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Breast

이우창展 / LEEWOOCHANG / 李宇昌 / painting   2012_1114 ▶︎ 2012_1201 / 일요일 휴관

이우창_품다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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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광화문 SHINHAN GALLERY GWANGHWAMUN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Tel. +82.2.722.8493 www.shinhangallery.co.kr

전에는 종종 사람이 몸을 가졌다는 게 슬프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 그런데 이젠 위안으로 여겨져요. / 정직하고 순결한 것은 육체뿐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 확실히 만져지고 기억할 수 있잖아요. / 실체가 사라진 뒤에도 기억이란, 소멸한 그것을 본디 모습대로 살려내지요. - 오정희, 『바람의 넋』(1986)

이우창_품1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2

이우창 작가를 단 한 번 만났다. 그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데 작품들이 아직 미흡하다"며 걱정 했었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이미지도 고작세점뿐이었다. (「품1」, 「품다」, 「Backside」, 이렇게 세 점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작품들 모두 '무제'였다. 위의 제목들은 작가가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붙였으리라 짐작된다.) 참고로 제출한 『874』전시 도록을 통해 정물과 공간을 그린 이미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신한갤러리 전시에서 이러한 작품을 전시하지 않을 것이라 했고, 기 발표작을 제외한 초상 작업과 회색 빛 누드작품들만을 전시하길 원했다. 왼손이 왼손을 감싸고 있는 이미지를 펼쳐 놓은 채,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후에 몇 번 통화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그날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우창_backside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1

이우창 작가는 지난해 12월, 림프종 4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 그리고 진단을 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신한갤러리 공모전에 선정된 전시를 한 달 여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차마 슬프다고 표현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올 한해 예정된 전시가 많았고 그만큼 주목을 받고 있던 터라 더없이 아쉽다. 작가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전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 작품 상태와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모든 작품을 전시할 수는 없더라도 전반적으로 작가의 흔적을 아우를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의미가 확장된 『품』은 작가의 주요 소재였던 '정물', '공간', '초상/몸'을 재조명하는 추모 전시가 되었다. 작가의 계획과는 달리 정물과 공간 작업도 그대로 전시하게 된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우창 작가의 작업은2012년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가 원했던 신작들을 소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몇몇 작품들은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미완성작을 포함하여 기존의 작품들을 한 데 모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우창_무제_캔버스에 유채_116.8×80cm_2011

유가족과 동료 작가들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모았다. 예상과는 달리 작품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크기, 기법, 소재별로 편차가 있어서 이를 분류하고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않았다. 그러나전혀 예상치못한작업들이 여럿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특히 비단에 채색한 작업들이 그러했다. 이중 몇 작품들은 작가가 직접 독특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액자를 만들었다. 보통 손놀림이 아니다. 작가의 생활을 가늠하게 해주는 작업실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잘 그린 세밀화다. 어쩜 이리 집요한 구석이 있을까. 이우창 작가는 텅 빈 공간에서 무심한 시간의 흔적들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이나 못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 벽에 눈길을 주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무렵에 그렸던 것은 축 늘어진 초라한 몸이었다.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 볼품 없는 '마른 살갗'들… 죽음이란 설명 못할 슬픔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이 있다면 기억에서 잊혀지는 일일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정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몸으로 실체를 기억하는 애처로운 존재이다. 이우창이라는 실체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이제 그가 남긴 그림들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할 것이다. '바람의 넋'이 되어 떠나간 그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이 작은 전시로나마 그에 대한 기억을 오롯이 살려내고 싶다. ■ 김남은

이우창_874-540_캔버스에 유채_72.8×116.5cm_2009

화가들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길 위에 서 있으며, 세포 마디마디의 촉수들은 몸과 마음을 빠르게 물들이고 흔들리게 해서 누구보다 빨리 웃기도 하지만 늦게 울기도 하고, 소리 없는 곳에 소리치고, 스스로 온 힘을 다하는 엉뚱한 족속들이다. 그래서 슬픈 역사만이 가득한가 보다. 우창이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널뛰기하듯 가 버렸다. 93년 우창이는 고교 1학년 이였다. 얼굴색이 희고 눈자위가 여릿한 녀석이 미술 시간에 처음 보여준 정물 수채화 한 점은 누가 봐도 또렷하게 마른 옥수수를 잘 그렸고 당시 젊은 미술 선생이었던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화가가 되라고 권했다. 당시 콧등이 새까매지도록 매일 데생 연습을 반복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올 일들을 당시 대학 진학이 전부였던 때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들 했고 홍대 판화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 우창이는 대학 졸업 후 합정동에서 판화는 하지 않고 책 일러스트 일을 했고, 그 쪽 분야에서는 크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밥벌이 차원을 떠나서 한 컷 한 컷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었다. 책의 삽화로 쓰기에 아깝다고 웃으며 우리는 말했었다. 정작 자신은 작가로 살기 위한 고민과 밥벌이의 문제를 일러스트작업과 함께 하고 있을 때여서 그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힘겨운 나날을 지내고 있었다. 겉모습은 배시시 웃고 있었지만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여 인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뜻밖의 결정에 우리는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2008년부터 합정동 노인정으로 쓰던 단층 건물로 옮겨 본격적인 회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우창_874-374_캔버스에 유채_89×130cm_2009

그의 곁에는 나도 있었지만, 작가 노충현과 그의 아내 권순영. 한석현과 그의 아내 유카코는 같은 둥지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던 살가운 친구들이자 선후배 사이로 최근까지 합정동에 이웃하며 함께 지냈었다. 이들 친구와의 교류는 우창이의 회화 작업에 좋은 동기가 되기도 했고 생활의 탄력도 생기는 그들만의 자족함이 있었다. 2010년이 되어서 파주 헤이리에 있는 아트 팩토리(관장 황성옥)의 초대를 받아 그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가슴 설레며 준비한 전시회는 처음이라기에는 매우 안정된 분위기와 작가의 개성을 함축성 있게 보여준 전시회였다. 작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고 화랑 관계자들로부터 참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듬해 2011년부터는 금호 창작센터 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평소 꿈꿔왔던 예술가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흡족했을 것이다. ● 2012년 5월로 계획된 브레인 팩토리의 개인전을 각별히 준비하던 중 2011년 12월 말에 서울성모병원에서 발견된 림프종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전시를 마칠 수 있었다. 2012년 10월로 예정된 종근당 작가지원 초대전, 2012년 11월로 예정된 신한 갤러리 공모전... 한 해 이렇게 많은 일을 계획해 놓고 2012년 9월 28일 오후에 36세의 생을 마감했다. 이럴 것이라면 나도 아껴 두었던 말을 좀 더 했어야 했는데...

이우창_무제_캔버스에 유채_91×60.6cm_2008

이우창은 영민하고 마음먹은 대로 그릴 수 있는 탁월한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이나 만지작거리기 좋아했던 그는 그림도 만지작거리듯 살갑게 그렸다. 얇고, 가늘고, 투명하고 또 그보다 사물과의 소통하는 감각이 남달라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두짝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린 그림을 보면 구두와 친구 된 듯한 느낌 이상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 준다. 이렇듯 사물과의 조응 과정에서 화가들은 고독해도 행복하고 가난해도 자족감이 큰 것이다. 사물을 보고 무엇을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데 사물과의 조응력이 이미 그의 몸 어딘가에 붙어서 이렇게 저렇게 그림으로 뽑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창이의 뾰족 살롱화에서 보여주는 유머는 또 다른 세상이다. 더없이 귀엽고 값진 보석이 아닐 수 없다. 첫 개인전에서 흰 닭이 그려진 그림이 떠올랐다. 탁자 밑으로 떨군 머리의 붉은 벼슬과 한 올 한 올 그린 마르지 않은 눈물의 속눈썹을 떠올리며 그도 그렇게 갔구나... 이제 막 햇빛을 보려던 새순 같았다. 잘 가라. 너와 함께 그림을 시작했던 충현 형, 석현 형, 나 또한 모두 살가운 형제 같았고 짧지만 즐거웠던 한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잘 가거라. ■ 이희현

Vol.20121115f | 이우창展 / LEEWOOCHANG / 李宇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