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산 라운지

백경호展 / BAEKKYUNGHO / 白慶晧 / installation   2012_1101 ▶︎ 2012_1118 / 월요일 휴관

백경호_붉은산 라운지_디지털 프린트_가변크기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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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10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간1 GONGGANN1 서울 종로구 통의동 효자로 7길5 www.gonggann.com

우리는 천진하게 웃고 있지만(백경호의 작품에 관한 몇 가지 메모) ● 알다시피 사람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다. 안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이 이 사회의 징후다. 이 시대의 표정이다. 개인적으로, 그것들은 기억의 편린들이다. 그 편린들이 사회와 번번이 화합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닐 때가 더 많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부조리를 수없이 맞닥뜨리므로. 그 부조리는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들기 일쑤이므로. 그 얼굴은 우리가 이때껏 상상해왔던 어른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그 무시무시함에 놀라 번번이 나가떨어진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우리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다. 우리의 속은 점점 타들어간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웃는다. 입 안이 쓰다.

백경호_모든,함께,변화_캔버스에 유채_210×195×86.5cm_2011
백경호_나를지켜줘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연필_216.8×130.3×128cm_2012

얼굴과 몸뚱이 ● 우리는 지금 옷걸이에 걸려 있다. 얼굴 따로 몸뚱이 따로. 티셔츠와 바지처럼, 우리는 떨어져 있다 선택되고 나서야 겨우 만난다. 우리는 집이라는 옷걸이, 학교라는 옷걸이를 거쳐 사회라는 거대한 옷걸이에 몸을 걸어야 한다. 이 프레임을 박차고 나가면 제 몸에 맞는 옷걸이에 이미 안착한 사람들이 '루저(loser)'라고 손가락질한다. 옷걸이에 걸린 나의 얼굴을 본다. 웃고 있다. 이 웃음이 투명하기만 한가? 이 웃음이 천진하기만 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무수한 웃음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웃음은 단순히 즐거움과 기쁨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문득, 웃음 뒤가 궁금해졌다. 웃음의 속사정이 궁금해졌다. 어떤 때에는 입을 귀에 걸고 활짝 웃는다. 가슴속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줄도 모르고. 소용돌이가 발끝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소용돌이에 가려 집에 난 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기엔 문이 너무 작다. 겁이 너무 많다. 형형색색의 조각들이 가슴속에 날아와 순식간에 박히고 있다. 속이 난장판이 되었다. 어떤 때에는 일그러진 채로 웃었다. 얼굴에 금이 가는지도 모르고. 가슴에 셀 수 없이 많은 줄들이 그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볼이 상기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실은 그게 멍이라는 것도 애써 부정하고. 그래도 애써 웃는다. 부정하는 데에는 물론, 웃는 데에도 애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를 또 한 살 먹고 있었다.

백경호_너와나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181.8×227.3cm_2011

문어 ● 여기는 야구장, 문어가 나타났다. 문어는 거대하지만 아무도 문어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과 배트와 선수들의 움직임에만 눈길을 준다. 문어가 야구장에 배설물을 흩뿌려대도 사람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집중하는 것은 이런 거다. 돈, 승부, 만국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빛나는 것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기만 하는 자는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문어는 관찰자(observer)다. 그는 야구장을 내려다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무엇이 사람들을 저렇게 미치게 만드는 거지? 왜 사람들은 공 하나에 저렇게 목숨 걸 듯 환호하고 탄식하는 거지? 문어는 사람들이 이상하기만 하다. 정작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상관없다. 승리한 팀을 응원한 사람들은 오늘 기뻐서 술을 마실 테고 패배한 팀을 응원한 사람들은 오늘 슬퍼서 술을 마실 테니. 투수는 오늘도 졌다. 이긴 팀 선수들이 1루에서 홈까지 신명나게 뛰는 동안, 투수는 그냥 잠자코 서 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승리는 더욱 두드러지고 패배는 더욱 움츠러든다. 투수의 발이 무거워 잘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은 더 무거워서 오늘 밤을 견딜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다. 투수 옆에 있는 천사는 지금 그에게 무슨 말을 속삭이고 있을까. 상실의 충격이 너무 클 때에는 어떤 곡진한 위로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천사의 날개가 유독 무거워 보인다.

백경호_이름없음_금속판에 펜, 캔버스에 유채_50.7×40.8cm_2012
백경호_quit_종이에 유채_107×189cm_2012

플로잉 드로잉(flowing drawing) ● 선은 흐른다. 흐르다 철조망을 치기도 하고 때때로 숲처럼 우거지기도 한다.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표정을 입혀주는 것도 선이다. 그것은 사람을 캔버스 안에 가두기도 하고 도망치도록 창문이나 문을 달아주기도 한다. 선은 구속하면서 해방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을 따라가야 한다. 선은 방향만 있다. 제가 가야 할 방향으로 계속해서 뻗어나간다. 어디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로 무성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작가의 손에, 선의 다음 향방이 달려 있다. 그가 공포를 느낀다면 선은 부르르 떨 것이다. 그가 누군가를 막 사랑하기 시작했다면 선은 아마 콩닥콩닥 뛸 것이다. 그의 손길에 따라 천사의 날개는 한없이 가벼워질 수도, 납처럼 무거워질 수도 있다. 흐르던 선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순간, 천사는 자유를 얻는다. 그림은 마침내, 제목을 얻는다. (그의 드로잉들은 하나같이 「무제(untitled)」란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는 천진하게 웃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요동한다. 언제 하늘로 솟아오를지 언제 땅으로 푹 꺼질지 알지 못한다. 이 불확실함이 우리를 캔버스로 이끈다. 그 캔버스에 열기와 습기를 불어넣는다. 이 후텁지근함이 우리를 현장으로 이끈다. 그 현장에 미래안을 세워둔다. 그래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짐작컨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은 미래에도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백경호의 발길이 더욱 바빠진다. 백경호의 손끝이 더욱 정신없어진다. 외부는 정신없이 변화하고 내면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디선가 문어가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천진하게 웃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요동한다. 언제 하늘로 솟아오를지 언제 땅으로 푹 꺼질지 알지 못한다. 이 불확실함이 우리를 캔버스로 이끈다. 그 캔버스에 열기와 습기를 불어넣는다. 이 후텁지근함이 우리를 현장으로 이끈다. 그 현장에 미래안을 세워둔다. 그래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짐작컨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은 미래에도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백경호의 발길이 더욱 바빠진다. 백경호의 손끝이 더욱 정신없어진다. 외부는 정신없이 변화하고 내면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디선가 문어가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 오은

Vol.20121112i | 백경호展 / BAEKKYUNGHO / 白慶晧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