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ress Unknown 수취인불명

이원호展 / LEEWONHO / 李杬浩 / installation   2012_1114 ▶︎ 2012_1120

이원호_수취인불명_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 8개의 봉투, 소형녹음기_201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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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114_수요일_05:0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3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주소 있는 편지의 귀환 ● "기억Andenken이란 성해(聖骸)숭배의 세속판이다...사체로부턴 유물이 나오며, 경험이나 미화된 그 죽어버린 과거의 사건들로부터는 기억이 나오는 것이다." (벤야민)

이원호_두 개의 상자, 두 개의 공간_2012

1.『수취인불명』에서 이원호의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째 수신자 없는 편지. 그는 편지봉투에 소형녹음기를 넣은 후, 자기가 살았던 주소로 전송한다. 부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본인이다. 당연히 반송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은 녹음기에 낱낱이 기록된다. 둘째 장소의 이동. 정확히 말하면, 갤러리 공간(홍은창작예술센터)의 바닥을 변용하여 물체로 개조하여, 여러 지인들에게 부친다. 이 작업 역시 공간(관훈갤러리)으로 귀환한다. 입방체 작업 역시 편지처럼 짧은 여행을 하는 셈이다. 두 개의 작업이 두 개의 여행을 하고 두 곳의 장소에서 현전한다.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은 두 개의 입방체와 벽면에 달린 편지봉투만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복잡한 구성이다. 이렇듯 복잡하게 구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작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이원호_두 개의 상자, 두 개의 공간_2012

2. 이원호는 최근 작업에서 공간을 변용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하얀 면White Filed」을 보자. 축구장이나 테니장은 일정한 형태로 공간을 구획하며, 대개는 하얀색 띠로 한계를 설정한다. 이원호가 주목하는 것은 이 한계다. 그것은 있지만 없는 것이다. 한계는 경험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기능할 뿐이다. 따라서 일종의 금기로 작동하며, 보이되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합의된다. 사람들이 그림의 액자를, 연극의 무대를 일부러 '무시'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원호는 이것을 뒤집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물체로 만들어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놓고, 보라고 설득한다. 바닥에 있는 것은 바닥으로, 벽에 있는 것은 벽으로 펼쳐낸다. 한마디로 가시화한다. 본래 한계는 추상의 영역에 속하며, 구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아니면 그렇게 가정된다. 적어도 심리적・예술적 한계로 합의되고 인정된다. 하지만, 물리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며, 시공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 마련이다. 이원호가 적극적으로 '형태'를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원호_void展_홍은예술창작센터_2012

3.『수취인불명』역시 한계를 가시화하나, 몇 가지 점에서 변주를 시도한다. 이번에 이원호가 주목한 한계는 갤러리의 '바닥'이다. 그래서 두 곳의 전시장이 필요했고, 두 개의 전시를 연달아 치르는 상태다. 그랬기 때문일까. 전작과 달리 '흔적'이 강력하게 잔존했다.『Void』(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잘려나간 흔적이 그대로 '방치'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방체를 구성하기 위해서 '십자가' 형태로 바닥을 도려냈기 때문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뭐랄까, 마치 성해(聖骸)가 보존된 성소(聖所)에 온 것만 같다. 달라진 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우선 이차원의 면에서 삼차원의 입방체로 바뀌었고, 마치 개인이 여행하는 것처럼 여러 곳을 이동한다. 이 결과, 흔적은 더욱 강력해진다. 여러 사람을 거치며 생생한 '손때'가 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원호_void展_홍은예술창작센터_2012

4. 바닥으로 조립한 입방체가 전시의 뼈라면, 편지는 살로 작동한다. 앞서 작업들의 질료는 사적인 흔적이 있을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공원도 운동장도 갤러리도 동일하다. 반면에 편지라는 매체는 개인의 흔적을 진하게 발산할 수밖에 없다. "편지는 전화보다 훨씬 더 내면적이다." (김현) 게다가 앞서 지적대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나간 과거가, 사라진 '내'가 응답할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과정 역시 편지 안에 동봉된 녹음기를 통해서 고스란히 기록된다. 그랬기 때문일까.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았던 (그렇게 보였던) 편지와 입방체는 흔적을 통해서 서로를 끌어당기기 시작하며, 개인의 흔적은 더더욱 진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변화된 면모는 제목부터 확인된다. 예전의 작업에는 '하얀 면'이나 '장시간 노출Time Exposure'처럼 추상적인 제목이 달렸다면, 이번에는 '수취인불명'처럼 구체적인 제목이 붙었다. 개인의 현존이 물씬 강조될 수밖에 없다. 5. 전시의 대미는 구멍이다. 사람처럼 호흡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원호는 갤러리의 창문에 동그란 구멍을 낸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신·악마·자연...―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여기서 구멍은 한계며, 구멍이 있어야 흔적이 남는다. 외부가 열리며 호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시 공간 역시 입방체로 변모한 (갤러리) 바닥처럼 한계가 아니라 물체로 바뀐다. 결국 물체가 물체의 형태를 완성하는 셈이다. ■ 김상우

이원호_찬바람_유리창에 원형구멍_2012

지난 과거의 주소, 즉 과거의 나에게로 보내졌던 10여 개의 소포들은 "반송"이라는 도장과 "수취인 불명"이라는 낙인을 얻은 채 다시 돌아왔다. 아직까지 돌아 오지 않은 소포도 있으며, 영원히 돌아 오지 않을 소포도 있을 것이다. 각 소포들 속에는 최신형 소형녹음기들이 들어있다. 언젠가 건전지의 수명이 다 되었거나 아니면 불친절한 누군가의 취급에 의해서 우연히 녹음기능이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자신의 경로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과거의 나를 찾아 나섬으로써 현실에서는 의도치 않은 또는 비합리적인 사건들과 충돌이 유발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무사히 귀향? 한 그들의 각 여정을 전시장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두 개의 상자, 두 개의 공간」은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열리고 있는『void』展과 연계된 작품이다. 홍은 창작센터에서 출발한 두 개의 입방체는 제각기 얼마 간의 일정을 마치고 관훈갤러리의 전시장으로 돌아 올 것이다. 고급스러웠던 자재의 모습들이 자신 속에 어떠한 자취를 스스로 새기고 오는지 전시장에서 볼 있기를 또한 기대한다. ● 『void』展에서는 전시공간을 이루고 있는 마루바닥이 오브제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로 직접 사용되었다. 고정불변의 천형을 선고 받았던 바닥은 종이 접기를 하듯 조립되어 두 개의 입방체 형태로 변형되었다. 두 개의 입방체는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시장 공간을 떠나 특정 운송 수단을 통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전시장을 떠났다. 그들은 새로운 공간의 형태를 취한 채 운송 수단의 물리적 힘을 통해 움직이면서, 많은 사람을 직접 방문하고 수 많은 돌발적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두 개의 입방체는 계측 불가능한 무게의 경험과 기억의 흔적들을 자신에게 새기고 약속된 장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떠나간 입방체 공간의 빈자리 두 개는 홍은예술창작센터의 바닥에 십자가 형태로 남았다. 부재의 흔적이 한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 이원호

Vol.20121113f | 이원호展 / LEEWONHO / 李杬浩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