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정展 / AHNEUNJUNG / 安垠靜 / painting   2012_1121 ▶︎ 2012_1127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2

초대일시 / 2012_11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3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안은정의 웜홀, 시공간을 초월하는 빛의 고독한 여행 ● 안은정의 그림을 처음 대하면 그 현란한 색과 공간표현으로 인해, 마치 웜홀(worm hole)의 입구를 마주 대하고 있는 듯 착각에 빠진다. 기본적인 배경구성은 반복적인 모자이크 타일을 조합하고, 일반 페인팅 기법으로 마무리한 다음, 간간이 광택 처리된 오브제를 붙여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형태는 끝없이 무한하게 반복ㆍ팽창하고 있는 기나긴 터널을 연상시킨다. 안은정은 과연 이 정체불명의 터널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2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2

새로움의 도전 ● 안은정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대개의 작품이 어두운 바탕에서 시작해 점차 밝은 색조로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얼핏 색조로만 본다면 동양화(한국화)의 채색기법 중에 색감의 선명한 발색을 돕기 위한 암채(岩彩) 혹은 석채(石彩)의 칠하는 과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작은 파편처럼 쪼개진 오방색 퍼즐조각들의 조화는 한바탕 빛의 축제를 보여주는 듯하다. ● 다음으로 특별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빛의 전설이라도 보여줄 것처럼 휘황찬란한 축제의 장이지만, 정작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 없는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공간이나 터널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보고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행의 흔적, 그것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빛의 여행'이다. 아마도 그림 속에서 사라진 주인공은 여행중독증을 앓고 있을 확률이 크다. 안은정은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버린 주인공의 흔적을 특유의 색감배열과 공간분할로 재구성해 이미지화 하고 있다. ● 이어서 안은정의 그림에선 '고독한 독백'처럼 이름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고독과 낭만을 한 몸의 가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외떨어진 고독감은 역으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기 때문이다. 간혹 그림의 부분 부분에 거울조각을 오브제로 활용한 점도 눈에 띤다. 이 역시 스스로 고독의 그림자를 비추며 위안으로 삼길 바라는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안은정이 초대한 이 여행의 터널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가게 될 길을 바라보는 것일까? 보는 이가 지닌 고독의 깊이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2
안은정_City_나무 패널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2

초월적인 경험 ● 흔히 화가의 창조력은 우주를 창조하는 작업과 같다고 비유되곤 한다. 텅 빈 캔버스 화면에 단순히 물감을 칠하는 행위는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무형의 메시지를 유형화시켜 소통하는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문자가 나타나기 전엔 이런 행위가 곧 우주를 창조한 신과의 교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안은정의 조형언어는 마치 종교에 있어 신비한 내적 체험인 '초월적인 경험'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색채의 마술사 로스코의 회화가 가장 기본적인 색감의 구성으로 그러한 느낌을 살렸다면, 안은정은 그 색조들의 비늘(혹은 조각)을 새롭게 파편화시켜 재구성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빨강ㆍ노랑ㆍ파랑ㆍ주황ㆍ보라 등은 흰색과 검은 색의 감각적인 무채색과 만나 특유의 신비스러운 연출력은 종교성까지 연상시킨다. ● 이러한 안은정 그림의 '광도효과'(光度効果, 빛의 진행방향에 수직한 면을 통과하는 빛의 양을 조율하는 효과)는 중세 이래 빛의 효과를 중요시 하는 회화에 전통적으로 구사된 기본 원리와도 닮았다. 그래서 안은정 그림이 보여주는 빛의 효과는 자연의 빛 이외에도 종교적 신비성을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 그녀의 그림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거나 간혹 강렬하게 산란하고 있는 빛은 직사광선이라기보다 반사광에 가깝다. 어떤 물체에 맞닿아 반사된 빛으로 인해 오히려 그 물체가 지닌 자체의 빛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굴절된 현상을 목격하는 겪이다. 이처럼 관람자를 에워싸면서 퍼져 나가는 빛의 난반사효과는, 거대한 화면 속에 그 관람자를 묶어 놓는 영적인 매력을 지녔다. ● "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서 출발합니다. 그림을 통해 쉼 없이 생각하고, 다시 그 그림을 통해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길을 지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좋아하는 여행의 진정한 묘미처럼, 누구에게나 지루함을 주지 않는 그림으로 더욱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안은정)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2

고독의 그림자 ●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의 몸집 이상으로 고독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상계가 거대한 무의식의 표상임을 믿는다면, 고독감 역시 숙명적으로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독은 평소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 우리 자신의 저 깊은 심연에 잠든 그것은 나를 두려움으로 옥죄일 수도 있지만, 한없이 기쁘게 할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도 있다. 고독은 그림자에 숨은 어두운 존재와 같아서, 밝은 빛 아래에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늘 곁에 따라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 그림자를 바라볼 때 불현듯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고독은 마치 우리 자신 속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영혼과도 같다. ● 간혹 고독은 삶의 껍질을 상하게도 하지만, 또 다시 그 상처를 아물게 치유하기도 한다. 때문에 고독감은 허무함과는 다르다. 자기 자신을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자신의 그림자에 몸을 실었던 고독의 존재감을 바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또 다른 자신을 찾는 과정과도 같을 것이다. 안은정의 그림 역시 무심결에 낡아진 우리의 그림자를 다시 살피고, 동시에 잠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여행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빛의 변주를 활용한 그녀의 그림에서 비록 제대로 된 인기척을 찾을 수는 없지만, 새로운 기운이 느끼게 되는 것도 남들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불교의 선지식이며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이신 월호 스님의『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저서명이자 문구를 좋아합니다. 우리 스스로 행복한 삶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야 하며, 매순간 치열하게 살면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안은정)

안은정_City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12

여행의 기술 ● 안은정은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미지의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자신의 기대감과 전혀 다른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어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런 여행지에 대해서 넉넉한 관용을 베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차피 마음먹고 시간과 경비를 투자한 자신의 노고와 추억을 망치고 싶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 것이다. ● 그래서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말처럼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사진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가슴으로 느끼기도 전에 사진부터 찍는다. 아마도 어차피 여행에 대한 감각이나 기억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염려해 구체적인 물증을 남겨놓기 위한 조바심의 결과이다. 그런데 점차 흐릿해져 가는 기억조차도 그 여행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이 더욱 소중해짐을 인정하지 못한다. ● 아무리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된 여행지일지라도 보는 이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형편없는 곳으로 전락될 수 있는 것이 여행의 이면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에 있어 '기대와 그 현실 사이의 관계'이다. 드 보통이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고 말한 것처럼. ● 안은정의 터널 그림 역시 여행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도 인도한다. 입구와 출구는 따로 없다. 어느 방향이나 시간으로 갈 것인가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여행자의 몫이다. 자신의 체형과 체질에 맞는 여행의 기술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비록 고독한 자신과의 우연한 조우가 있을지언정, 한 자리에 멈춰서 있기보다는 어느 방향이든 한걸음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안은정이 초대한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의 터널'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서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어쩌면 조용한 혼자만의 여행을 갈망하는 우리를 위한 특별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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