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의 감성 Sensitive Tangibility, Tangible Sensitivity

문준용展 / Joon Y. Moon / 文畯鏞 / installation   2012_1121 ▶︎ 2012_1127

문준용_Inter-Scenery_LCD, pull-chain 스위치, 아두이노, 키넥트, 컴퓨터프로그램, 골격인식,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2

초대일시 / 2012_1121_수요일_07:00pm

2012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프로그램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문준용은 모션그래픽스를 거쳐 현재 강사, 프로그래머, 디지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증강현실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혼합된 인터랙티브 작품을 위주로 테크놀로지 뒤에 숨은 감성을 세상에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MOMA를 비롯하여 FILE, Onedotzero, Microwave,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등에 전시되었다.

문준용_Inter-Scenery_LCD, pull-chain 스위치, 아두이노, 키넥트, 컴퓨터프로그램, 골격인식,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2

Inter-Scenery ● 참여자의 실루엣을 가상공간 속에 그려내는 인터랙티브 설치영상이며, 휴먼 풀바디 인터랙션이다. 나는 관람객과 스크린, 전시공간, 그리고 영상 안의 가상공간을 아우르는 내러티브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풍경'이라 부름직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작품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의 풍경과, 실루엣이 삽입된 가상공간의 풍경, 가상공간이 삽입된 전시공간의 풍경, 최종적으로 이렇게 여러 풍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스크린에 의해 괴리된 현실과 가상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풍경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이는 참여자에게 현실과 가상,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문준용_Augmented Shadow_프로젝터,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컴퓨터프로그램, CV, ARToolKit, 테이블, 아크릴박스,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0
문준용_Augmented Shadow_프로젝터,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컴퓨터프로그램, CV, ARToolKit, 테이블, 아크릴박스,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0

Augmented Shadow ● 「Augmented Shadow」는 디스플레이가 되는 테이블 위에 사용자가 움직일 수 있는 큐브의 그림자를 인공적으로 생성하는 장치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림자가 빛의 각도에 따라 왜곡된 실루엣을 보여주며 그로부터 종종 판타지가 생겨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이 장치의 그림자들은 사실적인 물리법칙에 따라 큐브의 바로 밑에 빛의 각도에 맞춰 투영된다. 하지만 그 형태는 큐브가 아닌 그림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변하며 다른 여러 상상의 생물체들과 상호 공존한다. 그들은 사용자가 이 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행동하며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용자들은 큐브를 통해 빛과 그림자를 제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이 생태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구성원들 사이의 연쇄 반응을 이끌어 낸다. 사용자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개미집을 가지고 놀듯이 이 생태계에 직접 참여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 ● '이웃집 토토로'의 마쿠로 쿠로스케와 소녀의 인터렉션을 모티브로 한다. 소녀는 이 미지의 생물을 처음 마주쳤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만 곧 호기심을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으로 잡아보려 한다. 마쿠로 쿠로스케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나타난 침입자를 피해 달아나지만 다시 눈치를 보며 돌아와 새로운 동거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일련의 경험-새로운 세계의 발견, 관찰과 상호작용, 학습, 그리고 공존-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환경을 티 테이블이라는 일상 공간에 구현하고, 최소한의 규칙만을 지정해 자유로운 인터렉션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 금산갤러리

문준용_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_LCD, 적외선조명, 적외선카메라, CV, 컴퓨터프로그램, 참여자, 인터랙티브 설치_가변크기_2011

재매개의 빛이 주는 영적 판타지의 세계-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 - 유기체로서의 확장된 그림자 ● 가로 놓인 흰 테이블은 직사각형이다. 윗부분이 반투명한 아크릴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졌고, 성인이라면 허리를 굽혀 그 위를 만지기에 맞춤한 높이다. 그 위에는 희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한 큐브들이 아무런 계획 없이 놓인 것처럼 자유롭게 흩어져 있다. 그들 사이를 점하고 있는 새떼, 자그마한 집, 마치 기호와 같아 보이는 사람 그리고 나무들이 그림자 형태로 존재한다. 이른바 가상현실의 도상(icon)들이다. 그 도상들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어느 동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양 고요하고 정적인 실루엣으로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준용의「확장된 그림자; Augmented Shadow」(2010)는 이처럼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로 그린 듯이 놓인 작품이다. 다가선다. 테이블 위의 큐브를 여기저기로 움직여 보기로 한다. 이때 경이로운 변화의 시점을 맞게 된다. 고요하고 정적이었던 실루엣들이 한꺼번에 난만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큐브에 상응하듯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하고, 몇 그루의 나무는 급히 생장하여 움직임을 시작하며, 새떼가 새파랗게 추운 날 둥지로 깃들기 위한 것처럼 날기 시작하고, 다른 큐브들 뒤로 감추어진 집들의 그림자가 각도를 달리하며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한 요소가 다른 요소들과 관계해 먼 곳은 가까움을, 가까움은 멂을 간섭하고 스며들기를 반복한다. 큐브가 고요하게 움직이면 그 모든 것들이 숨죽이듯 움직이며, 요란한 큐브의 움직임은 급작스런 요소들의 움직임을 불러낸다. 하지만 큐브(도구)의 움직임과 요소들의 움직임(이미지)은 실제의 고리에 의해 움직이듯 끊어짐이 없다. 관람자는 그렇게 작품과 대화하고, 작품은 그렇게 관람객과 호응한다. 문준용과 재매개 ● 미국의 대표적인 뉴미디어 연구자인 볼터(J.D.Bolter)와 그루신(R.Grusin)은 뉴미디어아트(New media art)의 속성을 재매개(remediation), 비매개(immediacy), 하이퍼매개(hypermediac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다소 황망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사실 이 개념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예술의 속성을 설명한 데 불과하다. 뉴미디어아트가 기존의 전통적 방식의 예술 형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매체와 관람자와의 적극적인 상호성(interactive)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즉각적인 피드백(feedback)에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속성이 위의 세 가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알고 보면 모든 뉴미디어아트는 이미 존재했던 미술작품의 형식, 문학·영상작품의 이야기 구조, 음악의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다는 것이다. 볼터와 그루신은 바로 이 개념을 재매개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일단(一端)이며, 뉴미디어아트의 존재 기반이기도 하다.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아트의 경우라도 재료·기법에서의 진보성과는 달리 그 내용과 형식에서는 제도화된 예술과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문준용의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을 활용한 위의 작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인다. 여기에「Image Processing Application」(2009)이라는 작품에서 시도한, 사진작가 김아타의 'Indala' 프로젝트를 위한 디지털 이미지 처리 어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로 재매개 과정을 보여준다. 대형 이미지 1장만을 사용하여 그것이 스스로 복제되고 생성되어 겹쳐 마침내 회화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그대로 재매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회화'로의 진입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언뜻 저 유명한 릴리언 슈워츠(Lillian Schwartz)의「모나레오(Monaleo)」(1987)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모나레오」가 디지털 기술로 합성한 초보적인 디지털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문준용의「Image Processing Application」은 자기복제 기술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원본으로 삼아 그 속에서 끊임없는 세포분열의 과정을 거친 본격적 디지털 회화라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시도로 보인다. 한 장의 사진이 곧 원본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같은 표면에 그것의 복제가 수없이 겹쳐져 생성되는 이 기묘한 디지털 회화는 원본과 복제의 공존이면서 그 자체가 또 다른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는 연이은「Parsons Thesis Symposium ID」(2009)로도 연결되는 경향으로 여기에서도 역시 그는 모션그래픽스를 사운드 분석 및 시각화에 이용하여 독자적인 시각 환경을 만들고 있다. ● 이처럼 문준용은 일반에게는 생소한 동작 인식에 기반을 둔 컴퓨터 비전과 자기 복제라는 이미지 분석·창조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현해내는 세계는 따뜻한 감성이 주가 되는 이야기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작품이 문학적 서사 구조와 조형예술의 재현적 속성이 결합된 형태라는 것을 설명 가능하게 한다. 관람자(사실 인터랙티브 아트에서는 관람자라기 보다는 '참여자'가 더 적합한 용어일 것 같다)가 큐브를 여러 각도, 다른 힘과 속도로 조작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동작 인식이라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과정적 프로세스와는 별도로 최종적으로 눈앞에 재현되는 이미지와 그것의 이야기 구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서 큐브는 '참여자'의 머릿속에서 조합되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현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로 머문다. 이것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요소 중 하나인데, 큐브는 존재함으로써의 감상의 대상이 아닌, 조작을 함으로써 남다른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매개라는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조작을 하는 도구는 그 자체로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이미지, 사운드, 움직임이라는 결과물을 얻게 하는 도구로 그쳐야 하며, 이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본질적 속성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마치 우리가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액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용을 보는 것, 혹은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를 볼 때 액정 혹은 그를 둘러싼 베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해내고 있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는 도구적으로는 첨단성을 지니지만, 그 내용은 이미지의 재현 내지 미메시스(mimesis)적인 도상이 담보하는 정서적 차원의 예술을 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뉴미디어아트가 그 도구적 측면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결국 그것이 지향하고 편입되어야 하는 영역이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준용은 적절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앞서 이야기한 재매개와 비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이퍼매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재매개, 비매개가 미학적 차원의 논의라면 하이퍼매개라는 개념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적 차원의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보통의 예술작품, 특히 영상이나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선형적인(linear)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한 지점에서 전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뉴미디어아트의 속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앞서 본 문준용의 작품에서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 비전에 따라 참여자마다의 조작으로 인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양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으로 보인다. 사실 이 하이퍼매개는 관람자 혹은 참여자의 의식 바깥에서 작동하는 원리이므로 다른 두 개념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뉴미디어아트의 속성이자 문준용의 작업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예컨대 그의「메두사Medusa」라는 작품에서는 하이퍼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생성적 그래픽(Generative graphics; algorithmic graphics)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녹화되어 있는 이미지가 나오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계속 생산해내는 기술인데, 음악과 이미지가 일체가 되어 종합적인 매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시 참여자가 스크린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몸을 움직이면 그 각도에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Body Pen」도 생성그래픽을 이용하여 하이퍼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문준용의 빛, 영적 판타지 ● 문준용의 뉴미디어아트에서 구현해내는 컴퓨터 비전이나 생성그래픽 등과는 별도로, 혹은 그와 맞물려서 주목을 요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빛이다. 물론 지금 논의하려는 빛은 뉴미디어아트의 일반적인 속성과도 같다.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비물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빛 내지 광선은 조형예술에서 일반화된 소재로 도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준용은 빛을 소재 내지 재료로 삼지만, 그가 다루어내는 빛은 그저 거기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그에게 빛이란 앞서 서술했듯이 재매개와 비매개의 경계에 위치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자의 심리적 동인을 환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좀 더 들어가자면 문준용의 빛은 '시각 신경을 자극하여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전자기파'이기도 하면서 '무엇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나 '표정이나 눈, 몸가짐에서 나타나는 기색이나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점이 문준용의 작업에서 꾸준히 읽어내고 느낄 수 있는 특성이라고 보이는데, 이는 예의 감성에 기반을 둔 재매개성이라는 그만의 독특함을 발현하는 지점인 것이다. ● 이처럼 빛을 심리적 동인의 주된 요소로 사용한 예는「마쿠로 쿠로스케 테이블」(2011)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처음 살펴본「확장된 그림자; Augmented Shadow」와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즉 티 테이블이라는 형식도 그러하거니와 참여자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끊임없이 형식요소들이 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타이틀인 '마쿠로 쿠로스케'라는 이름이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소녀가 이사한 첫날 짐을 옮기고 집 청소를 하는 도중에 만난 숯 검댕이 같은 것들을 말한다고 하면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미지의 생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심리적 이질감과 두려움 그리고 곧이어 마주하게 되는 호기심 등을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문준용은 여기에서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정서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로 빛을 도입하는데, 사면이 나무의 그림자로 둘러싸인 공간에 손이나 다른 물체를 대면 그 안에서 점, 선, 기호와 같은 여러 가지 모양의 작은 빛이 형형색색 빛이 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테면 책을 그 위에 놓아두고 살짝 책을 들추면 그 안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여러 빛깔의 광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은하수와 같이 어둠 속을 밀도 있는 작은 형광색의 빛이 가득한 체험은 참여자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동화적 공간 안에서 비밀스러운 놀이를 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해 주어 그 자체로 특별한 맥락을 점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물체이든, 어떤 재질이든 상관없다. 그저 어둠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안에는 역설적으로 찬란한 빛을 담게 될 테니 말이다. ● 이러한 점에서 문준용의 작업은 정서적 재매개의 경향을 가진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문학, 영상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인터페이스 속에서 참여자가 스스로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줌으로써 참여자는 매체를 의식하면서도 이내 그것에 동화되는 자신을 보게 되는 바, 이는 재매개의 비매개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사례인 것이다. ●「마쿠로 쿠로스테 테이블」에서 시도한 판타지의 기표로서의 빛은「Luzes Relacionais」(2010)와「Projection Mapping for Sae Byung Kwan」(2010)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으로 영적(靈的) 판타지라는 상징이 더해진다. 이는 통영 세병관을 모티브로 한 후자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문준용은 조선시대의 이 기념비와 같은 군사용 건축에 빛이라는 영적 판타지를 시각화하는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군사지휘소라는 구체적인 맥락을 떠나 마치 진공상태와 같은 탈 용도·탈 지역적 맥락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대상이 가진 역사성을 뛰어넘어 그것의 오브제로서의 성격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대상의 의미를 '영험함'이라는 작가 스스로가 의도한 의미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새로움을 탐색해야 할 그의 뉴미디어아트 ● 알다시피 뉴미디어아트의 존재는 새로움을 그 전제로 삼는다. 물론 새로움이라는 가치는 예술 일반에 해당하는 공통적 속성이기는 하지만, 새로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뉴미디어아트는 특히 최신의 재료와 공법에 매몰되곤 하는 강박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한때의 호사취미 정도로 끝나지 않으려면 오히려 새로움을 넘어서는 예술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도입하여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고 하여도 그것은 곧 하릴없는 세월의 파도 속에서 '뉴(new)'라는 접두어를 붙이기에 난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뉴미디어아트가 예술적 계보 위에 놓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예술적·미학적 담론 안에 위치하여 도구적 자세를 지양하는 전향적 사고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문준용의 작업은 그런 면에서 대개의 뉴미디어아트와는 조금은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는 듯하다. 첨단의 매체와 기법이 실험적 태도 위에서 사용되면서도 그것들이 갖는 기표적·상징적 의미의 중심에서 비껴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이후의 행보에 대해 궁금함을 갖게 한다. 고단한 작업의 방식만큼 다작과는 거리가 먼 그이지만, 작품마다 보여줄 남다른 의미를 기대하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 박석태

Vol.20121124h | 문준용展 / Joon Y. Moon / 文畯鏞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