳에 있는 듯한 풍경들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풍경이 아니다. 그곳의 거리는, 집들은, 간판들은 우리가 거기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들이 거기 있기 위해서, 도시가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 만든 환영이다. 지금 그곳에서 흘러가는 인파들, 사건들을 보아내는 시선이야말로 삶의 장소가 무엇인지를 묻는 일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이것은 어떤 장소도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풍경화가 아니다. ■ 강선학

Vol.20121112e | 김정우展 / KIMJEONGWOO / 金正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