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데뷰) 2

지은이_북노마드, 제너럴그래픽스

지은이_북노마드, 제너럴그래픽스 || 판형_187×233mm || 쪽_288쪽 발행일_2012년 11월 26일 || ISBN_978-89-97835-09-6 04600 || 가격_20,000원 || 출판사_북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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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왜 이 모양일까. 삶을 재단하는 규격이 있다면 형편없는 불량품 인생. 말은 생각을 따르지 못하고, 행동은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삶. 모든 문제가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로 끝나는 모양.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초라함.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밀려난 듯한 기분. 삶의 곤경을 이겨낼 힘도 패배를 받아들일 용기도 없는 유약함. 내가 정한 원칙이 아니라 다른 이의 법을 따르는 비루함. 결국 살아가기에 급급한 비겁한 삶... 한때 나를 지배했던 거대한 욕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속절없이 사라지고 가뭇없이 저물어간 나의 꿈. 완벽한 패배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낙오자. 별안간 불쾌감이 엄습한다. 지금 존재하는 나는 누구일까?(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그래, 사춘기다. 다시 찾아온 사춘기. 제목을 '제2의 사춘기'라 붙였다. 제1의 사춘기와는 분명 다른, 어느 날 문득 터무니없지만 정확하게 찾아온 느낌. 누군가 나를 정탐하는 듯한, 아니 비웃는 듯한 기분.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황량함. 감동도 방향도 없이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 나를 감싸는 지루함과 권태로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수치심. 아무데라도 떠나고 싶은 절박함. 이런 상태가 제법 오래 지속된다면 당신은 제2의 사춘기를 살고 있다. 나 또한 당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우리는 환자다.) ● 처음에는 잠시 쉬면 될 거라고 여겼다. 그건 오만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알량한 휴식이 아니라 완전한 재생이었다. 내 안의 사유와 의지, 느낌, 취향의 밑바닥을 뒤흔드는 충격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같은 곤고함을 등에 지고 신음하는 작가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이십대에서 사십대의 '젊은' 작가들이다. 다시 찾아온 사춘기라는 희미한 감정을 이미지로 옮겨보려 노력한 이들이다. 개성 있는 감정으로, 우리의 몸 어디쯤 영혼이 살아 있는지 짚어주는 이들이다. 오롯이 제2의 사춘기를 염두에 두고 그린 작업도 있고, 우리가 뒤늦게 이름붙인 작업도 있다. 우울을 앓는 후배들을 위무하기 위해 모신 선배 작가들도 있다. 만드는 내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내 망설였다. 속전속결로 만들지 못하고 주춤거렸던 이유다. 그러다 퍼뜩 떠올랐다. 본래 삶이 처한 어떤 느낌은 알 듯 모를 듯 희미한 법. 우울한 감정으로 점철된 제2의 사춘기라는 삶의 양태를 모두와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어떤 테마를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면 비난만큼의 용서와 이해를 구걸할 수 있다고 자위하기로 했다. 흔해빠진 한 권의 미술무크지에 불과한『debut(데뷰)』의 진심을 믿어줄 이가 반드시 있다고 나는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음을 이해해주는 이를 나는 '당신'이라고 부르려 한다.(당신, 반갑습니다.) ● 몇 가지를 더 고민했다. 체계 없음을 걱정해 전체를 지탱하는 질문을 작가들에게 요청했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의 글은 지금 미술계에 감도는 우울의 실체를 사유케 한다. 멜랑콜리(Melancholy)의 비애가 작가 내부에만 고여 있는 건 유치해서 볼썽사납다. 어떤 미술은 아름다우면 그만이지만, 어떤 미술은 삶에 팽팽한 긴장을 안겨줘야 한다. 그래서 미술평론가 이선영의 글을 덧붙였다. "살아가기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해방된 예술. 인생만큼 단조롭지만 단지 다른 곳에 있는 예술"(페르난두 페소아)을 지지하는 나의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자고로 미술은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 미술에 필요한 것은 제도와 미술인, 그리고 미술의 삼위일체가 동시에 바뀌는 것이다. 미술의 뉴웨이브는 그때 열린다. 알고 있다. 헛된 꿈이라는 걸. 욕망하는 인간은 욕망되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예술 작품의 물성'(하이데거)과 온전한 삶으로서의 미술을 꿈꾸는 '욕망'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내가 '결핍'된 존재라는 얘기다. 나는 그 '결핍의 욕망'으로 세상을 상상할 것이다.(질투, 아니 결핍은 나의 힘이다.) ●『debut』는 이름 그대로 미술계에 갓 데뷰를 앞둔 이들을 염두에 둔 책과 잡지의 경계물이다. 그래서 사십대 언저리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는 미술대학에 다니거나 졸업을 앞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추가로 요청했다. 미술대학이라는 저 만족스럽지 못한 공간을 학생으로, 선생으로 동시에 살아낸 이들이다. 저마다 달라 보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술의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함으로 살아가라고, 그 겸양에서 모든 것을 상상하는 힘이 나온다고, 미술가의 삶은 단조로움을 극복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그러니 가장 사소한 것에 흥미를 느껴야 한다고, 그 순간 미술은 곧 삶이 된다고 했다. 미술은 한 번쯤 살아볼만한 일이라는 그들의 말에 내가 먼저 용기를 얻었음을 고백하련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견고히 자리잡은 작가들이건만,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내놓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을 다듬는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그림을 욕망의 구현이 아닌, 매일매일 감당해야 하는 숙제로 받아들이는 작가들을 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늘 돌이켜보지만 미술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태도가 형식을 만든다. 단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허울 좋은 말로 위로하려 들지 않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히 고백해준 작가들에게 감사드린다. 대학에서의 '잘 그린' 미술을 버려야 하는, '데뷰'를 앞둔 젊은 작가들이 선배들의 미술 여행에 동참해주면 바랄 게 없겠다. 그들이 '어떤 정거장에 들렀는지, 예술 형식과 예술이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어떤 예술적 한계에 부딪쳤는지, 또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매달렸는지'(오르한 파묵)를 숙고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미술이 도드라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세상은 그대들이 붓을 꺾을 만큼 공평하지 않다. 그 부조리를 그려야 한다. '지금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세상의 질문에 '그리는 자'라는 보이지 않는 명함을 내놓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미술을 선택한 순간 삶은 늘 손해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좀 더 세상을 살아온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삶의 대차대조표란 결국 거기서 거기일 뿐이라고. 그러니 믿기로 하자. 설령 그것이 지는, 아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더라도 링에 오르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매 호마다 테마에 맞는 '꼴'을 고민하는, 그래서 늘 편집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디자인을 안겨주는 제너럴그래픽스 문장현 대표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우리 맛있는 밥, 먹어요.) ● 이 책을 만드는 내내 우울했다. 진실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다는 걸 알았다. 우울을 그리는 작가도 예상 밖으로 많았다. 우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파하고, 우울을 그릴 수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을 갖춘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단호했고 그만큼 세심했다. 일견 걱정스럽기도 했다. 우울이 시각적 테마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노파심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창조적인 충동은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축복이다. 모든 작품의 배후에는 그 충동을 시각적인 것들로 전환시키기 위한 표현의 의지와 열정이 도사린다. 그렇다고 우울의 감정의 기미(幾微)들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다다랐는데 알고보니 배다른 남매더라'식의 '막장 문화'가 이미 보여주었다. 우울은 뼛속 깊이 느끼되 동시에 무심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것이다. 우울이라는 멜랑콜리는 평평하게 바라볼 때 깊이가 생겨난다. 비밀이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신비를 잃는다. 살이 발라진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대는 이는 없다. 다행히 작가는 함부로 우울을 드러내기보다 우울이 도사리는 시각적 틀을 주조해야 한다는 명제를 이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표현을 빌린다면 지극히 '윤리적'인 작가들이다. 지시가 아닌 '암시'로 우울을 견뎌내는 그들의 태도에 힘을 얻었다. 이 미친 세상에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이가 없다면 나는 정말 절망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파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만져야 하고 건드려야 하고 닿아야 한다. 그것이 마음이든 몸이든. "풍경은 내 안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세잔의 말이다. 세잔의 고백 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 풍경은 '우울'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울한 풍경이 내 안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우울한 풍경의 의식인 것이다. 그 우울의 뉘앙스에 삶의 미학이 있다. 그 자리에 나의 삶과 너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공감이 생겨난다. 그러니 당신도 우울해져라. 최선을 다해 자신을, 세상을, 시대를 의심하라. 우울은 더이상 하나의 테마가 아니다. (이제 우울은 하나의 장르다.) ■ 윤동희

지은이 북노마드 2007년 4월 1일 장국영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 시작한 소규모 출판사이다. '아주 예쁜 시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여행, 에세이, 시각문화에 관한 책을 펴내고 있다. 제너럴그래픽스 제너럴그래픽스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목차 editorial_윤동희 김산영 문성식 윤정선 이동기 이호진 전수경 정보영 정용국 정재호 차혜림 최경선 대중성과 공공성이라는 양 날개_이선영 구명선 권순영 김선휘 김은혜 박신영 서민정 성유진 이지현 장영원 정세원 허용성 홍수정 우울한 박테리아, 우울한 병리학_고충환

Vol.20121126h | debut(데뷰) 2 / 지은이_북노마드, 제너럴그래픽스 / 북노마드