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The One Day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   2012_1115 ▶︎ 2012_1209 / 월요일 휴관

유근택_코끼리 Old Giant_한지에 수묵채색_145×128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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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홈페이지_www.geuntaek.com

초대일시 / 2012_1115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2_1117_토요일_03:00pm 유근택_기혜경(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본관 GALLERY HYUNDAI 서울 종로구 사간동 122번지 Tel. +82.2.2287.3591 www.galleryhyundai.com

하루: 영겁의 시간'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에 핀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윌리엄 블레이크「순수의 전조」) 유근택이 일 년 동안의 미국생활의 결과를 펼쳐놓는다. 안식년 차 미국으로 건너가 온전히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작품만을 생각하며 1년을 보내고 돌아온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내 풍경과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 그리고 자주 찾던 공원의 모습과 해변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유근택이 다루고 있는 이러한 작품의 소재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그의 작품 경향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커다란 변화로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작가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간 정도가 서울의 어디쯤으로부터 뉴저지의 린지우드 근처 어딘가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유근택이 작품 제작을 위해 자신의 주변과 일상에서 대상을 취하는 방식을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사한 듯해 보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유근택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에 한발 더 확실히 다가간 것 같아 보인다.

유근택_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_한지에 수묵채색_90×48cm×10_2011

하루:「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 ● 유근택이 들려주는 지난 일년간의 이야기는 하루에서 시작된다. 매일 자신의 집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풍경을 다룬「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가 그것이다. 화면을 이루는 요소는 8개로 나뉜 창의 프레임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커다란 가로수 한그루와 정원수, 그리고 건너편의 집이 전부이다. 다이나믹할 것도 변화무쌍할 것도 없다. 단지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평범한 풍경을 하루에 하루를 덧붙이듯, 봄부터 겨울까지, 맑은 날이나 흐린 날에도 새벽부터 밤까지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 같은 대상을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반복하여 그리는 유근택의 작업 방식은 인상주의자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에 묘사된 대상은 잔 붓질(brush stroke)로 처리되어 있으며, 흐려진 윤곽선으로 인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여야 그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는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제작 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효과는 안개처럼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이 가벼운 인상주의 회화와는 다르다. 오히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조차도 엄격할 정도의 무게감과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곳에 놓여 있다. ● 이러한 화면 효과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대상들 간의 관계와 그러한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시간을 화면에 담고자 한데에서 연원한다. 인상주의자들이 한 순간을 화면에 정지시키고자 하였다면, 유근택은「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를 통해 눈에 보이는 한 순간이 아닌 대상에 누적되어 내재된 시간성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지향점의 차이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를 초래한다. 철저히 자신의 눈을 믿었던 인상주의자들과는 달리 유근택은 자신의 눈을 통해 바라본 풍경과 자신이 알고 있는 정취를 함께 화면 위에 포치시킨다. 만약 그의 화면이 한그루 나무가 서 있는 가을 어느 날의 풍경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날 그 순간의 풍경이 아닌 그 나무가 견뎌낸 시간과 작가가 대상에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가 함께 녹아있는 풍경이다. 이로 인해 대상에 켜켜이 쌓인 경험과 누적된 시간을 드러내고 있는 유근택의 작품은 묵직한 중량감을 가지고 다가오게 된다. ● 한편, 대상의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화면에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전통 한국화와는 달리 호분과 과슈, 템페라를 이용한다. 이들 안료는 화면에 흔적을 남기고 누적된다. 이러한 누적의 흔적이 바로 시간의 흔적으로 치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작가의 재료 선택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잘 부각시키고 있다. ● 화면 위에 물감 층이 쌓이듯 그의 화면에는 풍경과 시간이 교차하며 순간들이 쌓여 간다. 그의 풍경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새싹이 돋아나는 봄날과 녹음이 우거진 여름 낮, 단풍 든 가을과 잎새 떨어진 앙상한 나무가 무거운 하늘을 이고 서 있는 초겨울의 저녁으로, 다시금 눈 온 뒤의 새벽녘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순간을 통해 하루로, 그리고 사계절로 이어지는 화면 속 시간과 그 시간이 누적된 흔적으로서의 대상과 풍경은 유근택이 이번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유근택_365일의 거주_한지에 수묵채색_140×169cm_2011

일년 365일:「365일의 거주」 ● 유근택이「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를 통해 대상들 간의 관계 속에서 쌓여가는 시간의 궤적을 각각의 작품 속에 드러내려 하였다면,「365일의 거주」시리즈에 이르면「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에서 보여주었던 시간의 흔적과 흐름이 한 화면 안에 집적된 형태로 제시된다.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났거나 혹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실내 풍경을 다루고 있는 이 연작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책상, 거울, 선반 등의 오브제가 방 한켠에 묘사되어 있고, 그 중앙에는 침구가 펼쳐져 있는 일상적인 실내 풍경이다. ● 연작의 형태로 제작된「365일의 거주」중, 초기에 제작된 3점의 작품에서 화면 중앙에 위치한 창문은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창문을 통하여 창밖의 사실적 풍경이 실내로 개입되고 있는 이 세 작품들의 차이라면, 헝클어진 중앙의 침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공간 속 유동 에너지의 흔적을 반영하며 구겨짐과 뭉쳐짐이 심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후기에 제작된 작품일수록 실내 공간에 좀 더 많은 일상의 오브제들이 널려 있고, 그러한 오브제들을 배경으로 작품 속 내재된 에너지를 현시하듯 나무와 오브제들이 실내 공간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 일상을 관통하는 에너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축적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365일의 거주」연작은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창문이 있던 자리에 마치 회화 작품을 걸어 놓은 듯 창문 너머로 천연덕스럽게 이카루스의 추락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제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는 통로였던 창문은 작가의 심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그 역할이 변화되며, 이로 인해 작품은 사실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심상의 풍경으로 나아간다. ● 심상의 풍경으로의 변화에 조응하듯 중심을 차지하는 침구도 구겨짐과 뭉쳐짐이 심화되어 좀 더 단단하면서도 존재감 있는 형태로 표현된다. 그것은 이제 부드러운 침구라기보다는 마치 조감도 시점에서 파악한 산수처럼 확고부동하고 단단한 존재감을 드리운 채 화면을 점하고 있다. 이것은 공간을 관장하는 에너지가 시간의 흐름에 의거하여 대상 속에 응집되고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자신이 매일 마주치는 공간 속에서 사물과 사물들 간의 서로 뒤얽히는 관계와 공간의 속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작가는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마주한 공간 속에 누적된 에너지의 흔적과 그것이 결국 시간의 흐름에 의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작가는 이러한 시간의 흔적을 흔히 우리가 일상이라고 명명한 것들 속에 누적된 에너지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한편, 현실 공간으로 개입해 들어온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심상의 풍경은 우리 모두 일상의 바다에 빠져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일상은 비상을 꿈꾸었으나 실패를 감수해야 했던 이카루스의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대면하는 일상으로 무심하게 우리 옆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작가는「365일의 거주」라는 한 장면을 통해 그 속에 누적된 하루, 일년, 혹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삶을 제시하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근택_세상의 시작_한지에 수묵채색_207×240cm_2012

영겁:「세상의 시작」 ● 유근택은「열 개의 창문, 혹은 하루」와「365일의 거주」를 통해 일상 속에서 생활하는 통상의 삶을 다루며, 그러한 일상을 관통하는 시간이 하루에서 일년, 그리고 일생으로 지속되며 축적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시간 개념을 좀 더 확장시킨 작품이「세상의 시작」연작이다. ●「세상의 시작」은 유근택이 2000년대 이후부터 지속하여 오던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LA에 있는 조슈아 트리(Joshua Tree) 사막에서 작가가 목도한 "바위, 나무, 수백 년 된 선인장들과 모든 사물들이 사막화되어 모래로 흩어져 가는" 체험은 작가로 하여금 "하늘이라든가 우주, 혹은 세상의 어떤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모든 것이 사멸되어 가는 현장에서 영겁의 시간에 걸친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 의식이「세상의 시작」시리즈를 제작하는 계기가 된다. ● 하지만「세상의 시작」에는 작가로 하여금 세상의 생성과 소멸을 느끼게 한 선인장이나 바위 대신 침대와 변기, 나무, 피아노처럼 우리의 일상적 삶을 주관하는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만약 이 작품을 앞에 두고 "태초에 빛이 있었다"라는 구절을 유근택 식으로 변환한다면 아마도 '태초에 사물이 있었다'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빛이 형이상학을 대변한다면 사물은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유근택의「세상의 시작」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시작임과 동시에 끝을 의미한다. 이들 오브제가 세상의 시작에서 끝도 없는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순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처럼「세상의 시작」은 우리의 일상이 무한히 순환 궤도를 그리며 진행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유근택은 이전 작품에서 관념적이며 사변적인 한국화를 현실에 발붙인 어떤 것, 즉 우리 삶과 밀접한 것으로 만들고자 작품 속 공간 개념에 주목하였다. 그것은 자연에서 출발하여 그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내거나, 혹은 우리들이 삶을 영위하는 터전이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지리멸렬한 일상의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우리들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그것은 자연을 내포한 곳이자 동시에 역사의 현장이며, 우리들 모두가 씨줄과 날줄처럼 엉켜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 작가의 이전 작품이 공간 개념에 주목하였다고 한다면,『하루』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공간 개념보다는 그곳에 어린 시간의 문제를 전면에 배치한다. 어느 작품에 시간성이 개입되지 않은 작품이 있을까마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에서 작가는 눈에 띄게 시간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 유근택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에 나오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에 핀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찰나와 영겁을 이어주고, 시작과 종말을 관통하는 이러한 시간 개념은 유근택의 작품 속 대상에 누적된 시간성의 표현과 궤를 같이 한다. 유독 풍경 작품이 많이 출품되었음에도 이번 전시작에서 자연이 드리워진 공간보다는 그 자연 대상 자체가 중후한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유는 공간으로서의 풍경보다는 그곳에 축적된 시간성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이전 시기의 작품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유근택_숲_한지에 수묵채색_133×104cm_2011
유근택_가을의 리듬_한지에 수묵채색_177×210cm_2010

유근택의 작품에 묘사된 자연이 갖는 이러한 존재감은 전술하였듯이 그의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에서 유래한다. 화면에 쌓아 올려진 안료로 인해 자연은 그 자체로 강한 덩어리감과 함께 화면 위에 켜켜이 쌓아 올려진 집적된 힘을 과시한다. 더 나아가 이것은 구상적인 풍경화로 하여금 추상화로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화면 위에 드리운 강한 선과 색채의 향연은 그대로 강한 존재감을 드리우는 덩어리와 선들의 결합이자, 올오버적인 추상화 화면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장중한 자연을 배경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작은 인간은 이제 막 길을 떠날 듯, 여행 가방과 함께 나타난다. 이들은 유근택의 화면에 포치된 자연처럼 인생이라는 여정을 따라 시간의 흔적을 쌓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미지이다. ■ 기혜경

Vol.20121117d |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