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복展 / LEEKYUBOK / 李揆福 / painting   2012_1114 ▶︎ 2012_1120

이규복_부지깽이 썰매는 햇빛이다._리넨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2

초대일시 / 2012_1114_수요일_05:00pm

기획 / 타이미지 그림나눔(cafe.naver.com/grimnanoo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 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관훈동 30-1번지) 아틀리에 Tel. +82.2.733.4448 www.kyunginart.co.kr

부지깽이 썰매는 햇빛이다. 겨울날 노랑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바람 부는 산모퉁이 집 언덕에 따스함이 배어난다. 어른들이 계셨고, 사랑방에는 큰 솥이 걸려 있어서 겨울에는 언제나 쇠죽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부지깽이로 벽에 슥슥 문질러 글씨를 쓰면 까망 부지깽이는 북북 달아진다. 바람 쌩쌩 부는 날 썰매를 둘러메고 벼 포기 숭숭한 논 가운데로 간다. 산모퉁이 바람이 매서웠지만 개의치 않는다. 얼음 속에 갇혀버린 벼 포기와 공기 방울이 멈춰버린 얼굴처럼 울려온다. 딱딱한 얼음을 스치는 꼬챙이의 쇳소리와 옷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은 나를 몰아가듯 밀어 친다. 겨울날 동네 아이들과 소꿉장난을 할 때 아버지는 최고의 자리다. 여자아이 엄마와 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덕을 내리 쬐는 겨울 햇볕은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준다. 아버지는 2010년 설 전날에 돌아가셨다. 당신 생일에 본향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너무나 정확한 우연이다. 이후 어머님은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고, 살던 시골집은 쓰러져 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수수깡과 진흙으로 지어졌던 그 집은 이제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더운 여름날 대문간에 돗자리 피고 앉아 고추장으로 빨갛게 비벼먹던 감자밥이 떠오른다. 가을걷이로 수북했던 바깥마당과 가을 하늘, 그리고 멍석 위에서 나 뒹굴던 콩깍지들과 깨 털다 뻐근해져 오던 어깨쭉지도, 벼가 출렁이던 가을들녘도 이제는 남의 풍경이 되었다. 이제 어머니마저 하늘나라로 가시면 기억의 끈이 하나 더 끊어 질 것이다.

이규복_세미원에서_종이에 오일스틱_42×56cm_2012
이규복_인도네시아 빈탄 섬에서2_종이에 오일 파스텔_24×33cm_2012
이규복_인도네시아 빈탄 섬에서3_종이에 오일 파스텔_24×33cm_2012
이규복_인도네시아 빈탄 섬에서5_종이에 오일 파스텔_24×33cm_2012

뜨거운 여름날 산모퉁이에 있던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마시던 샘물이 갑자기 시원해져 온다. 그 우물도 도로확장과 함께 사라져 갔다. 다시 봄 햇살이 내리 쬔다. 논에는 벌써 물방개와 올챙이가 돌아다닌다. 뒷동산의 초록이 흰 눈처럼 눈부시다. 부지깽이 썰매는 햇빛이다. 보리밥 집에서 아내 ! 이렇게 나를 위해 포즈를 취한 것이 처음이다. 약속시간이 좀 남아 기다리는 사이에 아내와 마주 앉았다. 모델서기가 쉽지 않단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겠는가마는 당신, 무조건 고맙습니다. 돌아보면, 당신에게 잘해주어야 할 이유가 내게 너무나 분명하다. 아내가 오늘은 순순히 있어주었다. 그림을 그린답시고 애쓰는 내 모습이 아마도 불쌍해보였을지 모르겠다. "처녀작이네.." 장기두는 사람들 어이.. 차 떨어진다니까. 그렇게 두면.. 아-차ㅡㅁ~ 장기 이-쌍하게 두네.. 차라리 이 판은 아사리판이다. 옆에서 듣다가 웃음보가 터져서 소리 내어 웃는데. 그 요란한 훈수꾼이 나를 쳐다보며, 자기도 웃는다. 그런데 눈과 입은 훈수 두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 장기 이-쌍하게 두네 덜..그렇게 두면 안 된다니까 하~아 참.. 장기판 훈수는 마약 이상이다. 누가 장기를 두는지 뒤 바뀌어도 한참이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자로 송사리 떼처럼 몰려들어서 장기를 계속 둔다. 비좁은 정자 안에 장기판이 네, 다섯 판이 벌어졌다. 나도 비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그림수첩을 꺼내 코앞에서 그들을 모델링을 했다. 해는 지고 어두워 진지 오래다. 가로등 불빛으로 잘도 두신다. 장기..

이규복_장기두는 사람들2_종이에 펜_21×14.8cm_2012
이규복_장기두는 사람들8_종이에 목탄_21×14.8cm_2012

畵요일 오후 다섯 시 반이다. 슬슬 수서 작업실로 갈 시간이다. 담배를 끊고부터 출근해서 거의 하루 종일 회사에 껌처럼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 작년 일터 그리기 때 그렸던 그림들이 걸려 있다. 그림이 걸려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은 행운이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길다.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내 아랫배를 보았다. 걷는 게 좋겠다. 수서역에 내리면 치즈라면이라도 먹자. 배가 고프면 그림 그리기가 좀 어렵다. 밤이 되면 눈이 피곤해져 온다. 눈이 감기며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움직이는 시간을 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생을 하면 더욱 그렇다. 해가 움직이고 바람이 움직인다. 네가 움직이고 내 마음이 움직인다. 눈알도 움직인다. 도무지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는 종이 말고 없는 것 같다. 살아있는 그림일 수밖에 없겠다. 누구에게나 일터가 소중한 것처럼, 나에게도 일터는 남다르다. 그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지난 일을 돌아보는 마음이 뒤엉켜 자연스럽게 일터는 그림이 되었다. 그런데 공원에는 쉼이 있다. 일터와 쌍을 이루는 다른 공간이다. 일을 잠시 잊고 장기판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장기 두고 있거나 구경꾼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또 몰두한다. 그림은 내게 안식이다. 그림은 '새로운 나'다. 마음에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그곳으로 간다. 그곳에 그침과 쉼이 있고 받아들임과 향연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그곳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畵요일이다. ■ 이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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