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을 스치는 바람 The Rustle of Pagodas

유윤빈展 / YOOYOONBIN / 劉胤彬 / painting   2012_1114 ▶︎ 2012_1120

유윤빈_설송雪松_한지에 수묵紙本水墨_145×112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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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11월20일_10:00am~01:0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5.9938 www.gongartspace.com

탑을 스치는 바람 ●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한용운)를 찾아 걸어온 10년 가까이, 작가에게 탑은 그 형태를 넘어선 알 수 없는 향기이며 간절한 바람 (염원 念願)이었다. 또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서정주)는 시인의 독백처럼 휘몰아치다 사라지는 바람 (풍 風)의 자취를 따라온 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걸어온 그 길은 헛된 것이 아니라 눈을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고, 우주의 기운과 작은 울림에도 귀 기울이는 열정의 순간이었다. 이 간절한 바람은 태풍이 되어 낡은 것을 한 번에 쓸어버리고, 순수한 바탕만 남기는 혁신의 움직임이었으며, 새로운 생성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길은 이미 있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닦고 열어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탑을 소재로 한 작업의 사상적 바탕은 이미 석사학위논문『심우도연구(尋牛圖硏究)』에서 그 싹을 틔웠으며, 박사학위논문 『한지의 변통성(變通性)에 의한 물화적(物化的) 표현(表現) 연구(硏究)』에서 이론과 기법의 틀을 튼튼히 다졌다. 즉, 작가는 예술이란 자신의 본성을 찾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며, 예술적 표현은 대상과 내가 합일되어 나를 잊는 몰아(沒我)의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작가는 한국화가 갖는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기, 망에서 떠낸 부정형의 한지를 바탕에 붙이기와 덧칠하기를 한 화면에 통합하려 하였다. 또한 무생물과 생물의 조화와 상생을 통해 탑이 과거나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생성이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임을 표현하는 일련의 작품을 선 보였다. 그러나 이전의 작업이 새로운 방향을 찾는 실험이었다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덧씌워진 인위와 군더더기를 완전히 털어내고, 전통의 철저한 재해석을 통해 수묵(水墨)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유윤빈_소영疏影_한지에 수묵담채紙本水墨淡彩_65×45cm_2012

특히 한국화의 본질인 필묵(筆墨)의 정신과 힘으로 돌아오고자 한 점은 이를 도외시하는 요즈음의 추세로 보아 주목할 만한 시도이다. 이는 혼돈(混沌, Chaos)에서 순일(純一, purity)로 돌아가는 반본회귀(返本回歸)의 깨달음이란 점에서도 그러하며,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전통회귀나 한계에 맞닥뜨린 절망의 도피가 아니라, 한국화의 본성 회복을 위한 자각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채움보다는 비움과 덜어냄, 우연보다는 칼날의 스침 같은 필선의 힘에 몰입한 점 또한 그렇다. 작가는 주로 탑을 은은한 배경으로 삼고 자연의 풍경을 맑게 그리고 있다. 고요에 잠긴 그림 속 풍경은 세상에 있는 것도 같고, 지어낸 듯도 하고,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실재(實在)하는 것이 풍경이고, 이상향이나 선경(仙境)을 그린 것은 관념(觀念)이지만, 실재하는 풍경에 작가의 마음(의경 意境)을 더하고 관념을 넘어섰기에 작가의 작품은 진경(眞景)이라고 할 수 있다. 실경(實景)이 사진처럼 객관적이라면, 관념은 초월적이며, 의경은 주관적이며 이상적이다. 이렇듯 참됨이란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간절히 바라는 것이며, 풍경을 그리는 작업은 실재와 관념이 서로 대립하는 상대적 구조가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통합,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조선의 산천을 그려 진경산수를 이룬 것처럼, 천년의 세월 너머 탑을 감싸고 도는 바람과 구름, 눈 덮인 소나무와 매화, 연꽃, 국화 등 늘 우리 곁을 지키는 풍경을 그리는 것은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마음 속 진경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윤빈_설송雪松_한지에 수묵紙本水墨_91×116cm_2012
유윤빈_탑을 스치는 바람(봄·여름·가을·겨울春夏秋冬)_ 한지에 수묵담채紙本水墨淡彩_50×73cm×4_2012

수묵을 지켜온 사람들조차 수묵(水墨)의 시대는 갔다고 말하며 많은 이들이 그 경계를 넘어섰다. 수묵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묵을 떠나 한국화를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공허하다. 먹의 농담(濃淡)과 간략한 필선(筆線)만으로 표현한 작가의 「설송(雪松)」과 「설매(雪梅)」는 옅은 먹으로 바림을 하고 짙은 먹으로 굴곡과 테두리를 그려 선비의 곧은 지조와 개결(介潔)한 정신을 나타낸 이인상(凌壺觀 李麟祥, 1710-1760)의 작품 「설송도(雪松圖)」의 여맥을 잇고 있다. 또한 도학(道學)의 새 길을 연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 1017-1073)가 사랑한 연꽃, 산 굽이굽이 자리한 구름 속의 탑, 피안(彼岸)을 나타내는 갈대 저편 언덕, 무너진 흙담 사이에 핀 노란 국화, 세월의 자취를 화면에 포착한 탑의 봄․여름․가을․겨울, 무엇이 실상(實像)이고 허상(虛像)인지를 묻는 물 속에 비친 탑, 탑을 배경으로 서려 있는 염원의 소나무, 동트는 새벽 물가 등 작품 모두 수묵과 약간의 채색으로 작가의 맑은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가와 풍경이 하나 되고, 보는 이도 작품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마다 작가의 예술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유윤빈_피안彼岸_한지에 수묵담채紙本水墨淡彩_30×62cm_2012

특히 작가는 그침도 치우침도 없이 만물을 키워내는 대자연의 조화와 감동을 잘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지만 기예의 한계를 넘어선 사고와 지혜의 경지이며, 눈으로 보는 감각의 세계를 뛰어 넘는 심안(心眼)의 세계에 그 궁극적인 다다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수묵화는 먹빛 하나로 산과 물, 나무 그리고 여기에 깃들어 사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그려내기 때문에 뜻을 그려내 사의(寫意)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풍경을 그리는 것은 마음의 뜻을 그리는 일이다. 그러나 뜻을 그리는 것이 세상에 없는 것을 그리는 것도 실재하는 것을 그리는 것도 아니며, 순수 예술 감성과 고도의 정신 작용으로 이상의 자연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이런 점에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으며, 앞으로도 점 하나를 찍고, 획 하나를 긋는 순수 열정과 꾸밈을 벗어던지는 텅 빈 마음으로, 고전의 재해석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화경(畵境)을 열어나가기를 빈다. ■ 고재식

유윤빈_운탑雲塔_한지에 수묵紙本水墨_60×22cm_2012
유윤빈_국화菊花_한지에 수묵담채紙本水墨淡彩_24×33cm_2012

The Rustle of Pagodas ● For the artist Yoo Yoonbin, the Pagoda has certainly had an unknown fragrance. It has been an object of desire, above and beyond its worldly manifestation, for nearly a decade, as she has sought to capture the essence of 'the unknown fragrance wisping through the serene sky over the ancient pagoda', as depicted by the poet Han Yongun. Her path has been to follow traces of the wind that raged and disappeared, as in Seo Jeongju's poem, when he says, 'For the last twenty-three years I´ve been raised, eighth tenths of me at any rate, by the wind. The more I see, the more shameful the world appears'. But the path that she has walked has not been in vain. It springs from a moment of holistic passion, leading the eyes from the sky to the earth, trying to listen to both the energy of the universe and a faint ringing. This wind of longing desire became a typhoon that swept away what was old, a revolution that was the beginning of a new creation. However, this path did not already exist, but was built by her along a newly-discovered path. The basis of her work with pagodas germinated in her master's thesis, 『A Study on the Painting of Looking for an Ox, 2001 (尋牛圖 硏究)』 and the framework of the theory and its techniques were strengthened in the doctoral dissertation, 『A Study on The Expression of Wu-hua (Transformation of Things) based on the Flexibility of Han-ji, 2009』. In other words, art is the process of approaching enlightenment after finding one's essential character, and artistic expression is possible when the artist has a sense of oneness with the subject, in a state of willing self-renunciation. Until now, her technique has been to apply brushwork, then uneven patchwork layers of netting-imprinted Hanji, subsequently retouched in order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the (two-dimensional) planar composition of Korean paintings. She previously exhibited a series of works which depicted the pagoda not in the past or in a state of ruin, but springing from the harmony between inanimate objects and living nature, and the mutual benefits they afford each other, giving rise to organisms that transcend the cycle of life and death. However, the works showcased in this exhibition strip away novel elements, thereby revealing new possibilities in Korean ink brush painting through a profound working of tradition. In this exhibition in particular, she takes on a reinterpretation of the spirit and strength of brush and ink, which has always been the essence of Korean painting. This is a notable endeavor these days, considering the contemporary tendency among Korean painters, who now de-emphasize this heritage. These experiments are important not because they are a simple return to tradition or because they are a refuge from a state of despair, but because of the enlightenment she gained through returning from chaos to purity, and as the first step in the recovery of the essentials of Korean painting. The paintings concentrate on eliminating the superfluous, and devoid of arbitrary strokes, they employ the precision yet dynamism of brushwork. The artist paints landscapes clearly and brightly, often set against the backdrop of pagodas. The placid landscapes in her paintings are undecidable, existing in the interstices between reality, imagination and possibility. While a familiar, figurative landscape is real, and a fairyland or utopia is imagination, the perspective of her soul is infused into the familiar, so her work gives us the holistic landscape. If a familiar landscape is objective like a photograph, and the imagination is transcendent, then the landscape as seen by the soul is subjective and ideal. Ultimately this is not a matter of verisimilitude. One paints from sincere hope, and painting landscapes is the integration of the subjective and objective, of reality in harmony with the ideal, and not a structure of conflict between reality and the imagination. Just as Gyeomjae, Jeong Seon (謙齋 鄭歚, 1676-1759), the most renowned landscape painter in the Joseon Dynasty, created masterpieces after spending his life painting the nation's landscapes, likewise Yoo Yoonbin's work depicting the nature surrounding us through phenomena such as pagodas in wind and cloud, snow-laden pine trees, and flowers like the lotus and chrysanthemum, is a work in progress seeking the true value of paintings that reflect the human heart. Even those who cherish the tradition of Korean ink brush painting often say that its time has passed, and many artists have stepped outside its boundaries. Making an image in ink and brush could seen as lagging behind artistic developments or as being old-fashioned, but one cannot talk about Korean painting without ink brushwork. and , both homages to the painting (雪松圖) by Lee In-sang (凌壺觀 李麟祥, 1710-1760), are composed using shades of ink to combine indistinct blurs and strong brushstrokes, which show the hermit's ascetic character, their twists and turns of brushstrokes displaying his spirit of purity. In addition, in her painting of a lotus she draws on the artworks of Zhou Dunyi(周敦頤, 1017-1073), a Chinese philosopher who conceptualized the Neo-Confucian cosmology of the day and had a fascination with the flower, while elsewhere she uses subtle techniques to show the profound spirit of the artist's world in Korean ink brush paintings: pagodas in the midst of cloud-topped mountains, reeds in the foreground representing Nirvana, yellow chrysanthemums blooming between collapsed earthen walls, the impact of spring, summer, autumn, and winter on a pagoda captured in traces of time, a pagoda reflected in the water showing the ambiguity of reality and reflection, a vaulting pine tree of desire in the background of a pagoda, a riverside at dawn. In particular, since the artist enters a state of merging with the landscape she paints, and the viewer likewise enters the world of the painting, these works reflect the artist's deepest sensibilities. She has superbly expressed the harmony and impress of Mother Nature nurturing all things without bias or end. Thus, although a painting is made by the hands, it is a stage of thinking and a state of wisdom beyond the technical limits of the arts; a sense of the visual world that ultimately reaches the world of the mind's eye. In addition, as well as the mountains, water, and trees that can be portrayed with Korean ink brush painting, the soul of the people who live in the orbit of nature can be depicted. Thus, an ink brush painting can delineate human will as well. Ultimately, to paint a landscape, one must depict the core of one's heart. That does not mean portraying things that don't exist in real life, nor does it mean merely displaying reality, but rather recreating an ideal of nature with a pure artistic sensibility and a grasping by the mind. To date, the artworks of Yoo Yoonbin have been full of promise and achievement. I hope that, with continued purity of will and passion, she constantly reaches new artistic thresholds through focused study and work. ■ KOJAESIK

Vol.20121114j | 유윤빈展 / YOOYOONBIN / 劉胤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