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예술 The Art of Painting

2012_1121 ▶ 2012_1230 / 월요일 휴관

홍경택_선물_캔버스에 유채_24.3×33.4cm_2010

초대일시 / 2012_1121_수요일_05:00pm

정수진의 새로운 시각 이론 프리젠테이션 / 2012_1128_수요일_03:00pm~04:30pm

참여작가 / 남경민_서상익_이동기_정수진_홍경택

기획 / 이진숙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82.720.1524~6 hakgojae.com

회화의 예술 ● 전시의 제목 『회화의 예술 (The Art of Painting)』은 베르메르의 작품에서 제목을 빌어왔다. 베르메르의 「회화의 예술」은 영광스러운 회화의 세기인 17세기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중략) 츠베탕 토도로프는 그의 저서 『일상 예찬』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귀 기울일 만한 중요한 지적을 한다. 한 시대가 위대한 시대임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새로운 세계관과 자극이 모두를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점, 여러 대가들 외에도 평균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들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회화적인 실천이 당대의 상식과 일반적인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적인 진실에 도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략) 17세기야 말로 어떤 영역에서보다 회화가 시대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빠르게 도달해서 꽃을 피웠다는 말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처럼 회화가 승리를 구가할 만한 세기였다. ● 매개론의 주창자 레지스 드브레도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이와 비슷하게 회화를 포함한 이미지들에는 동시대의 철학이나 사회과학보다 앞선 현실 인식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방식, 과학적 패러다임,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를 알고 싶으면 도서관보다 차라리 현대미술관으로 가라"고 말한다. (중략) 이때 레지스 드브레가 말하는 이미지는 회화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진, 비디오 아트, 영화, 광고, 만화 등 다양하다. 심지어는 회화 역사의 종결이 이미지 역사의 종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홍경택_NYC 1519 part 1_리넨에 유채_194×259cm_2012

손 안에 들려져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우리 모두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는 차고 넘쳐서 범람하여 무의미해지기까지 했다. (중략) 내가 다른 글에서 썼듯이 "백남준에 의해서 본격화된 미디어 아트가 디지털 혁명과 대중문화의 발전을 통해서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먹었던 유모의 젖에는 대리석 가루가 들어있었다면, 현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린 시절 먹는 분유 속에는 만화영화와 게임이 들어있는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림을 사랑한다. 궁금하다. 왜 회화는 계속되고 있는가? ● 나는 이 글에서 재현이론, 반재현이론, 재현에 대한 재현 이론, 평면성 이론 등 회화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논의를 반복하며 지면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부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달리 회화에 대한 유일한 이론이 아니라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회화가 벌여온 엔드 게임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다. 20세기 이후 회화의 종언은 여러 번 선언되었지만, 회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경영학의 교과서 문구를 실현하듯이 매 위기의 순간, 회화는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내었다. 종언을 고하는 행위는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관행으로는 존립이 불가능할 것 같은 위기감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는 '생명연장책'이다. (중략) 21세기가 된 상황에서 20세기 후반기를 지배했던 이론(특히 형식주의 이론)은 그 시효를 다한 듯이 보인다. 만약에 이 이론들의 여전히 유의미 하려면 새롭고 획기적인 실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교호작용은 분명 흥미로운 실천을 낳았다. 그러나 그 이론이 마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서 창작에 작동을 할 때에는 예술을 황폐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1990년 이후 한국미술의 양상은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지금은 모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시점이다. 어쩌면 새로운 엔드 게임을 벌이기 위한 숨 고르기 일지도 모른다.

남경민_클림트 작업실_리넨에 유채_145.5×112cm×2_2012

이번 전시에는 이런 변수와 별 상관없이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화가들 남경민, 서상익, 이동기, 정수진, 홍경택이 전시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신념, 혹은 무관심으로까지 보이는 그 뚝심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다.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이다. 큰 문제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거쳐서 실천하며 대답해야 할 큰 문제이다. 그러나 던진다. 대답하기 쉽게 좀 쪼개서 문제를 던진다. 21세기에도 회화가 존속한다면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본인 스스로는 왜 그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작가들은 우선 작품으로 답을 하기로 한다. 작품과 함께 도록에 실린 긴 대담을 실어서 소통을 보다 원활히 해본다. 기획자의 장황한 설명으로 관람객과 작가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담백하게 작가들의 육성에 귀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전시는 진행된다. ● 관람객들은 이 작가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흥미롭게 귀기울이길 바란다. 유행하는 담론의 틀에 맞춘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모두 진솔하게 작가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상익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년대 후반생의 대부분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로 데뷔한지 길면 20여 년 짧으면 10년간 작업을 해온 중견 작가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작업의 뒤안길에서 그들이 느낀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 방향 제시가 아니라 중간 점검이 전시의 목적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그들의 작업이 더욱 심화되고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 돌아봄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작가들의 변화와 혁신의 순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사각의 평면이라는 회화의 공간은 그들에게 지옥일까? 천국일까? 새로움이 미덕이 아닌 이곳, 구상화에서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이곳, 회화의 공간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서상익_예술가의 신전 - J.뒤뷔페_캔버스에 유채_27.3×19cm_2012

남경민은 기존의 「화가의 아뜰리에」시리즈를 더욱 숙성시켜서 발표한다. "캐주얼한 분위기의 회화적 식탁"을 마련하고 치유와 소통이라는 예술의 몫을 차분하게 수행한다. 서상익은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와 미술관을 둘러싼 이야기를 중심으로 회화에 관한 자기 생각을 펼쳐나간다.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로 그들의 작업 방식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그는 회화에 대해서 더 많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동기는 팝아티스트라는 규정을 넘어서 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는 메타 미디어적인 작품을 꾸준히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추상작업과 또 대중매체에서 제공되는 이미지의 상투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정수진은 그 동안 오랫동안 공약해왔던 새로운 시각 이론을 발표하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홍경택은 지금까지의 평면적인 작업과는 달리 회화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세속적인 가운데서 성스러운 땅이나 초월적인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선과 악"이라는 오래된 인간의 문제 또한 끄집어 낸다. 이런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예술이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영역이기도 하다.

이동기_코카인_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아크릴채색_210×200cm_2012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속에서 몇 가지 아주 큰 현재적 진단을 의미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회화에 대한 형식주의적인 이론이나 내용 중심의 이해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였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한 시기가 끝나면 종합의 의지가 강해진다. 결국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으면서도 새로운 지점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추상화와 구상화에 대해 여러 작가들과 나눈 결론은 그 양자가 초기의 추상화 주창자들이 주장했던 것만큼 커다란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가능한 것은 회화의 역사가 그만큼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화들이 차용, 패러디, 오마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된 회화의 역사를 이용하면서 메타 페인팅(meta painting)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미 회화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다. 여기서 늘 새로울 것을 강요 받는 예술창작의 본성상 그만큼 회화의 여지는 좁아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좁아진 영역에서의 새로움을 일구어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자부심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두 번째로 화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회화의 존립 가능성은 바로 '인간' 자체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손으로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고, 구현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회화라는 것이다. 인간이 육체를 가진 존재인 한, 인간이 살아있는 한, 평면에 어떤 이미지를 그리려는 욕구는 본능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혁명으로 소통의 간접성이 증대되고 모든 것이 정보로 환원되는 비물질화, 추상화 과정이 가속화 되는 가운데, 구체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리라는 예측 속에 굳건히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물질성을 가지고 있는 회화는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수진_형상의 종류_캔버스에 유채_15.8×22.7cm×64_2012

회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누는 길의 끝에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예술가들이다. 어쩌면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라는 곰브리치의 유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각의 평면은 그들에게 천국일까, 지옥일까?라는 소박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도 얻은 것 같다. 그것은 행복한 지옥이자, 불행한 천국이었다. 남경민의 표현대로 "회화와 (그들의) 관계는 팔과 다리와의 관계, 마음과 육체와의 관계라 할 만큼 밀접하고도 가까운" 관계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남경민, 서상익, 이동기, 정수진, 홍경택 이 5명의 작가가 한국 회화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한국 회화의 매우 중요한 일부이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생생한 육성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이진숙

Vol.20121122g | 회화의 예술 The Art of Paint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