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 無爲, 무위 撫慰

임남진展 / LIMNAMJIN / 任男珍 / painting   2012_1120 ▶︎ 2012_1202

임남진_상사(相思)-파랑새_한지에 채색_115×16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220e | 임남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2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630 department.shinsegae.com

如如_撫慰로서 피는 꽃, 지는 꽃 - 임남진 ● 전시 서문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여졌다. 작가 임남진의 친 언니라는 위치에서 '과연 객관성을 담보로 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옆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의 지평을 확장해왔던 자매 관계의 강점(?)이 제대로만 살려진다면 이 역시 의미 있는 작업 과정(글쓰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또한 동료이자 작가적 입장에서 남다른 고민과 화두를 주고받는 그녀의 선배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전시 작품에 대한 그들의 소회와 평가 등을 듣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이번 전시에 대한 임 작가와 주변 동료, 그리고 필자의 목소리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근간으로, 마커스와 피셔(Marcus and Fischer 1999)가 제안한 생경하게 하기(defamiliarization, 異化)의 인류학적 시선의 작업이다. 특히, 꽃(그림)으로 드러나는 '여여_무위 如如_撫慰'에 방점을 두면서, 그 작업(꽃그림)에서 추동되는 작가의 시선(바라보기)을 통해 꽃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의미와 인식의 차이를, 과거 시선에 대한 현재의 생경하게 하기를 추적한다.

임남진_상사(相思)-독백_한지에 채색_91×112cm_2012

왜 '꽃'인가? ● 작가 임남진의 이번 전시가 '꽃'을 주된 소재로 한 것에 대한 많은 사람(필자를 포함, 주변 동료 작가들)의 공통된 질문이다. 이는 임 작가가 특히, 2010년 『심심深心한 날』展(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청년작가 초대 개인전)을 정점으로 풍속도의 작가로서의 존재감이 각인된 화가이기 때문이다. 당시 40대 초입으로 들어선 임 작가는 20대와 30대를 거쳐 십수년간의 화두(話頭)인 자아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성찰, 윤회, 구원'을 감로탱화 형식으로 풍속도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표작의 하나인 「영흥식당」에서 볼 수 있듯,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읽어가는 작품들을 보여주었고, 풍속도는 관람객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서며 호평을 받았다. ● 그런데 지금,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수 십 번의 붓질로 형상 하나 하나를 더딘 작업방식으로 보여주었던 임 작가가 꽃 작품으로 초대 개인전을 한다고 하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풍속도에 대한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과연 꽃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비판받을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왜 꽃인지, 꽃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임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배경과 중층의 맥락을 살펴본다.

임남진_상사(相思)-암연(黯然)_한지에 채색_35×27cm_2012

임 작가는 2010년 전시 후 한 해 동안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일 만큼 몹시 힘들었다. 개인전 이후 가질 수 있는 심신의 일시적 소진 상태와는 다른 경험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할 지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나비이야기』展(함평나비축제 특별기획전)에 참여하면서 꽃과 나비 작업을 숙제처럼 시작하였다. 살아있는 생명력에 대한 감흥이 일면서 뜻밖에도 즐거운 작업이 되었다. 5월 『봄의 교향악』展(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꽃과 나무로 새 생명의 싹틈과 발화를 통해 봄을 노래하였다. 두 전시를 준비하면서 꽃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목련과 벚꽃을 보며 잉태되어 튀어나온 생명으로의 그 현상은 새로운 발견이자 감동이고 충격이었다. 그 순간, 임 작가는 감정이입이 된다. "꾸역꾸역 사는 우리랑 너무 비슷하더라"는 작가의 깨달음은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지각의 현상학 Phenomenology of Perception』(2002)에서 제안하는 몸의 현상학을 통해 해명할 수 있다. 즉 작가와 꽃과의 대화 관계를 동반한 관찰의 시간은 작가의 꽃에 대한 시선(바라보기)이 달라지는 과정이었다. 그 관찰에서 작가의 경험은 식물학적으로 분류되는 꽃에 대한 정의가 아닌 작가의 눈(몸)의 체험을 의미한다. 이는 지각의 대상(꽃)보다 현상적 장場에서 일어나는 주체(작가)와 대상(꽃)의 상호작용에 의한 '지각 경험'의 중요성을 주장한 퐁티의 말처럼 " … 우리는 말해야 한다. 우리가 인지한 것이 바로 세계라고"(2002)의 순간이다. 이렇게 꽃(작업 대상)이 인지할 준비가 된 작가의 몸에 포착되어, 작가는 그 인지한 체험의 세계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임남진_할미-석양_한지에 채색_72.5×37cm_2012

'꽃'에 대한 생경하게 하기(defamiliarization, 異化) ● '꽃 그림=예쁜 그림=파는 그림'으로 치부했던 작가의 내면에 각인된 꽃에 대한 오만한 시선의 관성 때문에 처음에는 꽃의 본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통해 그 본성이 작가에게도 포착되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꽃 자체를 잘 그리고 싶은 욕망(desire)으로 민화적 기법을 시도하였다. 『봄의 교향악』展의 작품은 눈부시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꽃이다. 그렇게 화려하게 그리는 작업을 하던 어느 날, 그 꽃의 순간순간이 작가 자신처럼 보였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둔치에서 살아남아 피는 꽃을 보며, 꿈틀대는 생명력에 경외심敬畏心을, 동시에 아등바등 사는 우리네 삶에 투영되어 괴롭기 시작했다. 바로 이름 모를 꽃들에 대해 자료 수집과 관찰을 본격화하였다. ● 2009년 양귀비와 상사화 작업을 시작으로, 올해 목련과 벚꽃, 찔레꽃과 할미꽃 작업은 인간의 生老病死와 喜怒哀樂이 투영된 것이다. 특히 흰 털로 덜레덜레하게 덮인 열매덩어리 '할미꽃'은 작가 머리의 흰머리와 오버랩 되면서 작가 자신의 나이 듦의 과정으로 이입된다. 막바지 휘날리는 모습에서 완전 시들어 죽기 전 고개 숙인 할미꽃의 변화를 보면서 피고 지는 꽃의 그 본성이 인간의 삶과 닮아있음에 작가는 '애잔함'의 감수성으로 포착한다. ● 사라진 청춘, 사라진 격정, 쓸쓸한 흔적들... 그리고 이를 성찰해서 옮겨 놓은 작품이 「할미꽃」 연작이다. 꽃의 본성인 존재의 본성을 작가적 본성으로 애잔하게 노래한 이번 전시 작품들은 결국 임 작가가 사람이 아닌 소재를 통해서도 작가적 본성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동료 선배의 표현처럼, 꽃을 그리되 꽃으로 보지 않는 것. 작가 자신의 감성으로 그려나가기를 시도한 것이다. 결국 꽃에 대한 작가의 관찰은 꽃이 '여여_무위 如如_撫慰'의 세계-모든 현상의 본성으로 변하지 않는 참된 법(如如)을 통해 어루만져 위로하는(撫慰) 세계-에로의 열려있음(지향성, intentionality)을 포착하는 과정이 되었고, 그 열려있음(또는 시선, 바라봄)은 작가의 새로운 지각 경험(experance of perception)으로 생경하게 하기(defamiliarization, 異化)였다고 할 수 있다.

임남진_할미-Ma jeunesse fout le camp_한지에 채색_112×39.5cm_2012

여여_무위 如如_撫慰로서 피고 지는 '꽃'의 서사 ● 벚꽃과 목련에 대한 작품은 봄의 첫 발견으로서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준다. 나무 옆구리에서 피어나오는 꽃들의 향연은 결국 40대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줌으로써 그녀가 계속 화두로 삼고 있는 윤회와 구원의 연장선상에 있다. ● 괴석과 찔레꽃의 어울림으로 돌에 핀 외로운 꽃을 선보인 작품은 기다림과 결핍의 애절함을 닮은 듯하다. 서울 관악산의 엉덩이 바위가 여성의 음부로, 경남 통영의 소매물도(작은 제주도로 불림)는 사람이 우는 모습처럼 보였다는 임 작가가 괴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람 자체 형상에서 벗어나 우회해서 자신의 心象을 다루고 싶어서이다. 돌에서 꽃이 피지는 않지만 기다림의 이미지를 갖는 찔레꽃과 괴석을 연결시켜 그 결핍의 애잔함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가 수채화 기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쉬울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자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양귀비는 너무 예뻐서 그 자체에 대한 감동을 담아낸 작품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잎사귀가 흔들흔들 할 때 그 자태는 교태를 뽐내기 때문이다. 화사한 색을 써보고 싶게 만드는 강한 자극제로서 의미를 갖는 소재이기도 한 양귀비는 꽃과 줄기의 움직임, 그 자체의 빼어난 美感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작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지만 그 표현을 하고자 했던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전해준다. ● 상사화는 작가가 2009년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마당에서 처음 본 꽃이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맞닿지 않아서 그 자체가 슬픈 꽃 이야기로 유명하다. 어찌 보면 꽃 자체는 아름답지도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덩어리(사랑의 결실)를 상징하듯,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해,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꽃무릇(웅크리고 퍼져있는) 상사화다. 색은 다홍빛 나는 붉은 빛으로 색 자체는 좋지만, 작가 마음에 와 닿는 색이 아니었다. 그 해 가을, 상사병으로 죽은 이야기 속의 죽음과 검은 색이 잘 어울린다고 순간 포착된 작품이다. 작가는 그 포착의 순간을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이 역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으로 해명될 수 있다-필자) 자학과 순환의 이미지를 검은색으로, 욕망 덩어리의 이미지를 빨간색의 상사화와 파랑새로 대비시켜 절규하고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을 파랑새를 통해 보여준다. 올 해 가을, 괴석으로 자화상을 그리던 작가는 어떤 꽃을 대비시킬까 고민하다가 상사화를 떠올렸다. 인생이나 작업이 정답(만)이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갈 수밖에 없듯, 이 역시 욕망(desire,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상사화와 삶은 닮았다. 그리고 할미꽃 연작에서 보여준 선인들의 삶에 대한 통찰력까지.

임남진_할미-Thousand of kiss_한지에 채색_70×25cm_2012

이번 전시는 수묵적 호기심이 많은 작품들로 한국화로 전향한 서양화 전공자로서의 작가적 콤플렉스를 안고 먹까지 배우며, 이전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수묵전통 기법을 배우려고 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선배들의 가르침 덕분에 어깨너머로 겉핥기식일 수 있지만 작가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읽혀지며 섭렵이 된 형식의 작품들이다. 사실 이번 작품을 보면 빼어난 묘사력보다는 작가의 감성과 작가적 직관력이 보다 강점으로 녹아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잘 그리는 것이 예술은 아니다"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그녀의 강점이 부족한 묘사력을 커버하고 있다는 동료 작가들의 비평으로 대신하고 싶다.

임남진_꿈길-앙앙(盎盎)_한지에 채색_67×150cm_2012

작가의 話頭는 현재진행형의 작업으로 계속되고... ● 결국 임 작가의 이번 전시 話頭는 『深心한 날』展으로 돌아갔다. 작품 대상과 소재는 꽃과 괴석, 나비 등으로 달라졌지만 작가 내면의 화두는 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다시 돌아오는 임 작가의 고통. 자아 성찰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싫어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을 꽃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동양화 기법을 배우면서 인간이 아닌 꽃과 자연세계를 작업 대상으로 형식적 변화를 꽤하고, 생명력의 역동성을 봄꽃으로 화사하게 그려냈지만, 여전히 임 작가는 자신과 세상사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고 비루한 인간의 삶을 상사화와 할미꽃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색감으로 일치시키게 되는 고민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 모든 작품은 작가 내면에 있는 것이 드러난 것으로, 이번 작품들에서도 정작 자신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들은 멀리서 앉아서 감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어쩌면 임 작가의 이번 전시를 보면서 뭔가 미심쩍을 수도 있을 것이며, 암묵적으로 사회와 타협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날선 지적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임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용기와 도전의 과정이자 場이다. 그리고 이를 꽃 작품으로 감행한 임 작가의 말이다. "꽃 몇 개로 작가의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없으니까… 이번 작품에 대해 비판해라. 나는 그 다음 목표가 있으니!" 이미 그녀는 이후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내용 구상을 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고전 형식을 어떻게 새롭게 차용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 중에 있다. ● 이제 과연, 이번 작품을 본 관람객들에게도 임 작가의 의도나 의미부여가 보일 수 있을까? 소통과 교감은 어느 정도일까? 몹시 궁금하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삶의 본질이 평탄치 않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울퉁불퉁한 그 본질을 좀 더 담담한(?) 형식과 如如_撫慰로서 피고 지는 '꽃'으로 드러내 보인 이번 작품을 통해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잠시라도 또 다른 위로와 공감의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임 작가도, 사람들도 위로가 필요한 일상을 갈망하기에... ■ 임선진

Vol.20121120e | 임남진展 / LIMNAMJIN / 任男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